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이상의 주유소,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
Hailstone Feed Store and Shell Gasoline Station
과거 주유소는 기름 넣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장거리 운전자의 정보 허브이며 쉼터이자 자동차 마니아의 아지트 였다.
이사콰시 구시가지에 위치한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 앤 쉘 주유소는
194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특별한 공간이다.
시에서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복원했으며,
클래식카 오토쇼 등의 허브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사용되던 주유기는 당시 설계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되어
1940~5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4차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운전경로와 도착시간까지
예측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실시간 운행정보와 교통정보를 포함해
웬만한 편의시설 정보까지도 알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까지 소개되고 있는 요즘,
드라이버에게 주유소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거만 해도 주유소는 장거리 운전자의 정보 허브이며 쉼터이자
자동차 마니아의 아지트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에 찾은 곳은 1940년대 쉘(Shell) 주유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미국 워싱턴주 이사콰시에 위치한다.
시간이 멈춰진 듯한 느낌이 가득한 이곳은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 앤 쉘주유소(Hailstone Feed Store and Shell Gasoline Station)다.
건물 뒤편을 장식한 올빼미 시가 광고.
복원 도중 우연히 발견했다 한다.
70년대 이전만 해도 건물에 직접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광고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주유소에 대한 개념
클래식카를 운전하다 보면 과거의 창문 밖 풍경은 어땠을까 하는,
시대상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직접 운전하며 복원하는 재미도 크지만 세월이 흐른 자동차 관련
소품들을 비롯해 주유소와 관련된 아이템에도 관심이 커진다.
자동차와 주유소는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지만 클래식카 마니아인 필자에게
주유소는 기름을 넣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박한 시골 마을의 1940년대 시대상을 물씬 느낄 수 있는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가 필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이번 취재는 지자체에 취재 허가를 받아서 진행했다.
그만큼 특별한 장소다.
마브의 1957년형 쉐비 210 2도어 세단.
멋진 50년대 테일 핀 디자인과 레트로한 주유소 배경은
클래식카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미국은 땅이 크다.
도심을 제외하면 인구밀도가 낮은 편으로,
주거문화 또한 아파트보단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생활을 선호해 소도시 단위로
생활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탈 도시화 현상과
고속도로 건설로 장거리 운행이 쉬어진 이유가 크다.
지역 간 거리가 멀어 하루 평균 1시간 운전은
특별한 일이 아닐 정도로 자동차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가정집, 사료 가게, 주유소로 사용되며 100년간 증축되어 온
유서 깊은 단층 구조의 목조 건물이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은 드라이브 스루를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주유소는 미니마트와 함께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작은 휴게소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몇몇 주를 제외하곤 셀프 주유 시스템이 대부분이라
운전자와 주유소는 더욱 밀접한 관계라 볼 수 있다.
미국은 자동차 역사가 긴 만큼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미국인이 생각하는 자동차와 주유소의 개념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쉘 주유소로 운영될 즈음인 1940년경의 사진
2005년 구시가지 복원 프로젝트에 선정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는 이사콰시의 구시가지에 위치한다.
이곳의 많은 건물은 근대 건축물로 지정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라는 이름이 인상적이다.
과거 이곳은 가축 사료를 판매하던 사료상과 주유소를 겸업하던 곳으로
당시 시골에서 흔한 운영방식이었다.
건물은 1890년대 만들어져 창고, 가정집, 가축 사료상점으로 쓰이다가
1942년부터 쉘 주유소로 운영되었다.
1990년까지 운영되다 2005년 지자체의 구시가지 복원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40년대의 주유소 모습으로 복원됐다.
현재 시에서 부지와 건물을 매입해 이사콰 다운타운 협회
(Downtown Issaquah Association)의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또한 매년 주최하는 클래식카 오토쇼 축제의 허브로 쓰이면서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취재의 주제가 미국의 오래된 주유소인 만큼 클래식카도 함께하면
좋을거 같아 필자의 57년형 포르쉐 356A 레플리카를 몰고 길을 나섰다.
오래된 수동식 계산기가 인상적이다.
지도 판매대, 부품 매대도 시대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쉘 주유소 간판이 보인다.
인상적인 노란 주유기가 있는, 40년대 이미지를 그대로 담은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에 도착하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듯 했다.
