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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맹목적으로 빠른 차가 아니다

mistyblue 2019. 8. 13. 21:32

운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전자제어 시스템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최신형 자동차는 ‘움직이는 컴퓨터’로 표현된다.

그만큼 많은 전자제어 기술이 사용된다. 덩달아 차의 움직임과 특성이 변하고 있다.

‘능동형’이라는 목적으로 탄생한 전자제어 기술은 운전자의 실수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미리 제어에 개입한다.

이들은 인간이 변화를 느낄 수 없는 찰나의 순간(100분에 1초 단위 이상)에도 차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엔진 출력에서부터 타이어 접지력과 선회 능력, 서스펜션의 댐핑 압력 등 거의 모든 부분이

전자제어 장치에 통제를 받는다.

사진=람보르기니

전자제어는 특히 스포츠카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최첨단 센서와 프로그램으로 제어되는 차의 움직임은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반면 컴퓨터가 통제하는 자동차는 인간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운전자가 몸으로 느끼고 차를 제어하는 과정에 전자제어 장비가 개입하면 괴리감이 발생한다.

‘개입’한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쉽게 말해 실제 차의 움직임이 운전자가 예상하는 것과 다르다.

코너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며 탈출하고 싶어도 차가 안정성을 제어한다며 엔진 출력을 붙잡아둔다.

토크 백터링이 차를 순간적으로 회전시켜서 코너 중간에 라인을 수정할 때도 있다.

혹은 전자제어 리어 디퍼렌셜이 너무 늦게 기계적 잠금 장치를 작동해서 원하는 순간

정확하게 뒷바퀴를 미끄러뜨릴 수 없다.

사진=재규어

고성능 스포츠카일수록 전자제어 기술에 운전자가 얽매이는 순간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일부 스포츠카 브랜드는 전자제어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운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 민첩하게 작동하는 통합 차체 시스템이 그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실제로는 전자제어의 영향을 받지만 운전자는 전자제어를 느끼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세팅하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는 페라리나 포르쉐처럼 이런 부분을 꾸준히 강조한 스포츠카 브랜드도 있다.

반면 최근 수년 사이에 이런 부분이 일약 발전한 제조사도 있다.

람보르기니가 대표적이다.

사진=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는 통합 차체 컨트롤 시스템 ‘LDVI(Lamborghini Dinamica Veicolo Integrata)’을 중심에 둔다.

LDVI는 차의 모든 움직임을 통합 관리한다. 정교한 엔진 출력 제어는 기본이고, 네바퀴 굴림(AWD)과 토크 백터링,

네바퀴 조향(AWS)과 능동형 서스펜션까지 포함된다.

 

차의 모든 부분은 스트라다, 스포트, 코르사라는 세 가지 주행 모드를 통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세팅된다.

LDVI의 가장 큰 특징은 차의 역동적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구현할 뿐 아니라 운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이어질 주행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를 위해 람보르기니는 차의 움직임을 통합 분석하는 LPI(Lamborghini Piattaforma Inerziale) 기술을 2세대로 개선했다.

이 기술은 롤, 피치, 요 레이트 모니터링뿐 아니라 종횡 및 수직 가속도도 정교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엔진 출력 컨트롤, 네바퀴 굴림과 토크 백터링을 통해 특정 상황에 필요한 동력을

각 바퀴로 정확히 전달한다.

사진=람보르기니

기술적으로 살펴보면 뒷바퀴 굴림과 네바퀴 굴림 스포츠카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한 구성이다.

급가속 때 뒷바퀴에 집중되던 동력을 앞바퀴로 나눠 네바퀴 굴림으로 안정적으로 가속한다.

빠른 코너에서 운전자의 입력(스티어링과 가속 페달)에 따라 구동력 세팅이 수시로 변한다.

토크 백터링이 코너 안쪽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동시에 앞바퀴 쪽으로 동력을 점진적으로 높이며

중립적인 코너링 특성을 유도한다.


뒷바퀴 각도를 회전시키는 네바퀴 조향(AWS)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필요할 때 뒷바퀴가 코너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차의 회전력을 자연스럽게 높인다.



우라칸 에보는 상시 네바퀴 굴림이다.

하지만 운전자가 드리프트를 요구할 때 마치 뒷바퀴 굴림 자동차처럼 반응한다.

코너의 입구에서 드라이버가 스티어링휠 각도와 스로틀을 과도하게 요구하면

LDVI가 곧바로 드리프트 모드로 태세를 전환한다.


토크 백터링이 코너 안쪽 바퀴에 작용에 차의 안정성을 높이고 순간적으로 뒷바퀴로 모든 동력을 집중시켜서

빠르게 모든 타이어가 미끄러지게 만든다.

그리고 코너를 탈출할 때 코너 바깥쪽 바퀴(카운터 스티어 상황)에 동력을 전달하면서

안정적으로 드리프트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인제 서킷에서 우라칸 에보를 테스트한 후에 LDVI의 뛰어난 성과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테스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운전자의 요구에 얼마나 정확하게 반응하는가’,

‘복잡한 전자제어 기술이 운전자를 방해하지 않는가’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론 마치 물리적인 기계장치만 존재하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했다.

복잡한 전자제어 기술로 만들어진 차지만, 운전 감각 측면에서 괴리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전자제어가 운전자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모든 스포츠카 회사가 추구해야 할 21세기형 스포츠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더 이상 무의미한 속도 경쟁은 중요하지 않다. 당장 우리에겐 맹목적으로 빠른 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운전 감각을 바탕으로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카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스포츠카 제조사가 그 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