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년 퀴뇨의 스팀 자동차에 의한 세계최초의 교통사고를 그린 삽화
퀴뇨 증기 보일러의 단면도
현재 파리국립 기술공예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퀴뇨의 증기자동차
프랑스의 퀴뇨가 제작한 세계최초의 증기자동차
주행도중 파괴된 퀴뇨의 증기자동차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벤츠1호
과거로 되돌아간듯한 사실감을 재현시키기위해 100년전의 의상을 갖춰입고 나온 운전자
200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볼거리로 나온 벤츠1호와 똑같이 제작한
복제품 자동차
칼 벤츠가 1886년 제작한 984cc 가솔린 엔진의 이 모터 카는 시속10km가 조금
넘었으나 당시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벤츠1호 복제품 자동차의 시동
세계에서 유수한 자국의 문화와 그에 따른 문화유산등을 운운하는데 있어
대단한 자부심과 높은 콧대를 자랑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프랑스가
그 첫째라고 볼수있다. 그러한 입장은 현재 유럽의 맹주인양 동분서주하는 프랑스 사르코지정권에서도
잘 보여주듯이 정작 프랑스가 언어와 예술,요리등의 문화와 과학과 기술의 측면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우월성을 갖고 도도하게 나오는 나라인 것은
익히 잘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실상 매년 루브르 박물관이나 퐁피두센터를 관람하러 세계각지에서
드나들며 그앞에서 줄을서는 수많은 관광인구는 그것을 증명해준다고도 볼수있다. 프랑스가 타국에서 강탈한 대표적인 문화재로 이집트 로제타석이나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조각품과 조선의 직지심체요절같은 문화재는 아예 자국의 문화재인양
반환이라는 문자 자체를 입에 담지않는다. 이것은 자국의 문화재든 아니든 프랑스의 수중에 한번들어간 다음에는 박물관에
진열된 다음에 직접 자기나라로 세계인들이 와서 보라는 말이다. 자동차의 발명에 관한 사실 또한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다. 1769년 프랑스의 기술자 니콜라스 퀴뇨(Nicolas Cugnot)는 증기기관을 3륜차에
덧대어 대포와 화물을 운반하는 견인차로 사용할목적으로 이 차를 고안했다. 파르디에 라고 이름 붙여진 이 발명품은 그 형태가 커다란 솥처럼 생긴 증기보일러를
앞에다 달고 바퀴가 3개였던 그야말로 뚱단지처럼 기괴하게 생긴 증기차였다. 첫시제 증기자동차의 실험은 가동시킨뒤 불과10m도 못가서 병기창의 벽을 들이 받고
파괴되어 버렸다. 그것은 증기자동차의 무게중심에 따른 문제와 속도제어가 되지 않았던 입장이었다. 프랑스는 이 사고 또한 우스갯말로 세계 최초의 교통사고라고 명명한다. 1771년에는 그러했던 기술적인 문제를 보완하여 두번째 실험한 증기자동차는
4사람을 태우고 시속 4km의 속도로 파리시내를 주행 하였다. 수증기의 힘으로 동력을 발생시키는 증기보일러는 물을 싣고 다닐수있는 용량이 적어
15분마다 물을 공급시켜야했다. 그래서 주행거리가 짧다는 결점이 있었으나 피스톤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시킬수있는 사실 하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도로에서 실질적인 주행을 고려하여 제작된 형태를 갖춘 최초의
근대적자동차는 독일의 칼 벤츠가 1886년 제작한 가솔린기관의 3륜 모터카
벤츠1호라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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