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히틀러-포르쉐'라고 불리는 아우토 유니온 D-Type이 경매 사상 가장 높은 가격인 1,200만 달러(약 112억 8,600만 원)에서 1,500만 달러(약 141억 750만 원)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기사가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로 불리던 명차는 '부가티 타입41 르와이얄(Bugatti Type41 Royale)'의 스포츠 쿠페였습니다. 그러나 르와이얄이 비록 가격 면에서는 밀렸지만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명차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부가티는 예술가 집안 출신의 에토레 부가티가 1909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몰샤임에서 설립한 회사로써 자동차를 이동수단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켰던 회사입니다. 이런 부가티가 만들어낸 모델 중 가장 호화스러운 최고급 차이자 부가티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모델이 바로 '부가티 타입 41 르와이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명차였던 만큼 제작동기 역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국에 한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부가티가 매우 멋있고 빠른 차를 만드는 것은 인정하지만, 최고급차라고 불릴 수 있는 자동차는 롤스로이스 뿐이라고 말을 했고 부가티는 이에 영향을 받아 르와이얄의 개발을 계획했다는 일화가 그것입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의 무시에 격분하여 최고의 스포츠카 회사 중 하나인 람보르기니를 설립한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개발 계획부터 고위 관료층과 왕족을 상대로 제작된 르와이얄은 에토레 부가티의 예술성과 차에 대한 열정을 모두 물려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부가티는 당시 존재하는 모든 고급차들을 뛰어 넘을 초호화 차량을 만들길 원했고 덕분에 차 한 대를 제작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금액이 들었는데 섀시 가격만 2,5000만 달러에 차체제작 비용만 1만 달러가 소요됐습니다. 거기에 시대적 상황마저 대공황으로 인해 순탄치 못한 바람에 1931년 당초 목표했던 25대에 훨씬 못 미치는 6대 만을 생산하였습니다.
1926년 르와이얄이 출시되자 신문에서는 르와이얄을 황금벌래(골드버그)라고 소개하였으며 광고 문구역시 귀족이과 아무나 소유할 수 없다는 문구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출시된 최초의 르와이얄은 차체 길이가 5.4m에 휠베이스만 왠만한 소형차 한대의 크기와 비슷했으며 3년 뒤 1929년에 생산된 '부가티 41타입 르와이얄 쿠페 나폴레옹'은 여기에서 1.6m 더 늘어나 7m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쿠페 나폴레옹의 탑제 엔진은 배기량 12,763cc의 직렬 8기통 엔진으로 최대출력 300hp/3000rpm의 퍼포먼스를 보유했고 최고속도이 200km나 되었습니다. 당시 시대의 기술력에 7m나 되는 전장, 평균 무게가 4톤이 넘는 무게를 가진 차의 성능이라고는 믿기 힘든 날렵함입니다.
이렇게 출시된 6대의 르와이얄은 당시 최고급 차량이었던 롤스로이스보다 3배나 높은 가격에 판매가 되었고 처음으로 팔려나간 모델은 섀시번호 41 111의 뱅더 '쿠페(Coupe de Ville, by Binder)'로 1932년 의류업자인 에스더스의 주문을 받아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쟝 부가티가 보디를 디자인한 모델로 밤에는 사용할 일이 없다고 하여 헤드라이트를 장착하지 않고 생산된 점이 특징입니다. 또한, 나머지 모델 중 3대는 스페인 국왕, 루마니아 국왕, 벨기에의 국왕이 구매를 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이 중 한대를 국내 최대 재벌 총수가 소유하였다고 알려져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부가티 르와이얄 41타입
쿠페 나폴레옹(Coupe de Ville : the Coupe Napoleon) - 섀시번호 : 41 100
1927년 제작되었지만 에토레 부가티의 졸음운전으로 망가져버려 1931년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쟝 부가티의 디자인으로 새로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프랑스 뮐루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부가티가 사망할 때까지 소유했었던 모델로 더욱 유명하며 우아한 블루 컬러와 610mm 크기의 바퀴가 특징입니다. 성능과 관련해서는 Twin-Spark Inline-8 엔진을 탑제하였으며 263.63ps/1700rpm의 최대출력을 자랑하였습니다. 휠베이스는 4,300mm이며 변속기는 수동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160km/h의 최대속력을 낼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드 보야쥐(Berline de Voyage) - 섀시번호 : 41 150
1929년 제작되었으며 베를린이란 독일의 도시 이름이 아닌 프랑스어로 세단이란 의미로써 베를린 드 보야쥐는 여행용 세단이라는 의미입니다. 나폴레옹와 함께 부가티의 소유였다가 도미너 피자의 회장 톰 모나한(Tom Monaghan)을 거쳐 약 80억 원에 국내 최대 재벌 총수에게 판매가 되어 유명해진 모델입니다. 현재는 경기도 모처에 있는 그의 개인 농장에 보관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옐로우 컬러의 도어가 특징입니다.
