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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목숨, 공격헬기 달라" 부하 잃은 해병대사령관 절규

mistyblue 2020. 12. 13. 09:11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은 지난 10월 26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산 무기를 구매하라는 정부 방침에 정면 반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기동성과 생존성이 보장되는 헬기, 공격 헬기다운 헬기가 필요하다”면서다.

당시 군 안팎에서 이 사령관의 작심 발언을 두고 “매우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에어쇼에 참가한 이스라엘군 아파치 헬기가 미사일을 피해 플레어(flares)를 터뜨리며

빠른 속도로 회피기동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해병대 상륙작전에 투입할 상륙공격헬기 24대를 도입할 방침이다.

상륙 병력이 탑승한 기동헬기를 호위하고 지상과 공중의 위협을 타격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기종 선정을 두고선 해외 업체가 개발한 헬기를 도입하는 방안과

국내에서 개발하는 방안을 동시에 검토해 왔다.

그동안 미국 해병대가 운용하는 바이퍼(AH-1Z)와 영국군이 해상 및

상륙작전을 위해 도입한 아파치(AH-64E)를 유력하게 검토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국내 개발로 사업 추진 방향을 틀었다.

지난 2016년 선행연구는 해외 구매가 유리한 방안이라고 분석했지만,

지난해 나온 2차 연구결과는 국내 업체 개발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섰다.

 

해병대원들이 해안에 상륙하는 장면. 미래 해병대는 해상과 공중에서 동시 상륙작전을 펼치게 된다.

[사진 해병대]

 


“해외 도입과 국내 개발, 성능 차이 2배 이상”
국내 개발 헬기는 처음부터 공격형으로 설계한 바이퍼나 아파치와 비교하면

성능 차이가 크다는 게 상당수 군 관계자들의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군에서 실시한 모의 교전을 보면 작전 효과, 성능 차이는

2배 이상 크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바이퍼는 처음부터 해상작전을 위해 설계됐고 아파치는

해상작전에도 투입하도록 방염처리 등을 강화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지적에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기종 선정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내년 3월까지 추가 연구를 하기로 했다.

방사청은 “기종 선정을 두고 의견이 양분돼 있고 총사업비 변동 가능성에 대한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며 재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기종별 기본 성능을 보면 바이퍼(순항속도 시속 265㎞, 최고속도 시속 296㎞)와

아파치(265㎞, 293㎞)가 속도에서 마린온 무장개조형(250㎞, 272㎞)을 앞선다.

특히 공격 헬기의 가장 중요한 성능으로 평가되는 수직상승 속도에서

공격형(바이퍼 초속 14.2m, 아파치 12.7m)과 마린온 개조형(7m)의 간극이 두드러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파치는 탐지 능력에서 다른 기종을 압도한다.

언덕 뒤에 숨은 뒤 롱보우 레이더만 쏙 내밀어 최대 12㎞ 떨어진 적을 찾아낼 수 있다.

한꺼번에 256개의 움직이는 표적을 식별한 뒤 이 가운데 16개 우선 목표를 가려낼 수도 있다.

 

바이퍼와 아파치는 기관포와 공대지 대전차 로켓으로 지상의 전차와 주요 군사 목표를 파괴할 수 있다.

공대공 미사일도 장착해 전투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

마린온 개조형은 이런 무장을 추가로 장착할 계획이다.

 


“공격헬기는 기동력·생존성 살펴 골라야”
방호력에서도 공격형과 무장 개조형은 성능 차이가 있다.

바이퍼와 아파치는 14.5mm 방탄과 23mm 내탄 성능을 갖췄다.

기관총(14.5mm) 공격을 막아낼 수 있고 기관포(23mm) 공격을 받아도 쉽게 격추되지 않는다.

불시착하더라도 조종사가 생존해 탈출할 수 있다.

 

마리온(MUH-1) 무장 개조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마린온은 12.7mm 방탄과 14.5mm 내탄성능을 보인다.

기관총 공격을 막아낼 수 있지만, 기관포에 쉽게 격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장형으로 개조하면서 방탄 성능을 추가할 수 있지만,

무게가 늘어나면 비행 속도와 거리는 더 줄어들게 된다.

 

방탄능력뿐 아니라 기체 크기도 생존성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퍼는 날렵한 기체를 자랑한다.

조종석 폭은 0.9m에 불과하다.

아파치 조종석도 1m 수준이지만 동체 엔진은 2m 이상 늘어나 다소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해병대가 상륙공격헬기로 운용하는 바이퍼(AH-1Z)는 기동성과 방호력,

공격력이 모두 뛰어난 기체로 평가된다. [미 해병대 제공]

 


마린온 무장 개조형의 조종석은 2m, 동체 가장 넓은 부분은 3.3m에 이른다.

길이(19m)도 바이퍼ㆍ아파치(17.8m)보다 1m 이상 더 길다.

