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혈액세포로 정자 전 단계 만들고 AI로 ‘숨은 정자’ 탐색…남성 불임 치료 어디까지 왔나
16년간 냉동 보관한 고환조직을 다시 이식해 성숙한 정자를 만들어낸 사례가 나왔다.
어린 시절 항암치료로 정자 생성 능력을 잃은 남성에게 자신의 고환조직을 이식해 얻은 결과다.
사람의 혈액세포를 정자의 전 단계인 정원세포로 바꾸거나 인공지능(AI)으로
수백만 개의 세포 사이에 숨은 정자 한두 개를 찾아내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생물학적 자녀를 갖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남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남성 생식건강 악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
최근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분석에서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평균 수치가
약 50년간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과 당뇨, 환경오염, 생활습관 변화 등이 가능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만 냉동 고환조직에서 만들어진 정자가 실제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혈액세포를 이용한 연구도 완성된 정자가 아닌 전 단계 세포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새 기술의 가능성과 실제 치료 효과를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10세 때 냉동한 고환, 16년 뒤 정자 만들었다
엘렌 구센스 벨기에 브뤼셀자유대(VUB) 교수팀은 사춘기 이전에 냉동한 고환조직을
성인이 된 환자에게 다시 이식해 성숙한 정자가 생성된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3월 12일 의학 분야 사전논문 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어린 시절 생식독성 치료 후
냉동한 미성숙 고환조직의 첫 자가이식 성공: 고환 내 이식편에서
확인된 완전한 정자 형성’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환자는 10세였던 2008년 겸상적혈구병 치료를 위해 혈액줄기세포 이식을 받아야 했다.
이식에 앞서 진행되는 고용량 항암치료는 고환의 정자 생성 세포를 손상시켜
영구적인 불임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시 의료진은 미래의 생식능력을 보존하기 위해 환자의 한쪽 고환을 제거하고 조직 일부를 냉동했다.
사춘기 이전 남아는 아직 성숙한 정자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정액을 직접 냉동할 수 없다.
대신 정자가 될 줄기세포가 들어 있는 미성숙 고환조직을 보관한 것이다.
성인이 된 환자는 아이를 갖기를 희망했지만 2년간 검사한 결과 정상적인 정자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16년간 냉동한 고환조직 조각 11개를 환자의 고환 내부와 음낭 피부 아래에 이식했다.
1년 뒤 조직을 꺼내 분석하자 여러 조각에서 정자를 만드는 줄기세포와
정자 생성 과정의 흔적이 발견됐다.
고환 안에 이식한 조직 한 곳에서는 성숙한 정자 1개가 확인됐다.
사춘기 이전에 냉동한 사람의 고환조직을 다시 이식해 성숙한 정자가 만들어진 첫 사례다.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유럽과 미국, 호주의 의료기관 16곳에서는
남아 3000명 이상이 고환조직을 냉동했다.
하지만 보관한 조직을 사람에게 다시 이식해 성숙한 정자를 만든 사례는
이전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례는 소아암이나 혈액질환을 치료받은 환자들이 성인이 된 뒤
생식능력을 회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아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치료 이후의 삶의 질과 가임력 보존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실제 가임력이 회복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확인된 성숙한 정자는 1개뿐이며 이 정자가 난자를 수정하고
건강한 아이의 출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남은 조직을 보존하면서 추가 정자를 확보해 체외수정에 활용할 계획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팀은 고환조직을 이식하는 대신 초음파로 고환그물에 접근해
정자를 흡인하거나 정자줄기세포를 주입하는 방법도 시험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2025년 3월 26일 메드아카이브에 ‘무정자증 환자를 위한
초음파 유도 고환그물 정자 흡인 및 정자줄기세포 이식법’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 사람의 혈액세포로 정자 만들 수 있을까
고환조직을 미리 보관하지 못한 남성을 위해 몸의 다른 세포로 정자를 만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오웬 웰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수의과대 교수팀은 사람의 혈액세포에서 만든 줄기세포를
쥐의 신장 부위에 이식해 인간 고환과 유사한 조직을 형성했다.
연구 결과는 2026년 7월 10일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의 다능성줄기세포에서 정원세포 생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연구팀은 사람의 혈액세포를 다양한 조직으로 자랄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되돌렸다.
이어 이를 난자나 정자로 성장할 수 있는 생식 전구세포로 분화시켰다.
생식 전구세포를 쥐의 고환에서 얻은 비생식 보조세포와 섞어
살아 있는 쥐의 신장 부위에 이식하자 정자가 만들어지는 고환과 비슷한 구조가 형성됐다.
이식 6개월 뒤에는 성숙한 정자가 되기 전 단계인 인간 정원세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원세포는 완성된 정자로 자라지 못했다.
정자가 성숙하려면 주변 세포의 지원과 다른 장기에서 보내는 호르몬 신호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쥐의 몸이 인간 세포에 필요한 신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혈액으로 사람의 정자를 만들었다’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다.
이번 연구는 혈액세포를 정자의 전 단계인 정원세포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기초연구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연구팀은 앞으로 인간에게서 얻은 보조세포를 함께 이용하면
정자 성숙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이 완성되면 정자 생성 세포가 없거나
항암치료로 생식능력을 잃은 환자의 불임 원인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 없다고 생각했던 정자, AI가 찾아냈다
정자를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극소량의 정자를 찾아내는 기술도 등장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불임센터가 개발한 AI 기반 ‘STAR(Sperm Tracking and Recovery·정자 추적 및 회수)’ 시스템은
비폐쇄성 무정자증 판정을 받은 남성의 정액에서 사람의 눈으로 찾기 어려운 극소량의 정자를 탐색한다.