카브리올레 (Cabriolet, by Weinberger) - 섀시번호 : 41 121
루드비히 바인버거가 디자인하였으며 카브리올레라는 이름처럼 오픈카로 제작된 모델입니다. 1930년 요세프 후크(Josef Fuchs)라는 의사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고 1931년 완성 당시 4만 3천달러로 판매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1943년 도난 당하여 행방을 알 수 없다가 홀연히 폐차장에 나타난 이 모델을 GM의 부사장 찰스 체인(Charles Chayne)이 겨우 4백 달러에 구입하여 화제를 낳았습니다. 그 후 블랙과 옐로우 컬러를 입고 있던 것을 아이보리 컬러로 칠하고 고장난 부분을 보수하여 1958년 헨리 포드 박물관에 기부하여 전시되고 있습니다.
뱅더 쿠페 (Coupe de Ville, by Binder) - 섀시번호 : 41 111
1931년 제작되어 최초로 판매된 르와이얄 모델입니다. 12,736cc의 SOHC엔진을 장착하고 있으며 304마력, 101kg의 토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의류업자인 에스더스의 주문을 받아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쟝 부가티가 보디를 디자인한 모델로 밤에는 사용할 일이 없다고 하여 헤드라이트를 장착하지 않고 생산된 점이 특징입니다. 그후 1935년과 1939년 새로운 보디를 얹어 현재는 방탄유리를 장착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쿠페 켈너 (Coupe, by Kellner) - 섀시번호 : 41 141
1931년 제작되었으며 당시 유명한 디자이너인 켈너가 디자인을 맡으며 12.7리터의 엔진을 장착하고 차량 무게만 3.1톤이 넘습니다. 영국시장의 진출을 노린 모델이었으나 대공황으로 인해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부가티 에토레의 딸이 사용하다 55년 후인 1987년 당시 최고가인 870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그후 일본의 Meitec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크워드 리무진 (Limousine, by Park, Ward & Co.) - 섀시번호 : 41 131
르와이얄의 마지막 모델로서 1933년 제작되었으며 이름처럼 7인승 리무진으로 제작된 모델입니다. 영국의 C.W.포스터 대령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으며 부가티 모델 중 유일하게 사이드에 바퀴를 장착하고 있는 모델입니다. 현재는 쿠페 나폴레옹과 함께 프랑스 뮐루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cars & camping ca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린스피드(Rinseed) (0) | 2013.04.10 |
---|---|
[스크랩] 페라리 GG50 (Ferrari GG50 Concept) (0) | 2013.04.10 |
[스크랩] 버튼만 눌러주면 차 성격이 바뀐다? (0) | 2013.04.10 |
[스크랩] 람보르기니의 최신 슈퍼카 `아벤타도르` (0) | 2013.04.10 |
[스크랩] 경차보다 잘 나가는 3륜바이크 `V13R` (0) | 2013.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