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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패션계를 주릅잡다 무대 뒤로 사라진 별들

mistyblue 2025. 9. 7. 08:43

신한인터내셔날과 허병구 회장은 우리 패션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자 인물이다. 일찍이 수입비즈니스를 국내에 도입했고 「폴로」 「베네통」과 같은 쟁쟁한 브랜드들을 소개했으며 각종 앞서가는 사업들을 벌인 기업. 논노가 내셔널 브랜드로 국내 역사상 가장 남을 기업이라면 한쪽에는 신한인터내셔날이 수입비즈니스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희대의 사기사건으로 기록된 신한인터내셔날 부도로 허병구 전 신한 회장은 부도가 나기 전 일본 대만을 거쳐 지금은 뉴욕에서 에이전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허회장은 원래 수출 에이전트 출신으로 가죽과 남성 셔츠를 크게 하다가 수입 사업에 뛰어든 케이스. 수출하면서 출장 갈 때마다 3년 동안 폴로에 찾아가 사정해서 라이선스를 받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보는 눈이 좋고 매우 앞서가는 사람이다. 「폴로」 「베네통」 「다니엘에스떼」 「쉐비뇽」 등 당대의 유명한 브랜드들의 라이선스와 수입비즈니스의 포문을 연 주인공이기도 하다.

천재 허병구 미국에서 에이전트 사업

「피오루치」를 도입해 서울 청담동 매장에 카페도 만들었고 부도나기 직전 「엠포리오아르마니」를 전개하기도 했다. 아들의 이름 ‘찰스’를 브랜드 네임으로 한 「찰스허」를 런칭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일들을 떠올려보면 당시 너무 앞서갔던 탁월한 인물로 기억된다.

미국에 가서는 디자이너 브랜드 「신시아스테페」 「신시아로리」에 가죽 제조를 해줬고 「Daryl K」 전체 라인 제조도 진행했으며 「DKNY JEANS」를 런칭할 때 데님과 우븐을 제조 해주는 에이전트 겸 프로모션 업체를 운영했다. 자금 부족으로 시달리기도 했으나 신기한 것은 허회장이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늘 과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일을 돕는다.
그만큼 허회장의 영향력과 파워는 컸다. 미국에선 바이어와 프러덕션 매니저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유창한 영어로 설명하고 사업을 전개했다. 아들은 브라운 대학을 나온 수재인데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홍콩계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국내 패션시장을 주름잡았던 논노를 이끈 유승렬 회장(56)은 미국 중국 도피생활을 마치고 작년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사상 소멸시효가 지나 돌아온 그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상황은 없다.
대학 재학 때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니트 수출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유회장은 80년대 초반 우븐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논노」는 여성 정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급성장하며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82년에는 200억원 규모로 회사 볼륨이 급성장하면서 논노는 패션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린다. 보유 브랜드도 「논노」를 모체로 「샤트렌」 「후즈」 「나인투나인」 「IF」 등 여성복 브랜드와 계열사인 논노상사에서 「마르시아노」 「니꼬보꼬」 「챨스타운」 등 남성복과 캐주얼 스포츠 브랜드들을 거느렸다.

유승렬 前 논노 회장, 작년 귀국

89년 당시 외형으로 1800억원 규모로까지 회사 볼륨은 커졌으나 빨간불이 켜졌다. 설악호텔 인수 등 호텔 관광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됐고, 또한 신규 브랜드들의 판매 부진이 누적되는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부도가 발생한 것. 곧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끝내 91년 파산처리돼 국내 패션시장의 뒷무대로 쓸쓸히 사라졌다. 논노상사의 대표이사였고 회사 부도 후 논노의 법정관리 대리인으로 활동했던 김진수 사장은 현재 원단사업을 하고 있다.

80년대 논노와 쌍벽을 이루며 국내 패션시장을 리딩했던 나산. 이 업체를 이끈 안병균 회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패션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는 소문과 이제는 패션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표면상으로는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 가운데 그의 움직임이 더욱 관심을 끈다.