이번 취재에 도움을 준 마브 닐슨(Marv Nielsen)이
하늘색 57년형 쉐비 210 2도어 세단에서 내리며 필자를 맞이했다.
복원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마브는 매년 주최되는
지역 클래식카 오토쇼인 펜더스 온 프론트 스트리트 카쇼
(Fenders on Front Street car show)의 관계자로도 활동한다.
자신을 핫 로드 좋아하는 클래식카 마니아라고 소개했다.
익살스러운 마브와 함께 주유소 투어를 시작했다.
계산대 한편엔 쉘 브랜드의 제품인 소모품이 전시되어 있다.
케미컬, 튠업 부품 등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컬렉터의 기증품이다.
CB 라디오는 당시 주유소에 한 대씩은 배치되어 있던 필수품.
추억을 소환하는 특별한 소품들
오래전 지어진 단층 목조 건물에 정비 피트가 딸린
전형적인 시골 주유소의 모습이다.
건물 뒤편에 시가 광고도 인상적인데,
70년대 이전까진 흔히 볼 수 있던 손맛 느껴지는 광고 방식이다.
요즘과 달리 키가 큰 주유기와 비교적 단출해 보이는
아일랜드(주유기가 올라가 있는 공간)에는 예전의 향수가 가득하다.
건물 내부는 사료 가게로 쓰이던 공간과 계산대 공간,
장거리를 뛰던 자동차에는 병원 역할을 했던 정비 공간이 보인다.
한때 가축 사료상으로 쓰였던 공간.
오른편의 주유기는 1920~30년대 실제 사용하던 주유기다.
사료 판매를 위한 공간에는 주유소 관련 빈티지 간판과
과거 정비소에서 사용됐을 테스트 장비,
1920~30년대 주유기가 전시되어 있다.
점원이 일했을 계산대 공간에는 수동식 계산기와
고객에게 나누어주던 지도가 걸려있다.
한쪽엔 쉘 브랜드로 판매하던 각종 튠업 소모품과
케미컬류도 전시되어 있는데, 70년대 이전만 해도
미국은 주유소 춘추전국 시대라 할 만큼 여러 정유 브랜드가 경쟁했다.
한쪽에 있는 진공관 CB 라디오(단거리 무전기)도 인상적이다.
정비고 한쪽에 자리 잡은 각종 정비 관련 소모품.
지금은 찾기 힘든 골동품들이 사실감을 더한다.
유선전화마저 드물었던 시절인지라 관공서를 연결하고
마을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당시 주유소에서 필수인 정비 공간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옛날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자동차 두 대가 들어가기 힘들어 보이지만 경정비에 필요한 장비들과
벽에 걸린 구동 벨트, 타이어등 오래전 우리의 시골 정비소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정비 도구와 사라진 브랜드의
소모품도 인상적이었다.
전시된 소품들은 모두 지역 수집가들의 기부로 꾸며졌다.
1957 쉐비 2도어 세단.
50년대 쉐보레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벨 에어의 파생 모델.
간략화 된 트림이 인상적이다.
전문적인 복원을 끝내고 50년대 콜벳 엔진을 스왑한
마일드 커스텀 작업을 거쳤다.
모든 작업은 본인이 직접 했다고
폭스바겐 타입1(비틀)의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토대로 만들어진
1957년형 포르쉐 356A의 레플리카다.
보디는 FRP로 제작했으며 커스텀 부품과 자작 부품을 사용했다.
실제 모델과는 차이가 있는 레플리카이지만
타입1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사용했다.
듀얼 카뷰레터를 장착한 퍼포먼스 튜닝을 더해
박진감 넘치는 주행이 가능하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주유소의 역할
마브의 쉐비 210과 필자의 포르쉐 356A를 주유소 배경으로 촬영하면서
우리는 짧지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때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는 마을 주민들이 하루를 마치고
들르는 사랑방이자 자동차를 좋아하던 청소년들에게는
자동차를 배우는 배움터, 타지역 방문자에겐 지역 정보를 알 수 있는
허브의 기능을 충실히 담당했던 곳이다.
시대가 흐르며 주유소라는 공간이 자동차 문화와는 동떨어진
단순히 주유하는 곳으로 변하고, 인포테인먼트나
편의 장비가 주요 관점이 되고 있다.
필자의 356A 레플리카와 마브의 쉐비 210.
공교롭게 두 차량 모두 1957년형이다.
