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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북선에 대해

mistyblue 2015. 11. 30. 20:04

 

‘꿈의 전함’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이지스함이 동해에 배치되어 주변국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지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딸인 아테네에게 준 방패인 ‘아이기스(Aegis)’에서 이름을 따왔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아이기스는 위력이 대단해 벼락을 맞아도 부서지지 않으며 방패를 흔들면 무시무시한 폭풍이 일어난다는 강력한 것이었다.

 

 
이 방패의 특성처럼 이지스함은 강력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현존하는 최강의 전함이라 불리 우고 있다.

기존 전함들이 하나의 레이더를 360도 회전시켜 목표물을 탐지했다면 이지스함은 ‘3차원 위상배열 레이더(Phased-Array Radar)’인 ‘스파이(SPY-1)’라는 최첨단 레이더가 동서남북으로 각각 배치 되어 있어 모든 방향의
목표물을 탐색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500km 이내의 목표물에 대한 정보수집도 가능하다. 또한 이지스함에는 슈퍼 컴퓨터가 탑재되어 있어 레이더가 획득한 정보를 기반으로 최대 20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추적하고 24개의 표적을 동시에 요격할 수 있다.

이지스함의 무장은 외형상 볼 때 전함의 앞 뒤에 미사일 요격 기관포 각각 하나씩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이 보유한 화력의 대부분은 미사일이며, 상판 하부 수직 발사대를 통해 발사된다. 이지스함은 이 수직발사대를 통해 1초에 한발씩 분당 약 122기의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적이 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SM-2 스탠다드(Standard)’미사일과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대함 미사일,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대잠 미사일 그리고 지상 공격을 위한 장거리 순항 미사일등 상황에 맞게 다양한 미사일을 발사 할 수 있다.

이런 레이더와 무장을 통해 이지스함은 ‘전방위 방어(모든 방향에서의 방어)’와 ‘전방위 공격(모든 방향으로의 공격)’이 가능한 바다 위의 거대한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98년 북한의 대포동1호 발사 실험에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일본의 이지스함이 미사일의 발사위치와 그 낙하지점까지 정확하게 계산을 해 그 위력을 증명한바 있다.

그런데 16세기 우리나라에서도 이지스함과 비슷한 전방위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세계 최강의 전함이 존재했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이 그것인데, 거북선은 당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다.

중세시대 해전의 양상은 ‘전선(戰船)’끼리 서로 포를 쏴 격침시키는 방식이 아닌 전선 위로 수병들이 올라가 육탄전을 통해 전선을 점령하는 방식이 주중을 이루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사용했던 전투방식은 이와 같은 육탄전이었는데,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통해 이런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전투 방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북선이 제작된 형태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어떤 형태로 전쟁에서 사용하고자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거북선은 기존 우리나라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의 선체 위로 나무 덮개를 덮어 선상 위의 병사나 노 젓는 노군들이 적들의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제작 되었다. 그리고 덮개 위에 날카로운 창이나 칼을 꽂아 왜적들이 선체로 올라와 덮개를 부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완벽한 방어가 된 상태에서 왜군들과 싸우게 되니 기존 전투 방식으로는 도저히 거북선을 이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거북선의 선체는 두께 12cm이상인 소나무(비중 0.73)로 만들어 삼나무(비중 0.41~0.47)로 만든 왜선과 충돌하면 대부분 왜선들이 부서지고 격침되었다. 이를 위해 노는 거북선 아래로 젓게 만들어 선체가 충돌할 때 노가 부러지는 것을 막았으며, 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앞부분 하단에는 쇠로 만든 귀면(鬼面)을 두어 왜선과 충돌시 그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거북선의 공격력도 동시대의 어떠한 함정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력했는데, 거북선의 선체에는 사방으로 총 85문의 포문을 설치해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향으로든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거북선에 탑재된 무기는 500m 이상 장거리 전선을 파괴할 수 있는 ‘천자포(天字砲)’와 350m의 사정거리를 가진 ‘지자포(地字砲)’, 300m 이내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현자포(玄字砲)’, ‘황자포(黃字砲)’가 있었으며, 가까운 근접전에 들어갔을 때는 화약이 달린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승자포(勝字砲)’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무기의 특성으로 거북선은 왜선이 어느 곳에 있던지 공격할 수 있었으며 특히, 밀집되어 있는 적함대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강력한 방어력과 85개의 포문에서 뿜어내는 공격력으로 세계 해전 사상 다시 찾아 볼 수 없는 눈부신 전과를 이뤄낸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우리나라는 다른 곳 보다 바다에서 오는 위협에 맞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2010년쯤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이지스함이 선보일 것이라 하니, 그때가 되면 500여년 전 바다를 호령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 그 기상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글 : 과학향기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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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거북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하여...