나산 안병균 회장, 신사업 준비

80년대 ‘물랑루즈’와 ‘초원의집’으로 요식사업을 시작한 안회장은 우연히 패션사업과 접촉하게 됐고 84년 나산을 설립, 「조이너스」를 시작으로 「꼼빠니아」 「메이폴」 「예츠」 「트루젠」을 잇따라 런칭한다. 브랜드는 물론 여성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기발한 프로모션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업계 이슈를 몰고 왔던 나산은 패션전문 기업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안회장은 패션사업이 무르익자 건설업에 눈을 돌렸고 98년 1조원(자산을 물론 지불·보증채무 포함)에 이르는 부도로 나산은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나산! 여기에는 안회장의 열정과 그만이 생각하는 패션 철학이 담겨 있다.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자란 그는 지역명인 ‘나산’을 그대로 빌려 기업명에 사용했을 정도로 패션사업에 열정을 담았다.

안회장을 아는 지인들은 그에 대해 “패션에 대한 열정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패션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세워 80년대를 풍미한 거물로 기억된다”며 “건설업에만 뛰어들지 않았어도 현재 국내 최고의 패션기업이 되지 않았을까”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백화점 효시라 불리는 80년대 불을 지폈던 뉴코아. 여기의 핵심 브레인으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김의철 회장은 최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 아이템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건설과 밀접한 비즈니스로 업계에 다시 한번 주목을 끈다. 김회장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샤프한 머리와 시장을 보는 안목은 현재까지 국내 유통의 전설(?)로 남는다.

유통 대부 김의철 회장, 건설사업을

김회장은 고려대 역도부 출신으로 유통업에 입문했다. 과거 한신보일러에서 시작한 김회장은 건설업체인 한신공영으로 옮기며 그의 능력을 발휘한다. 한신공영을 이끌고 있는 김형종 회장의 눈에 들었던 김의철 사장은 김형종 회장의 첫째 딸과 결혼해 안정적인 사업을 펼치게 됐다. 이후 김형종 회장의 타계와 동시에 뉴코아 슈퍼로 시작해 85년에는 뉴코아 신관을 지으며 영역을 넓혀갔다. 뉴코아는 연평군 36% 신장이라는 유통의 신기록을 수립하며 다점포 전략을 추진, 27개까지 점포망을 늘렸다.

킴스클럽의 네이밍 유래도 흥미가 있다. 김의철 회장은 본인의 성 ‘김’을 빌어 Kim’s Club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80년대 호황을 누린 뉴코아백화점은 ‘중저가 백화점’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공적으로 안착하는가 싶었지만 2000년이 가까워지면서 할인점과 맞물리며 가격경쟁력에 밀리고 만다. 급기야 IMF라는 불운까지 겹쳐 98년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아직까지 ‘뉴코아’는 국내 유통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유통 대부라는 네임에서 물러난 김회장이 다시 건설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과연 어떠한 그림을 그릴지 궁금해진다.

박명수 사장,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셔츠시장 마켓셰어 2위를 자랑했던 동양어패럴을 이끈 박명수 사장은 가업을 이어받아 「찰스주르당」을 토털 남성복 브랜드로 런칭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친 경영인이었다. 특히 프랑스 디자이너 마틴싯봉을 점 찍어 이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해 생제르망 쪽에 매장을 오픈하고 마레에 사무실도 오픈해 글로벌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IMF로 활발하게 추진하던 사업 확장이 오히려 화근이 돼 부도 후 프랑스로 건너가서 현재까지 거주 중이다.

