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스크랩] 에티엔 카르자(프랑스, Etienne Carjat 1828 ~ 1906)

mistyblue 2011. 9. 13. 02:26

 

            Bizet par Étienne Carjat 

에티엔 카르자(프랑스, Etienne Carjat 1828 ~ 1906)

 

1828년에 태어난 에티엔 카르자(Etienne Carjat)는 당대 최고의 초상사진가인 나다르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사진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필가이자 풍자만화가였다. 회화와 도안(圖案)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파리의 예술계에 친구들이 많았다. 1860년대부터 비록 사진을 늦게 시작했지만 카르자는 나다르의 사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사진들을 남겼다는 점에서 초상 사진가로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이다. 특히 그가 찍은 낭만주의 음악가 와 시인인 로시니(Rossni), 보들레르(Baudelaire), 뒤마(Dumas), 랭보(Rimbaud)등의 사진은 그들의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성격만큼이나 개성 있는 모습으로 잘 표현 되어있다. 배경을 단순한 톤으로 처리한 이들 사진은 조명을 조절하고 거기에 포즈와 촬영거리를 적절히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인물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배치했다. 말하자면, 카르자의 사진은 당시 사회적인 욕구로 번창하고 있던 대량 생산된 값싼 사진관 초상 사진과는 거리가 먼 최고급 초상사진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가 찍었던 사람들은 살아생전 프랑스에서 창작욕구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 최고수준을 가진 작가, 예술가, 음악가, 그리고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들의 초상사진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징표로써 가장 대표하는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다. 또한  살아생전 그들을 보지 못했던 우리들로써는 그들의 신화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경이로운 감정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찍은 인물은 아우라(aura)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우라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말한, 사진이 탄생 이전에 미술작품에 깃 들어 있던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오리지날 원본의 숭배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벤야민이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엮어진, 그것에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거리가 느껴지는 불가사의한 환영"이라고 설명한 아우라개념은 사진과 영화라는 복제기술이 발명되면서 주술적이고 숭배적인 가치를 전시적인 효과로 변화 시키는 혁명적인 사건으로 예술의 민주화를 가져 올 것으로 예측한다 

 Bibliothèque Arthur Rimbaud 

                Victor Hugo

 그러나 현대 미술에 와서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거대자본주의 미술 시장에서 아우라는 일종의 상품논리의 전략적인 장치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이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사진의 미학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다양한 미술담론을 생산하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카르자의 초상사진에 깊게 침투되어 있는 아우라는 자본주의 미술 시장논리에서 만들어진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진속의 인물들이 지금 현존하지 않은 분명 죽은사자들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 우리들 눈 앞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현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존의 이상함은 역사성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와 신화를 만들어왔다. 죽어있지만, 죽음의 냄새를 지워버리고 살아있는 생생함으로 방부제 처리하는 사진의 존재론적 흔적, 위대한 문학가들의 독특한 분위기를 벤야민은 아우라의 개념을 다소 정치적인 논리로 해석했지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그의 특유의 존재론적 사유로 초기의 구조주의 기호학에서 벗어나 푼쿠튬(Puncutum)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아우라의 개념을 새롭게 변주 시킨다. 바르트가 그렇게 감탄했던 이 효과를 그는 다음과 같이 논했다. "사진이 영원한 것으로 복제해내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한 번 일어났던 바로 그것이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결코 반복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반복시킨다."

Baudelaire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진은 죽음의 상징(memento mori)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또는 다른 대상의 죽음, 정확하게 한 순간을 잘라내고 그것을 냉동 시킴으로써, 모든 사진은 시간의 덧없음을 냉혹하게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이미지는 드러난 현실을 어느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 이러한 질문은 예술가, 철학자, 그리고 비평가들에 의해 여러 각도로 제기되어왔다.

보들레르(Baudelaire)는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서 비판한 당시의 대표적인 문화비평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진가들은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좋은 사진이란 얼굴의 사마귀, 주름살, 흉터 등 세세한 것까지 잘 나타나 있고, 심지어 강조하기까지 한다. 눈에 거슬리는 이미지일수록 더 열광한다." 보들레르가 보기에 사진은 너무 지나치게 사실을 속속들이 묘사하기 때문에 인간의 영감이라든지 상상력의 세계에 접근하기 곤란한 매체로 보고 있었다. 철저한 낭만주의의 신봉자였던 보들레르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Camille Claudel, 1886

보들레르의 이러한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카르자는 보들레르의 초상사진을 찍을 때 회화에서 즐겨 사용했던 스푸마토(sfumato)기법을 응용해서 인물의 주변부에 초점이 흐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보들레르가 카르자가 찍어준 자신의 초상사진에 만족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카르자의 예술적인 미적기준도 낭만주의 사고에 젖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카르자는 사진이 단순히 거울의 효과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진의 사실적인 측면이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묘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감정을 초점 흐린 상태의 묘사 방법으로 실현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는 카르자 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사진 예술가들이 연 초점 효과의 사진을 선호한 것만 보아도,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표현 기법에 사진가들이 얼마나 열광적으로 매료되어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당대의 다른 시각예술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모방하는 방법으로서 사진은 바로 이러한 낭만주의 시기에 적절히 부합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술가로서의 사진가는 적어도 현실의 대상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별로 원치 않았다. 낭만주의 예술관에서 예술작품의 목적은 대상의 표면적인 묘사가 아니라 실제대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질들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다소 외관의 형상을 닮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 내면의 본질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표현 할 수만 있으면 예술성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43년에 출판된 그의 책<기독교의 본질Das Wasen des Christentums>에서 오늘날  이미지 중심의 정보화 사회를 예견하듯 "앞으로의 사회는 실물보다는 그림을, 원본보다는 복사를, 실제보다는 재현된 것을, 존재보다는 외관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전달 받고 있는 것 그것은 언제나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에 그 비밀스러운 사실이 누설되면, 사진은 더 이상 우리를 꿈꾸게 하지 않는다.

 

 

출처 : 방문해주신 모든분께 행복을 드려요!!~~
글쓴이 : 산바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