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북유럽 자동차 20일 여행기[3] 길 따라 2만리 / 노르웨이

mistyblue 2013. 5. 1. 23:52

 

*지난번 후기에서 중간 경유지인 호팅에서의 하루를 빠뜨렸기에 바로잡았습니다.

그 밖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록이 있는 분의 보충을 바랍니다.

 

6;30[토] 호팅에서 남행 45번도로로 내려가 120km 지점의 Ostersund에서,

철도와 강과 함께 달리는 E14번으로 달려 서쪽 160km의 Storlien에서

스웨덴을 뒤로 하고 국경을 넘어서 마침내 노르웨이로 들어서서

다시 70 km 지점 Stjordal에서 E6번으로 35km 내려와 노르웨이의 첫 번째 수도였고,

지금은 세 번째로 큰 도시인 트론헤임에 도착하 여 켐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시내 관광을 했습니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관광책 에 나와 있는 유리로 만든 조형물과

운하와 그 양쪽에 있는 현대[특히 검은 색]와 고대의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도시의 북쪽 해변을 지나 도시의 외곽지역의 높은 언덕에 있는 큰 켐핑장에 입촌하여,

부부 두 쌍이 5인실

[말이 5인실이지 4평 남짓한 거실에 아래 2인, 위에 1인이 자도록 되어있는 2층 침대 하나가 있고,

판자로 칸막이가 된 2평 정도의 쪽방에 2층 침대가 있 는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을 덜 타야하만 되는

늙은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자고,

불편하지만 사생활이 보장(?)되는

쪽방에서 백구두님 부부가 묵음]에 들었습니다.

 

여유롭게 짐을 풀고 난 후, 시내를 한 번 둘러본 후,

모처럼 저녁 식사를 시내에서 사 먹기로 하고,

재학님과 예술이님이 식당을 찾는 동안 남은 사람들은

시내 중심가에서 벌 어진 자동차 경주대회 시상식 구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처에는 중국 음식점과 이태리 음식점 박에 없었고,

그 값이 너무 비싸서 결국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붙잡고 켐핑장으로 돌아왔던 일이 생각납니다.

노르웨이에서의 럭셔리한 외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백야의 빛을 받으며 켐핑장 숙소 옆에 식탁을 차려 놓고 즐긴,

포도주를 곁들인 밥과 된장국 저녁이 더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밤9시 반 경부터 밤 11시 20분 까지,

서남쪽의 시내 중심부 넘어 서산을 물들인 붉고 노란 황혼과

우리 숙소에서 약 400m 떨어진 동남쪽 계곡에서 시작된 쌍 무지개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경 험이었습니다.

또한 새벽 2시 까지 근처의 모텔 주차장에서, 첩보영화에서 보던 것 같이,

자동차 방향을 바꾸어 가며 인터넷 전파를 잡아 보려고 애썼던 일과 겨우 잡아서

몇 줄 의 글과 백구두님이 디카로 찍은 사진 두어 장을 보내던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잘 모르지만 사진 전송에는 디카가 유리한 것 같았습니다.

 

7;1[주일] 아침 식사와 떠날 준비를 다 한 후에, 저의 부부와 제 누이 상도동 김 영옥님,

재학님, 아카데미님, 현동님이 제 방에서 주일 아침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분들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예배를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성경 마가복음 10;41-45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 은 섬김을 받으려는데 있지 않고 도리어 섬기려는데 있었다는 것과 그

러기 위해서 자 기 목숨도 내놓는 남다른 자기희생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위대한 섬김이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고,

제일 많이 희생하는 사람이 제 일인자임을 기 억하고,

남은 여행 중에도 섬기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이 되되,

예수님처럼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자는 취지의 설교를 했습니다.

내심 마음고생을 하던 재학님이 깨달음 과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다고 말해 주어서

모두가 함께 위로를 받았습니다.

 

켐핑장을 출발하여 시내 중심에 있는 니다로스 성당을 찾았습니다

[트론헤임의 옛 이름 이 니다로스였다고 함].

 예배하는 사람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 보이는 이 성당은

건물 의 외형도 매우 낡아 보이는데다가,

정원에 가득한 유명한 이들의 무덤 비석과 조각들 때문에

차분하다 못해 생명력을 잃어버린 북유럽 교회의 오늘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온 아 내의 말대로

[저는 길에 주차한 자동차 지키느라고 성당의 외부만 보았습니다]

주교들 이 살았었다는 궁궐 같은 집들도 관계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내 관광 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베르겐과 피요르드를 향해 남행 E6번 으로 들어섰습니다.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 고도는 100km 남쪽의 Oppdal을 지나면서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75km 지점의 Dombas에서 남쪽으로 40km 지점인 Nord-sel에서 작은 길로 빠져나와

서행 15번 도로로 50km 지점의 Lom에 이 르러,

해발 2.000m 이상의 요튼헤임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중앙선이 없는 55번 도로로 들어서자

 Dombas에서 부터 보이던 눈 덮인 산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재학님이 거의 하루 종일 내게 운전을 맡기고

사진 찍기에 매어달릴 정도로 아름답고, 신기한 볼거리가 많은 코스였습니다.