이후 보성그룹을 마틴싯봉의 투자자로 유치해 인수하면서 박사장은 파리지사장 격으로 파리 행정을 관장하며 월급 사장으로 변신했다. 다시 보성 부도 이후에는 쌈지가 프랑스 법인으로 등록해 이후 세컨드 브랜드를 런칭했다. 쌈지가 다시 「마틴싯봉」 사업을 축소하자 현재 신발 가방 브랜드인 「노벰버(November)」로 신발 라인을 런칭하고 화장품 브랜드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90년대 초·중반에 이름을 날린 장익용 서광 회장은 대외활동 없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조용히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여성복 「까뜨리네트」와 아울렛사업만을 전개하는 서광의 주주로 남아 있을 뿐 업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서광이 화의신청에 들어가기 직전 대표이사로 활동한 장회장의 장남 장철호 사장은 지금은 토털 멀티브랜드 전문업체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1년을 입어도 10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란 카피문구로 정통 신사복 문화를 이끈 문병국(39년생) 전 트래드클럽 사장은 지난해 3월까지 한창 계열사인 트래드클럽&21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문사장은 90년대 중반까지 트래드클럽을 이끌며 남성복 시장의 대부로 존경받았다.

문병국 사장, 고문 활동 접고 조용히

전문 경영인 자리에서 물러난 뒤 그는 클리포드의 경영자문을 거쳐 최근 1년 반 정도 「트래드클럽」 고문으로 다시 활동했다. 「트래드클럽」이 유앤드림(대표 박성준)으로 매각된 지금은 한창 감사 직함만 갖고 있어 2주에 한 번 꼴로 회사를 방문하는 정도이며 대부분의 시간은 건강관리에 쏟고 있다.

캐주얼 「루츠」를 전개한 김남웅 전 사보이유통 사장은 최근까지 중국에서 「루츠」를 생산해 국내에 판매했으나 SK가 정식 계약을 따내는 바람에 생산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김사장은 10년이 넘게 「루츠」를 전개해오며 캐주얼 마켓의 핵심 브랜드로 키워왔으나 자금난으로 포기, 지금까지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김사장은 사보이호텔 오너의 장남으로 캐나다 수입 브랜드 「루츠」와 이탈리아 캐주얼 브랜드 「피오루치」를 런칭해 전개했다. 지나친 확장으로 부도를 낸 뒤 현재는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남웅 사보이 사장 캐나다 오가며

정환상 클라라 회장은 부도 이후 칩거 중이다. 70대의 나이로 부도 전까지는 「클라라」 브랜드 사업은 물론 각종 협회 활동 등 패션계 원로로서 활동했으나 클라라 부도 이후 조용히 지내고 있다. 정회장의 아들인 정승기 이사는 현재 성주인터내셔날 영업이사로 재직 중이다.

클라라는 중년 여성들을 타깃으로 20여 년간 여성정장 부티크 「클라라윤」을 전개해온 업체로 68년에 설립됐다. 그동안 다수의 수상 경력을 기록하며 꾸준히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99년의 유명한 ‘옷로비사건’ 중심에 있던 「라스포사」 정일순 씨가 부인이다.

「미치코런던」 여성복을 전개하던 김정곤 카인드웨어서울 사장은 일본 수입 슈크림베이커리인 비어드파파를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한때 여성복 업계의 메이저로 급부상했던 김 사장은 부도 이후 일본 수입 브랜드인 「퍼슨스」로 여성복과 라이선스 사업을 하며 재기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이 사업도 정리하고 이후 베이커리로 전환했다.

김정곤 카인드웨어 사장 베이커리 사업

김호준과 보성. 이 이름을 떠올리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유사 이래 패션계에서 가장 떠들썩한 ‘뉴스메이커’였던 보성. 감각적인 1세대 오너들에 비해 패션을 풀어내는 방식을 다르게 추구했던 보성은 언제나 센세이셔널했다. 말미를 불행하게 장식해서 우리의 기억 속에 불편하게 남아있긴 하지만 사실 보성은 시대를 앞서간 일을 많이 했다.

