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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섬뜩한 이야기, 실리콘밸리 교주의 ‘영생론’

mistyblue 2026. 7. 28. 07:40

 

AI가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을까.

‘영생 서사’는 오늘날 AI 빅테크의 기업가치를 떠받치는 핵심 담론으로 작동한다.

이들은 영생을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 차원에서 믿는다.

‘영생(永生)을 아십니까?’

‘도(道)’가 아니라 ‘영생’이다. 번화가에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 자리를 허겁지겁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생’ 등 종교나 SF(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개념들이

오늘날 자본시장에서 천문학적 자금을 끌어들이고

‘기업가치’를 치솟게 하는 서사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빅테크들이 그렇다.

2005년 레이 커즈와일이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 문구가 투사된 스크린 앞에 서 있다. ⒸAP Photo

 

이 부문의 대표적 이데올로그는 구글 선임 연구자 겸

AI 비저너리(visionary·AI의 장기적 방향을 연구하는 미래 전략가)인 레이 커즈와일이다.

그는 영생을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 차원에서 믿는다.

AI가 이끄는 의학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커즈와일을 선정했다.

 

〈타임〉에 따르면 그는 ‘장수(수명 연장) 연구’의 진전으로

사람이 한 살을 더 먹을 때마다 기대수명이 약 4개월씩 늘어난다고 봤다.

그런데 AI로 장수 연구가 가속화하면 2029~2035년에는

연간 기대수명의 증가분이 12개월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매년 늙어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수명을 되돌려받아,

이론적으로는 죽음으로부터 계속 달아날 수 있게 된다.

 

인터뷰 당시 76세였던 커즈와일은 하루 80알의 약을 복용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2035년까지 최대 11년만 더 버티면 영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에게 영생은 단지 육체적 생명을 오래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2005년 출간되어 미국의 AI 커뮤니티에서 성전처럼 읽혔다는 그의 저서 〈

특이점이 온다〉는 영생의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특이점(singularity)’은 물리학 용어다. 블랙홀처럼 기존 물리학 법칙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뜻한다.

커즈와일은 이 용어를 ‘AI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 문명이 재편되는 시기’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가 예측한 특이점의 시기는 2045년이다.

〈타임〉은 2011년 표지 기사로 커즈와일의 사상을 다루면서

‘2045: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해’라는 제목을 붙였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레이 커즈와일의 기술 유토피아와 매우 흡사하다. 영화 속 인간들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영상 갈무리

 

‘2045년 특이점’의 결정적 계기는, 현재(2026년)부터 불과 3년 뒤(2029년)에 탄생한다는

‘범용 인공지능(AGI·인간 수준에 도달한 인공지능)’이다.

일단 AGI가 개발되면, 인간은 더 이상 AI를 개선할 필요도 능력도 없게 된다.

인간보다 똑똑한 AGI가 스스로 후속 모델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간 두뇌의 한 속성이던 ‘지능(intelligence)’은 드디어 껍데기(인간의 물리적 육체)를 벗고 ‘

자립’할 발판을 마련한다.

커즈와일에게 AGI는 ‘지능’이 인간의 일개 기능에서 독립해

‘주체(지능이 지능의 주인)’로 나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오로지 지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AGI 이후 인공‘지능’의 발전은 더욱 가속화한다.

AI 모델이 똑똑할수록 더 똑똑한 후속 모델을 만들 수 있고,

‘더 똑똑한 후속 모델’은 ‘훨씬 더 똑똑한 모델’로 이어진다.

이처럼 ‘똑똑함’의 정도가 폭발하는 시점이 2045년, 즉 특이점이다.

커즈와일이 그리는 미래에서는 인간 두뇌가 초거대 AGI의 서버와 실시간 연결된다.

인간은 ‘지금 생각이 내 생각인지 AGI의 생각인지’도 알 수 없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른다.

또한 인간 뇌세포의 화학적·전기적 신호를 깡그리 디지털 데이터로 스캔해

AGI의 서버로 전송해버릴 수도 있다.

