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의 미소>
그녀의 웃음이 주는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방금 멋쩍은 일을 하다 들킨 사람 같기도 하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다시 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보내곤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고고한 아름다움을 휘감고 있는 여인이 작은 붓 끝에서 나올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신비스러운 여인이 싸구려 삼류화가의 그림 앞에 두 손을 정갈히 모으고 앉아 있을까요? 뒤편에 있는 배경 그림 좀 보십시오, 설마 이것을 실제 산이나 강이라고 그리지는 않았겠지요. 그녀가 일어나 자리를 옮긴다면 큰일입니다. 애당초 좌우 높이부터 제대로 맞지가 않는다는 것을 금방 들켜 버릴 겁니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쭉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왼쪽 땅이 푹 꺼져 있습니다. 오른 쪽 호수는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닙니다. 산들은 조선 시대 우리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베낀 것 같기도 한데, 솜씨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왼편 중간 쯤을 보십시오. 사실 저는 그녀의 팔꿈치에 불이 붙은 줄 알았습니다. 연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그렸거든요. 그것이 길이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왜 이렇게 멋진 아줌마가 싸구려 그림 앞에 앉아 있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것 아닐까요? 글쎄요....... 그에 대한 설명은 뒤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녀처럼 많은 소문과 억측을 몰고 다니는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이제 그 소문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기로 하겠습니다.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502년경 루브르 미술관 파리
모나리자는 피렌체에 살던 한 늙은이의 세 번째 부인인 리자 게라르디니의 초상입니다. 서양인들은 시집가면 남편의 성을 갖게 되므로 ‘라 지오콘다 La Giaconda'라고도 불립니다. ’몬나‘라는 말이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하니, 리자 부인님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 네 살이었습니다. 가엾게도 그녀는 그림이 다 그려지기도 전에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바사리라는 미술사학자는 1550년에 쓴 ‘미술가 열전’이라는 책에서, 무려 4년 동안이나 걸린 이 그림을 미완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도 미완성일 것이라는 추측을 부채질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성격이 좀 괴팍했는지, 맡은 그림을 몇 년이고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때려치우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나 귀족들이 뛰어난 솜씨를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그림을 맡기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전해지는 그의 그림이 적은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모나리자 역시 남편 지오콘도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로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죽은 후 15년이 지났어도 그의 작업실에 그대로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화가가 의뢰받은 그림을 완성한 뒤에도 그대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혹시 다빈치가 리사부인에게 무슨 연정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남색인 레오나르도는 여자에겐 관심도 없던 사람입니다. 해부학의 달인이라는 그가 여성의 신체 구조조차도 제대로 몰라서 엉터리로 그려놓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배경이 형편없다는 사실도 미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 줍니다. 눈썹이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미완성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 대한 것을 처음으로 기록한 ‘미술가 열전’에는 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붉은 입술과 촉촉한 눈동자, 가느다란 속눈썹, 관자놀이를 향해 서서히 사라지는 옅은 눈썹들....... 세부묘사가 너무나 정확해서 그녀의 맥박이 들리는 듯하다’ 분명히 눈썹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사리는 그림을 직접 보지도 않고 소문만으로 책을 썼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당시에는 눈썹을 미는 것이 유행이어서 눈썹을 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청나라로 귀화한 ‘카스틸리오네’라는 화가가 ‘당시에는 이마가 넓은 것이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눈썹을 뽑아 버리는 것이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라는 글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글도 선원들에게서 얻어 들은 이야기를 엉터리로 적어 놓은 것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유행이 사실이었다면,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다른 그림들에서 눈썹 없는 여인네가 한두 명 쯤은 더 나와야 옳습니다. 따라서 그런 유행이 있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못합니다. 이 모든 의문점은 모나리자의 보관 상태가 엉망이었던 데에서 출발합니다. 16,7세기의 유럽의 귀족들은 조각이나 그림 이외에 진기한 물건이나 화석, 동식물들을 한 방 가득 모아놓기를 즐겼습니다. 그곳을 ‘미술의 방’, ‘신기한 방’으로 이름 붙여 놓고는 사람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시초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관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멉니다. 그들은 미술의 방에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림을 빽빽이 걸었습니다. 걸 자리가 마땅치 않으면 그림을 잘라서 빈 곳에 맞췄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멋진 방이었지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그림을 잘라내는 정도의 일은 18세기 말까지도 흔히 행해졌다고 합니다. 모나리자 역시 이런 이유로 좌우 몇 센티를 잃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표면에 니스 칠을 두껍게 하였기 때문에, 여러 해를 두고 겉을 조금씩 닦아 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표면은 작은 그물망 모양으로 갈라지고 색깔이 바래서 그릴 당시의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자신의 모습이라는 주장이 신문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노년에 그린 자화상과 비교되면서, 그 얼굴이 레오나르도의 내면에 있는 여성성을 끄집어 낸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런 주장이 가능했던 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모나리자가 그의 얼굴이라면, ‘암굴의 성모’도 그의 얼굴이며 그가 그린 대부분의 여자가 모두 그의 얼굴이어야 옳습니다. 남녀노소 아무리 다른 사람을 그린다 할지라도, 같은 작가의 그림은 모두 닮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작가는 모두 자신을 닮게 그린다.’ 이것은 그림을 그려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있는 간단한 상식입니다.