이런 차이가 생긴 건 마린온이 처음부터 공격 임무를 목적으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린온은 최대한 많은 병력이 탑승할 수 있도록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체가 크면 적 공격에 명중 당할 위험도 커진다.

 

일반적으로 공격형 헬기는 조종석을 앞뒤 구조(Tandem)로 설계해 좌우 모두 쉽게 살필 수 있다.

하지만 마린온은 조종사가 나란히 앉는 병렬형(Side-by-Side) 구조로 설계돼 시야가 제한되는 범위가 넓다.

 


해병대 사령관 “마린온 아닌 공격헬기 달라”
이 사령관이 국정감사에서 “마린온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가 아닌,

현재 공격 헬기로 운용중인 헬기를 해병대에서 원하고 있다”는 발언은 꺼낸 건 이런 배경에서다.

 

이승도 해병대 사령관이 지난 10월 2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국방부 등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관계자는 성능 차이는 있지만,

해병대 공격헬기로 채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마린온 개조형도 임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 수준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사정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전반적으로 요구 성능을 매우 낮춰 제시했다”며

“국내 방산업체도 참여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마리온 무장형으로도 작전에 문제가 없다면 육군에서도

국내 개발 공격헬기를 구매하지 왜 아파치를 도입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군이 무기 도입 때 너무 높은 성능을 제시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실제 무기를 사용할 군대가 더 좋은 성능을 요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병사들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작심 발언에 나선 이 사령관은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장으로

전투 과정에서 병사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중국군 최신 공격헬기 Z-10ME는 중국판 아파치로 불린다. [중앙포토]

 


현재 남북한의 공중 전투력만 따진다면 북이 열세인 것은 맞다.

하지만 주변국으로 눈을 돌리면 사정이 다르다.

공격헬기의 수직상승 속도만 보더라도 러시아(Mi-28)는 초속 13.6m, 중국(Z-10ME)은 10m 수준이다.

물론 조종석도 앞뒤로 배치돼 넓은 시야를 보장한다.

 


국내 개발과 해외 도입 가격 차이는?
정부는 성능 외적인 부분까지 평가에 반영하면 국내 개발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설명한다.

국내 방산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이 부분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마린온 상륙기동헬기에 대전차 로켓과 공대공 미사일 등 무장을 추가한 개조형 모형. [KAI 제공]

 


최근 경쟁 기종 업계 내부에서 검토하는 도입 비용을 비교하면 마린온 무장 개조형은

경쟁 기종보다 낮은 대당 350억원으로 전망된다.

바이퍼와 아파치 도입 단가는 대당 380억원으로 수준으로 마린온보다 다소 비싸다.

지난 2016년 한국 육군이 아파치 36대를 도입할 때는 대당 가격이 450억 정도였지만,

앞으로 더 내려갈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 거다.

 

군사 칼럼니스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아파치는 생산량 자체가 많고 호주 등

해외에서 주문할 수량도 꽤 많아 가격이 내려갈 여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육군도 36~48대를 추가 구매해 최대 84대를 운용할 계획이다.

 

주한미군 캠프험프리스 기지에서 비행 계획을 확인하며 출격을 준비하는 아파치 공격헬기 조종사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아파치는 현재 2345대가 생산돼 육군까지 포함해 16개 국가에서 운용되고 있다.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도 48대의 아파치를 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일본과 호주, 이집트 등 몇몇 국가에서 구매를 준비하고 있다.

 


아파치, 동체는 한국에서 생산
국내 도입이 유리하다는 또 다른 근거로 거론되는 건 장기적인 부품 공급의 안정성이다.

통상 무기는 초기 구매 비용은 전체 운용비에서 30% 수준을 차지한다.

수십 년 동안 유지하는 비용이 70% 수준으로 비중이 더 크다.

 

바이퍼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 해병대(189대)로,

한국 해병대 입장에선 연합작전 측면에서 같은 기종이 유리한 부분도 있다.

전시에 같은 부품을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이 전 세계로 수출하는 아파치 공격헬기 동체는 한국에서 제조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동체를 제작하는 모습. [보잉 제공]


하지만 미국을 제외하면 체코(12대)와 바레인(4대)에서만 운용해

한국에서 구매하지 않으면 조만간 단종될 수 있다.

미 본토 공장에서 부품을 생산하겠지만, 자연스레 비용도 올라가고

적기에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해외 방산기업은 방산물자를 수출하면서 구매국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해당 국가의 무기나 부품을 구매하는 ‘절충교역’(offset)을 카드로 내세운다.

 

전 세계로 공급하는 아파치 헬기 동체는 이미 한국에서 만들고 있다.

절충교역 만료 이후 공장을 인도로 이전했다가 최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보잉에서 제작하는 F-15 전투기 전방 동체와 주익, 록히드마틴의 F-16 전투기 전방 동체도

한국 방산 기업인 KAI에서 생산한다.

 

전투기의 일부분은 ‘메이드인 코리아’인 셈이다.

한국에서 모든 걸 다 만들진 않더라도 국내 방위산업과 경제에 기여할 방법은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