 

이로써 인간의 ‘자아(지능·기억·감정의 총체)’는 초거대 서버에 비트(bit)화되어

‘기계 안의 의식’으로 영생하게 된다고 커즈와일은 전망한다.

그 ‘사이버 자아’는 자신(?)이 활동하고 뛰어놀 ‘가상공간’도 제공받는다.

대를 이을 수도 있다.

다만 생물학적 몸이 없으니 ‘재편된 인류’의 번식 행위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버전의 릴리스(release)와 비슷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캡슐 속 붉은 배양액에 담겨 있으나 의식은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커즈와일의 기술 유토피아와 매우 흡사하다.

 

커즈와일의 상상력은 ‘인류의 재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구의 자연환경과 우주로까지 뻗어나간다.

나노기술 이론가인 에릭 드렉슬러가 상상한 ‘나노봇(nanobot)’이

커즈와일의 우주적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나노봇은 ‘원자 해체 및 재조립’ 기능을 장착한 로봇이다.

원자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기본 알갱이다.

이론적으로는, 물질을 원자 단위로 해체한 뒤 재조립하면

쌀·스테이크·나무·채소 나아가 건물·반도체·우주선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창조가 가능하다.

 

커즈와일은 ‘나노(10억분의 1m·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단위의 크기인 나노봇들에게,

떼 지어 지구 곳곳을 누비며 돌·흙·바다 등 모든 물질을 원자로 해체하는 중대 임무를 맡길 계획이다.

무엇으로 재조립하려는 것일까?

연산과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극소형 반도체다.

바다와 강의 물방울들, 흙 알갱이와 바위, 나무 등이 모두 연산하고 저장하고 전송하는

반도체로 진화(?)한다. 지구는 초거대 슈퍼컴퓨터로 변신하는 것이다.

2016년 3월10일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벌인 제2국에서 패한 이세돌 9단이 대국을 복기하고 있다. ⒸAP Photo

 

커즈와일은 나노봇에게 왜 이런 짓을 시키는 것일까?

2026년 현재 ‘인간’으로 불리는 존재를 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지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의 개선엔 더 많은 데이터와 더 강한 연산 능력(반도체)이 필요하지 않은가.

커즈와일은 지구 하나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나노봇으로 가득한 우주선이 은하계로 퍼져나가며 만나는 행성마다

해체해 연산 및 저장장치로 재조립하는 ‘그날’을 꿈꾼다.

연산력 강화를 위해 우주가 컴퓨터로 진화해간다.

그의 용어를 빌리면 “우주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커즈와일의 미래 세계에서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지능이다.

‘특이점이 온다’를 ‘편하고 좋은 날이 온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그것은 장대하고 감동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이거나 전율을 금할 수 없는 코즈믹 호러다.

 

커즈와일의 사상은 근대사회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프리드리히 헤겔의 역사철학을 디지털 버전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정신(우주와 역사를 움직이는 궁극적이고 완전한 이성)이

자유를 향해 전진하는 도정으로 본다.

인간은 절대정신이 연출한 연극(제목은 ‘자유’)의 배우이며 매개체일 뿐이다.

 

커즈와일은 절대정신을 ‘지능’으로 대체한다.

그의 스페이스 오페라에서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하드웨어에 갇혀 있었던 지능이

AGI를 계기로 자립해서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의 물질과 에너지를 연산의 인프라로 바꿔버린다.

커즈와일에게 역사란, 지능이 주체로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도정이다.

 

독자들은 이런 황당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터무니없는 담론이나 서사라도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담론 자체의 합리성과 타당성보다 얼마나 넓게 확산되고

어떤 계층의 충성심을 끌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것은 돈 문제와 얽혀 있다.

 

미국의 유력 기술·과학·비즈니스·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Wired)〉의 2025년 5월 추적 보도에 따르면,

2000년대 실리콘밸리 주변에서 형성된 특이점 이론 및 미래주의 커뮤니티들이

딥마인드(알파고로 유명한 회사)와 오픈AI의 창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딥마인드 창업자들은 이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었다.