「닉스」 「보이런던」 「야」 「롤롤」 「얌야밍」 「니켄리쯔」 「클럽모나코」 「스톰」 「마틴싯봉」 등 수많은 브랜드를 런칭했고 각계 전문가들과의 코워크로 다양한 영역의 회사를 설립했다.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벤처비즈니스의 전형을 보여준 기업이기도 했다. ‘한다’ 하면 확실하게 배팅하는 배포와 선이 굵은 비즈니스를 보여줬다.

캐주얼 브랜드 외에도 하라패션 인수로 「파세르」 「F·컬렉션」, 앤스튜디오의 「갤러리퍼퓸」, 김명림 사장과의 벤처기업 림코퍼레이션 「레지데67」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복 부문에도 공격적 확장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햄버거유니버시티’로 유통사업에 포문을 연 데 이어 ‘유스데스크’로 다점포 유통을 전개하기도 했다.

뉴스메이커 김호준, 발모제 사업?

한국의 바나나리퍼블릭을 꿈꾸는 새로운 SPA형 브랜드 「쏘베이직(So Basic)」, 세우폴리머 인수 이후 태승인터내셔날 하라패션에 대한 전격적인 위탁경영, 벤처비즈니스의 야심찬 계획과 공격적인 인재 스카우트 등 보성을 둘러싼 이야기 거리는 당시 패션 유통업계를 온통 뒤흔들었다. 이들의 투자가치에 대해 대기업도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과연 이들의 야망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으나 결국 나라종금 인수 이후 이 회사는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김 회장은 부도 후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귀국해 ‘죄값을 치르고 다시 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2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재기를 시도했다. 이 와중에 김성민 현 세정과미래 사장을 통해 「콕스」를 런칭, 다시 영화로운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이어 2~3개의 신규 브랜드도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닉스와 새로운 회사를 정리하면서 실패했다. 현재 패션과는 무관한 발모제 사업을 하고 있으며 패션에 대한 꿈을 잠시 미루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일어설 것으로 관계자들은 생각한다.

지난 82년부터 섬유 패션업계에서 활동해온 박풍언 회장(65)은 현재 한국의류산업협회(의산협)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7월 숙환으로 타계한 고 최형로 회장의 후임으로 2006년 의산협 회장에 취임했으며, 오는 2008년 2월 임기가 만료된다.

이원평 회장, 중국문화 연구 생활도

박회장은 회갑이 지난 연륜임에도 협회 회장직에만 그치지 않고 패션 관련 학계와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패션 부문의 정부 연구과제 프로젝트인 ‘스마트의류’에 산학관을 연계하는 등 프로젝트 관련 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원평 전 데코 회장은 지난해 말로 데코를 잠시 떠나 중국에 머무르며 그동안 못다한 ‘중국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본인이 극구 고사했지만 현재까지도 데코 회장직과 그에 상응하는 예우는 유지되고 있다. 이회장은 데코를 이랜드에 넘긴 뒤에도 계속 데코 회장으로 출근하며 신규 사업과 중국 관련 사업 등에 관여했으나 올 초부터 부인과 함께 중국에 머물고 있다. 이회장은 현재 중국어와 중국문화 등을 공부하는 등 그동안 못다한 새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베이징칭화대 국제경영대학원에서 만학의 길을 걷고 있는 이회장은 “인생디자인을 다시 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소식을 전한다. 최근에는 일본 미쓰코시백화점 바이어와 함께 국내에 잠시 들어와 톰보이 김명희 회장 등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특히 톰보이 고 최형로 회장과는 가장 가까웠던 관계여서 톰보이 관련 일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전해진다.

조학수 사장, 건설업 하며 조용히?

