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장갑차 독자 개발한 한화, 세계 10대 업체 도약의 꿈
●중소업체 다산기공도 해외 국가에 소총 납품
6월 9일,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방산 전문 매체 제인스(Jane's)의 메인뉴스에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다.
바로 국내 기업인 한화그룹이다.
제인스는 한화그룹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룹 산하 4개 방위산업 계열사가 전년 대비 10% 증가한
41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보고했으며, 방산 분야의 매출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뉴스에서 한화는 2030년까지 방위산업 부문의 총 매출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늘려
세계 10대 방위산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오는 2022년까지 방산 및
항공우주 사업 개발에 4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야말로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무서운 질주를 예고한 셈이다.
재계 서열 7위 대기업 한화그룹
우리나라 재계 서열 7위의 대기업인 한화그룹은 1952년 김종희 회장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치로
설립한 한국화약 주식회사가 뿌리다. (한화그룹 사옥(왼쪽), 김승연 한화 회장) [뉴시스, 뉴스1]
현재 우리나라 재계 서열 7위의 대기업인 한화그룹은 1952년 김종희 회장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기치로 설립한
한국화약 주식회사가 뿌리다.
국방이나 방위산업 분야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한화‘하면 일단 프로야구단인 '한화이글스‘를 떠올릴 것이고,
한화가 지은 아파트 브랜드나 호텔, 리조트, 또는 보험 상품을 주로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한화는 시작이 화약이었고, 현재도 방산 분야를 대단히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는 방산기업이다.
전문가들이 한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 기업이 기존 한국 방위산업의 성격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한국 방위산업은 철저히 '한국군 종속형‘이었다.
군에서 어떤 무기체계에 대한 국산화 또는 신규 개발 소요를 제기하면,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도해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방산업체는 체계 개발 단계에서 일부 역할을 분담하거나 ADD가 개발한 무기를
양산해 납품하는 정도의 역할만 담당했다.
이른바 'K 시리즈‘는 대부분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국군 제식소총인 K2는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하고 S&T모티브가 생산 중이며, 주력 전차인 K1 역시
크라이슬러의 설계를 국방과학연구소가 완성해 현대로템이 생산했다.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급도 국방과학연구소와 해군 조함단이 중심이 돼 개발한 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나눠서 건조했고, 공군의 T-50도 ADD가 개발을 주도하고 KAI가 생산했다.
군이 무기체계 소요를 확정하면 정부 기관이 주도해 무기를 개발하고, 기업이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구조는
어찌 보면 매우 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소요‘는 오로지 낙후된 북한군의 위협만 상정해 작전요구성능을 설정하는 '한국군‘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개발‘은 변화에 둔감한 공무원 집단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른바 '한국형 명품 무기'들은 등장 시점부터 세계적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다.
이 때문에 방위산업 구조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개혁해 '한국의 록히드마틴', '한국의 보잉' 같은
글로벌 방산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이러한 개혁은 한국적 상황에서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위산업은 돈 안 되는 사업?
한화가 만든 레드백 장갑차. [한화디펜스 제공]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모든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하는 방위산업은 절대 큰 이문을 남길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관계 법령에 의해 모든 군납품은 완성품은 물론 부품 하나하나까지 공급 가격이 정해져 있고,
얼마나 마진을 남겨야 하는지도 정부가 상한선을 정해준다.
여기서 한 푼이라도 더 받으면 방산비리로 찍혀 수사당국에 의해 먼지가 나도록 털리는 것이 한국이다.
즉, 기존 한국 방위산업 구조에서는 기업이 겨우 유지만 될 정도로만 이익을 보게 돼 있다.
큰 이익이 없는데도 기업들이 방위산업에 뛰어든 이유는 자금 융통 때문이다.
정부를 상대로 한 사업은 일단 돈 떼일 일이 없다.
계약금부터 중도금, 잔금이 정해진 시일에 정확하게 입금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금 융통 목적으로 방위산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한국에서 방위산업은 돈 안 되는 사업이다.
남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연구개발에 투자할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무기체계라는 것은 그 개발비가 일반적인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개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자체 비용으로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것을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화는 지난 2014년, 삼성그룹과 무려 2조원에 달하는 통 큰 '빅딜‘로 삼성의 4개 방산부문 계열사를 인수했다.
이 때 인수한 계열사는 자주포와 장갑차를 만드는 삼성테크윈, 레이더와 전자장비를 만드는 삼성탈레스 등이었는데,
이러한 결정은 전적으로 선대 회장의 사업보국 유지를 받들어 방산 분문의 위상을 제고하려는 그룹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화는 이 빅딜 이후로 정말 무서울 정도로 사세를 확장하고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주력 상품인 K9 자주포의 판촉에 총력을 기울여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인도에 완제품을 판매했고,
폴란드에는 차체를 수출했다.
현재 이집트와 루마니아, 사우디아라비아 등과도 K9 수출과 관련된 협의가 진행 중이며, 한때 도입 사업을 취소했던
호주도 K9 도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장갑차 분야는 그야말로 '폭주‘ 중이다.