딥마인드의 부상은 피터 틸(팔란티어 창업자)을 거쳐 샘 올트먼에게

AGI 경쟁에 뛰어들 의욕을 고취했다.

이후 올트먼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오픈AI를 출범시킨다.

커즈와일의 특이점은 책 속 아이디어에 머문 것이 아니라,

AI 연구자와 투자자· 창업자들이 교류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회사를 세우는 사상적 배경이 됐다.

커즈와일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

종교나 사상운동에서 창시자의 ‘교리’는 여러 갈래로 쪼개지기 마련이다.

커즈와일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도 그랬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커즈와일의 사상을 선택적으로 이어받았다.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우주 진출)와 뉴럴링크(기계와 두뇌의 접속) 사업을 밀어붙인다.

커즈와일이 ‘AI 비저너리’로 있는 구글은 노화 및 질병 연구소인 칼리코(Calico)를 운영한다.

 

실리콘밸리 창업 부문의 총아인 피터 다이아맨디스는

‘특이점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이라는 교육·창업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피터 틸은 해상도시, 자유도시, 네트워크 국가처럼 기존 국가 제도를 우회하는

통치 실험에 관심을 보여왔다.

철학자 닉 보스트룀이나 기계지능연구소(MIRI) 창립자인 엘리에저 유드콥스키는

‘AGI가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일종의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초지능이 인류의 생물학적·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문명을 재편한다’는 ‘커즈와일식 믿음’이다.

그렇다면 누가 AI로 인한 재앙을 막고 인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우리, 테크 엘리트들이다.’

2024년 5월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마이크로소프트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 PHOTO

 

테크 엘리트들의 특성을 가장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이다.

그는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스(Retro Biosciences)’라는 스타트업의 대주주인데,

이 업체는 노화를 ‘치유 가능한 질병’으로 본다.

올트먼은 AI 커뮤니티의 사상을 경제·산업·배분 정책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도 능숙하다.

 

‘지능’과 ‘연산력’에 대한 그의 관점엔 커즈와일의 흔적이 역력하다.

오픈AI가 지난 4월 발표한 정책 제안서의 제목은

〈지능 시대(Intelligence Age)를 위한 산업정책 : ‘사람 우선주의’로 가는 아이디어들〉이다.

‘지능 시대’란 개념에 ‘사람이 먼저’라는 부제를 붙였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이다.

 

올트먼의 ‘지능 시대’란 무엇을 의미할까.

올트먼이 2024년 5월 언급한

‘보편적 기본 연산력(UBC·Universal Basic Compute)’이란 개념을 참조할 수 있다.

이것은 시민 모두에게 현금(기본소득) 대신 AI 연산력을 나눠주자는 제안이다.

누구나 AI를 일정한 연산량만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시민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연산량을 창업, 생산활동 등에 사용하거나

심지어 팔아서 현금(국정 화폐)으로 바꿔도 된다.

 

이 같은 올트먼의 비전은 연산력이 일상생활의 총체적 동력이 된 사회와 세계를 전제한다.

‘컴퓨터 따위 안 쓰면 되지’가 통하지 않는다.

지식노동과 생산은 물론 일상생활(자율주행차로 통행하거나 AI 의사에게 진료받는 행위 등)이 모두

AI 사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1초에 수억~수조 차례의 연산이 이뤄지는 AI 모델에 접근할 수 없으면

사회생활 자체가 중단되는 세계다.

그래서 현금보다 연산량을 보편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올트먼식 미래에서는 노동 가격(임금)이 극단적으로 낮아진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는 지금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무한정 생산될 수 있다.

희소성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연산력이 일상생활의 토대인 만큼 강력한 AI 모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오히려 굉장히 희소해진다.

UBC가 희소한 재화로 등극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트먼의 제안처럼 UBC의 판매가 허용된다면 어떨까.

UBC는 주식이나 비트코인처럼 실시간 거래되는 ‘디지털 화폐’로 기능하게 된다.