STAR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임신에 성공한 사례는 2025년 10월 31일 국제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AI 기반 미세유체 정자 검출·회수를 이용한 비폐쇄성 무정자증 환자의 첫 임상 임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기존에는 배아 연구사가 현미경으로 정액 시료를 한 방울씩 관찰하거나 고환조직을 직접 채취해야 했다.
시료에 정자가 극소량만 들어 있으면 숙련된 전문가도 이를 놓칠 수 있다.
STAR는 시료를 머리카락보다 가는 통로가 새겨진 마이크로유체 칩에 통과시키면서
초당 약 300장의 이미지를 촬영한다.
AI가 1시간 동안 800만 장 이상의 이미지를 분석해 세포 파편 사이에서 정자를 골라낸다.
정자가 발견되면 로봇 장치가 화학물질이나 레이저를 사용하지 않고 정자를 분리한다.
랜싯에 보고된 부부는 약 20년간 임신을 시도하며 15차례 체외수정에 실패했다.
연구팀이 STAR로 남편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정자 2개가 발견됐다.
이를 아내의 난자에 주입해 만든 배아 가운데 하나가 착상에 성공했고
이후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STAR를 고환조직에 적용한 별도의 사례도 있다.
클라인펠터증후군이 있는 남성의 고환조직에서 정자 8개를 찾아냈고
이 가운데 하나를 이용해 임신에 성공했다.
이 사례는 2026년 4월 30일 BBC 보도를 통해 소개됐다.
컬럼비아대 연구팀은 BBC에 STAR를 적용한 환자 175명 가운데
약 30%에게서 정자를 찾았다고 밝혔다.
불임 전문가들은 절박한 환자들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고가 치료에 쉽게 기대를 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의 실제 가치를 판단하려면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장기적인 출산 결과 확인이 필요하다.
● 남성호르몬 50년간 54% 감소
불임 치료 기술이 발전하는 한편 남성 생식건강 자체는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가이 레빈 이스라엘 히브리대 하다사브라운 공중보건대학원 교수팀은
2026년 7월 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럽인간생식배아학회 연례회의에서
‘총 테스토스테론과 유리 테스토스테론의 시간적 추세 : 1
972∼2019년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추세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현재 정식 학술지 논문이 아니라 학술대회 발표 단계다.
따라서 아직 동료평가를 거친 정식 논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1972년부터 2019년까지 테스토스테론 변화를 장기간 추적한
종단연구 6편을 종합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이스라엘과 미국, 브라질, 핀란드, 덴마크 등 5개국 남성 11만8593명이었다.
분석 결과 6편의 연구 모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이 자료를 종합한 결과 평균 감소 폭은 54%였으며
특히 2000년 이후 감소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테스토스테론은 정자 생성과 성욕 조절뿐 아니라 근육량과 골밀도,
기분, 에너지, 신진대사 유지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연구팀은 비만과 당뇨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체지방이 늘면 테스토스테론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으로 더 많이 전환될 수 있다.
당뇨병으로 인한 인슐린 저항성과 만성 고혈당은 뇌의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기능에 영향을 미쳐
고환에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지시하는 신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
가정용품과 플라스틱 등에 포함된 내분비계 교란물질과
기후변화에 따른 온도 상승도 잠재적인 요인으로 거론됐다.
다만 환경적 요인과 테스토스테론 감소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선행연구 결과도 일관되지 않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졌다고 보충제를 임의로 투여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외부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들어오면 뇌가 남성호르몬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고환에 정자 생성을 줄이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오히려 정자 수가 감소하거나 불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 아이스팩·호르몬 주사 등 검증되지 않은 치료 주의
남성 생식능력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소셜미디어에는 고환에 아이스팩을 대거나
특정 영양제와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정자의 질이 좋아진다는 정보가 확산되고 있다.
고환이 정상적인 정자 생성을 위해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고환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면 정자의 수와 운동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우나에 들어가면서 고환에 아이스팩을 직접 대는 행동이
정자의 질을 개선한다는 신뢰할 만한 임상 근거는 없다.
지나친 냉각은 피부와 조직을 손상시킬 위험도 있다.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과 근육을 키우기 위한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는
정자 생성을 오히려 억제할 수 있다.
일부 인플루언서가 권하는 사람융모성선자극호르몬(HCG)이나 폐경기성선자극호르몬(HMG)도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약물이다.
임의로 투여하면 여성형 유방증이나 혈전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의료진의 진단 없이 호르몬제나 불임 치료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남성 불임 관련 기술은 냉동 고환조직을 다시 이식하고
혈액세포를 정자 전 단계로 변화시키며 기존 검사에서 놓친 정자를
AI로 찾아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냉동 고환조직 연구는 성숙한 정자 1개를 확인한 사전논문 단계이고
혈액세포 연구는 완성된 정자가 아닌 정원세포 생성에 머물러 있다.
STAR 역시 실제 출산 사례가 나왔지만 아직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한 성공률 검증이 필요하다.
남성 불임 치료 기술은 과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영역까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다만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과 실제로 입증된 치료 효과를 구분하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치료법은 경계해야 한다.
※ 참고자료
10.64898/2026.03.04.26347483
10.1101/2025.03.25.25324518
10.1016/j.stem.2026.06.001
10.1016/S0140-6736(25)01623-X
[김현정 에디터 hjn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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