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집기 경주여행 18. 나머지 경주 (황룡사,백률사,여근곡,법흥왕릉 등)
짜집기 경주 여행을 일단 18회로 마치고자 한다.
내가 찍어 놓은 사진이 충분치 않음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 이유는 그동안 다녀왔던 다른 곳에 대한 사진들이
자신들은 언제 글로 옮겨지느냐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아서 주제를 좀 바꾸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진만 달랑 올려도 되겠지만 굳이 시덥지 않은 글이나마 같이 엮는 것은 나름대로 여러가지의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느끼는 바들을 같이 공유하고자 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다.
황룡사, 분황사
황룡사 - 지금은 허허 벌판에 건물터들과 주춧돌만 남아서 옛 모습이 어떠했으리라는 상상력만 자극하는 곳이다.
진흥왕 때 건축을 시작해서 선덕여왕 때 완성시켰다고 하니 4대와에 걸친 대역사이기도 했고
백제의 기술자를 모셔올 정도로 국제적인 사업이기도 했다.
요즈음은 박물관에 황룡사의 모형을 만들어 놓아서 역사적인 실재(實在)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체적인 모습을 보면서 상상을 할 수는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사진의 리스트에는 없는 것이 아쉽다.
황룡사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것들을 다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백제의 목탑기술자 아비지가 건축한 높이가 80미터에 달했다는 황룡사 9층 목탑과
목탑과 함께 몽고의 침입시에 소실된 장육존상에 관한 이야기는 꼭 남겨야 할 이야기이다.
그리고 20,000평이 넘는 대규모의 절터, 182cm에 달하는 치미를 보면 건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만일 남아 있었다면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어떤 목탑보다 웅장했을 9층 목탑.
주춧돌과 건물터를 둘러보다 보면 여러가지의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곳이 바로 황룡사이다.
황룡사지 2003년
황룡사 9층 목탑지
황룔사터 1988년 사진...
분황사 :1988년
분황사 앞 당간지주 :1988년
황룡사에서 본 분황사 : 2003년
사면석불,백률사
백률사
우리 민족은 종교성이 강한 민족이라고들 한다.
무슨 종교든 이 나라에 들어 오면 일단 발붙이기 위해서는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한다.
그러나 일단 순교의 피가 이땅을 적시면 그 종교가 전 국민을 휩쓰는 것을 보게 된다.
천 몇백년 전의 불교가 그랬고, 유교도 성리학이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하는 사상과 종교가 되었고
근세에 들어와서 들어온 천주교도, 기독교도 그렇다.
종교는 순교의 피로 자란다. 그런데 그 순교는 많은 경우 엄청난 기적을 동반하는 것이다.
내가 믿는 기독교도 그렇고 그 점에서는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 불교가 들어올 당시 순교했다는 기록은 읽어본 기억이 없으나
삼국 중에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인 신라에서만은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고
이차돈의 순교와 기적을 계기로 불교가 공인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순교의 현장이 바로 소금강, 백률사이다.
불교의 전파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조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는 처음 눌지왕 때에 고구려승 묵호자에 의해 일선군(선산)에 사는 모례라는 사람에게 전해졌다.
눌지왕의 왕녀가 병으로 위독하게 됐을 때 묵호자가 낫게 하였다.
그 후 비처왕(소지왕)때 아도라는 화상이 시종들던 사람 3인과 함께 모례의 집으로 왔는데
아도는 몇년 후에 죽고 시종 3인이 경률을 강독하니 신도가 왕왕 생겼다.
법흥왕도 불교를 일으키려 했으나 신하들이 반대하여서 이차돈이 나선 것이다.
처형한 이차돈의 목에서 흰 피가 나온 것을 계기로 신하들이 다시는 불사를 반대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3권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온다.
불교를 잘 모르는 내가 이차돈의 죽음이나 백률사의 유래 등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것은 없다.
백률사와 그 앞의 사면석불, 사진도 1988년에 찍은 것 서너장에 지나지 않는다.
사면석불 :1988년
백률사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1988년 -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구황동 탑지
동천동 사방불 탑신
미탄사지 3층석탑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
월정교지
오릉 안내판
남방식 지석묘
여근곡
여근곡에 대해서는 2003년 추석 때 부산, 울산을 다녀오다가 들렀는데 당시에 아래와 같은 사진과 글을 남겼었다.
'애시당초의 계획은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서 울진이나 아니면 동해시에서
정선으로 넘어올 생각이었으나 태풍때문에 내륙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울산에서 경주로 국도를 탔다.
열 번 이상 가 본 경주이기 때문에 경주는 그냥 스치고 건천 근방에 있는 여근곡을 향했다.
경주 인터체인지 근방의 고속도로는 지체, 서행의 반복이라는 교통방송을 들으니
국도를 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근곡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덕여왕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여체의 비밀스러운 부분과 꼭 닮은 지형이라는 곳에 대한 호기심은
이곳을 가보고 싶은 곳중의 하나로 항상 마음에 남아 있도록 했던 것이다.
태풍이 미리 몰고온 비는 억수로 내린다.
그런데 겨우 찾아간 여근곡에는 겁이 날 정도로 거센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멀리서 그런대로 윤곽이 보이던 그곳이 아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근곡은 쉽사리 은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심산인 것 같았다.
차를 세워 놓은 옆의 개울물이 겁나게 불어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돌아 나왔다. 사진은 찍었지만 전혀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이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갈 작정이다.'
바로 이 사진이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못되는 2003년 개천절 연휴.
경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서 얻은 여근곡 사진...
법흥왕릉
경주는 언젠가는 한번 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사람살이가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짜집기 경주여행...
18회를 마지막으로 미완인 채 끝낼 수 밖에 없다.
경주에서 돌아보지 못한 곳, 언젠가 한 번은 구석구석 헤집고 다녀야 할 곳들이다.
그리고 사진이 쌓이면 이 시리즈를 근사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 블로그 '옛정자 그늘.'
http://blog.daum.net/oldpavilion
파빌리언
스크랩만 허용합니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짜집기 경주여행 16. 노동리 고분군 - 유네스코 문화유산 (0) | 2013.05.04 |
---|---|
[스크랩] 짜집기 경주여행 17. 노서리 고분 - 유네스코 문화유산 (0) | 2013.05.04 |
[스크랩] 쾰른 - 대성당의 위용과 스테인드글라스 (0) | 2013.05.02 |
[스크랩] 독일 밤베르크의 여명-유네스코문화유산 (0) | 2013.05.02 |
[스크랩] 로쉬(로르슈)의 수도원과 알텐 뮌스터(Abbey and Altenmuenster of Lorsch) (0) | 2013.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