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밴드에 '호른 섹션(Horn Section: 관악기)'을 가미시켜 '블러드 스웻 앤 티어스(Blood, Sweat & Tears)'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록 그룹 '시카고'는 1967년에 결성되었다. 시카고의 '드폴 대학교(DePaul University)'에 재학 중이던 월터 패러제이더는 야간에 지역의 나이트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당시 나이트 클럽에는 대학생 신분이던 몇명의 젊은이들이 월터 패러제이더 처럼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이들과 친해진 월터 패러제이더가 어느날 자신의 집에 모인 이들과 '호른 섹션'을 가미한 밴드를 결성하자고 제의하여 '빅 씽(The Big Thing)'이라는 이름의 6인조 '커버 밴드(Cover Band)'가 출범하게 된다.
당시 빅 씽에 가담한 여섯 사람은 월터 패러제이더를 비롯하여 기타리스트인 '테리 캐스(Terry Kath)'와 리 러프넨, 제임스 팬코우, 로버트 램, 데니 세라핀이었다. 빅 씽의 보컬 파트는 테리 캐스와 로버트 램, 두사람이 담당했는데, 이들 두사람 모두 바리톤 영역이었던 탓에 테너 파트를 담당할 연주자를 물색하던 중 피터 세테라를 발견하고 그를 가입시키면서 시카고의 틀이 완성되었다.
다른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된 시카고는 인지도를 넓힐 필요성에 따라 프로듀서 이자 매니저인 '제임스 윌리엄 게시오(James William Guercio)'와 함께 1968년에 로스앤젤레스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면서 '컬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체결한 빅 씽은 매니저인 제임스 윌리엄 게시오의 '밴드가 어디 출신인지 알수 있게 밴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시카고 트랜싯 어소리티(Chicago Transit Authority)'라는 밴드 이름으로 데뷔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1969년 4월 28일, 시카고 트랜싯 어소리티의 이름으로 데뷔 음반 'The Chicago Transit Authority'를 발표한 밴드는 음반 녹음 당시 음반사가 제안한 '시카고' 라는 이름을 받아들여 이후부터는 '시카고 트랜싯 어소리티'와 이를 짧게 줄인 '시카고'라는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활동하였고 점차 시카고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7위에 랭크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시카고는 1970년에 두번째 음반 'Chicago 16'을 발표하면서 부터 인기 그룹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재즈 록 그룹으로 히트 곡을 만들어내던 시카고에게 1978년은 비극적으로 시작하는 한해가 되어버렸다. 오랜기간 동안 함께 해오던 매니저 '제임스 윌리엄 게시오'와 멤버들간의 불화로 인한 결별을 시작으로 1월 23일 테리 캐스가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시카고의 멤버들은 충격 속에서도 테리 캐스를 대신할 연주자 를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하기로 결정하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도니 데이커스(Donnie Dacus, 기타)'를 시카고의 멤버로 가입시켜 새 음반 'Hot Streets'를 발표하며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게 된다.
1981년, 시카고를 통하여 상업적으로 많은 이득을 보았던 '컬럼비아 레코드'는 변화하는 음반 시장의 상황에 따라서 시카고를 해고하고 남은 계약을 'Greatest Hits' 음반을 발매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다.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와 새롭게 계약한 시카고는 새로운 매니저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 함께 새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열세번째 음반인 'Chicago 13'을 끝으로 시카고를 탈퇴한 도니 데이커스 대신에 빌 챔플린을 가입시켜 멤버를 보강한 시카고는 1982년 6월 7일 통산 열여섯번째 음반인 'Chicago 16'을 발표하였다.
이전의 재즈 록 사운드에서 좀더 팝 취향으로 바뀐 새 음반에서는 싱글 'Hard to Say I'm Sorry'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이전의 성과를 뛰어 넘는 명성을 시카고에게 안겨주게 된다. 뒤이어 'Love Me Tomorrow' 까지 빌보드 싱글 차트 22위에 오르며 히트를 하자 '컬럼비아 레코드'에서는 이 상황을 두고 두고 아쉬워 했을 것이라는 어렵지 않은 짐작은 팬들에게 가벼운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한국에서도 'Hard To Say I'm Sorry'가 히트하였고 뒤이어 'Love Me Tomorrow' 까지 연속으로 히트를 하게 되자 1976년에 발표하였던 열번째 음반에 수록된 곡 'If You Leave Me Now'까지 다시 히트하는 현상이 일어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