2006년 2월 역시 이랜드에 네티션닷컴을 매각한 조학수 사장은 3년간 고문 계약을 맺었으나 인수·합병(M&A)이 이뤄지는 날 바로 회사를 떠나 현재는 주변과 연락을 끊고 있어 근황을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대하(현 네티션닷컴) 출신 OB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회사를 매각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측근에 참모를 만들지 못한 데다가 장성한 2세도 없는 오너경영인으로서 M&A를 하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라는 평가다. 항간에는 새로운 제3의 인물을 통해 패션사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신홍순 고문, 광고모델로 등장 주목

신홍순 전 LG패션 대표(66)는 패션계 원로 중 현재까지도 스타급 예우를 받는 인물이다. 최근 HSBC은행 프리미어 상품을 홍보하는 TV CF에까지 등장해 품격 있는 기업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이는 90년대 중반 LG패션 대표 당시 직접 TV 의 자사 광고에 출연해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 패션 코리아’를 유행시켜 특별한 인상을 심어줬던 영향력 덕이다. 동시에 은퇴 후에도 대학원 원장과 문화마케팅 고문 등 왕성한 활동으로 패션기업인에게 멘토가 되고 있다.

신고문은 대학 졸업 후 65년 당시 럭키에 공채 입사해 81년부터는 반도패션의 사업부장을 지내고 엘지패션의 대표를 역임하며 99년 퇴임하기까지 35년간 LG맨으로 화려하게 리타이어한다. 이후에도 컬처마케팅그룹(대표 김묘환)의 문화마케팅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2005년부터 2년간 예원예술대 창업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정석명 황주하 사장, 제2의 인생을

현재 동일방 사외이사, 셀트리온 사외이사, 한국오가닉협회 회장 등 성공한 CEO로서의 노하우를 전달하며 대학 강의와 문화 마케팅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컬처마케팅그룹 고문으로서 재즈 보급을 위한 공연에 관심을 기울여 지난 3월 27일 ‘재즈파크 5주년 행사’를 개최하는 등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는 멋진 은발’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아동복 두손21과 탑스어패럴을 운영한 정석명 사장과 황주하 사장은 30년 가까이 해온 아동복 사업을 정리한 뒤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정사장은 「캔키즈」 상표를 파스텔세상에 매각한 뒤 지금은 두손21 법인으로 물류사업과 「삐삐」 아동복의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석명동동장학재단도 설립해 아동복 디자이너들에게 1년간 해외유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황사장은 「꼬즈꼬즈」를 전개하는 탑스어패럴과 「모크베이비」를 전개하는 모크 두 회사를 위더스코퍼레이션(대표 김기호)에 매각한 뒤 지금은 강원도 속초에서 팬션 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 패션부문의 여성CEO로 원로급에 속하는 이철우 마담포라 회장은 지금은 회사 경영을 이병권 사장에게 맡긴 뒤 자선 사업과 교회 봉사활동 등으로 일과를 보낸다.

이신우씨 「시누」로 스파컬렉션 데뷔

이신우씨는 지난 86년 오리지날리로 출범해 ‘국내 대표급 디자이너’‘디자이너의 상징적 인물’ 등으로 불리며 회사를 키워왔다. 「이신우」 「이신우컬렉션」 「이신우옴므」 「오리지날리」 「영우」 등으로 브랜드를 확장했으나 IMF 후폭풍으로 부도가 나자 사태 수습을 위해 브랜드를 모두 매각 처분했다. 이신우씨는 부도 후 CJ홈쇼핑 등을 통해 란제리브랜드 「피델리아」를 전개해 대박을 치는 등 활동을 계속해 왔다. 올 봄 스파컬렉션에서 딸 박윤정 디자이너와 함께 「시누」 브랜드로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본인 이름의 브랜드명이지만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이번 컬렉션에서는 「시누」로 새출발했다. 이번 컬렉션 데뷔를 앞두고 남편인 박주천씨가 운명을 달리해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또한 국내 패션 디자인 히스토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창숙 & 김정아’를 가장 궁금해할 것이다. 70년대와 80~90년대에도 그녀들의 명성은 이어갔으며 홈쇼핑 채널들이 앞다퉈 디자이너들의 유명세를 내세울 때 가장 먼저 조인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김창숙 전 김창숙인터내셔널 대표는 숙명여대 의류학과 69학번으로 정통 패션파였다. 김창숙부틱 운영 후 맞춤속옷 ‘베스타일’사업으로 롯데백화점에 최초로 입접한 맞춤속옷 브랜드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과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패션 자문역을 맡았다. "고객이 찾아줄 때가 디자이너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강조했던 김창숙씨는 화려했지만 고뇌도 많았던 현역 패션 활동을 접고 브랜드에 대한 라이선스 사업만을 진행하고 있다.

