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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추억을 듣는다, 진공관 라디오

mistyblue 2013. 5. 8. 21:48
 
추억을 듣는다, 진공관 라디오
한정판 라디오 Vacuum Tube Radio           출처: 인터넷 사이언스
며칠 전, 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택시에 TV나 내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있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아 그냥 궁금해서 기사 아저씨한테 ‘PMP나 내비게이션은 안 보시는 모양이네요?’라고 여쭈어 보니, 기사 왈 "주의집중이 떨어지고 너무 인위적인 것 같아 그냥 라디오만 들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필자도 한 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에 가끔 PMP나 내비게이션 등을 테스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주로 신호 대기시에 잠깐잠깐 보지만 순간 신호를 놓쳐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놀라고, 궁금한 장면이 나오면 운행 중에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귀는 몰라도 시선을 뺏긴다는 것은 운전 중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으니 항상 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라디오 이야기를 하려다 삼천포로 빠진 것 같은데, 어쨌든 휴대용 디지털기기가 범람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등장하지만 라디오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TV와 위성TV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라디오의 몰락을 예견했던 사람들도 많았고 또 그 예견이 어느 정도 맞는 듯, 라디오가 상당히 위축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최근엔 오히려 라디오의 중요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신속한 교통흐름을 알기 위해서 라디오가 필수가 되었으며 차량이 많아지고 원거리 나들이가 늘어난 것도 라디오프로그램 성장에 한몫을 했다. 또한 MP3 등의 휴대용 디지털기기들이 급속도로 퍼진 것도 라디오의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는 양면성을 내포한 방송매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옹기종기 모여 성우의 목소리로 단막극을 듣던 먼 옛날 추억이 느껴지기도 하고 일분일초를 다투는 신속한 교통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최첨단 장비들과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땐 주로 밤에 라디오를 들어서인지 감성적인 느낌이 컸던 것 같고 지금은 교통정보나 운전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주로 듣는 편이다.

따져보면 라디오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겉으로 들어난 것들만 따지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단지 수신기의 형태만이 수없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최근엔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디지털 느낌이 강한 제품보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제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라디오는 감성적인 부분이 강한 것 같다. 대인의 과학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Gakken사에서 최근 출시한 진공관 라디오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좋고 초창기 라디오의 원리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제품이다. 개발자들이 밝히는 바에 따르면 현재 출시되는 진공관을 사용하게 되면 제품가격이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저렴한 진공관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여기에 사용된 진공관은 중국에서 군사용으로 주로 사용되었던, 30년이 지난 제품이라고 한다. 오래된 제품이지만 사용에는 지장이 없으며 흠집이 나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서에 나와 있다. 중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진공관을 모으다 보니 수량에 한계가 있어 1만개 한정으로 생산했다고 한다.


조립은 아주 간단하며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조심할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안테나선을 감는 부분에서 끊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며 방향을 잘 보고 감아야 된다. 그리고 진공관은 오래된 제품이어서 충격에 약할 수 있다. 따라서 조심히 다루어야 하며 꼭 제공된 핀스트레이너(진공관 핀을 펴주는 도구)를 이용해 핀을 조심스럽게 펴주어야 한다. 그 다음은 각종 전선들의 색깔을 잘 보고 연결해 주면 된다.

완성된 모습은 멋지다! 1920~1930년대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북형 바리콘(주파수를 잡는 장치)과 앞쪽에 늘어선 3개의 진공관, 위로 솟아오른 듯한 나팔관 모양의 스피커와 그 주위를 다이아몬드형으로 감싼 안테나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흠이 있다면 질감이 조금 떨어지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개발자의 변명처럼 현실성 있는 가격을 맞추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다.


소리는 어떨까? 궁금하다. 배터리를 넣고 볼륨을 높인 다음 바리콘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리면 미세한 신호가 잡히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제품으로 잡을 수 있는 주파수는 AM만 가능하며 생각보다 주파수 잡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한참을 조절하다보면 옛날 농촌에서 이장이 뭔가를 알리기 위해 스피커를 켤 때 나는 "위~잉, 끼~익"하는 특유의 신호음이 잡히며 그 주위를 좀더 미세하게 조정을 하면 흐릿하면서 오래된 방송을 듣는 듯한 묘한 분위기의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아, 라디오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고 할까.

* 바리콘에 대하여

라디오나 전기제품의 주파수를 조절하는 장치를 보통 바리콘(Variable Condenser : Varicon)이라고 하는데, 초창기에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 북형 바리콘이라는 형태가 사용되었으며 2장의 금속판을 경첩처럼 포개서 벌어지는 각도로 주파수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Gakken에 사용된 바리콘이 바로 북형 바리콘이다. 그 외 여러 장의 금속층을 고정측과 가동측으로 나누어 주파수를 맞추는 에어바리콘 타입과 두 종류의 날개 사이에 필름을 끼워 사용하는 폴리 바리콘, 기판에 붙여서 전용 드라이버로 주파수를 맞추는 트리머 타입 등이 있다. 최근엔 자성을 이용한 주파수 설정 방식도 간혹 사용되기도 한다. 수신율이 가장 높으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타입은 에어바리콘 타입이다.


요즘은 운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라디오를 듣지 않는 것 같다. 라디오를 듣고 있기엔 주위에 너무나 많은 볼거리, 즐길거리 들이 넘친다. 저녁 늦게 밤하늘의 별을 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고 창문, 방문 꼭꼭 걸어 잠그고 인터넷에 빠져 밤을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비주얼한 장면들을 놓칠세라 눈과 귀, 그리고 머리까지 온통 빠져 있다. 생각은 나중이고 받아들이기 바쁘다. 너무나 즉흥적이고 순간적이다.

라디오는 감성적이고 때론 이성적이며 여유를 준다. 들리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그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게 한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은 어려울 것이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달에 한 번 정도는 맑고 조용한 밤에 라디오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힘들고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사제공 : 아이디어홀릭 
출처 : 춘란과 새우란 그리고 사슴벌레
글쓴이 : 지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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