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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적 대공 탄막에 스스로 뛰어든 조종사

mistyblue 2013. 8. 1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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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대공 탄막에 스스로 뛰어든 조종사



전폭기가 폭탄을 무장하고 출격했을 때, 적기에게 요격을 당할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조종사는 무장한 폭탄을 모두 버리고 회피 기동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F 105 기의 편대 비행


이 지경이 되면 출격 목표는 자연히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후미를 물고 추격하는 적기가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주어진 출격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겠다고 다짐한 한 조종사가 폭탄을 버리고 이탈하는 대신,
 
적기를 끌고 적 대공 포화가 치열한
화망(火網) 속에 스스로 뛰어 들어 겁을 먹은 적기가 추격을 포기하게 만들고 자신은 화망을 통과하면서 손상을 입은 전투기를 끝까지 조종하여서 임무를 완수한 사례를 소개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갖기 힘든 용기를 발휘했던 이 조종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 받았다.



       
                                             멀린 데스레프센 대위



그는 미 공군의 멀린 데스레프센 대위였다.
데스레프센 대위는 1934년 아이오아 주에서 태어나 1955년 군에 몸을 담았다. 1967년 그는 월남 전선에서 F 105 기를 조종하는 대위였다.


F 105 기는 월남전 초기 월맹 폭격을 전담했던
미 공군의 주력기였다. F 105 기는 핵전쟁을 상정한 50년대의 설계 개념으로 만들어진 전폭기였는데이 전폭기는 대형이어서 크기가 어지간한 소형 여객기 수준이었다.


하지만 20mm 벌칸 포도 있고 음속의 두 배가 넘는 속도도 낼 수 있어서 전투기는 아니지만 일부
공중전도 가능했는데 실제 월맹 기 28기를 격추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월남전 최초로 미그기에 격추 당한 미군기가 되는 불명예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중 급유를 받는 F 105 기



그러나 이 전폭기는 조준 시스템이 핵폭격을 위주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밀 폭격을 하기 위해서는 급강하 폭격을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식의 급강하 폭격은 적의 밀집된 대공포화에 길게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월남 참전 F 105 기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었다. F
105 기는 총 833기가 생산되었는데 이중 월남전에서 무려 382기가 격추 등으로 손실되었다.

F 105 기가 단발기였던 사실도 이 손실에 기여했다.
월남전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F 105 기는 나중에 쌍발의 F 4 기로 교체되었다.


1967년 3월 10일, 72기나 되는 대규모 전폭기들이 월맹
타이구엔 제철소 폭격 작전에 전위 편대로서 출격했다. 타이구엔 제철소는 월맹의 중요한 산업 시설로 폭격에 동원된 대규모의 전폭기들은 이 제철소의 크기를 말해준다.


데스레프센 대위의 편대는 링컨 편대로서 그는 3번 위치에서 비행했다.
72기의 대 편대는 F 105 기와 F 4 팬텀 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월남전 폭격의 후기 주역 F 4 팬텀 기 - 와일드 위즐형임



F 105 기들은 태국의 코라트와 타키리 기지에서 출격했었고
신형 팬텀기는 태국의 우본 기지에서 출격했는데, 링컨 편대는 이들 본 편대가 출격하기 전에 먼저 이륙해서 목표 지역으로 향했다.


전위 편대에 주어진 임무는 아주 위험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타이구엔 제철소의 하늘을 방어하고 있는 샘[SAM -2]미사일 포대, 대공 포와 대공 기관포들을 가능한 최대로 파괴하는 것이었다. 특히 샘 미사일은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대 편대의 출격에 앞서 반드시 파괴해야 했다.


타이구엔 제철소의 상공에 진입한 링컨 편대는
선두 편대장 기부터
기수를 내리고 목표에 돌입하였다. 편대장 기는 두 사람이 타는 복좌의 F 105 F 기였다.


적의 대공 포대를 공격하는 전폭기들은 와일드 위즐[족제비]
이라고
불렸다. 와일드 위즐은 제일 먼저 적 목표에 도착해서 적 대공 포화와 정면으로 맞서야 했으며, 마지막으로 폭격 성과를 확인한 후 이탈해야 하는 고되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 임무를 맡은 F 105 F 와일드 위즐기는 조종을 담당하는 전방석과
전자 장치 조작을 담당하는 후방석의 조종사 2명이 탑승하는 복좌형이다.
 


