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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MOTO GUZZI HISTORY - 모토구찌 히스토리, 세계최초의 윈드터널 구축

mistyblue 2013. 11. 1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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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구찌는 세로형 V트윈이라는 독특한 엔진 레이아웃과 모토구찌만의 정통성으로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있는 모터사이클 메이커이다. 카를로 구찌와 엠마뉴엘 비토리오 파로디 그리고 파로디의 아들인 조지오가 ‘비행의 지상 실현’을 꿈꾸며 창립한 모토구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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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토 구찌 설립 당시의 문건

 

모토구찌의 탄생
모토구찌는 1921년 금속산업으로 유명한 ‘만델로 델 라리오’에 터를 잡고 3명의 창업자와 함께 그 전설을 시작한다.
창업 멤버는 모두 모터사이클 마니아로, 카를로 구찌(Carlo Guzzi)와 그의 전우이자 파트너인 에마뉴엘 비토리오 파로디(Emanuele Vittorio Parodi) 그리고 그의 아들인 조지오(Giorgio Parodi)였다. 당시 모터사이클 시장의 개척율은 제로에 가까웠으며, 사람들은 보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모터사이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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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로 델 라리오에 위치한 모토 구찌의 초기 공장


당시의 모터사이클은 시동을 거는 것조차 하나의 기술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결국 모토구찌는 이와 같은 대중들의 요구에 맞춘 실용적인 머신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카를로 구찌가 회사를 설립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가 당시의 상황과 잘 들어맞은 결과였다.
모토구찌의 첫 번째 모델은 1919년에 대장장이인 조지오 리파몬티(Giorgio Ripamonti)의 도움으로 탄생했다. 창립자의 이니셜을 딴 G.P(Guzzi-Parodi)로 알려진 최초 모델은 500cc 싱글 엔진에 기통당 4밸브의 OHC 방식이었으며, 12마력의 파워와 100km/h의 속도를 마크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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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구찌의 첫 번째 모델인 G.P

이와 같은 결과는 수작업 및 고급 파츠를 채택했기 때문이었지만, 그 결과 과도한 생산비용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후 회사의 정식 명칭인 모토구찌(Moto Guzzi)란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비행기 사고로 죽은 파트너 지오바니 라벨리(Giovanni Ravelli)를 기념하기 위해 독수리를 아이콘으로 선택하게 된다.

 

‘노르말’과 첫 번째 승리

모토구찌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것은 레이스에 출전하면서부터이다. 1921년에 탄생한 노르말(Normale)은 최대출력 8마력에 최고속도 80km/h 마크했으며 리터당 30km라는 연비를 기록했다. 이런 엔진 특성 이외에도 노르말의 특성은 후일 다른 제조사들이 표준으로 채택할 정도로 우수했다. 모토구찌는 이로 인해 국제적 관심을 얻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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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구도 멘타스티의 유로피언 챔피언십 참전 모습

 

한편 당시의 시장 상황은 모터사이클을 실용적인 용도보다 레이스 참전을 목표로 제작하는 경향이 강했다. 모토구찌는 당시 성행했던 경기인 밀라노-나폴리 간 랠리에 2대의 차량을 참가시킨다. 첫 출전에서는 20위와 22를 마크했지만 우승의 기쁨은 곧 다가왔다.

1921년 9월 25일, 두 번째 참전인 타가 플로리오 레이스에서 모토구찌의 지노 핀찌(Gino Finzi)는 첫 우승을 차지한다. 첫 번째 우승은 모토구찌의 명성을 세계에 알렸으며 노르말의 생산을 증가시켰다. 그해 수작업으로 제작된 노르말은 8,500리라에 17대나 팔렸다.

그 때부터 모토구찌의 성장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전 세계의 라이더들이 선망하는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되었으며, 1924년 9월에는 구도 멘타스티(Guido Mentasti)가 오리지널 프로토 타입의 진화형인 C4V를 타고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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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오모보노 테니(Omobono Tenni)의 투어리스트 트로피 우승 모습

이후 모토구찌의 만델로 델 라리오 공장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졌다. 생산은 두 배로 증가했으며, 회사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승리의 행진은 1957년까지 멈춤 없이 계속되었으며, 14번의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과 11번의 투어리스트 트로피를 획득한 후 모토구찌는 레이스에서 철수하게 된다.

 

현대적인 스타일로의 전환

레이스에서의 성공은 기술의 혁신을 낳았으며 진화는 계속됐다. 1939년에는 4단 기어변속장치를 장착한 에어원 250(Airone 250)이 탄생한다.