맑은 하늘 아래 멋진 색상의 클래식카와
오래된 주유소가 조화를 이루어 촬영 내내 즐거웠다.
기술 변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감성 전달 방식이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클래식카와 빈티지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단 물건의 디자인이나
남들과 달라 보이려 좋아한다는 단순한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이전 세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이해하며
그들의 가치관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조 포크너 & 마브 닐슨 인터뷰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 복원 프로젝트 자문 및 지역 오토쇼 책임자
조 포크너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 앤 쉘 주유소 복원 프로젝트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한다.
이사콰시의 구시가지 건축물 중 주유소라는 선택이 독특하다.
쉘 주유소 건물 복원 프로젝트는 15년 전 이사콰시의 지원과
지자체인 다운타운 이사콰 협회(Downtown Issaquah Association) 주도로 진행했으며
각 분야의 자원봉사자와 기부 등도움을 받아 대략 일 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복원에 필요한 시대상이 담긴 물품이나 주유소 관련
용품 등은 기부가 많았으며,
지역사회의 협조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주유소가 선정된 이유는 우리에게 중요한 운송수단인
자동차가 필요로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축 사료 판매점(과거 이곳은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산업이었다)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마브 닐슨
70년대 이전의 주유소는 오늘날의 주유소와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달랐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하다.
자동차의 발달과 함께 장거리 운전과 여행이 간편해졌고
사람들의 이동 범위가 늘어나면서 주유소에서 제공하던 서비스 또한 간략해졌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인구의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었고
소도시와 대도시의 차이 또한 컸다.
당시 소도시 주유소는 대부분 겸업으로 운영되는 형태였다.
지역 자동차만으론 주유소 하나 운영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정비소나 편의점, 식료품점과 겸업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장거리 운전자 수요 외에도 지역주민의 허브 역할이 컸다.
타지에서 오는 방문자에게는 숙박 정보나 경정비를 제공했고,
지역주민에겐 사랑방 역할을 했다.
또한, 자동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자동차 관리를 배우며
자기 차를 뽐내는 만남의 장소였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런 환경에서 자동차와 더욱 친근해질 수 있었다.
옛날 주유소는 경정비와 간단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곳으로
장거리 운전을 뛰던 외지 차에게는 병원 같은 곳 이었다.
매년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를 중심으로 열리는 클래식카 행사도 궁금하다.
매년 아버지날(6월 3번째 일요일)에 개최하는 이사콰시의 클래식카 오토쇼
‘Fenders on Front Street car show’는 16년 전쯤 지자체의 후원으로 시작해
매년 800여 대의 클래식카가 모이는 대형 쇼로 성장했다.
아쉽게도 작년은 펜데믹으로 취소되었고 이번 해도 기약이 없다.
남자라면 누구나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날, 남자가 흥미를 느끼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즐길수 있는 테마로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헤일스톤 피드 스토어는 포토 스테이지로 사용되는등
지역 클래식카 행사의 랜드마크이자 중심지로 소개되고 있다.
필자의 356A 레플리카와 마브의 쉐비 210.
공교롭게 두 차량 모두 1957년형이다.
맑은 하늘 아래 멋진 색상의 클래식카와
오래된 주유소가 조화를 이루어 촬영 내내 즐거웠다.
개인적으로 클래식카를 오랫동안 경험해 보니 개인적인 취미를 넘어
지역 사회활동으로 연관되는 것이 흥미롭다.
클래식카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커진 것인지 궁금하다.
어렸을 적 자동차에 대한 선망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구는
남자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는 그랬다.
시골에서 자동차는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자동차 관리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자연스레 알아갔다.
자동차라는 기계는 오감으로 즐기는 최고의 취미 거리였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좋은 수단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어렸을 적 타던 차들이 클래식카 반열에 들었다.
이런 차들을 알리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지역의 이벤트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자동차를 만지는 취미는 3차원적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손가락으로 밋밋한 유리판을 누르는
2차원적인 취미라고 생각한다(웃음).
글·사진 장세민(Samuel Chang)
Text by Samuel Chang
현재 시애틀에 거주 중인 클래식카 마니아.
워싱턴 주립대학과 프렛 인스티튜드를 거쳐
혼다 미국 법인 R&D 센터에서 디자인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차종을 소유하고 있으며
클래식카 리스토어 스페셜리스트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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