김창숙부틱 & 랑유 김정아 ‘정중동’

이마에 머리카락 한올 남기지 않고 단아하게 빚어넘긴 업스타일 헤어스타일과 미니스커트의 블랙수트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랑유 김정아.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미니스커트 차림에다 보디가드 2명과 동행해 시선을 모으는 패션계의 여제였다.
서울 강남사거리 100평 규모의 직영숍에는 ‘세계인의 상표 랑유 김정아, 여자는 아름답고 지혜롭고 귀품있게 살았으면…’이라는 숍사인은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당시 100만원대의 상품 가격으로 사치를 조장한다는 입방아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녀만의 패션의 소신을 지켜갔다.

김정아 사장은 프랑스 진출과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부티크 사업은 지속시키지 못했고 지난 2000년 LG홈쇼핑이 이너웨어 브랜드 「르메이유」를 런칭했을 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조인했다. 2002년에는 중국에서의 재기를 꿈꾸며 상하이의 한 패션쇼장에서 ‘랑유 ’의 디자인 세계를 펼치기도 했지만 현재 그의 소식을 아는 이를 찾기는 힘들다.

김정은 회장, 수입 멀티숍 운영

여성커리어의 효시인 「쥴리앙」의 주인공 김정은 전 풍연물산 회장은 최근 가로수길에 ‘533갤러리’라는 수입 멀티숍을 오픈했다. 국내 커리어 브랜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쥴리앙」 브랜드는 지금 생각해 봐도 고감도의 앞서간 브랜드다. 「이디엄」도 런칭했지만 아깝게 부도가 났다. 이후 김정은 회장은 재기를 위해 계속 노력했지만 노조와의 갈등, 자금난 등으로 결국 모든 사업을 접어야 했다. 최근 그는 멀티숍을 통해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높은 감각을 자랑하는 그는 현재 아랍권 디자이너 등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판매한다.

안미예 예나트레이딩 사장은 부도 이후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고릴라」 브랜드의 배기팬츠로 동대문시장에서 히트친 이후 예나트레이딩을 설립해 「GIA」를 전개하며 한때 성장가도를 달리던 안사장은 사업 확장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동대문 시절부터 미국 출장을 통해 로스앤젤레스(LA) 자바시장 등과의 교분을 쌓아온 안사장은 현재 의류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친분이 두터웠던 이철우 동의실업 사장, 전충민 MF 사장과도 연락을 끊었으며, 함께 일하던 직원들로부터도 정확한 소식은 들을 수 없다.

정귀섭 사장, 유화 화가로 데뷔~

여성캐릭터 브랜드의 원조(?) 정귀섭 전 하라패션 사장은 화가로 데뷔했다. 패션인이 아닌 ‘화가 정귀섭’은 오는 3월 27일(오프닝 27일 오후 5시)~4월 2일 일주일간 서울 청담동 가산화랑에서 유화를 전시한다. 화가로서 첫 데뷔전인 이번 전시회에서는 인물과 정물을 중심으로 한 25점의 작품들을 전시한다. 지난 2003년 「지센」을 끝으로 패션계에서 아쉽게 물러난 정사장은 이후 경기도 수지의 자책에서 칩거하며 화가로서 작업에 몰두해 왔다. 지난 3~4년간의 작업이 이번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셈이다.

