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vis Presley - Anything That's Part of You(1962)
차도균
차중광
이정
장윤정
Johnny Farago - Un Soir Sans Toi
1968년, 27살 차중락(車重樂)은 '낙엽 따라' 세상을 떠났다.
차중락은 1942년 서울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1968년 뇌막염으로 죽었다.
묘비의 글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짐에 소리없고
나뭇잎 때따라 떨어짐에 소리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짐에 소리없다
아, 이 세상 사는자 죽는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없다.
차중락은 8남3녀 중 셋째아들이다. 그의 부친은 큰 인쇄소를 경영하여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부친은 보성전문 마라톤선수, 모친은 경기여고 단거리 선수였고, 시인 김수영은 큰이모의 아들이니 이종사촌간이다. 차중락은 장충초등학교, 경복중, 경복고등학교를 다니며 육상선수로 활약하였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보디빌딩을 하여 1학년때인 1961년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차중락의 장래희망은 영화감독으로 회화적 감성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린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을 정도로 그는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예술적 소양이 풍부하고 센티한 성품이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닐 때, 어머니 친구의 아들 후랭키 손('목포의 눈물'을 작곡한 손목인의 아들)이 일본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차중락의 엘비스 노래를 듣고 '요즘 일본에서는 사카모토 큐라는 가수가 엘비스를 흉내내서 인기가 많은데 네가 훨씬 낫다. 일본에 가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중락은 일본행을 결심했다. 노래로 아르바이트를 하여 영화를 공부하려는 목적에서였다. 20살 중락은 학교도 중퇴하고 밀항선을 탔다. 그러나 캄캄한 새벽에 내린 곳은 어이없게도 출발지 부산의 어느 해변이었다.밀항 사기에 걸린 것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 중락은 키보이스 맴버인 사촌형 차도균의 권유로 1963년 키보이스에 합류했다. 미8군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시민회관 공연때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나갔는데 이 모습까지 비슷하다하여 '한국의 엘비스'로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중락의 애인은 이화여대생으로 장충동에 살았다. 미국 여배우 에바 가드너를 닮은 미인이었다고도 하고, 키보이스 맴버인 윤항기의 글에서는 이대 메이퀸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녀의 부모는 대학 중퇴에 연예인인 중락과의 교제를 반대했지만 둘의 사랑은 애틋하고 절절했다. 그러나 그녀는 졸업 후 스튜어디스가 되고 중락은 밤무대의 밴드 활동으로 서로 만날 기회가 힘들어지면서, 더구나 중락이 미국여자를 비롯하여 주위에 여자가 많다는 말을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그녀는 아픔을 어렵게 수용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어느 가을 날 그녀는 집안의 소개로 만난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중락의 가슴이 비었고 계절은 쓸쓸했다.
1966년 11월 10일, 엘비스의 'Anhing that's part of you'를 편곡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중락의 애절한 목소리로 바람을 탔다. 처음 부산에서 돌풍을 일으키더니 온나라를 흔들었다.
차중락 (車重樂, 1941~1968.11.10)
요절가수 차중락은 잘생긴 얼굴, 미스터 코리아 2위로 선정될 만큼 건장한 몸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빼다박은 뛰어난 모창으로 60년대 말 젊은 여성들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8군에서는 '코리언 엘비스'라는 애칭으로 불렸을 만큼 외국과 한국의 정서를 적절하게 퓨전한 감정처리가 독특했던 저음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서울 신당동 토박이로 전문학교 마라톤선수 출신으로 토건업과 인쇄소를 경영했던 부친 차준달과 경기여고 단거리선수 출신인 모친 안소순의 8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 차중락과 함께 11명의 형제자매는 부모의 기질을 이어받아 예체능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첫째는 역도선수, 둘째는 경복고 밴드반장과 연대 야구부 주장을 맡았던 재주꾼이었고 넷째인 중광은 성균관대 야구부 투수이자 그룹 다크 헤어즈의 보컬이었다.
다섯째 중용은 양정고의 마라톤선수이자 그룹 가이스&돌스에서 탬버린을 치며 노래하는 직업가수로 형제들 중 차중락과 외모와 목소리가 가장 흡사해 대역으로도 활동했을 정도였다.
낭만적이고 유순한 성품의 셋째 차중락은 경복고시절 음악보다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진학한 한양대 연극영화과 신입생 시절에는 극장을 안방 드나들 듯했다.
영화마니아였던 그가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동화백화점(지금 신세계백화점) 4층의 음악감상실에서 접하게 된 팝과 재즈에 심취하면서부터이다. 좋아했던 가수는 폴 앵카와 엘비스 프레슬리. 가끔 무대에 올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를 때는 반응도 좋았다.
