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Flower(야생화) - Richard Clayderman
Richard Clayderman (born Philippe Pagès Dec.28,1953, Paris France)
그는 일찍부터 피아노를 만질 수 있었다. 피아노 선생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어린 나이일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훗날 그 아들이
성공을 이루는 기초를 다져 주었다. 6 살때 그는 모국어인 불어 보다 악보를
더 능숙하게 읽었다고한다. 12세에 파리 음악학교에 들어갔고 16 세에 수석 졸업하며
[Classical Pianist]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그는 놀랍게도 얼마 후 [Classical Training]에서
[Contemporary Music]으로 전환하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 좀 다른것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락 그룹을 만들었다 그 때가 정말 힘들고 고달픈 기간이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악기 구입에 급급하였고 샌드위치 먹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17세 나이에 위궤양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그 아들을
경제적으로 뒷바침해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반주자로
또는 [Session Musician]으로 돈을 벌어야했다. '나는 그 일이
참 즐거웠고 수입 또한 그 때로선 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Clasical Music]이
지금의 내가 될수 있었던 탄탄한 기반이었음에도 그것을 떠나게된 것이다'. 그의 재능은 곧
눈에 띄어 연주 요청이 쇄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인생은 1976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그것은 프랑스의 유명한 레코드 제작자이며
훗날 그의 동업자가 된 [Paul de Senneville]로 부터였다. [Paul]은
갓 태어난 딸 아드린느에게 바치는 발라드를 작곡하여
그것을 녹음할 연주자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23세의 [Philippe Pages]는 다른 20 명의 신청자와 함께
오디션을 치뤘고 결국 그 일을 따 내고는 그 스스로도 놀랐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그에게 반했다' [Paul]은 말한다.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그 부드러운
건반 터치는 참으로 매혹적이었고 잘 생긴 외모 또한 [Olivier Tousaint]와 내 맘에도 들었다.
우리는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Philippe Pages]란 이름은 [Richard Clayderman]으로
바뀐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그의 증조 할머니의 성에서 따왔다한다. 그의 싱글은 상승세를
타서 2천 2백만장이 38 개국에서 팔려 나갔다. 그것은 바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이었다.
'나는 그와 계약하면서 우리가 만 장만 팔 수 있어도 만족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디스코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발라드가 승산이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대 히트를 하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Oliver]는 말한다.
출처 :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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