뛰어난 감성의 정귀섭씨는 논노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한 국내 내셔널 브랜드의 1세대 디자이너다. 이후 하라패션을 설립하고 디자이너 출신의 여성 경영인으로 활동하며 하라패션을 통해 국내 여성복 역사에 언제나 획을 그어온 인물이다. 「윈」으로 여성 캐릭터 시장에 포문을 연 데 이어 「파세르」 「F컬렉션」 「엣마크」로 이어지는 새로운 디렉션을 제시해온 대표적 패션 전문인이다. 논노와 하라패션 사장에 이어 다컴퍼니를 설립하고 「Da」를 런칭했으며 슈페리어 「레노마」와 패션네트 「커스튬바이리씨」의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모수인터내셔날을 운영한 임소숙 사장도 패션계 여성CEO로 이름을 날렸지만 경영악화로 회사를 정리했다. 지금은 지인과 함께 제2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제일모직과의 접촉설, 중국에서의 사업 재개설 등이 있었지만 현재 한 중견기업과 함께 올 가을 브랜드 런칭 작업을 준비 중이다. 논노와 나산을 거쳐 대하 「세라비」 「센스」 「EnC」 「미샤」 「모리스커밍홈」으로 이어지는 임사장은 여성복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진 실력자로 다시 한번 재기와 함께 실력 발휘가 기대된다.

임소숙씨, 중견기업과 신사업 준비

디자이너 중에서도 참으로 아까운 이름이 많다. 이경원 전 가원어패럴 대표는 현재 사업을 정리하고 대전에 머물고 있다. 프로모션 가원어패럴과 「아가씨」라는 유니크한 디자이너 니트 브랜드를 전개하는 등 니트 부문에서는 전문가 중 전문가로 정평이 났던 디자이너지만 사업의 한계와 함께 패션무대에서 물러났다. 뉴웨이브인서울의 대표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경원씨는 아직도 활동해야하는 이름이 아닐까? 그를 다시 이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허동 화림모드 사장은 97년 오조크 런칭 7년 후 2003년께 회사를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넘기면서 패션계를 떠났다. 당시 세컨드 브랜드인 「크림」(정호코리아가 인수)도 런칭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내린 결정에 다들 충격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이같은 결정은 일본의 오조크사에서 직접 브랜드르 런칭하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어쨌든 IMF 전에 매각금액도 꽤 후하게 받은 허사장은 두고두고 많은 패션경영인들이 부러워하는(?) 경영인이다.

허동 사장, 아들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현재 허사장은 모든 사업을 놓고 쉬고 있다. 워낙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이 있었던 허사장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짱에다가 골프는 수준급이다. 감각이나 스타일로 봐서 다시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가장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확인한 결과 사업할 마음은 없고 패션공부를 하는 아들에 대한 기대감은 감추지 않았다.

김형일 사장 일경으로 재기 나서

허사장 아들은 어려서부터 허사장을 따라 패션쇼와 매장을 도는 등 패션 환경 속에서 자란 탓인지 패션에 대한 소질이 엿보였다. 미국에서 자란 20대 중·후반의 아들은 미국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 재학 중으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각종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는 등 경력이 화려하다.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성장할 꿈을 갖고 있다.

90년대 초·중반 「게스」 「폴로 랄프로렌」 「페리엘리스」 브랜드 도입으로 패션계에 라이선스 비즈니스 붐을 일으킨 전 일경물산 김형일 사장은 두산그룹에 브랜드 경영을 넘긴 뒤 키슨스를 설립해 수입 프리미엄 편집숍인 ‘더랩’ 전개와 함께 패션 경영 컨설팅을 한다. 이후 2005년 6월 태창의 지분 28%를 55억원에 흡수 합병하며 패션계에 화제가 됐다.