동경에서 팝가수로 활약하다 돌아와 미8군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던 작곡가 손목인의 큰 아들 후랭키 손은 차중락의 천재적인 엘비스 모창에 흠뻑 반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일본무대에 설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그의 권고로 차중락은 일본에서 노래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감독 수업을 받아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1963년 학교까지 중퇴하고 밀항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까지 겹쳐 방황했다.
63년 10월 사촌형인 차도균의 권유로 그룹 키보이스의 리드보컬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았다. 고무장화를 신고 엘비스의 모창을 멋들어지게 하며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인 시민회관 공연은 큰 화젯거리였을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때쯤 차중락은 수년간 사귀어오던 이대생 애인과 헤어지는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 신세기레코드 사장의 아들 강찬호 역시 실연의 아픔 속에 쓴 자작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신세기.66년11월10일>을 엘비스의 히트곡 를 편곡해 동병상련의 차중락에게 선사했다.
당시는 반주음악 완성 후 가수가 노래를 불러 녹음을 완성하던 때. 그룹 키보이스는 반주음악의 템포와 필링을 함께 표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드문 동시녹음을 시도했다. 대중들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계절의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져 엄청난 인기몰이를 한 차중락에게는 집요한 솔로 독립 유혹이 거셌다. 이때가 67년. 솔로 독립 후 차중락은 아침에 눈을 뜨면 차가운 콜라를 두병이나 마셔야 겨우 정신을 차릴 만큼 피로가 쌓이는 눈코뜰새없는 생활의 연속이였다.
당시 그의 라이벌은 신장염으로 사지를 넘나들면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배호로, 좋은 친구사이였던 차중락과 배호는 가요황금기를 이끌었던 쌍두마차였다. 그룹출신이었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매력의 트로트와 팝 창법으로 여성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배호는 기혼여성들의 사랑을, 차중락은 젊은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인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솔로 독립 후 최대 히트곡은 TBC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였던 <사랑의 종말-신세기. 1967년>이다. 이곡은 TBC 방송가요 대상 남자 신인가수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던 명곡으로 꼽힌다. 그러나 차중락 개인이 가장 좋아했던 곡은 <마음은 울면서>와 <철없는 아내>이었다. 잘생긴 외모, 건장한 체구, 달콤한 노래, 낭만적이며 호탕하고 부드러웠던 성품의 차중락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성 팬들의 관심사였다. 극성 여성 팬들의 접근이 스캔들로 비추어지고 미8군 시절부터 그를 사랑했던 외국인 여성 알렌의 존재도 정신적인 부담을 안겨주었다.
27세의 건장했던 젊은 가수도 인기라는 족쇄에는 무기력했다. 건강을 돌볼 수 없을 만큼 바쁜 연예생활과 잦은 스캔들에 시달리던 차중락은 결국 서울 동일극장 무대위에서 고열로 쓰러진 후 1968년 10월 11일 자신의 대표곡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발표 1주년 날 27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 그의 묘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공원묘지에 위치해 있다. 묘비의 글 <낙엽의 뜻>은 조병화 시인이 짓고, 그의 맏형 차중경이 썼다. 묘비의 아랫부분에는 당시의 유명 배우들과 가수들의 이름이 나와 있으며, 그 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 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이 상이 주어졌다. 낙엽상 제정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 그리고 1972년 제4회때는 김세환, 이수미가 수상하기도 했다.
짧은 가수생활동안 겨우 20여곡만을 남겼지만 가을과 낙엽의 계절을 대표하는 명곡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불멸의 생명력을 지닌 채 낙엽을 사랑하는 가을연인들을 위해 올해도 목청을 가다듬고 있다.
(출처 : 위키피디어)
영화줄거리
중락과 소영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소영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소영의 오빠는 그녀를 재일 교포이자 재벌 2세와 맺어 주려고 하자 소영은 집을 나와 버린다.
하지만 중락은 그녀와 결혼할 형편이 되지 못하고, 결국 소영은 어쩔 수 없이 재일교포와 결혼해 일본으로 떠난다.
소영과 헤어진 후 중락은 소영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들고 가수로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병이 되고, 중락의 소식을 들은 소영이 찾아 오지만, 중락은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가 죽은 뒤에 만들어진 영화로써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내
차중락의 목소리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 애절하게 흐른다...
'국내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들국화 - 겨울비 (0) | 2014.07.19 |
---|---|
[스크랩] 이광조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0) | 2014.07.19 |
[스크랩] 최병걸 - 난 정말 몰랐었네 (0) | 2014.07.19 |
[스크랩] 이용 - 잊혀진 계절 (0) | 2014.07.19 |
[스크랩] 최헌 - 가을비 우산 속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