미국 주식 히트맵 사이트인 핀비즈(Finviz)는 S&P 500, 나스닥, 다우존스 등 주요 지수별 히트맵을 제공한다. 주식시장을 섹터별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FINVIZ 화면 갈무리

 

문제는 UBC의 발행자가 국가가 아니라 오픈AI 같은 빅테크 독점기업이란 것이다.

민간기업이 화폐를 발행하고 배분하며 사용 및 교환 조건을 정한다.

어떤 경우엔 특정인을 찍어 계정을 정지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국민이라기보다 플랫폼 이용자에 가까워진다.

그 권리는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기업 약관에 따라 보장되거나 제한된다.

재분배는 조세와 예산보다 빅테크가 UBC를 얼마나 뿌리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

이 극단적 시나리오에서 테크 엘리트는 ‘연산력’ 접근권을 독점 통제하는

영주로 군림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AI를 둘러싼 서늘한 시나리오들을 살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들이 실현될 수 있기는 할까?

현재 그 가능성을 추정할 단서는 ‘AI에 기반한 생산성 급등’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다.

 

일각에서는 AI로 생산성이 상승했다고 주장한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AI가 생산성을 높여 물가에 하향 압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드러냈다.

실제로 미국의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2010년대엔 1% 수준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2%대로 올랐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5월11일) 분석에 따르면,

생산성 증가율 상승을 “인공지능의 공으로 돌리기는 아직 이르다”.

 

미국 생산성 증가율의 상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업종은 정보산업이 아니라

전문 서비스(회계·법조·컨설팅·연구개발 등)와 경영, 에너지 부문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AI 시대가 생산성 통계에 나타나기까지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는 6월26일 CNBC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AI가 (생산성 상승에 따른 물가하락 압력이 아니라)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애플 등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AI 붐으로 인한 반도체 가격 상승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의 대규모 전력 소모로 전기 가격도 오르고 있다.

마크 잔디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AGI가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커즈와일의 ‘특이점’ 담론과 비교하면 실제 AI의 발전 속도는 상당히 늦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이점을 ‘믿거나 말거나’식 괴짜 담론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실리콘밸리의 테크 억만장자와 이데올로그들이 공유하고

후원하고 퍼뜨리는 주류 담론에 가깝다.

 

특이점이란 개념의 실제 기능 역시 억만장자들의 비즈니스 측면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빅테크들의 자금조달 및 가치평가(valuation)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는 해당 기업이 미래에 실현할 수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개념이다.

만약 AI가 단순히 생산성을 어느 정도 높일 도구일 뿐이라면

AI의 가치 역시 빼어난 소프트웨어 정도로 제한된다.

그러나 AI가 노동과 과학 연구, 국가행정의 자동화, 교육과 의료 체계의 재편,

군사·안보 의사결정의 핵심 인프라뿐 아니라 죽음까지 포함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이라면 평가가 달라진다.

AI는 인류 문명을 재편할 역사상 유례없는 범용 기술이고 빅테크의 기업가치는

미래 문명 운영권의 가격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대형 시세 전광판 아래를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AFP PHOTO

 

커즈와일의 단언과 달리 AGI가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그래서 빅테크가 ‘AGI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시사하기만 해도

해당 기업은 물론 AI 업계 전체의 가치를 올릴 수 있다.

그것은 ‘미래의 장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빅테크와 그 이데올로그들이 AGI를 역사적 필연으로 제시하며

그 흐름의 핵심 행위자로 자처하는 결정적 동기는 어쩌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자금조달과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다.

적자를 감수한 대규모 투자를 퍼부어도 미래의 압도적 보상을 기대하는

주주들은 입을 다물 것이다.

커즈와일류의 영생과 특이점 담론은 합리적·과학적 예측이라기보다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자신의 정치·경제적 권력을

문명사적 사명으로 포장하는 언어에 가깝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고도(Godot)’를 기다릴 것이다.

‘고도’가 설사 오지 않는다 해도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지금 여기’의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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