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Charles
'왓 아이 세이(What'd I Say)'는 많은 사람들이 '레이 찰스'의 대표곡으로 기억하는 1959년에 히트한 곡이다. 이 노래는 최초로 관능적인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레이 찰스가 노래를 리드하면 여성 백코러스들이 교태스러운 허밍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진행했고, 레이 찰스가 전자 피아노 연주를 시도한 곡이기도 하다. 당시 이 곡은 방학 시즌을 맞이해 자유로운 기분에 젖어 있는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지독히도! 관능적인 음악성 때문에 라디오에서는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2003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는 미국 음악 레코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노래 중의 하나로 선정하여 보관 중이다.
영화 <레이>에서!
'레이 찰스'가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던 중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즉흥적으로 창작된 곡으로 알려져있으며, 영화 속에서 당시의 열띤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장면을 통해 경쾌하고 열정적인 공연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레이 찰스에 대한 음악인생을 이야기해보자.
미국음악 역사상 ‘소울(Soul)’ 음악의 탄생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젊은 신예였던 레이 찰스의 노래로 아틀란틱 레코드사에서 제작한 싱글 음반 ‘I’ve Got a Woman’이 ‘소울’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가스펠’에 ‘블루스’를 접목하여 섹시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부드럽고 경쾌한 곡으로 탄생시켰는데, 가스펠곡을 변형시켜 가요 가사를 붙이는 것은 당시에 금기시되었던 것으로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곡은 듣는 이들에게 심장이 뛰는 듯한 느낌을 주며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곡이었기 때문에,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반응을 일으켰다. 이러한 독특한 음악은 당시 젊은이들이 처음 접하는 것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미국 문화가 창조되는 시기로 이어져 ‘로큰롤’이라는 음악의 지평선을 열었다.
그 탁월한 음악성만큼이나 전설적인 인물인 레이 찰스는 ‘소울의 천재(The Genius of Soul)’라는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울의 천재로 알려진 레이 찰스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전세계인들은 미국의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인 재즈에서 컨트리 음악 모두를 총망라하면서 새롭게 재창조한 레이 찰스의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소울의 천재’라는 칭호를 얻을 때까지 그가 걸어왔던 힘든 여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레이 찰스는 뛰어난 음악가였을 뿐 아니라 사업적인 수완도 있어서 자신의 음악과 앨범에 대한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이 주체가 되어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업 실력을 발휘했다. 이는 당시 어떤 음악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후 모든 음악가들이 그 전철을 밟도록 길을 열어 준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
레이 찰스는 동적이면서도 정적이고, 시골사람 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면이 있는가 하면 대도시 사람의 교활함을 지닌 복잡미묘한 성격이었으며, 이분법적이면서도 모순된 캐릭터를 지닌 독특한 미국인이었다. 그는 사람들간의 차별이나 편견,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장애도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장르를 초월해 미국의 원조 음악 장르들을 폭 넓게 아우를 수 있었으며, 더욱 역동성과 감흥을 주는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기위해 가스펠과 컨트리, R&B 그리고 재즈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음악 장르간의 경계를 파괴함으로써, 그의 음악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춤을 추면서도 가슴을 시린 느낌을 갖게 하며, 깊은 외로움에 빠지게 하면서도 즐거운 감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또는 이 모든 감정들을 동시에 모두 느낄 수 있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레이 찰스, 그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 였다. 많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시련으로 가득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최고의 명예, 세상의 모든 행복과 기쁨을 누리면서 이 모든 고난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최대의 공황 시기였던 1930년 9월 23일 조지아 주 알바니의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레이 찰스 로빈슨(Ray Charles Robinson)은 어릴적부터 음악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침례교회에서 주로 불리워지던 화답식 찬송법을 접했으며, 다섯 살도 되기 전에 동네 블루스 음악가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이 때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동생 조지가 물통 속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만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이 사건은 평생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그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 레이 찰스는 이 사건을 목격한 지 1년 뒤부터 녹내장을 앓기 시작하면서 점점 시력을 잃게 된다. 결국 7살 때 완전히 시력을 잃은 레이 찰스는 강인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교육과 훈련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운다. 이로써 미세한 소리의 움직임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발달한 청각을 지니게 되고, 지팡이나 안내견 없이 오직 자신의 예민한 청력을 이용해 세상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삶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레이 찰스에 인생을 통해 음악은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책
