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밝고 경쾌한 하모니에 고음이 특히 매력적이었던 3인조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
마치 '톡'쏘는 콜라 맛처럼 매우 짜릿짜릿한 하모니를 구사하던 이시스터즈의 등장은 '소리의 변화'로 대변되는 60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들의 화음에 대해 작곡가 이봉조씨는 '절대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세계적인 인기그룹 '맥과이어시스터즈(McGwire sisters)'를 영향을 받아 출발했던 이들 멤버는 세살 터울의 친자매 김천숙, 김명자씨와 멜로디 이정자씨. 처음 김씨 성을 가진 멤버 둘, 그리고 이씨 성을 가진 멤버 한 명으로 결성되었다.
"우리가 데뷔하기 전에 국내엔 이미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김시스터즈가 있었어요. 김해송-이난영 부부, 그리고 이난영씨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 선생의 딸들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김씨 둘, 이씨 한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래서 우리 팀은 김씨 성이 둘이었지만 이들을 피하기 위해 이시스터즈라 이름 해 출발했지요. 이 것은 미국의 맥과이어시스터즈나 앤드류시스터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시엔 성씨를 붙여 그룹명을 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였던 것 같아요.” 얼마 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이시스터즈의 맏언니 김천숙씨(73)의 설명이다.
이들 이시스터즈는 김천숙씨의 모처럼 고국 나들이에 즈음해 지난 5월, 브라운관을 통해 오랜만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18년 만에 TV에 등장했던 지난 90년도로부터 또다시 16년만이다.
그러나 이들은 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친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들이 일반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64년 번안곡인 '워싱턴 광장'으로부터 이지만 이들의 결성은 이보다 앞서 미8군 쇼 연예인 공급업체 '화양'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먼저 친자매 중 동생인 명자씨가 수도여고를 막 졸업하자마자 미8군 가수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울대 출신의 작곡가 겸 연주인 박선길씨로부터 여성보컬그룹을 제의받는다.
그래서 가세한 멤버가 당시 철도청에 근무하던 언니 김천숙, 그리고 그의 직장 후배였던 이정자씨다. 둘은 함께 철도청에 근무하면서 '철도의 날'을 비롯한 교통부 행사 때마다 무대에 섰을 만큼 노래실력에 관한한 정평이 나있었다.
충북 영동 출신의 두 자매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던 소문난 재주꾼들. 또한 함흥 태생의 '함경도 또순이' 이정자씨 역시 한국전쟁 기간 중 '경찰어린이합창단(단장 정세문)'에서 일찌감치 활동했던 재원이다.
이들은 '화양'에 전속되면서 쇼단 '어라운드 더 월드'를 거쳐 박선길씨가 '쇼 오브 쇼' 단장으로 독립하자 전속가수로 합류, 미8군 장교클럽을 통해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인 62년, 이들은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현 KBS) 연말 톱싱거대회 연말 결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월말 예선을 거쳐 최종 결선을 벌인 이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한 한 여성보컬 팀이 연락이 두절되자 방송국 측에서 긴급히 박선길씨에게 섭외, 이들의 출전을 요청해온 것.
방송국 전속가수 자격이 주어지는 이 대회서 이들 이시스터즈는 평소 레퍼토리인 '신시어리(Sincerely)'를 불러 2위로 입상한다. 참고로 이 대회 1위는 이재성, 3위는 차도균씨가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 이시스터즈는 이미 미8군쇼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미8군 무대에서 출발한 이시스터즈, 그러나 이들의 첫 음반 취입은 63년 두 자매만으로 구성,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먼저 LKL음반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작곡가 이봉룡씨가 운영하던 음반사 LKL은 이봉룡, 김해송-이난영 부부 이름의 이니셜을 따 지은 이름.
"사실 '이시스터즈'로 이미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할 때였는데 어떤 연유로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따로 음반을 취입했었는지 기억이 어렴풋해요. 아마도 당시 절친하게 지내던 김시스터즈의 남동생들인 김보이스 멤버 김영일씨가 음반 취입을 제안했고 역시 김보이스 멤버였던 김영조씨가 곡을 만들어줘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음반만을 취입한 것 같아요" -김명자씨(김희선, 70)의 회고다.
이들은 '쇼 오브 쇼'단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중 이시스터즈 이름으로 64년, '워싱턴 광장'을 발표하며 급부상한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작곡가 박선길 단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이들의 성공에는 62년, 먼저 결혼한 언니 천숙씨의 부군 장준기(2011년 작고)씨의 외조도 한몫했다.
당시 KBS 전속악단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이들 노래에 대한 모니터는 물론, '워싱턴 광장'의 1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해외로 진출했던 김시스터즈, '아리랑 목동'의 김치켓, '세드 무비'의 정시스터즈, 그리고 '워싱턴 광장'의 이시스터즈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비로소 여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이시스터즈는 이후 번안곡인 '레몬트리'를 비롯해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서울의 아가씨', '목석같은 사내',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날씬한 아가씨끼리', '별들에게 물어봐', '모래 위에 적어본 이름' 등 창작곡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한껏 구가했다.
아울러 66년, 동갑내기 김명자, 이정자씨가 각각 결혼, 9개월 만삭의 몸이 되어 무대 활동을 잠시 접을 때까지, 불과 2년 동안 무려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했다.
출산과 함께 6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멤버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그룹을 탈퇴한다.
이 빈 자리에 65년 KBS 톱싱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장한 김상미(68)씨가 1년간의 방송국 전속가수 활동을 끝내고 새롭게 멤버로 가세했다.
이 때가 67년 2월. 이로써 이시스터즈는 김천숙, 김명자, 김상미씨로 구성된, 말하자면 이씨가 한 명도 없는 김씨들로만 구성된 '제2의 이시스터즈'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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