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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 궁여지책으로 탄생한 명차

mistyblue 2021. 5. 9. 12:45

랜드로버 브랜드 히스토리(1)

 

159년 전

널리 알려진 랜드로버 역사의 시작점은 1948년.

그러나 진짜 뿌리는 무려 15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1년 제임스 스타리와 조슈어 터너가 세운 코벤트리 방적기계 회사에서

역사가 태동한다.

방적기 회사 역사는 길지 않았다.

1868년 7년 만에 두 발로 땅을 차며 달리는 초창기 자전거를 만들며

바퀴달린 물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명도 ‘코벤트리 기계’로 바꿨다.

 

자전거 사업은 순탄했다.

굵직한 족적도 남겼다.

1884년 당시 구조를 과감히 탈피해 앞뒤 바퀴 크기를 똑같이 조율하고

체인으로 뒷바퀴 굴리는 기술을 완성한다.

이 자전거 이름이 바로 ‘로버’다.

로버는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기초를 닦는다.

1888년 한 해 자전거만 1만1,000여 대 생산할 만큼 자전거 명가로 우뚝 서면서

1890년대 말엔 ‘로버 자전거 회사’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로버 역시 내연기관 엔진 등장에 따라 모터사이클과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다.

1888년 처음으로 삼륜 전기차 시험 생산을 시작으로 다임러 기술자를 영입해

1904년 2인승 승용차 ‘로버 에이트’를 생산한다.

로버 최초의 자동차였다.

 

내친 김에 간판을 ‘로버 모터’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산층의 롤스로이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로버의 별명이다.

로버는 중산층 및 영국 왕실, 귀족의 수요를 끌어오며

영국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품질 역시 당시 영국 자동차 중 최고 수준이었다.

전쟁 중엔 연합군 최초로 제트 엔진을 생산하며 명성을 쌓기도 했다.

 

궁여지책으로

종전 후 로버는 위기에 처했다.

차를 만들기 위한 구호품과 원자재가 턱없이 부족해 자동차 생산이 어려웠다.

2주 동안 겨우 4일 공장을 굴렸을 정도다.

공장을 굴릴 방법이 절실한 상황.

이 때 로버 기술 책임자 모리스 윌크스가 아이디어를 꺼낸다.

거친 농장을 누빌 사륜구동 자동차, ‘랜드-로버’다.

 

경험이 낳은 생각이었다.

모리스 윌크스는 종전 후 군용 지프 한 대를 구매했다.

그리고 개인 농장에서 활용하는데, 성능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일반 자동차는 바퀴도 못 들여놓을 길을 지프는 네 바퀴 굴림을 바탕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영국의 농장은 물론 수많은 식민지에서 활용할 가능성을 엿봤다.

 

그러나 고급 승용차 브랜드였던 로버의 차로 농장용 사륜구동차는 어울리지 않았다.

로버 이사진 반응은 당연히 시큰둥했다.

그렇다고 쉬고 있는 공장을 방치할 순 없었다.

결국 랜드-로버 개발을 승인한다.

일단은 시한부였다.

고급차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기 때문에 종전 후 한시적으로 생산한 후

일정 수익을 넘으면 그만둘 계획이었다.

 

쉬운 길을 택한다.

로버 기술팀은 연구용 지프를 사들여 철저히 분해해 분석한다.

지프 사다리꼴 프레임을 바탕으로 로버 엔진을 얹고,

기존 사륜구동 시스템을 활용해 시험용 차를 만들었다.

차체는 알루미늄 철판을 두들겨 펴서 완성.

최초의 랜드-로버는 지프의 뼈대 위에서 탄생했다.

 

알루미늄 차체를 쓴 이유는 전쟁 후 항공용 알루미늄이 구하기 쉬워서다.

또 한시적으로 생산할 계획이었기에 비싼 금형이 필요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궁여지책이었지만, 덕분에 랜드-로버는 가볍고 녹 없는 내구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점점 양산을 준비하며, 지프보다 더 튼튼한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ㄷ’자 모양 프레임 단면을 ‘ㅁ’자로 보강하고, 엔진 동력을 끌어내

농기구를 돌릴 ‘동력 인출 장치’를 개발해 넣는다.

 

그렇게 1948년 4월 30일,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최초의 랜드로버

‘랜드-로버 시리즈 1’이 모습을 드러낸다.

1.6L 50마력 엔진과 가벼운 알루미늄 차체, 상시사륜구동 장치가 달린 시리즈 1은

험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첫 생산 대수는 한 주에 100대 수준.