특히 태창 대표를 맡은지 불과 5개월 후인 11월 태창의 메인 사업인 내의 부문을 이랜드에 매각시켜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2500만평의 곤지암 물류센터를 포함해 채무 부문까지 양도해 사실상 250억원을 가뿐히 해결하는 등 경영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올 초 태창 주주총회에서 회사명을 ㈜일경으로 교체하고 프리미엄 데님숍과 금강산 샘물 사업만으로 사업 내용을 집중시키는 것을 결정했다. 김형일 사장과 ‘일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박영근 전 FCN 사장 조용히 은거

박영근 전 FCN 사장은 현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는 「보브」 런칭 주역이다. 삼성그룹 제일모직 공채 출신인 박사장은 실제 제일모직 의류사업을 창설한 이후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재직했다. 고합이 패션사업에 진출할 때 스카우트돼 고려합섬 내 패션사업부를 세팅했다. 이 사업부가 패션전문회사인 FCN으로 독립되면서 이 회사의 대표로 재직했다.

IMF로 고합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청산절차를 밟으며 패션사업을 정리하게 되자 신세계인터내셔날로 FCN이 M&A됐으며 이후에도 박사장은 이 회사 대표로 계속 재직했다. 하지만 사업부가 SI 내부로 편입될 때 회사를 떠났다. 이후 박사장은 조용히 은거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가까웠던 삼성그룹 동기들조차도 그의 소식을 궁금해할 정도다.

「투가이스」 김수길 사장도 미국에

「투가이스」와 「가이스클럽」 브랜드로 한때 남성 캐릭터 부문에서 이름을 날리던 김수길 사장.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미키통상 부도 이후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남성복 하이패션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고가품 의류제품 수출에 손을 대 일찌감치 성공한 기업인이다.

수출과 내수를 병행하면서 2개 브랜드를 전개했으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도 유명했다. 회사를 손위동서에게 맡긴 김사장은 내부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되자 「UCLA」 브랜드를 새롭게 런칭해 어려움을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역부족으로 사업은 하향세를 타게 됐다.

올 초 캠브리지를 FnC코오롱에 매각해 패션시장에 큰 화제가 됐던 김삼석 회장은 1년간 캠브리지의 명예회장 타이틀을 갖지만 기업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캠브리지 매각 후 지금은 남아 있는 다른 사업체와 서울 강남역에 있는 캠브리지빌딩 수익금으로 운영되는‘캠브리지 장학재단’에 힘을 싣고 있다.

김삼석 회장, 장학재단 운영 주력

캠브리지 매각 때 일괄 퇴진한 경영진 가운데에서 이형대 부회장은 캠브리지 장학재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박종석 사장은 김회장 아들인 김형곤 부회장이 미국에서 하는 사업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석희 상무 역시 김회장 사업의 일환을 맡아 베트남으로 떠났다.

김회장은 66년 삼풍을 설립해 수출과 함께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국내 신사복 품질의 우수성을 알렸다. 또한 「캠브리지멤버스」 브랜드로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 등 대기업의 쟁쟁한 신사복 브랜드와 경쟁을 펼치면서 최고의 품질로 승부하며 회사를 이끌어 왔다. 그렇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내수마켓과 후계 구도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성림·최형로 회장 애석하게도 타계

한편 지난 20년 동안 패션 역사의 뒤안길로 떠난 분들도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2006년 4월 12일에는 이성림 우성I&C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71년 셔츠업계에 몸담아 세계적인 명품셔츠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매진해 왔다. 80년 시대셔츠를 창업해 우성I&C를 「닥스」 「예작」뿐 아니라 「본」 「아이핏」에 이르기까지 셔츠 전문업체 한계를 벗어나 남성복 토털 전문업체로 키웠다.

2006년 7월 22일에는 최형로 톰보이 회장이 역시 숙환으로 타계했다. 고 최전회장은 창조적인 경영인으로 선진의 것을 보고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해 내는 능력, 합리적인 사고 방식,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비즈니스로 이끌어 내는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 업계에서 앞선 선각자로 존경을 받아 왔다. 고인은 77년 톰보이를 설립해 국내 최초의 영 캐주얼 브랜드 「톰보이」를 런칭시킨 ‘한국 영캐주얼의 선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