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스크랩] 에드워드 웨스턴 EDWARD WESTON(1886-1958)

mistyblue 2011. 9. 13. 02:26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 1886 ~ 1958)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은 미국 모더니즘 사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진가이다.
그는 처음에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 회화주의)사진에 빠져 있었으나 1920년 이후 회화주의 사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이 방향은 다름 아닌 알프레드 스티글리치(Alfred Stieglitz)와 폴 스트랜드(Paul Strand)로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Straight Photography)의 계보를 직접적이며,
사실적인 표현들을 발전시켜 미국 형식주의(Formalism)사진의 기틀을 세웠던 사진가이다.

웨스톤은 1886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나이 16살 때 아버지로부터 코닥 박스형 카메라를 선물 받고부터라 한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입문하기 시작한 것은 20살부터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 경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스티글리치와 사진 분리파 작가들 그리고 당시 유렵의 현대미술이 미국에 소개된 신선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폴 고갱(Paul Gauguin)이 타이티 섬으로 자신의 예술을 위해 ‘영혼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가족을 남겨두고 그의 정부이자 모델인 티나 모도티(Tina Modotti)와 함께1923년 멕시코로 떠난다. 웨스톤의 전기를 썼던 벤 메도우(Ben Maddow)는 이를 두고 오딧세이의 ‘영혼여행’이라고 표현한다.

1923-1927년 멕시코에서의 생활은 웨스톤의 사진적인 방향과 확고한 그의 특색을 들어내는 시기 이다. 이시기는 대상이 가지는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형태와 빛 대한 탐구와 조형적인 미를 추구한다. 1927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웨스톤은 대상의사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형태의 완벽한 질감을 추구하게 된다.

<조개 shell, 1927>, <피망 pepper, 1930>등의 사진은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사실적인 차원을 넘어서 다른 이미지들을 연상시키는 사진들이다. 말하자면 추상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의 작업을 사진사가인 뷰먼트 뉴홀(Beaumomt Newhall)은 “그의 스타일이 확대 되었으며, 주제가 다양화 되었고, 풍부한 인간성이 스며있으며 복잡하게 뒤얽혀 유기적으로 조직되고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그의 사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물의 사실성과 형식적인 미가 줄어들면서 대상물과 작가가 하나로 융해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치 스티글리치가 말년에 구름이라는 이퀴벌런트(equivalent) 시리즈와 흡사하게 형태의 완벽한 질감이나 사실성이 별로 보이지 않고, 사물의 대상성보다는 그 대상에서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웨스톤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누드, 야채, 조개, 구름 그리고 풍경들로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때로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추상물들이다.
그의 이와 같은 그의 작업의 형태를 두고 사진사에서는 포토시세이션(photo Secession 사진 분리파 운동)의 ‘회화적’접근 방식을 뒤집어 업고 사진 고유의 형태로서 ‘스트레이트’사진을 확립한 혁명의 주도자로 간주 하고 있지만, 실은 따지고 보면, 포토시션파가 추구한 인상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전기 라파엘파의 양식들을 현대적인 예술의 형태로 즉, 입체파, 미래파, 다다이스트,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예술 형태로 대체한 것에 불과하다.

그가 추구했던 추상성과 리얼리즘은 이미 폴 스트렌드나 만 레이(Man Ray) 그리고 독일의 신즉물주의 계열의 사진가들 의해서 시작된 것들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그를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 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웨스톤은 자신의 1924년도 일기에서 “재미있는 추상물은 놓치지 않고 찍지만, 나의 사진에 대한 접근방법은 리얼리즘을 통해서이다. 그것도 아주 고생스러운 방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년 반이 지난 후, 놀랍게도 그는 일련의 누드 추상물을 제작한다.

그는 명확한 형태와 사진의 구석구석이 마치는 실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섬세하게 질감표현이 되어, 마치 손으로 만지면 그 촉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사진 촬영에 앞서 대상물체의 표면을 만져보고 나서 광선을 조절하고, 피사계심도를 최대한 깊게 조리개를 조인다. 그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8×10 대형카메라로 최종적인 인화는 밀착으로 보여주고 있어 사실적인 묘사는 극대화 된다.