<자화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모나리자의 대표적인 신화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이 초상을 그릴 때, 그 잔잔한 미소를 위하여 음악가와 어릿광대를 동원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유럽인에게 그녀의 미소는 명랑하고 활달하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대나 인종에 따라 즐거움의 기준이 변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겐 그녀의 미소가 쾌활하기는커녕,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어떤 의사들은 그녀의 미소가 안면 근육의 기형 때문이니, 무슨 병에 걸린 것 때문이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모두 미소가 그림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고 믿은 결과입니다. ‘미소의 수수께끼’에 빠져 들면 들수록, 그림의 진가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모나리자가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안겨주는 까닭은 레오나르도가 발명한 ‘스푸마토Sfumato’라는 기법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그를 르네상스의 영웅이며 세기의 미술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대화가로 만든 원동력입니다. 이전의 화가들은 물체의 외곽을 분명하게 그렸습니다. 그런 그림들은 깔끔하고 산뜻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있는, 마치 색을 입힌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겠지만, 그림이란 의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습니다. 모나리자의 얼굴 윤곽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안개에 쌓인 듯,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가듯, 부드럽게 번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연기 속으로 사라지 듯 부드럽게 번져가는 기법을 스푸마토라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산수화에 있는 여백을 닮았습니다. 모나리자의 신비는 바로 이 애매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애매함을 지워 버리면, 그녀의 미소는 졸지에 흔하디흔한 웃음으로 바뀌고 맙니다.
<비너스의 탄생-부분>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85년경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몇몇 평론가들은 엉터리 배경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설명을 붙입니다. 배경의 모순들이 그림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일체감을 주는 교묘하고도 완벽한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을 대담하게 이탈하여 인물의 신비감을 더했다는 것이지요. 서양인들은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인물화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풍경화는 인상파 시절에 와서야 제대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우리말에 고색창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퍽 오래되어 예스러움이 저절로 드러나 보임을 일컫는 말입니다. 옛 그림에서 나타나는 일체감은 대부분 세월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복원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나, 레오나르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최후의 만찬’을 생각해 보십시오. 복원된 화면의 뻘겋고 퍼런 촌스러운 색깔은, 그것을 따르던 많은 신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습니까? 복원을 당장 금지시켜야 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모나리자의 경우 표면의 손상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스푸마토의 효과를 더욱 확실하게 하여, 그림의 신비감을 더했습니다. 마치 팔이 잘린 비너스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듯 말입니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복원 되기 전의 모습 정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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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Rose Of Summer / Izzy
'Tis the last rose of summer, left blooming alone
All her lovely companions are faded and gone
No flow'r of her kindred, no rose-bud is nigh
To reflect back her blushes or give sigh for sigh
여름날 마지막 남은 장미 홀로 피어 남았네
사랑하는 동료들 모두 곁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근처에는 어떤 종류의 꽃도, 어떤 장미 봉오리도 없는데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쉬고 있네
I'll not leave thee, thou lone one!
To pine on the stem
Since the lovely are sleeping, Go sleep thou with them
Thus kindly I scatter Thy leaves o'er the bed
Where thy mates of the garden Lie scentless and dead
나는 그대 외로운 장미를 버리지 않겠으리라
버리면 그 꽃자루가 애타게 그리룹고
꽃들은 꽃잎을 오므리고 잠들었으니
그들과 함께 잠들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의 잎을 잠자리에 뿌려 놓으리라
같이 꽃피던 친구들은 향기가 사라지고 시들어 버렸네
So soon may I follow when friendship decay
And from life's shining circle the gems drop away
When true hearts lie wither'd and fond ones are flown
Oh, who would inhabit this bleak world alone
친구들이 썩어가고 나도 곧 뒤따르리라
사랑의 빛나는 품에서 보석들이 떨어져 버릴때
진실한 가슴들이 시들어 누웠고
좋은 친구들이 흘러가 버렸는데
아 누가 이 쓸쓸한 세상에 홀로 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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