    
                                                            
F 105 F 복좌 와일드 위즐 기



F 105 F 기로만 편성된 편대로 출격하기도 했지만 단좌형인
F 105 D 기와 혼성한 편대로 출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편대장 데이비드 에버슨 소령과 후방석의 호세 루나 대위가
조종하는 편대장 기는 적 85mm 대공 포에 맞아 격추되었다. 두 사람은 비상 탈출에 성공했지만 모두 포로가 되었다. 편대장 기의 다른 동료 기 역시 적 대공 포화에 큰 손상을 입고 임무에서 이탈하여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소련제 85mm 대공포
                               북한도 한국 전쟁중 대규모로 사용했다.



이제 중요한 대공 화력 파괴 임무는 3번기 데스레프센 대위의 어깨에 걸려있게 되었다. 그가 공격을 위한 기동 비행을 하는 동안 월맹의 최신 미그 21 기가 그의 후방에 나타났지만, 적 대공 포대들을 격파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하고 있던 델스레프텐 대위는 폭탄을 버리고 회피 기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후미에 붙은 미그기를 그대로 이끌고 적의 대공 화망이 치열한 상공으로 뛰어 들었다. 미그 21 기는 아군의 대공 포화에 피격당할까 봐 겁을 먹고 추격을 포기했다.



        
                                     
         F 105 기의 무장
           2차 세계대전 때의 4발 폭격기 B 17이나 B 24보다
더 많은 폭탄 무장이 가능하다. 


적기를 떨어냈지만 대공 화망을 통과하면서 데스레프센  대위의
F 105 기도 피탄 되어 기체에 큰 손상을 입었다. 다른 조종사가 그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심에 시달리면서 한시 바삐 기지로의 귀환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엔진이 정지하거나 화재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기체를 그대로 조종하며 적의 대공 미사일 포대 공격을 시도 하였다.



     
                             SAM 2 가이드 대공 미사일- 소련 원명은 S-75 드비나다.



하지만 대공 미사일 포대 자체가 대공 기관포로 중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관포의
치열한 탄막 사격을 뚫고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목표 상공에 퍼진 안개 같은 구름과 폭격으로 생긴 연기로 인해 대공 포대를 발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는 윙맨인 케네스 벨 소령과 함께 여러 번의 급강하 폭격으로 대공 포대들을 파괴하면서 기회를 보았다. 그때 데스레프센 대위에게 다시 미그 21 기가 따라 붙었지만 그는 안개 같이 뿌연 구름 속으로 급강하해서 미그 21 기의 공격을 피했다.


그런데 그가 구름 속에서 벗어났을 때 바로 아래 직하방에
대공 미사일 포대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급강하를 지속하면서 대공 미사일 포대에 폭탄을 투하했고 동시에 벌컨포를 발사했다.


두어 번 통과하며 20mm 기관포로서 미사일 발사 기지를 초토화 시켰다.
두 기의 미사일 포대를 파괴한 것을 확인한 그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의 피격된 전폭기를 몰고 800 킬로를 날아 아슬아슬하게 태국 기지에 귀환하였다.



                   
                                            
  태국의 타키리 기지 
                              월맹과의 거리가 멀어 공중급유를 받아야
했다
                      이 장거리를 대파된 전폭기를 몰고 돌아 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링컨 편대의 활약으로 대공 화력이 약화 된 타이구엔 제철소에 후속 출격한 전
폭기 대 편대들은 팬텀 기 두 기를 잃었지만 타이구엔 제철소가 단시간에 복구되기 힘들 정도로 큰 피해를 입혀 작전을 성공시켰다.


데스레프센은 1968년 2월 1일 린든 B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1977년 대령으로 군에서 은퇴한 뒤에 민간인 생활을 하다가 1987년 12 월 14일 53세의 나이로 작고하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출처 : 바람에 물결 출렁이듯
글쓴이 : 태고무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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