 

거북선에 대한 고증은 물론 복원까지 이미 끝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면서 글쓴이의 무지를 비판하는 류의 댓글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분명히 말해둡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현재 전시되고 있는 거북선들은 진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했던 거북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던

 

2층형에 용머리가 연기를 내뿜는 굴뚝형 구조가 아닌,

 

3층형에 용머리는 거북 등과 거의 수평으로 붙어 있는 포탑형 구조라는 것입니다.

 

<임진장초>에 기록되어 있는 거북선의 활약상을 보면 3층 역시 전투공간이었으며

 

근접전시에 3층의 쪽문(미닫이)과 총좌들을 통해서 각종의 투척용 화약무기와

 

총통을 쏘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용머리에서는 현자포를 쏘아 적의 대장과 대장의

 

지휘소인 층루를 표적으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거북선이 충돌전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선수 아랫 부분에 도깨비머리라고

 

알려진 충돌용 돌기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의 거북선들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이는 거북선의

 

기능을 심각하게 왜곡한 실수인 것입니다.

 

 

 

 

 

 

 

(2005년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서 소개된 17세기 거북선 그림-분명히 3층형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고,

용머리 역시 길게 솟아오른 모습이 아니라 거북등에 붙어 있는 모습이다. 거북등과 용머리가

붙어 있어야 포탑용으로서의 공간 확보가 가능하다.)

 

 

 

 

 

 

(<이순신과 임진왜란> 1권에서 스캔받은 거북선 그림이다. 충무공의 임진장초에 기술된

기록을 근거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서도 거북선은 분명히 3층형 구조에

용머리 또한 포탑형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용머리 아래에 튀어나와 있는

돌기가 충돌용 돌기라고 한다.*저작권 문제가 있다면 자삭하겠음.)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 모형. 2층형 구조이다보니 용머리는 포탑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가 없고 충돌용 돌기도 없어서 돌격용 전투선이라는 명칭이 대단히

낯설게 느껴진다. 충돌용 돌기가 없으면 거북선의 충돌전을 설명하는 키워드인

직충전-Ramming은 무의미한 용어가 된고 만다.)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 전쟁기념관 거북선과 마찬가지로 2층에 굴뚝용 용머리,

충돌용 돌기가 없는 이상한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해전장에서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허한 비약이 아닐까?)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있어서 거북선에 관한 더이상의 언급은 자제합니다.

 

그림과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거북선이 역사적 사실과 매우 괴리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합니다.

 

 

둘째, 충무공의 해전술이 일본을 거쳐 미국 등 서양의 근대 해군전술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이 학익진법 등이 일본, 영국, 미국 등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는

 

의견을 개진했고, 또 일부는 과대망상적 우월주의라는 표현으로 반박을 해놓았는데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일본이라는 민족은 절대 아무나 아무 것이나 칭송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충무공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1905년 5월에 치러진 러일해전의 결과는 그야말로 세계사에 일대 충격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시아 해군이 세계 최강의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해전의 결과가 가져온 이후의 역사가 너무도 엄청났다는 것인데..

 

윗글을 보신 분들이라면 모두가 다 알고 계실 것이므로 생략합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왜 도고 헤이하치로가 충무공을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당시는 해군력이 우선시 되던 때였고 열강들은 필살 해전법 개발에 전력투구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엔진 동력의 스큐류 추진 시대 이전의 범선시대와 노젓기시대의 해전법은

 

아무 쓸모가 없는 걸로 알았지만, 일본은 임진왜란 때의 해전사에서 모티브를 찾아냈습니다.

 

 

(러일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승장들. 가운데가 도고 제독. 맨 오른쪽이 도고의

선임참모 야키야마 사네유키 중좌. 야키야마는 일본 역사에 손꼽히는 천재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며, 일본의 여러 기록에 의하면 이 사람이 충무공 학익진법의 신비를 풀었다고 함.)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보면 일본 해군은 충무공의 해전법을 알아내기 위해 근 20년간

 

남해안 주요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훈련을 병행했고, <임진장초>, <난중일기> 등 임진왜란

 

해전 관련 고서들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도고의 해군은 충무공의 인품과 무훈에

 

감동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도고 함대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충무공의 학익진에서  丁자 진법을 응용해 냈고, 

 

후에 이것이 영국해군과 미국해군에 의해서 T자 진법으로 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학익진법은 막연히 적선을 학의 날개 모양으로 둘러싸서 싸우는 진법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화력의 제곱비 원리'라는 과학법칙이 숨어 있습니다.

 

화력 제곱비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2차대전 때 미 공군에서 활용한

 

란체스타 공군전술을 알아야 합니다.

