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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점 유물 속 ‘나만의 보석’ 발굴할 관람 포인트는?

mistyblue 2025. 3. 13. 18:25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특별전 ‘호림명보’

조선 후기, 경기도 광주의 관요(官窯)에서 만들어진 보물 ‘백자 청화철화나비문 시명 팔각연적’. 이하 호림박물관 제공.
뽀얀 백자 연적에 나비 한 마리가 단정히 앉았다.
팔각 몸통에는 푸른 청화(靑畵)와 붉은 철화(鐵畵)로 쓴 칠언절구 시 한 편이 한줄한줄 번갈아 적혔다.
 
“형태는 깨끗한 옥산이요 마음은 물을 좋아하니(形靜玉山 心樂水),
그 누구의 지혜로움이 이와 같고 어느 누구의 어짊이 그와 같으리오(孰如其智 孰如仁)”.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특별전 ‘호림명보’에서 전시 중인

18세기 조선 ‘백자 청화철화나비문 시명 팔각연적’이다.

보물로 지정된 단 두 점뿐인 백자 연적 중 하나로,

공자의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연적에 절묘히 빗대 더욱 아름답다.

 

이를 포함한 보물 54건과 국보 8건, 서울시유형문화유산 11건 등

소장품 100여 점이 이번 전시에 총출동했다.

지정 시기에 따라 유물을 소개한 동선 속에서 ‘나만의 보석’을 발굴할 관람 포인트를 알아봤다.

 

①드라마가 있는 유물

조선 15~16세기 보물 ‘분청사기 철화당초문 장군’. 장군은 당시 술을 담아 따르는 그릇으로 사용되고는 했다.
호림박물관을 세운 기업가 호림 윤장섭(1922~2016)은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등에 견주는 문화유산 수집가로 손꼽힌다.
우여곡절 끝에 고국 품에 안긴 유물은 특히 반갑다.
1443년 일본으로 유출된 후 타지를 떠돌다가 1971년 재일교포에게서 인수된
14세기 국보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권1-7’이 대표적이다.
 

조선 15~16세기 ‘분청사기 철화당초문 장군’은 윤장섭 선생이 특별히 아낀 유물로 여겨진다.

거친 백토(白土) 붓칠과 철화(鐵畵) 문양이 눈길을 끄는 보물이다.

이원광 학예연구실장은

“박물관 설립 후 곧장 출연했던 다른 유물들과 달리 1~2년 뒤에야 꺼내놓은 작품으로,

각별히 여겼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②지금 봐야할 작품

고려 1334년의 보물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
방대한 분량의 사경(寫經·불교 경전을 베껴 쓴 것)은 주로
도입부인 변상도(경전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까지만 전시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전부 펼쳤을 때 가로 길이 8미터에 달하는 사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기회다.
 
특별 제작한 진열대에 놓인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 그 주인공.
당시 귀한 쪽물을 들인 남색 종이에 화려한 금으로 쓴 글을 눈으로 좇다 보면
그 간절함과 엄숙함이 절로 느껴진다.
 

조명, 습도 등에 취약해 머잖아 휴지기를 맞는 불화들도 지금을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금으로 칠해 은은하게 빛나는 관음보살, 섬세한 파도와 의복 표현이 빼어난 14세기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임진왜란에도 살아남아 장엄한 매력이 돋보이는 조선 전기 불화 ‘지장시왕도’는 다음 달 6일까지만 볼 수 있다.

 

③미래 보물 후보들
최절정기 상감청자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13세기 고려의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
아직은 국보, 보물 이름표를 달지 못했으나 향후 그 가능성이 있는 유물들을 미리 살펴보는 재미도 크다.
1591년 사헌부(조선시대의 감찰 기관)에서 열린 ‘신참 신고식’을 그린 ‘총마계회도’는
비교적 수수해 지나치기 쉽지만 보물 지정 심사에 올라 있는 작품이다.
 
유지원 학예연구사는
“행사 날짜와 참석자, 소장자 등이 상세히 기록돼있어 가치가 높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외 백자 항아리 중 손꼽는 크기(높이 61cm)의 18세기 ‘백자 대호’,
담청색과 세밀하게 음각된 파도가 아름다운 13세기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도
보물 지정 심사를 밟고 있다.
 
전시는 7월 26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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