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SLBM 탑재 잠수함 격멸에 가장 유용"
[서울신문]바다 깊이 잠항 가능해 적 탐지 회피
디젤 잠수함과 소음 비슷한데 ‘고속기동’
원자로는 공간 33%만 차지…공격력 강화
해외수출 영향 ‘잠수함 강국’ 타이틀에 날개
2016년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핵잠수함 오하이오함. 길이 170m, 너비 12.8m 규모로 미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가운데
가장 크다. 1600㎞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미사일 154기를 탑재하고 특수전 대원을 태우고
수중침투하는 첨단장비도 보유하고 있다.
2016.7.13 연합뉴스
핵연료를 사용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이른바 ‘핵잠수함’ 도입 여론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대응하기 위해 건조할 예정인 3600t급과
4000t급 차세대 잠수함을 핵잠수함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겁니다.
군은 지난달 핵잠수함 개발 가능성에 대해 “현 단계에선 말하기 적절치 않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말하겠다”고
다소 아리송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7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고 언급해 여론을 들썩인 터라
국민 관심은 더욱 집중됐습니다.
‘핵잠수함 개발이 가시화됐다’는 보도도 쏟아졌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반대여론도 있습니다. 엔진을 끌 수 없어 소음이 큰 데다 굳이 덩치가 큰 핵잠수함을
한반도 해역에서 운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소음이 큰 중국 ‘상급’ 핵잠수함이 2018년 일본 해상자위대에 탐지돼 이틀간 쫓기다 부상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가 핵잠수함을 도입하면 북한은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갈등만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우리도 비대칭 수단 ‘핵잠수함’ 갖춰야”
해군의 입장은 어떨까.
심승섭 전 해군참모총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핵잠수함은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해 북한 SLBM 탑재 잠수함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격멸하는데 가장 유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밝혔습니다.
군 전문가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북한 SLBM 도발 대응 간담회’에서 “우리도 다른 비대칭 수단인 핵잠수함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표면적 이유만 언론에 종종 나올 뿐 우리가 도대체 왜 핵잠수함을 도입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군이 왜 핵잠수함을 원하는지, 그리고 핵잠수함이 왜 전략적으로 유용한 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방위사업청 차세대잠수함사업단 전투체계 개발담당인 장준섭 해군 소령은 올해 한국해양전략연구소 학회지에
‘전쟁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잠수함의 역할 변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2017년 제주 해군기지에서 공개된 ‘209급 잠수함’ 승조원 근무 모습.
해군 제공
보고서에 따르면 잠수함이 적 잠수함을 잘 탐지하고, 반대로 적 함정에는 탐지되지 않으려면
바다 깊이 내려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온이 감소하고 밀도는 높아져 음파가 아래로 굴절되는 특징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잠수함이 바다 깊이 내려가면 음파가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탐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잠항능력이 뛰어난 핵잠수함의 유용성이 부각됩니다.
최신 디젤 잠수함은 AIP(공기불요추진) 체계를 갖춰 수주일 동안 잠항할 수 있지만,
‘스노클’(해상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배기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심한 소음이 발생하고 적에게 탐지될 위험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또 AIP로 잠항한다 해도 축전지를 사용해야 해 고속기동은 불가능합니다.
연료를 모두 소모하면 육상에서 재보급 받아야 합니다.
반면 핵잠수함은 물과 공기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어 스노클이 필요없고,
원자로로 강력한 추진력을 갖춰 상시적인 수중 고속기동이 가능합니다.
●“적에 탐지되지 않고 수중 고속기동 가능”
지난해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3500t 규모 잠수함을 기준으로
디젤 잠수함은 엔진, 발전기, 축전지가 차지하는 공간이 50%나 됩니다.
반면 핵잠수함은 33%에 그쳐 공간활용성이 매우 높습니다.
같은 규모라도 핵잠수함에 무기와 식품 등을 적재할 공간이 훨씬 더 크다는 겁니다.
핵잠수함은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디젤 잠수함보다 큰 규모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16개의 수직발사관을 탑재하고, 6~8개의 어뢰 발사관을 갖추는 등 디젤 잠수함보다
훨씬 뛰어난 공격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수전 임무’ 지원도 가능합니다.
6명이 탑승해 ‘수중택시’로 불리는 ‘수송용 추진기’(SDV)를 장착하면 됩니다.
2017년 부산에 입항한 미 핵잠수함 미시간호 상단에 네이비 실 요원들이 사용하는 침투용 소형 잠수정(SDV)을
보관하는 드라이덱셀터(DSS)로 추정되는 설치물(빨간 원)이 놓여있다.
오른쪽은 미 해군 홈페이지에 공개된 네이비 실 요원들이 잠수정을 타고 훈련하는 모습.
2017.10.19 연합뉴스
많은 분들이 꺼지지 않는 원자로의 소음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40년 전에 디젤 잠수함과 동등한 수준에
올랐을 정도로 핵잠수함의 소음 저감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1959년 취역한 미 해군 최초의 탄도미사일 장착 핵잠수함(SSBN) ‘조지 워싱턴호’의 수중방사소음(URN)은
155dB 수준이었습니다.
최신 디젤 잠수함의 소음이 100~110dB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1981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SSBN ‘오하이오급’은 100dB 수준으로 소음 크기를 줄였습니다.
속력은 디젤 잠수함과 비교해 최대 2배까지 낼 수 있는데 소음은 비슷하다는 겁니다.
적 추적과 어뢰 회피기동에도 유리합니다.
최신 공격형 핵잠수함(SSN) ‘버지니아급’도 1990대 개발 당시엔 소음이 115dB을 넘었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110dB 아래로 소음이 줄었습니다.
●왜 우리만 주변국 눈치를 봐야 할까
핵잠수함을 단순히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만 운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전략 정보자산으로 미국 등과 공동임무를 통해 정보 획득 기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핵잠수함을 개발하든, 개발하지 않든 북한과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들은 지속적으로
전략자산 확대를 꾀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핵잠수함 개발이 ‘잠수함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1400t급 잠수함 3척을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계약을 따냈는데,
수출액이 1조 1600억에 이릅니다.
지금 핵잠수함 개발을 시작한다고 해도 1척당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과 7년 이상의 개발 기간이 필요합니다.
오로지 우리 힘으로 만들어야 해 상당한 난관이 예상됩니다.
미 해군 산하 해상체계사령부의 제임스 캠벨 프로그램 분석관은 지난해 전문가 토론회에서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원자로 기술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급하게 나서진 않더라도 이제 ‘첫 발’은 떼야 할 시기는 왔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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