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왕(재위 391∼412)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을 탁본한 자료가
프랑스 한 도서관에서 새로 확인됐다.
광개토왕비 북면 탑본 작업 모습. 1910년대 후반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자료다.
23일 학계에 따르면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오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고등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새로운 광개토왕비 탁본을 소개한다.
광개토왕비는 414년쯤 중국 지린(吉林)성지안(集安)에 세워진 비석이다.
아들인 장수왕(재위 413∼491)이 부친의 능을 조성하면서
높이 6.39m에 이르는 비석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으로 여겨지며 총 4개 면에 1775자가 새겨져 있다.
박 교수가 찾은 탁본은 그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다.
1917년 5월 11일 자 학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 탁본은 ‘게티 여사가 기증했다’고 돼 있는데,
그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개토왕비 탁본과 혼동해 조명받지 못했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탁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1865~1918)이 수집한 자료로
‘샤반 본(本)’으로 불려왔다.
아시아학회 측은 최근에야 또 다른 탁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개토왕비 옛 모습.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수집한 사진 자료.
박 교수에 따르면 광개토왕비 탁본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가로 37∼38㎝, 세로 63∼67㎝의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비석 면에 새긴 글자를 찍어냈으며,
총 4면 가운데 3번째 면을 제외한 1면, 2면(중복), 4면이 확인됐다.
그는 “제3면이 빠지고 제2면이 중복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중복된 2장은 접지방식과 먹색이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탁본이 1907년 입수한 ‘샤반 본(本)’보다는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지금까지 알려진 (광개토왕비) 탁본 가운데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제작된
복본(複本)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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