 

미군 전투기 3대와 일본군 전투기 1대가 3 :1로 싸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투기 1대의 화력이 1이라면 일본기는 1*3=3 이라는 공격을 받습니다.

 

반면, 미군기들은 1이라는 공격을 3대가 나눠받기 때문에 1÷ 3=1/3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즉, 3 :1/3 = 9 :1이 되며, 3 :1은 2제곱이 되어 9 :1이 된다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해전에 적용해 봅시다.

 

24척의 아군 선단이 1척당 10문의 대포를 쐈다면 24척*10문=240 이 됩니다.

 

여기에 화력은 240*240=57600 으로 제곱이 된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 함대는 이러한 학익진의 일방적인 화력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자체 동력으로 군함을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고

 

일본 해군은 학익진법을 응용한 원진법(돌면서 표적을 공격- 이동형 丁자진, 이동형 학익진)으로

 

3열종대로 항진해 온 러시아 발틱함대를 여러차례 막아서서 초토화 시켰습니다.

 

 

 

 

(일본 해군의 집중 포화를 얻어맞고 최초로 침몰한 발틱함대 제2전함대 기함 오슬라비아호.)

 

 

종대형의 발틱함대는 학익진형을 펼친 일본함대에 포문의 수, 즉 화력 제곱의 원리에서 밀려

 

초전에 궤멸당하고 맙니다.

 

*3열종대의 발틱함대의 가동 포문: 3척*2문=6문

(선수쪽 대포 2~3문 탑재)

*학익진의 횡으로 늘어선 일본함대의 가동 포문:  10척*8문=80문

(옆쪽 대포 8~10문 탑재)

*화력 제곱비로 환산하면 발틱함대의 화력은 6*6=36  /  일본함대의 화력은 80*80=6400

 

**결론적으로 36 : 6400 의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도고의 해군은 경악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꼈던 겁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아무튼 충무공의 해전법은 근대 해전술에 적용될 정도로 정교한 과학법칙을 근간으로

 

고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백병전만으로 해전을 하던 시대에 무려 300년이나 앞서서

 

순수 함포전을 펼쳤으니, 당시의 왜군함대는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고, 거북선이라는

 

돌격선이 가세하면서 중세기 세계 최강의 함대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여기서 잠시... 충무공 해전의 단계별 전개과정을 요약하면(책 내용을 근거로 나름대로 정리함)

 

1단계-학익진 대형으로 포위, 또는 이동 차단

(이 단계에서 적함대는 "왜 저러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2단계-거북선단과 특공판옥선단 돌진

 

3단계-이와 동시에 학익진의 본대에서 적진을 향한 일시집중타(Salvo타) 개시

(원거리 사격이지만 적진은 밀집대형이므로 적중률 매우 높음)

 

4단계-거북선단의 적함대 기함과 대장을 표적으로 한  직충전 및 용머리 포탑 사격

(이 단계는 표적공격뿐 아니라 적함대의 돌격전을 사전에 차단하고 적함대의 발을 묶어놓는 단계.

이 과정에서 적의 대장이 죽거나 지휘부가 파괴되면 사실상 해전은 끝난다)

 

5단계-거북선단의 표적공격을 지원하는 후미의 특공판옥선단의 거북선 지원사격 및 적 기함과 지휘부를 향한 조준사격

 

6단계-본대+특공선단+거북선단에 의한 다단계적인 총력공격

 

7단계-해전의 종결                   

 

 

 

(6400의 화력을 덮어쓰고 초전에 전열에서 이탈해야 했던 기함 오슬라비아. 임진왜란때

왜군의 기함들은 이러한 전철을 밟으면서 차례로 최후를 맞았고, 해전은 초전에 승리로

마감되었다.)

 

 

작년, 러일해전 100주년을 맞은 일본은 온갖 미디어들이 러일해전 승리에 관한 다큐, 특집기획물...

 

엄청나게 쏟아냈습니다. 일본에 계셨던 분들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충무공과 조선함대의 역사는 없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것은 우리가 찾아야 하는 역사이며

 

그 역사는 우월적 자긍심의 역사가 아닌 뼈져린 반성과 역사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윗글을 읽고 저는 다음 몇대목의 글귀들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함대에 참패한 일본-
300년 후 일본 해군의 이순신 연구-
일본의 청일/러일해전에서의 승리-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학익진과 거북선은 그냥 지식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속에 충무공의 혼과 정신이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5천년 문화민족의 자긍심과 역량과 민족의 혼이
응집되어 완성된 정신력 자본의 총화라는 것입니다.
 

 

인용글 http://bbs2.worldn.media.daum.net/griffin/do/koreawave/read?bbsId=K005&articleId=29&pageIndex=8&searchKey=&searchValue=

출처 : 신들의 황혼
글쓴이 : 은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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