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태봉 관련 첫 문자 자료 주목…전문가 검토 거쳐 102자 판독
'891년생 무등' 새로운 인명 확인…"제사 방식, 바라는 내용 등 담겨"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최근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출토된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에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 중 가장 많은 글자가 적혀 있다는 전문가 검토 결과가 나왔다.
후삼국 시대에 궁예(?∼918)가 세운 '태봉'의 최초의 문자 자료인 데다,
당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사실도 파악돼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28일 학계에 따르면 양주시와 기호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21일 한국목간학회 소속 연구자 6명과 함께
대모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내용을 판독하는 회의를 열었다.
목간에 남은 글자와 그림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검토 결과, 목간에는 총 8행에 걸쳐 123자의 글자가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목간 하나에 기록된 문자를 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례다.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한 신라 목간의 경우,
5면에 걸쳐 약 98자의 글자가 확인돼 글자 수가 최다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20자 이상 많은 것이다.
양주시 관계자는
"총 8면 중 그림이 있는 한 면과 공란 한 면을 제외한 나머지에 글씨가 쓰여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 중 문자 수가 최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목간에서 확인한 사람 그림 왼쪽은 디지털카메라 촬영본,
회의 참석자들은 유물과 적외선 카메라 촬영 사진 등을 비교해
123자 가운데 102자를 판독했다.
1면으로 보는 한 면에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있었고,
그 왼쪽 면(2면)에는 '정개 3년 병자 4월 9일'(政開三年丙子四月九日)을 포함한 문구가 남아 있었다.
정개는 태봉에서 914년부터 918년까지 사용했던 연호로,
정개 3년은 916년을 뜻한다.
판독에 참여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태봉과 관련된 첫 목간 자료이자 (연호와 간지가 확실한)
절대 연대를 가진 유일한 목간"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목간 2∼4면의 글자 왼쪽은 디지털카메라 촬영본,
목간에 적힌 내용 전반은 4월 9일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남긴 기록으로 추정된다.
날짜와 적힌 면에는 '성'(城), '대정'(大井), '대룡'(大龍)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성의 큰 우물에 살고 있는 대룡'에게 제사를 지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당시 제사 혹은 제의를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기원했는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중요 행사를 치른 뒤 기록을 정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목간학회가 판독한 내용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4면에 남은 '신해세입육무등'(辛亥歲卄六茂登)이란 글귀를 주목하고 있다.
이를 해석하면 '신해년에 태어난 26세 무등'으로 볼 수 있는데,
60간지 상 신해년은 891년에 해당한다. 정개 3년, 즉 916년 시점에서 보면
신해년 출생자는 26살이 된다.
기존 역사·문헌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새로운 인물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목간에 있는 그림이 '무등'을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양주시 관계자는 "대모산성은 과거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태봉의 지배 아래에 있던 성주 또는 (지방) 호족이 '무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목간이 출토된 집수시설 모습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학계에서는 판독 내용을 볼 때 향후 체계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리라 보고 있다.
목간은 성에서 물을 모으기 위해 만든 집수(集水) 시설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대룡이 있는 큰 우물'로 여기고 바라는 바를 적은
주술적 용도의 목간을 남긴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명예교수는 "다른 산성에서도 비슷한 제의가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대모산성 내) 집수시설에 대한 조사가 다 이뤄지지 않은 만큼
향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주시는 다음 달 6일 조사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태봉의 연호가 남아 있는 목간과 주요 출토 유물을 공개할 계획이다.
집수시설 내부 모습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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