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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자 적힌 궁예의 나라 흔적…"한반도 목간 중 글자 수 최다"

mistyblue 2023. 11. 28. 09:02

국내 태봉 관련 첫 문자 자료 주목…전문가 검토 거쳐 102자 판독
'891년생 무등' 새로운 인명 확인…"제사 방식, 바라는 내용 등 담겨"

 

양주 대모산성서 궁예가 세운 '태봉' 연호 적힌 나뭇조각 확인 (서울=연합뉴스)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궁예(?∼918)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연호가 적힌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출토됐다.
15일 학계에 따르면 양주시와 기호문화재연구원은 최근 양주 대모산성 동쪽 성벽 구간 일대를 조사한 결과,
물을 모으기 위해 만든 집수(集水) 시설에서 목간 1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출토된 목간.
2023.11.15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최근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출토된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에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 중 가장 많은 글자가 적혀 있다는 전문가 검토 결과가 나왔다.

후삼국 시대에 궁예(?∼918)가 세운 '태봉'의 최초의 문자 자료인 데다,

당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사실도 파악돼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28일 학계에 따르면 양주시와 기호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21일 한국목간학회 소속 연구자 6명과 함께

대모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내용을 판독하는 회의를 열었다.

 

목간에 남은 글자와 그림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검토 결과, 목간에는 총 8행에 걸쳐 123자의 글자가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목간 하나에 기록된 문자를 보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례다.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한 신라 목간의 경우,

5면에 걸쳐 약 98자의 글자가 확인돼 글자 수가 최다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보다 20자 이상 많은 것이다.

양주시 관계자는

"총 8면 중 그림이 있는 한 면과 공란 한 면을 제외한 나머지에 글씨가 쓰여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목간 중 문자 수가 최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목간에서 확인한 사람 그림 왼쪽은 디지털카메라 촬영본,
오른쪽은 적외선 카메라 촬영본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회의 참석자들은 유물과 적외선 카메라 촬영 사진 등을 비교해

123자 가운데 102자를 판독했다.

1면으로 보는 한 면에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있었고,

그 왼쪽 면(2면)에는 '정개 3년 병자 4월 9일'(政開三年丙子四月九日)을 포함한 문구가 남아 있었다.

정개는 태봉에서 914년부터 918년까지 사용했던 연호로,

정개 3년은 916년을 뜻한다.

판독에 참여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태봉과 관련된 첫 목간 자료이자 (연호와 간지가 확실한)

절대 연대를 가진 유일한 목간"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목간 2∼4면의 글자 왼쪽은 디지털카메라 촬영본,
오른쪽은 적외선 카메라 촬영본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목간에 적힌 내용 전반은 4월 9일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남긴 기록으로 추정된다.

날짜와 적힌 면에는 '성'(城), '대정'(大井), '대룡'(大龍)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성의 큰 우물에 살고 있는 대룡'에게 제사를 지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당시 제사 혹은 제의를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기원했는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중요 행사를 치른 뒤 기록을 정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목간학회가 판독한 내용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4면에 남은 '신해세입육무등'(辛亥歲卄六茂登)이란 글귀를 주목하고 있다.

이를 해석하면 '신해년에 태어난 26세 무등'으로 볼 수 있는데,

60간지 상 신해년은 891년에 해당한다. 정개 3년, 즉 916년 시점에서 보면

신해년 출생자는 26살이 된다.

 

기존 역사·문헌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 새로운 인물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목간에 있는 그림이 '무등'을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양주시 관계자는 "대모산성은 과거 임진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교통로 상 군사적 요충지였는데,

태봉의 지배 아래에 있던 성주 또는 (지방) 호족이 '무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목간이 출토된 집수시설 모습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학계에서는 판독 내용을 볼 때 향후 체계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리라 보고 있다.

목간은 성에서 물을 모으기 위해 만든 집수(集水) 시설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를 '대룡이 있는 큰 우물'로 여기고 바라는 바를 적은

주술적 용도의 목간을 남긴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명예교수는 "다른 산성에서도 비슷한 제의가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대모산성 내) 집수시설에 대한 조사가 다 이뤄지지 않은 만큼

향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주시는 다음 달 6일 조사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태봉의 연호가 남아 있는 목간과 주요 출토 유물을 공개할 계획이다.

 

집수시설 내부 모습
[양주시·기호문화재연구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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