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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엔진에 발목 잡힌 중국 스텔스기

mistyblue 2021. 3. 22. 11:06

2011년 차세대 스텔스기 J-20 시험 비행하고도 11년째 엔진 개발 못해..
우크라이나 제조사 '모터 시치' 인수 시도도 좌절

 

 

 

3월11일 막을 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중국의 국방 예산이 공개됐죠.

작년보다 6.8% 오른 209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처음으로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더군요.

 

그런데, 바로 이날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의 아픈 곳을 찌르는

뉴스가 하나 전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모터 시치(Motor Sich)’라는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죠.

지난 5년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중국 기업의 모터 시치 인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국유화를 하기로 했으니, 중국의 인수 시도는 물거품이 된 거죠.

 

◇ 2011년 미 국방장관 방중 때 시험비행

2011년 1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게이츠 장관은 1월11일 후진타오 주석과 회담을 했는데,

바로 그날 중국 공군은 자체 개발한 첫 스텔스 전투기 젠-20(J-20) 시험 비행을 실시했죠.

전세계 이목이 집중된 시점에 “우리도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 수 있다”고 자랑을 한 겁니다.

 

J-20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미국의 F-22 전투기를 겨냥해 개발한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에요.

F-22, 러시아가 개발 중인 수호이-57 등과 함께 5세대 전투기로 분류됩니다.

 

2016년 중국 주하이 에어쇼에서 일반에 공개된 중국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

/조선일보DB

 

5세대 전투기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스텔스 기능이죠.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J-20이 F-22 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스텔스 기능을 갖춘 것으로 봅니다.

레이다를 포함한 항공전자장비는 러시아보다 낫다고 하더군요.

기체 덩치도 F-22나 수호이-57과 비슷한 수준으로 큽니다.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등을 대거 탑재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죠.

 

◇ 큰 덩치 감당할 엔진 개발 못해

그런데 중국은 이렇게 막강한 전투기를 개발해 놓고도

11년째 제대로 실전 배치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요? ‘강력한 제트 엔진’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못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F-22 같은 5세대 전투기는 압도적인 기동력과 전투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이 주된 기능이죠.

F-16, 수호이-27 같은 4세대 전투기들에 비해 무장이 더 강력하면서,

공중 기동 능력도 더 뛰어나야 합니다.

무거운 이륙 중량을 감당하면서 민첩하고 빠른 속도로 기동하려면

꼭 필요한 게 강력한 성능을 가진 제트 엔진이죠.

2005년 실전 배치된 F-22는 프랫&휘트니사가 개발한 F119엔진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중국이 러시아산 전투기 엔진을 복제해 만든 WS-10 엔진. 중국의 주력 전투기인 J-11 등에 들어간다.

/중국웨이보

 

J-20은 처음엔 수호이-27에 들어가는 러시아산 AL-31F 엔진을 사용했어요.

나중에는 이 엔진을 복제한 국산 WS-10 엔진을 장착했죠.

문제는 두 엔진 모두 J-20의 무거운 기체를 감당할만한 추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수호이-57에 들어가는 AL-41F1엔진을 수입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의 복제를 우려한 러시아가 판매를 거부했죠.

 

하는 수 없이 추진력을 대폭 끌어올린 WS-15라는 엔진을 자체 개발했는데,

이 엔진이 계속 말썽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측 전문가들에 따르면 엔진 내부 온도가 섭씨 1350도를 넘어가면

갑자기 출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지상 시험 도중 폭발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 은밀하게 진행된 모터 시치 인수 작전

제트 엔진 기술 개발은 항공기 개발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기술 확보에 걸리는 시간이 20년 이상이라고 하죠.

그것도 탄탄한 기초 과학기술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입니다.

세계적으로 항공기 엔진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4~5개국 정도에 불과하죠.

 

항공기 엔진 제조 기술이 절실했던 중국은 오래전부터

‘모터 시치’에 눈독을 들여왔습니다.

사실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도 우크리아나로부터 사들인

바랴그호를 개조해 만든 거죠.

‘모터 시치’ 인수에 동원된 기업은 베이징 신웨이그룹 산하에 있는

스카이리존이라는 투자회사입니다.

형식상 민영기업이지만 미국은 배후에 중국 군이 있는 것으로 보죠.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 있는 모터 시치 본사. /모터 시치 홈페이지

 

‘모터 시치’는 옛소련 당시 군용기와 민간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국영기업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민영화됐죠.

옛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에 엔진 공급을 계속해왔는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양국이 적대관계가 된 이후

주문이 끊기면서 경영난에 봉착했죠.

 

스카이리존은 2015년부터 비밀리에 ‘모터 시치’의 사주를 접촉해 지분을 사들입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마다가스카르 등지에 적을 둔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정보 당국의 눈을 피했죠.

2017년 지분 매집 사실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50% 이상이 중국 측에 넘어간 뒤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즉각 중국 측 지분을 동결하고 반독점위원회에서

이 거래의 적절성을 심의하기 시작했죠.

 

◇ 치열했던 미중 외교전...우크라이나, 미국 손 들어

이때부터 미중 간 외교전이 본격화됩니다.

미국은 제트 엔진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 공군력이 강화되는 걸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거래 차단을 요구했죠.

하지만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는 한동안 망설입니다.

 

2019년 존 볼튼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설득해야했을 정도였죠.

미국은 러시아와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15억 달러 이상의 군사원조를 제공한 우방이니

그 말도 무시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안보와 경제 사이에 고심하던 우크라이나는 결국 미국 쪽 손을 들었습니다.

“전략산업을 이런 식으로 중국에 넘겨줄 수 없다”며 국유화를 선언한 거죠.

중국은 국제중재재판소에 35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기업 인수를 통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공군력을 갖추려던 꿈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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