사진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를 대상과 카메라 그리고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로 한정 한다면, 우리가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작가가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서 관찰한 대상을 다시 보는 것과 같다. 작가가 수많은 대상 중 꼭 하필이면, 그것을 선택하여 사진으로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은 분명 대상을 현실에 놓여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주관적 의식에 의해서 투영되고, 선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카메라 역시 일정한 기계적인 특성과 도구적인 틀에 의해서 한정된 모습으로 현실을 담아낸다. 이 때 대상은 현실의 문맥에서 벗어나 왜곡되고 변질된 형태로 그 자체의 독립된 이미지로 변하는 것이다. 웨스톤이 리얼리즘에 입각해 사진을 제작한다고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원초적으로 논리적인 모순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웨스톤의 리얼리즘에 대한 전적으로 잘못된 인식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 때문에 기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에 찍혀진 대상을 현실의 대상과 일치해서 보는 우리의 오랜 잘못된 습관 때문에 그를 리얼리스트로 오해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가 그토록 줄기차게 추구했던 리얼리즘은 멕시코에서 친분을 교우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클리멘트 오르즈코(Clemente Orozco), 티나 모도티 등과도 다른 감상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유럽의 신즉물주의와 러시아 구성주의 사진가들과도 다른 주관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미국만의 독특한 형식주의 사진으로 보아야 한다.

1900년대 미국의 사진은 회화주의 사진의 경향에서 벗어나 사진의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하고자 리얼리즘 정신으로 무장한다. 스트레이트 기법의 '순수사진(pure Photography)'은 사물의 외적인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 주관사이에 긴장감을 야기 시킨다. 이것이 바로 회화주의 사진과 차별화된 스트레이트 사진의 매력이긴 한데. 그러나 사물의 외관을 정확히 묘사하기위해서 선택된 방법들은 즉, 연초점에서 극명한 초점,


리터치를 한 사진에서 리터치를 하지 않은 사진,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인화지로부터 차가운 느낌의 광택지에로의 변화 등 스트레이트 사진을 주장한 자들(미국의 포토시세션과 스트레이트 계열의 작가들)에 의해 열렬하게 추구된 사진의 기술적인 변혁들은 사실은 ‘리얼리티’의 요구에서라기보다는 현대미술의 출현으로 말미암은 또 다른 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들의 사진은 당시 회화나 조각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었던 피카소의 회화나 브랑쿠시의 단순한 형태의 조각, 브라크의 입체 콜라주 등 추상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미국의 모더니즘 사진의 시작은 출발부터 회화주의 사진으로부터의 독립이었지 결코 전통적인 리얼리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사물의 외관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 작가주체와 찍혀진 대상인 객체사이의 관계로 의미를 확장 시킨다. 즉, 사진에 찍혀진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주체의 인식과정에 나타나는 반응을 강조했다.

웨스톤의 접근방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진가는 최종적인 결과를 시각적으로 미리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점이다. 이 말은 사진가들이 카메라의 모든 가능성(렌즈조정, 주제에 대한 프레이밍, 노출의 정도)을 적절히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화할 때 낼 수 있는 효과까지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이는 미국의 형식주의 순수사진의 주관적인 측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말이다.


주목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피망이나, 조개같이 생긴 넓적다리, 여자의 성기같이 생긴 조개, 길게 늘여진 토르소 같은 구름, 공장 굴뚝같은 팜나무 줄기 등은 현실의 대상을 그대로 따온 것이 아니라 작가의식의 주관성이 투영된 이미지인 것이다.

그것은 한상 현실에 놓여진 대상과는 다르고 다른 무엇으로 끊임없이 의미의 전이가 발생하는 즉물(卽勿)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본 그대로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해석이 가능한 하다. 그것은 원래 불리어지던 이름으로부터 해방되고 다른 무엇으로 느껴지고 보일 수 있는 존재론 적인 것이 된다.


웨스톤의 누드사진들을 보자! 놀랍게도 성적인 요소가 전혀 없으며, 마치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성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혹은 성적인 기능이 전혀 무시된 형태로 변형된 신체(얼굴부분이 없는 신체의 일부분이 찍힌 사진)는 그래서 음모를 내보이는 사진들조차도 에로틱하지 않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래밭에 엎드려 있는 샤리스의 사진은 그가 무수히 찍은 정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만든 조각 작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신이 감동하여 조각 작품을 진짜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하지만, 웨스톤의 사진은 살아있는 인간을 냉정하고 차가운 대리석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카메라가 신의 위치로 대치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니 그가 찍은 사진은 인간 눈의 속성이기 보기보다는 차라리 렌즈의 광학적인 효과이며, 비현실적인 추상성을 추구한 작가의도의 산물인 것이다. 그가 추구한 스트레이트사진은 너무 강렬하게 사물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전에 보았던 대상에 대한 어떤 다른 인상을 잊어버리도록 한다.


즉, 사물을 지금 직접적으로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웨스톤의 사실주의적인 사진은 그러나 교묘하게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도 쉽게 정착되기 어렵다. 찍혀진 대상의 그 자체가 말을 걸어오는 기묘한 체험,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이유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방문해주신 모든분께 행복을 드려요!!~~
글쓴이 : 산바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