에어원250은 프레시아 아쭈라(Freccia Azzurra)에서 진행된 과급장치에 관한 실험을 통해 동시에 1Hour-1Km(1시간에 얼마를 이동하는지와 1킬로미터를 몇 초에 주파하는지의 기록) 기록을 수립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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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급 장치에 관한 실험이 이루어진 에어원 모델의 투어링 버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대중의 스타일과 트렌드는 변했다. 모터사이클은 더 이상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레이서)을 위한 탈것이 아닌 운송수단으로의 통근차량을 의미했다. 이러한 용도의 변화는 디자인에 있어 건설적인 전략을 반영했다. 저출력이지만 경쾌함을 유지하며 저렴한 경제성과 실용성이 요구됐고 모토구찌는 그 대안으로 첫 번째 트윈 엔진을 장착한 구찌노 65(Guzzio 65)를 시장에 내놓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첫 출시 가격이 80,000리라였는데 이것은 인플레이션의 결과 두 배로 급등했다. 하지만 구찌노65는 3년 동안 50,000대 이상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구찌노 65를 시작으로 모토구찌는 당시 모터사이클의 개념을 바꾸기 시작한다. 편안함, 신뢰성 그리고 내구성으로 대표되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그들만의 기술은 모터사이클을 운송수단이라는 간단한 의미에서 즐거움의 공유라는 현대적인 스타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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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km/h란 대기록을 세운 Guzzi 500 Otto Cilindri의 피트 모습

 

모토구찌가 시장의 선구자가 되기까지엔 카를로 구찌 이외에도 연구진의 역할이 중대했다. 1950년, 모토구찌의 시대를 앞서가려는 경향은 세계 최초로 윈드 터널을 구축한다. 이는 1:1 스케일 프로토 타입의 테스트 목적이었다. 윈드 터널에서의 테스트와 모토구찌 연구진의 기술력은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80마력의 파워와 285km/h의 최고속을 기록한 Guzzi 500 Otto Cilindri를 탄생시켰다. 결국 모토구찌는 어떤 레이스에서나 우승 트로피를 독점했으며 이탈리안 모터사이클 시장의 버팀목으로 우뚝 서게 된다.

 

미국을 개척하다

1950년대 초반 모토구찌는 24,000㎡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에 1,5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는 등 회사를 팽창시킨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모터사이클 산업은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경제 부흥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터사이클보다 소형 자동차를 선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아트(Fiat) 500이 400,000리라 밖에 안했으므로 자동차의 소유는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었다. 결국 모토구찌는 1967년 2월 세임(SEIMM)社에 양도된다. 이 시점부터 모토구찌의 생산 전략에 180° 변경이 가해진다. 세임社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판매를 증가시킬 목적으로 최상급 모델이 아닌 저가형 머신에 초점을 둔 전략을 발표한다. 결국 세임社는 생산비를 줄임으로서 큰 성과를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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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구찌의 아이콘인 가로 배치형 V형 엔진의 시작을 알린 V7 모델.

 

이와 동시에 연구진은 모토구찌의 상징이 된 90° V-Twin 엔진의 개발을 착수하고 703cc의 구찌 V7을 탄생시켰다. 구찌 V7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이는 곧 750cc V7 스페셜(Special)의 탄생을 낳았다. 나아가 V7은 우수한 접지력과 매력적인 모던스타일을 지닌 전설의 V7 스포르트(Sport)로 거듭났다.

모토구찌의 이러한 테크놀러지와 이탈리안 스타일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모토구찌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캘리포니아(California)와 앰배서더(Ambassador) 모델의 제작에 착수한다. 이 파워풀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의 이탈리안 크루저들은 영화와 광고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수천 명의 만델로 이글(Mandello Eagle) 팬에게 열정을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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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겨냥해 생산된 GT850 CALIFORNIA 모델.

 

후일, 90° V-Twin 엔진 디자인을 적용한 구찌 V35와 V50은 시장에 큰 파장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전반에 걸쳐 모토구찌는 새로운 디딤돌을 마련한다. 한편 아메리칸 모델의 출시와 더불어 엔듀로 모델들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의 생산라인은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와 하이 퍼포먼스 머신에 치중되었다.