Lom에서부터 Turtagro에 이르는 70km의 오르막길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높은 고원 의 눈 위를 달리는 스키어들의 그림과 같은 모습들,

그 높은 고원에 이루어진 파란 색 호수들,

스키어들을 위한 아름다운 숙박 시설[통나무 호텔],

우리의 자동차 보다 더 두터운, 길 양쪽의 녹지 않은 눈 벽이 계속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그 풍경의 일부분은 상도동 김영옥님과 재학님의 사진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고원 길 70km 지점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Fortun 근처에서

[여러분이 이미 사진으로 보신]만년빙하와 폭포를 보고 난 후 부터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꼬불꼬불한 내리막길이 시작되면서

우리의 눈 밑에 전혀 다른 새로운 경치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지도에 의하면 Skiolden에서 시작되어 70km 지점의 Songdalr까지 이어지는

Songne 파요르드의 상류지역인 Lustla피요르드 가 틀림이 없었습니다

[피요르드 여부를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음].

 

비록 조심 운전을 하느라고 핸드캠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루스트라피요르드를 만드 는

강과 같은 호수, 호수 같은 강

그리고 양쪽 산언덕 위에서 쏟아지는 크고 작은 폭 포들과 아련한 안개구름들,

어떤 것은 호수에 떠있는 듯하고

또 어떤 것들은 그 주변 의 초록 빛 언덕에 기댄 듯, 매어 달린 듯이 지어져 있는

그림과 같은 집들과 흰색 통 나무 교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기막힌 조화와 아름다움에 숨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을 멈추고 단 이틀이라도 이런 곳에서

눈만 뜨고, 숨만 쉬고, 물만 마시며 살아도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떻 게 사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다음 팀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 하루라도 그렇게 해 보기를 바랍니다.

중간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은 이미 사진으로 보셧을 것입니다.

 

지난 일이지만 Songne 피요드르의 중심으로 보이는 Songdal에서

오늘의 목적지 인 Forde로 가기 위해서 55번 도로를 벗어나서,

8km 전후의 긴 터널이 두 세게 있는 북행 5번 도로를 택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송그달에서 계속 55번으로 송그날피요르드를 왼쪽으로 끼고 내려가면서 피요르드를 감상하고 

30km의 Hella에 서 페리를 타고[무료로 알고 있음] 건넌 후 13번 도로로 Forde로 가는 것이

송네피요 르드를 아쉬움 없이 다 보는 코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물론 이튿날 서로 의론하여 구드방겐에서 뢰르달에 이르는

3시간의 피요르드 페리를 이용하여 아쉬움을 채울 수 있었지만

다음 팀에서는 참고하기 바랍니다.

 

7;2[월] Forde에서 남행 E39번으로 150km 내려와 비로소 베르겐에 도착했습니다.

인근에 골프장과 갖가지 시설이 있는 별 4개의 대형 켐핑촌에 입촌했습니다.

짐을 풀고 점심시간 무렵 시내관광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어시장에서 작은 새우와 짭 잘한 훈제연어 한조각과 채소를 넣은,

8천 원짜리 햄버거 비슷한 것 하나로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하나처럼 돈이 아까워서 먹었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어시장에서 출장을 나왔다는 남자 두 사람과 배낭여행 중인 모녀도 만났습니다.

갈 바를 모르고 헤매는 것 같은 남자들과 모녀의 당찬 모습이 대조적이었습니다.

 

1시간의 자유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어시장 근처에 있는 중국식당의 음식 값도 알 아보고

[제일 싼 면 종류가 만 오천 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어서 인포메이 션에 들렀습니다. 규모가 아주 크고 자료가 풍부했습니다.

저는 내일의 코스를 정하 는데 도움이 될 피요르드에 관한 지도와 책자를 받았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손짓 발짓으로

베르겐에 있는 한인 교회나, 한국인 공동체 그것도 아니면 전화 번호라도 알 수 있겠느냐고 묻자,

모른다고 하면서 I AM SORRY를 연발하던

중년의 여자직원의 안타가워 하던 표정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이그의 집을 물었더니 20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서 포기하고,

포구 오른 쪽으 로 쭉 늘어선 삼각형 지붕의 원색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브리겐디스트릭트와 킹 하콘 성과 오래된 루터교회당,

그리고 목조 건물의 뒤쪽을 둘러보고 약속한 케이불카 승강장에서 함께 풀뢰엔산에 올라갔습니다.