그러나 뛰어난 성능이 입소문을 타며 1949년 말엔 랜드-로버 시리즈 1이

로버 전체 승용차 생산 대수의 세 배를 넘어서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기존 한시적으로 생산하자는 주장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랜드-로버 인기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비결은 다양한 파생 모델이다.

처음엔 지프처럼 차체 길이가 짧은 차로 등장했다.

하지만 소비자 요구에 귀 기울여 휠베이스 107인치 픽업트럭,

같은 크기의 4도어 왜건 등을 더했다.

엔진도 2.0L로 키우고 사막에서 차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바람구멍 낸

2중 지붕을 넣는 등 끊임없이 개선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사륜구동차를 군대에서 탐내지 않을 리 없었다.

영국 육군은 무겁고 복잡한 지프에 불만이 많던 차에 랜드-로버 시리즈 1이 나오자

1956년 자국 군용차로 선정했다.

랜드-로버는 가볍고 단순해 일선에서 호평 받으며 전장을 누볐다.

한국전쟁 때 우리 국토를 누볐고, 수에즈 분쟁에서도 활약했다.

 

영국 공수특전단이 사막 지역에서 활용했던 ‘핑크 팬더’는

군용차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사막에서 안개가 끼면 주변에 녹아드는 핑크색을 칠해,

핑크빛 표범이라는 뜻의 핑크 팬더로 불렀다.

영국 공수특전단과 함께 뛰어난 사륜구동 성능을 바탕으로,

사막 순찰 및 특수 작전을 수행하며 명성을 떨쳤다.

 

 

핑크 팬더의 밑바탕은 1958년 등장한 시리즈 2.

시리즈 1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개선을 거치고 다채로운 스페셜 모델을 만들어 활용성을 높였다.

구급차, 6륜 구동 등 150여 가지에 달할 정도다.

1971년 말엔 일반 승용차로서 편의성을 높인 시리즈 3가 나왔다.

1976년 누적 생산 100만 대 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구가한다.

 

사막의 롤스로이스

랜드-로버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로버는 다른 기회를 엿본다.

튼튼하지만 트럭처럼 불편한 랜드-로버보다 편안한 SUV 수요를 예상했다.

그렇게 1958년 ‘로드-로버’를 시험 삼아 만들어 봤지만,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장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1960년대 미국에서 포드 브롱코, 쉐보레 블레이저 등 사륜구동 왜건이 등장한다.

 

로버 역시 V8 엔진 얹은 랜드-로버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국 시장은 장거리도 편안히 소화할 고급스러운 SUV를 원했다.

로버는 1967년 기존 강점이었던 험로 주행 성능을 갖추면서도

한층 승용차에 가까운 신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신차 기밀 유지를 위해 이탈리아어로 ‘베일’ 또는 ‘커버’를 뜻하는

‘벨라’라는 이름 붙인 시험용차 26가지를 만들며 박차를 가한다.

 

1970년 6월 프로젝트는 ‘레인지로버’로 결실을 맺는다.

기존 랜드-로버와는 완전히 달랐다.

물방울처럼 뒤를 오므린 실루엣, 조개처럼 위가 전체적으로 열려

시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하는 클램쉘 구조 보닛은 당대 어떤 SUV보다도 세련됐다.

1971년 자동차 역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산업 디자인 대표작’이라며 전시했을 정도다.

 

오프로드 성능도 빛났다.

1972년 영국 육군이 레인지로버 2대로 알레스카에서 아르헨티나 최남단 종주에 성공했고,

중남미 ‘죽음의 정글’로 악명 높은 ‘다리엔 갭’을 완주하기도 했다.

1977년 약 3만㎞ 장거리 랠리인 런던-시그니 마라톤 우승을 차지하면서

최고 수준의 오프로드 성능을 실적으로 입증했다.

승차감까지 편했던 레인지로버는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며 칭송받는다.

 

랜드-로버 시리즈 3와 레인지로버 두 차종으로 명성을 떨치던 랜드-로버는 마침내

1978년 로버 자동차가 아닌 ‘랜드로버’라는 별도의 회사로 독립한다.

이때부터 ‘랜드-로버’ 이름 사이 ‘-’ 붙임표를 떼어내고 랜드로버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SUV 전문 제조사 랜드로버의 공식적인 시작이다.

(다음 회에 계속)

 

글/로드테스트 편집부

 

사진/랜드로버

 

*참고문헌

<탱크·장갑차·군용차 백과사전>|휴먼앤북스|로버트 잭슨

<역사 속에 빛나는 세계 4WD 명차>|자동차생활|자동차생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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