왜냐하면 이 두 영역의 모터사이클이 제공하는 투어러로서의 편안함과 레이서로서의 퍼포먼스가 모토구찌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란 투리스모로서 가장 유명했던 모델은 캘리포니아였으며 이외에도 르망(Lemans), 데이토나(Daytona), 센타우로(Centauro) 그리고 스포르트(Sport)1100 등은 만델로 델 라리오의 전통을 계승하며 많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 모델들은 모두 도립식 포크를 장착했는데 포크 디자인은 카를로 구찌가 에어원에 채택한 디자인과 같은 것으로 모토구찌의 본질인 디자인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1980년대를 주름잡던 이 머신들의 캐릭터와 스타일은 신형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그리고 V11 Sport에 의해 1990년대에도 유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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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1 Sport Rosso Mandello 모델은 모토 구찌의 전통과 혁신이 믹스된 기념비적 모델이다.


모토구찌는 1990대를 전통적 디자인으로의 귀환과 리스타일링 그리고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통한 현대적 요구에 맞추기 위한 적응 기간으로 삼았다. 1988년에 구찌 베넬리 모토 주식회사(G.B.M.S.p.A.)를 설립하기 위해 프라텔리 베넬리社와 세임社가 합병하고 1996년도엔 운영진의 변경을 통해 회사명을 다시 모토구찌로 결정한다. 그러나 1998년 말, 모토구찌는 경영상의 곤란함을 겪고 다른 모터사이클 회사들과 기술적인 협의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2000년 4월 14일, 아프릴리아가 모토구찌를 인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도장이 찍히게 된다.

새로운 장의 시작

모토구찌는 혁신과 전통 사이에서 V11 Sport Rosso Mandello를 탄생시켰다. 인터모트 2000에 등장한 이 모델은 모토구찌 80년 역사의 매력과 아방가르드 테크놀러지를 가진 한정판 모터사이클이었다. 이후 작업은 더 정교한 시장의 수요에 적응하기 위해 외관과 기술 모두를 동등하게 고려하여 진행되었다. 모토구찌의 정신을 표현하는 민첩한 브레바750(Breva750 i.e.), 호전적인 그리소(Griso) 그리고 매우 스포티한 MGS-01 Corsa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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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구찌 전통의 가로 배치 V형 엔진을 장착하고 슈퍼 스포츠를 자처하고 있는 모델인 MGS-01 모델도 출시되었다.

 

2004년 12월 28일과 30일 사이, 아프릴리아社와 모토구찌社간의 최종협약서에 서명이 이뤄지고 합병은 결론을 맺는다. 이는 유럽의 이륜차 선두 그룹의 탄생을 의미했다.(유럽 이륜차 시장의 24% 점유, 이탈리아 시장의 35% 점유, 1,510억 유로의 자금 회전력과 연 6십만 대 이상의 생산, 6천명의 직원들, 8개의 제조공장과 50개국 이상으로의 수출력) 2005년 3월 3일, 다니엘 반디에라(Daniele Bandiera, 47세로 실력을 인정받는 기술자이며 알파 로메오(Alfa Romeo)와 피아트(Fiat) 그룹 고위 자리에 재직 중이다.)는 회사의 전환과 회복을 목표로 모토구찌社의 최고 경영자로 임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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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VA V1100모델은 모토 구찌 스타일의 재해석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로부터 21일 후인 24일 밀라노에선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역사의 중요한 획을 그을 브레바 V 1100(Breva V 1100)이 데뷔한다. 브레바 V1100은 모토구찌 스타일을 재해석했다는 의미를 갖는 모델이다. 물론 기술적인 특성도 강화되어 엔진 등 많은 부분에 걸쳐 발전이 이뤄진 브레바 V 1100. 그러나 이것은 스릴 넘치는 모토구찌의 역사 속 한 부분의 시작일 뿐이다.

이후 모토구찌는 과거 자신들이 구축해왔던 영역을 탈피하려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스포츠성을 극단적으로 향상시킨 MGS-01을 출시해 전세계의 모토구찌 마니아들을 놀라게 했으며, 투어러인 노르게를 발표해 경쟁 메이커들을 충격에 몰아넣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과거의 모토구찌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듀얼 퍼퍼스 모델인 스텔비오가 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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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7 CLASSIC의 출시는 파격적인 행보 속에도 모토 구찌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한동안 모토구찌의 이와같은 파격적인 행보로 인해 그들만의 정통성을 잃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V7의 복각판인 V7 클래식을 출시하며 전통과 첨단을 양립시킨 메이커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모토구찌 탄생 88년, 비행의 지상실현이라는 그들의 목표는 이루어졌으며, 전통을 기반으로 한 첨단 메이커로의 발전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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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토 구찌의 설립자인 카를로 구찌(CARLO GUZZI)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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