 

풀뢰엔산에서 우리들은 1시간의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흩어졌는데,

뒤따라 온 일본 관광팀은 30분을, 한국 관광팀은 15분을 주는 것을 보고,

자동차 여행만의 여유로움 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풀뢰엔 산은 올라가 봐야 할만한 곳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30분이 적당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어시장에서 산 연어 회와

재학님이 흥정해서 6유로에 얻은 연어 머리 와 뼈로 만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매운탕으로 배를 채우니 모두가 기분이 한껏 UP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 접속을 위해 백구님이 애쓰는 동안 현동님,

재학님에게 베르겐에서의 하루 를 줄이고

몇몇 회원이 아쉬워하는 송네피요르드의 빠진 부분을 보기 위해서 내일 떠나되

가는 길에 구드방겐에서 페리를 타고 래르달에 이르는

송네피요르드를 감상 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모든 회원이 피곤한 상태라는 것과 내일 갑자기 숙소를 구한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당연한 걱정 때문에 반대한 이도 있었지만,

재학님과 현동님이 결단을 내려 일정을 변경하기로 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자동차 여행의 자유 가운데 하나가 때에 따라서는

정해진 일정과 코스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7;3[화] 이튿날 아침 E16번으로 동북행하여 80km 지점의 Voss를 지나35km 지점에 있는

우리들이 모르고 있었던, Stelheim 호텔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비록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호텔 뒤마당의 전망대에서 보는

눈 덮인 산과 거기서 쏟아지는 폭포 들, 여기저기 걸린 안개와 구름들,

저 멀리 보이는 구두방겐으로 가는 한 가닥 길과 아름다운 집들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경치가 너무 신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때에 맟춰 재학님이 4만 2천 원짜리를 3만 5천 원으로 할인하여

호텔의 뷔페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모두 얼굴에 행복 꽃이 피어났습니다.

구두방겐에서 숙소 정하는 것을 위임받은 저와 현동님은,

현동님은 페리의 종점이자 50km 앞에 있는 뢰르달에 자동차로 먼저 가서 숙소를 예약하고

남은 사람은 페리로 가기로 합의를 하고 재학님에게 귀뜸했더니 동의해 주었습니다.

*현동님은 페리 피요르드 구경을 못하는 대신, 구두방겐에서 뢰르달 사이에 있는

세 계에서 제일 긴 24,5km의 터널을 운전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오후 6시,Kaupanger를 들려 뢰르달로 가는 페리를 타고

 3시간을 송네 피요르드를 구 경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배를 가까스로 타는 헤프닝도 있었 습니다.

그러나 정작 배에서 한국말 안내 방송이 나와서 우리를 놀래게 했습니다.

 

페리에서 보는 피요르드는 출발해서 30분 정도가 제일 장관이었고,

남은 2시간 반은 그저 그랬습니다.

비바람과 이미 너무 좋은 것을 많이 본 탓이 큰 것 같았습니다.

세 시간의 항해 끝에 뢰르달에 내리자 현동님이 구해 놓은 작은 캠핑장에 들어가서

간 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로서는 어제에 이어, 이번 여행 중에 가장 행복한 날에 속하는 하루였습니다.

 

*노르웨이까지의 우리의 여행은 무엇인가를 향하여 숨 가쁘게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지내온 길 모두가 우리의 목적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3분의 2를 지나면서도,

지금까지의 여행은 무엇인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새로운 나라와 도시, 문명의 자취와 아름다운자연을 보면서도,

'내가 보려고 했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에 있다’는 그런 기대를,

저뿐 아니 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기분을 들뜨는 하는 그 무엇의 정체는 바로 노르웨이였습니다.

특히 피요르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한 그러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곳이 노르웨이였지만,

다음 팀은 가는 모든 곳, 심지어 가다가 잠간 머무는 쉼터 역시 목적 지라는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고, 쉬면서 즐기는 여행을 하기를 바랍니다.

 

*일반 여행가들과 달리 시계반대 방향으로 코스를 잡아,

노르웨이를 마지막으로 잡은 것은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 때문이었겠으나 상트를 생략하는 경우에도

다음 팀은 이 코스를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사진찍기; 1980년 처음 미국 방문 길에,

경유지인 동경 면세점에서 작은 올림푸스 카메라를 구입하여,

 40일 동안 찍은 2백 여장[필림 값 때문에]의  사진 정리하다가 만든 것이

한 곳에서 3장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캬메라 없이 30년을 잘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에 신천지님, 행복님, 꿈나무님, 영옥님 등이

 '그 한 장'을 얻기 위해 수천번의 샷타를 누르느 진지한 모습에서 받은 감동과

그러한 열심의 결과 얻은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디카 하나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행복님이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최신형 디카를 구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탄을 하던

  내가,

  너무나 사소한 것 때문에

  내심으로 신음하는 것이

  그랬습니다.

 

손가락 따라 쓴 글, 줄일 시간이 없어서 길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둘다 ]김 훈 + [순신] 신 순이

 

출처 : 중년의 행복여행
글쓴이 : 김훈(둘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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