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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스칼 확률론과 퍼지 이론 탄생.

mistyblue 2013. 5. 14. 21:23

파스칼 확률론과 퍼지 이론 탄생.

 

1654년, 파스칼은 페르마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주사위 던지기와 배당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주사위 2개 던져서 두 개 모두 6이 나오려면 몇 번 던져야 하는지 알아내는 문제와 주사위 던지기 게임 도중에 그만두면 각자 차지해야 할 몫을 정하는 배당 문제입니다. 2명이 주사위 던지기 게임할 경우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었으나 3명 이상일 때는 만족할 만한 수학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확률론 기초를 세운 순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0 여 년 전 일입니다.

 

1965년, 버클리 대학 자데(L. A. Zadeh) 교수가 '퍼지 집합(Fuzzy Sets)' 논문을 발표합니다. '아름다운 여성 집합', '키 큰 사람 집합', '큰 수 집합' 등 경계가 확실치 않은 집합을 퍼지 집합이라고 부릅니다.

 

컴퓨터가 자연어를 이해하는 문제를 연구하다가 이치 논리 디지털 코드로 풍부한 어휘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는 걸 깨닫습니다. "내 아내는 어느 정도 예쁜 것인가?"에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예쁘지 않다'와 '예쁘다'를 0과 1로 표현할 때 '조금 예쁘다'는 0.2 정도, '적당히 예쁘다'는 0.5 정도, '많이 예쁘다'는 0.8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속도(membership grade)를 멤버쉽 함수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Crisp Sets와 달리 Fuzzy Sets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확률론 탄생한 지 300년 이상 지나 퍼지 이론이 세상에 등장했고, 이제 40 여 년 짧은 역사입니다. 꽤 늦게 나온 감이 있습니다. '예, 아니오'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 주관을 과학화하는 시도가 이렇게 어려운 모양입니다.

 

데카르트와 파스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치논리를 내놓으면서도 모호함을 함께 인정했던 것처럼, 데카르트가 분석적/객관적 방법을 제창했을 때 그 안티테제(Antithese)로서 파스칼은 종합성/주관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데카르트가 물질과 이성에 중심을 두었던 것에 반해 파스칼은 정신과 심정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보편성을 중시한 데카르트와 대립하여 파스칼은 개별성을 중시했습니다. 파스칼은 모호함을 다루는 유일한 이론으로 확률론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데카르트를 선택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은 기초 이론을 1687년 프린키피아를 쓴 세계 최초 물리학자 뉴턴(Isaac Newton)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나 물질 중심 근대 합리주의라는 사상 배경은 데카르트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습니다.

 

현대 과학기술은 그 대상이 물질에서 에너지로, 에너지에서 정보로 옮겨 왔습니다. 바로 이 정보 처리를 하고자 만든 게 디지털 컴퓨터입니다.

 

그런데 세계 최초 컴퓨터 발명자가 다름아닌 파스칼입니다. 현대식 디지털 컴퓨터 원형이 1642년 파스칼이 고안한 기계식 수동계산기 파스칼리느(Pascaline)입니다. 종합적/주관적 방법을 주장했던 파스칼이 오히려 분석적/객관적 방법에 도움을 주는 계산기를 발명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컴퓨터 기술이 생기나 그 한계를 곧 드러냈는데, 일기예보하고자 태풍 진로 계산하면 태풍이 지나간 며칠 후에야 그 결과가 나왔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불과 몇 십년 전이고, 현재도 바둑기사 이기는 슈퍼 컴퓨터/소프트웨어는 없습니다. (아직도 1급 수준이 한계일 만큼 사실 컴퓨터는 한낱 기계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컴퓨터는 단순 숫자 계산에서 시작했으나 정보처리에서 많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여기에서 퍼지 이론이 등장하고 순수 수학 연구는 물론, 전자공학에서 제어계측 이론에 적용하여 우리 일상에서는 이를테면 자동세탁기, 자동차, 지하철에서 그 기술을 접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와 파스칼, 과연 누가 승자일까요?

 

불명확한 언어.

 

물론 확률론이나 퍼지 이론으로 모든 모호함을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것에서 가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연구 대상이 결국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 말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참으로 흐리터분합니다. 만일 주장이 명확하고 정의도 또렷하면 사이 좋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창조적인 대화도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 말에서 힌트를 얻고 영감이 생기고, 여러가지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적 사색을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에 내포한 의미가 다양하고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끼리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유연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쓰는 말과 글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머리 속에서 잘 정리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게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듣고 읽는 사람이 바로 이해할 수 없으나 의문을 갖고 생각하면서 훨씬 좋은 해석이나 이해가 나올 수 있고 창조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흐리터분한 말이기에 우리는 생각하고 창조합니다.

 


 

책꽂이 한쪽 구석에서 '퍼지의 세계'를 꺼냈습니다. 김종호, 이형엽 편저로 1991년 출판인데, 지금은 아마도 절판이겠지요. 제어계측 배우기 전에 참 재미있게 보았던 책입니다.

먼지 털어내고 오랜만에 읽으니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이론 설명보다 배경과 흐름에 더 관심이 생기네요. 한참 호기심 넘치던 20대 초반 열정이 떠올라 이렇게 낙서(draft) 하나 남깁니다. (^^)

출처 : 길위의 인생
글쓴이 : 춘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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