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larmes de Jacqueline (자클린의 눈물)
자클린의 눈물 Les larmes de Jacqueline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s://t1.daumcdn.net/tistoryfile/fs9/31_24_24_36_blog90587_attach_0_0.jpg?original%3D%3D) 오펜바흐(Offenbach, Jacques 1819~80)
독일의 첼리스트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 (Thomas-Mifune, Werner 1941-)가
어느 날 발견했다고 하는 100여년 전의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Offenbach, Jacques 1819~80)의 미 발표곡...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는 어떻게 이곡을 발굴했을까?
오펜 바흐의 곡이 맞는 것일까?
오펜바흐...
독일 오펜바흐 암마인 태생 유대인..
본명은 야곱 레위(Jacob Levy Eberst)
나중 프랑스에 정착한 작곡가, 첼리스트......
유대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
슈만, 쇼팽, 바그너 등과 같은 시대의 사람....
오펜 바흐가 작곡했다는 매우 감성적인 이 곡에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는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직접 연주하는 데
자클린이라는 이름은 자크 오펜바흐의 여성형 이름이기도 했지만
토마스 베르너와 동시대의 비운의 여성 천재 첼리스트였던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1945-1987)를 연상케했는데...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가 이 곡을 발견하고 연주하여 발표한 것은
첼로계의 전설이었던
재클린 뒤 프레가 마지막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왜 그가 작곡하지도 않은 이 첼로곡에 그는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다중경화증에 시달리며
자신을 버린 남편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라고 물으며
살아가던 자클린 뒤 프레,
그의 남편이던 바렌보임에 대한 세간의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끝까지 웃음을 지키려고 했던
자클린 뒤 프레에게
동 시대를 살아갔던
같은 첼리스트로서 그녀에게 바치는 오마쥬였을까?
그들은 혹시 만난 적이 있었을까?
이 곡은 그래서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와
그가 발견한 이 미발표곡을 작곡한 1800년대 오펜바흐와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키작은 유대인 피아니스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42-)과
그 바렌보임과의 사랑에 빠져 유대교로 개종했던 여인,
드라마같은 삶을 살았던 자클린 뒤 프레와....
그리고 그래서, 그렇지만
만나지 못했던
모든
마음들이 담겨져 있다....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 (Thomas-Mifune, Werner 1941-)
<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 >
사랑과 만남과 이별
![](https://t1.daumcdn.net/cfile/cafe/14273E1D4A2C7C8F49)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1945-1987)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42- )
영국출신 첼리스트 아르헨티나 태생 유대인 피아니스트 지휘자
![엘가, 첼로 협주곡 op.85 - 자클린 뒤 프레](http://i3.search.daumcdn.net/simg/image/G01/thumb/0x200_85_hr/8q3Qr8eCdGs)
젊은 날의 바렌보임과 자클린
![](https://t1.daumcdn.net/planet/fs15/24_12_4_20_5e06S_3953043_32_3283.jpg?original&filename=3283.jpg)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C450F4A29E0BC4C)
![](http://www.cello.org/dupre/recelgar.jpg)
< 자클린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공연 엘가(Elgar) >
지휘 /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Conductor)
첼로 /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é (Cello)
*.Elgar - Cello Concerto 1st mov
*.Elgar - Cello Concerto 2nd mov /
*.Elgar - Cello Concerto 3rd mov
*.Elgar - Cello Concerto 4th mov (part 1)
*.Elgar - Cello Concerto 4th mov (part 2)
*.Elgar - Cello Concerto 4th mov (part 1)
*.Elgar - Cello Concerto 4th mov (part 2)
![](https://t1.daumcdn.net/cfile/blog/25431A3E541573E810)
베르너 미푸네 & 자클린 뒤 프레
부정확한 이야기들만 인터넷에 가득 돌아다니는 이 곡, 그래도 좀 정리해보자.
우선 이 곡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독일의 첼리스트 토마스 베르너 미푸네(Thomas-Mifune, Werner)이다.
미푸네라는 말이 일본어(三船)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푸네라는 이름은 동양을 좋아하는 그가 나중에 붙인 이름이거나 그의 환경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한국에는 1996년 2월 내한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바 있다. 한국 가요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박춘석)"을 그의 앨범에 수록한 바 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그 옛날 바흐가 시무하던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교회의 합창장이고, 어머니가 콘서트 피아니스트여서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 데트몰트 음악대학교에서 공부했고, 파리로 유학해서 앙드레 나바라를 사사했다.
그는 1972년에 첼로 앙상블 연주단인 필하르모니쉬엔 첼리스텐 인 쾰른(Philharmonischen Cellisten in Koln)을 창단했다. 현재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출생이며 현재 뮌헨에 본거지를 둔 바이에른 방송국(BR) 소속의 관현악단(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의 첼로연주자로 일하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C450F4A29E0BC4E)
**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 (1945-1987)
자클린 뒤 프레 Jacqueline Du Pre 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클린느는 세 살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여러 악기 소리 가운데, 특히 첼로 음을 지적하며 그 소리를 내고 싶다고 졸랐다고 한다. '제키'라는 애칭으로 불려진 그녀는 4살 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5살 때는 런던의 첼로 스쿨에 다녔고, 10살 때는 첼로의 명교수 윌리엄 프리스의 문하에 들어가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1961년 3월 1일, 런던의 <위그 모어 홀>에서 리사이틀을 갖고 데뷔하였는데 그때가 16살 때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파리에서 폴 토르텔리어에게, 모스크바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 각각 단기적으로 지도를 받게된다. 그리고, 이듬해 1962년에 첫 녹음을 한다.
뒤 프레의 명성이 드높아진 결정적인 계기는 1962년에 엘가(Elgar)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함으로서 만들어 졌다. 17세의 소녀가 과연 이 대작을 어떻게 표현할지 사람들은 비상한 관심으로 연주를 지켜보았다.
뒤 프레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이 협주곡을 연주했을 뿐 아니라 더할 나위 없는 서정성을 보태서 사람들을 감동 시켰다. 이후, 그녀의 음악인생에서 이 협주곡은 마치 운명처럼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뒤 프레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두 번이나 녹음했다. 이후 세계적인 첼리스트로서 각광을 받으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1966년 크리스마스, 파리에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다음해 유태교로 개종하고 6월 15일, 예루살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은 슈만과 클라라 이후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가의 결합으로 커다란 화제가 됐지만, 공교롭게도 이 역시 불행하고 애처로운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28세 되던 73년, '다중경화증'이라는 희귀한 병으로 연주을 중단한다.
1987년, 42년간의 생애를 마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