한화는 K21 장갑차를 기반으로 이것이 한국산 무기가 맞나 싶을 정도의 대대적인 개조를 거쳐 호주 수출용
AS21 레드백 장갑차를 만들어 세계 최정상급 기갑장비 메이커인 독일의 라인메탈 제품과 용호상박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K21을 개조한 경전차 버전인 K21-105는 필리핀 육군의 차기 주력 전차 최종 후보로 선정돼
수출 성사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완전히 새로 설계한 모듈 구조 차륜형 장갑차인 '타이곤‘ 역시
주요 개도국에서 상당한 호응을 보이며 활발한 수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한국군의 주요 전투함 전투체계와 전자장비를 개발해 납품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제공]
한화의 또다른 방산 계열사인 한화시스템 역시 한국군의 주요 전투함 전투체계와 전자장비를 개발해 납품 중이며,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 해군 함정 개량 사업이라는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K9 자주포의 북유럽 시장 석권, AS21 장갑차의 센세이션과 같은 현상은 자금 동원력에서 여유 있는 대기업이
R&D와 홍보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하며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특히 AS21의 사례는 그동안 세계적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급했던 한국산 무기들이 어떻게 세계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국 방위산업의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AK 소총의 현대화 버전
금속 절삭으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던 다산기공은 수년간 총기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며 방산 분야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산기공 제공]
그러나 한화의 사례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내 방위산업체 가운데 대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회사는 한화를 비롯해 주요 조선소와 KAI,
일부 자동차 메이커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기업 규모와 자금 동원력에서 한계가 있는 작은 기업들은 어떤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
4월 6일, 핀란드 국방부가 놀라운 발표를 했다.
바로 예비군용 개인화기를 한국에서 수입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놀랍게도 핀란드에 총기를 대량 판매하기로 한 업체는
한국의 유명 총기 메이커인 S&T 모티브가 아닌 생소한 회사, '다산기공‘이었다.
다산기공은 전북 완주에 소재한 중소기업으로 500억 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 중인 업체다.
주로 금속 절삭 등을 통해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는데, 최근 수년간 총기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며
방산 분야 비중을 키워가는 업체다.
이 회사가 핀란드군에 납품한 총기는 MPK라는 소총이다.
놀랍게도 이 총기는 한국군이 사용하지 않는 AK 소총의 현대화 버전이다.
한국군에 납품 실적이 없는데 핀란드 시장을 뚫은 것이다.
핀란드 국방부는 정확한 도입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상당한 수량의 총기가 올 7월부터 예비군용으로
납품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산기공이 생산한 소총들. CAR816(왼쪽). DSAR15. [다산기공]
다산기공이 생산한 소총들. DSR90(왼쪽). DSMG556. [다산기공]
그런데 다산기공이라는 이 회사, 상당히 재미있는 회사다.
AK의 현대화 버전은 물론 HK416의 UAE 버전인 CAR816을 생산해 대량 납품한 실적이 있고, 이를 기반으로
DSAR15라는 독자 모델도 출시했다.
호주군 제식 소총인 AUG를 현대화한 F90의 개량형인 DSR90이나, 미국 ARES-16 경기관총을 라이센스한
DSMG556이라는 모델도 판매 중이다.
심지어 콜트 45구경 모델의 커스텀 버전과 다양한 구경의 기관단총까지 생산 중이다.
매출액 500억 원도 안 되는 작은 회사가 세계적인 총기 메이커 뺨치는 수준의 제품 라인업을 갖게 된 것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 즉 OEM 덕분이다. 금속 가공 전문 업체였던 다산기공은
세계 유명 총기 메이커의 총기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며 총기 구조와 부품 제조 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그 모델들을 조금씩 개량하며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이 회사는 완성품 총기를 개발해 세계 각국의 군납 사업에도 입찰하고, 미국과 유럽의 민수 시장의 문도 두드렸다.
비록 UAE CAR816 납품 이후 대규모 수주는 없었지만, 민수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고를 올리며 여기서 올린 수익의
상당수를 다시 제품 개발에 투자해 현재는 권총부터 산탄총, 기관단총과 돌격소총, 심지어 저격총 모델까지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 기관단총 모델인 DSAR-15PC는 '공룡' S&T 모티브의 STC-16을 제치고 우리 군 특전사의 차기 기관단총
우선협상대상 모델로 선정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가 이런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서 적지 않은 호평을 받는 지금의 위치에 올라
최근 특전사용 기관단총 납품 사업을 따내기까지 독자 개발한 총기를 한국군에 대량 납품한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산기공이 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었지만, 한국군의 총기 납품 업체로 지정된 것은 2016년의 일이었다.
즉, 이 회사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순전히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수출 시장을 개척해 왔다는
것이다.
중소 방산업체들의 귀감
다산기공은 콜트 45구경 모델의 커스텀 버전과 다양한 구경의 기관단총까지 생산 중이다. [다산기공]
이러한 사업 확장 전략은 과거 이스라엘 방위산업의 발전 전략과 유사하다.
건국 초기 인프라와 자본이 극도로 취약했던 이스라엘은 외국의 중고 무기를 가져와 이를 개조하면서 무기체계의
구조와 부품 생산 기반을 닦았다.
이스라엘의 무기 개발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무기를 기반으로 삼아 자신들의 풍부한 실전 경험을 녹여 넣는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은 현재 세계적인 방산 대국으로 성장했다.
해외 업체의 완성품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이 과정에서 작은 부품 하나하나를 자신의 제품으로
재창조해내는 방식의 사업 확장은 한화그룹의 사례와 같이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중소 방산업체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회사의 사례는 한국군이라는 협소한 시장에 의존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므로 많은 중소 방산업체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회사들의 활약과 발전으로 한국의 방위산업은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체들이 '한국의 록히드마틴', '한국의 IAI' 같은 세계적인 방산기업으로 도약할 날을 기대해 본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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