레이 찰스의 어머니는 그에게 좀 더 낳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집에서 160마일이나 떨어진 세인트 어거스틴(St. Augustine)에 있는 맹인 주립학교로 유학을 보낸다. 그는 이 학교에서 악보읽는 법과 몇 가지 악기를 다루는 법을 익히면서, 동네 사람들이 즐기는 재즈, 스윙, 가스펠, 블루스 그리고 컨트리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이렇게 맹인학교에 적응하는 동안 그를 이 세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가 항상 그에게 말했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일어나라’는 강한 메시지에 따라 그는 곧바로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청소년 시절에 플로리다 북부의 클럽과 연회장, 그리고 라이브 바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접하고, ‘Country & Western Band’, ‘The Florida Playboys’와 함께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거친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었지만 그는 잘 적응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17세가 되던 해인 1948년 3월, 당시에 유행하던 냇킹 콜과 찰스 브라운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자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시애틀행 그레이하운드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노래하면서 ‘스윙타임 레코드사(Swingtime Records)’의 ‘잭 로우더데일’과 레코드 제작 계약을 맺는 기회를 얻으면서 성공으로 이르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1949년 그는 스윙타임 레코드사에서 첫번째 싱글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다. 잭 로우더데일은 레이 찰스를 R&B 기타리스트인 ‘로웰 풀슨’의 순회공연에 동행하게 했다. 하지만 레이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기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한 혼자만의 노력은 아주 외롭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는 풀슨 밴드에서도 재능을 인정 받고 있었지만 순회공연으로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창조의 고통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헤로인’이라는 해로운 벗을 만나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50년 새로운 목소리를 찾고 있던 ‘아멧 에트건’과 ‘제리 웩슬러’가 운영하는 ‘아틀란틱 레코드사(Atlantic Records)’와 계약을 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전설적인 ‘루스 브라운’의 ‘Miss Rhythm’을 연주하면서 다시 순회공연을 시작한다. 이어 레이 찰스는 교회 성가인 가스펠을 대중음악인 블루스와 함께 접목시켜 신성모독이라는 교회의 비난을 받으면서 당시에 대단한 논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대중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지만 당시 라디오 방송이 금지되는 시련을 겪었다. 논란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음악의 힘은 실로 막강해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감흥이 일어났다
1960년은 레이 찰스는 음악 인생의 황금기이자 인생에서 큰 혼돈을 겪은 시간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여자 문제로 가정생활도 흔들리기 시작했고, 1965년에는 몬트리올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중 약물소지로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계기로 그는 약물 중독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음악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20년간 의지해온 마약을 끊기위해 자발적으로 재활원에 들어간다. 레이 찰스에게 있어서 음악은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약물 중독을 이기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이후에 마약에 손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약물 중독을 완전히 극복한 후 그는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1970년에는 불후의 명작 ‘America the Beautiful’을 멋지게 다시 편곡해 그의 조국에 강렬하고 인상적인 애국가를 선사하기도 했다.
평생 동안 레이 찰스는 12개의 그래미 상을 받았으며 1988년에는 그래미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베스트 셀링 차트에 76개의 싱글 앨범을 올려 놓았고, 75개가 넘는 앨범들을 발매했다. 또한 Kennedy Center Honor로부터 예술 부문의 국민훈장을 받았으며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간이 나빠지면서 활동 범위가 줄어드는 2003년 전까지는 1년에 200회에 이르는 순회공연을 진행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했다. 과연 천재는 불멸의 존재인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2개월 만에 발매된 앨범
인생에 있어 모든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한 레이 찰스는 평생동안 흑인 어린아이들의 교육과 예술문화를 위해서라는 소명감을 갖고 2천만불이 넘는 기금을 모금했다. 그가 이룬 모든 업적 중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다. 컨트리, 가스펠, 재즈, 소울 그리고 로큰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우르며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설적인 음악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거의 모든 노래마다 레이 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레이 찰스’는 작년 2004년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전세계 음악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레이찰스의 대표곡
♬ DROWN IN MY OWN TEARS ♪
1956년 최고의 히트 노래로, 원래 가수 룰라 리드를 위하여 헨리 글로버가 작곡한 음악이다. 이 노래는 영혼을 뒤흔드는 다운비트의 형식으로 가슴을 쥐어 짜는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발라드의 고전이다.
♬ WHAT’D I SAY ♪
많은 사람들이 ‘레이 찰스’의 대표곡으로 기억하는 1959년 히트한 곡이다. 이 노래는 최초로 관능적인 스타일을 시도했는데 레이 찰스가 노래를 리드하면 여성 백코러스들이 교태스러운 허밍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진행했고, 레이 찰스가 전자 피아노 연주를 시도한 곡이기도 하다. 당시 관능적인 음악성 때문에 라디오에서는 방송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2003년 미국 국회 도서관에서는 미국 음악 레코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노래중의 하나로 선정하여 보관중이다.
♬ GEORGIA ON MY MIND ♪
그의 전체 작품 중 팝 레코드 부문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노래이며, 후에 조지아 주의 공식 주 노래로 선정되었다. 이 곡은 그동안 ‘레이렛’이라고 불리우는 달콤하고 순수한 음색의 여성 백보컬들 대신, 섹시한 합창단과 관현악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레이 찰스의 새로운 연출력을 보여 주었다.
♬ HIT THE ROAD JACK ♪
1961년 인기 차트에 1위를 차지하면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노래로 그의 백 코러스들 중 ‘레이’에게 제발 떠나달라는 가사를 애원하듯 노래했던 마지 헨드릭스를 세상에 알리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 UNCHAIN MY HEART ♪
짝사랑하는 마음을 알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남자의 마음을 노래한 펑키풍의 정열적인 노래. 레이 찰스의 풍부한 감정이 살아있으며, 라틴리듬과 3명의 여성 백코러스의 완벽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곡이다.
♬ I CAN’T STOP LOVING YOU ♪
전통 컨트리 음악에 레이 찰스만의 정열적인 음색을 가미해 새롭게 창조한 곡. 10주 연속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오르면서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1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신성한 가스펠에 R&B를 혼합하여 음악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소울(Soul)’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결정지은 노래이다. 1955년 R&B 인기 차트 1위에 올라갔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더불어 신성한 가스펠의 리듬을 이용해 성적 욕망에 대한 노래를 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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