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레라는 어떤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을까.
스쿠터 최대 배기량, 최고 마력을 자랑하는 GP800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혁신적인 삼륜 구조의 스쿠터 푸오코(Fouco), 달리기 성능을 극대화한 러너125(Runner125)등의 저마다 강렬한 이미지의 스쿠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 질레라다.
가장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스쿠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스쿠터 제조사의 이름은 완전히 정반대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1950년대 WGP(World Grand Prix, 현 모토 GP의 전신)를 휩쓸다시피 하고, 불과 얼마 전인 2008년 모토GP 250cc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MV 아구스타 이전의 최강자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09년 ‘쥐세페 질레라(Giusepe Gilera)’에 의해 설립된 질레라는 이 당시의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그러했듯 자전거에 엔진을 얹은 형태의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며 출발했다. 질레라 최초의 모터사이클 ‘VT317’이 탄생한 것도 이 때다.
타 모터사이클 제조사의 초기형 모터사이클과 질레라가 큰 차이를 보인 점은 프레임의 두께를 보다 두껍게 보강하고, 동시대의 모터사이클 중 가장 큰 사이즈의 타이어를 장착한 점이다.
VT317은 배기량 317cc의 4스트로크 단기통 엔진을 장착해 약 7마력을 냈다. 변속 기어 없이 엔진과 리어 휠을 가죽 벨트로 연결해 구동하는 방식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질레라의 엔진은 발전을 거듭한다. 기존의 푸시로드 방식에서 사이드밸브(플랫헤드 엔진) 방식으로 변경된 엔진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오버헤드밸브 방식을 적용하기에 이른다.
이런 엔진의 개발과 성숙 단계에서 질레라는 모터사이클 세계 최고속을 경신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배기량 500cc, 4기통 오버헤드 엔진에 슈퍼 차저를 장착한 ‘론디네(Rondine)’는 1936년 최고시속 274km를 달성해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질레라의 이름을 드높였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모터사이클 산업은 그 이전보다도 크게 발전했다. 보다 빠르고 강력한 모터사이클을 겨루는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바로 이 때다. 질레라는 1949년 WGP(World Gran Prix)의 출범과 함께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WGP 원년 챔피언십을 차지하는 것은 놓쳤지만, 이듬해인 1950년 질레라는 시즌 챔피언을 차지하고 만다. 움베르토 마세티(Umberto Masetti)가 탄 ‘500 포-실린더(500 Four-cylinder)’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1951년 질레라는 맨 섬 투어리스트 트로피(Man Isle Tourist Trophy)의 숙적인 노튼(Norton)에게 우승을 빼앗긴다.
당시 노튼의 모터사이클은 단기통 엔진으로 51마력을 내는 것이 고작. 이는 질레라의 500 포-실린더의 71마력에 비하면 한참 뒤처지는 성능임에도 질레라가 패배하고 만 것이다.
절치부심한 질레라는 이듬해 다시금 움베르토 마세티가 챔피언십을 차지하고, 1953년엔 1951년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영국인 라이더 지오프 듀크(Geoff Duke)를 영입한다. 이후, 지오프 듀크는 1953년부터 1955년까지 3년 연속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57년 리베로 리베라티의 우승을 마지막으로 질레라는 이 자리를 MV 아구스타에게 넘기고 WGP를 떠났다. WGP에 참전한 8년 동안 6번의 챔피언십을 차지하고, 총 44승을 거둔 후였다.
피아지오 합병 이후 오프로드 노려
1969년에 이르러 질레라는 피아지오 그룹에 합병되며 미들급 이하의 일반 시판용 모터사이클 생산에 전념한다. 1980년대에 들어 더블 오버헤드 캠샤프트(DOHC)를 적용한 단기통 엔진을 생산하며 그 역량을 더욱 늘려나간 것은 물론이다.
질레라 최초의 DOHC 엔진은 배기량 350cc와 500cc가 먼저 생산되었으며, 이후 600cc 이상을 생산하게 된다. 사실 질레라는 WGP에 참전했던 1950년대에 이미 식스데이 트라이얼과 같은 오프로드 대회를 통해 경험을 꾸준히 축적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750cc 급 엔진을 개발하여 엔듀로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는 말 그대로 절대적이었다. 1990년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승리를 일궈낸 것은 물론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랠리 오브 더 파라오(Rally of the Pharaohs)에서도 승리를 거둬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질레라는 온로드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또 다른 혁명을 일궈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CX125’가 등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모터사이클 디자인계의 아르마니라고 불렸던 질레라의 페데리코 마르티니(Federico Martini)의 획기적인 디자인이다.
프론트 서스펜션과 리어 스윙암 모두가 모노 타입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인 디자인은 기존의 모터사이클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었다.
마치 콘셉트 모터사이클을 그대로 시판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CX125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기도 했다. 수랭식 124.3cc의 2스트로크 단기통 엔진은 10500rpm에서 약 29마력을 낼 수 있었으며, 건조 중량은 120kg밖에 되지 않았다.
레이스의 혁신을 계승한 스쿠터를 만들어내다
1993년 질레라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피아지오 그룹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방향성을 설정한다. 이런 방향성 하에 개발을 시작해 1997년 탄생한 스쿠터가 바로 ‘러너(Runner)’다. 러너는 질레라가 추구했던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0년 데뷔한 ‘DNA’는 스쿠터 시장에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을 보는 듯한 DNA의 디자인은 스포티한 스쿠터를 지향하는 질레라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일반 매뉴얼 모터사이클과 흡사한 라이딩 포지션이 적극적인 스포츠 주행을 가능하게 했다.
질레라는 배기량 500cc급 맥시 스쿠터인 ‘넥서스(Nexus)’를 출시한 이후, 동급의 맥시 스쿠터의 잠재력을 꿰뚫어봤다. 그리고 2006년 세계를 놀라게 한 현존 최대 배기량의 스쿠터인 ‘GP800’을 내놓는다.
배기량 839cc의 V형 2기통 수랭식 엔진을 탑재한 GP800은 등장과 동시에 스쿠터 최대 배기량과 최고 시속이란 타이틀을 통시에 질레라에게 안겨줬다. 또한 GP800과 함께 등장한 ‘푸오코(Fuoco)’는 피아지오의 혁신적인 삼륜 스쿠터 MP3 시리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열정은 계속된다
100년에 걸친 역사에서 질레라는 가장 혁신적인 모터사이클을 만들려는 그들의 열정을 모터사이클에 투영하고 있다. 긴 세월동안 질레라가 만들어온 모터사이클들은 온로드 모터사이클을 비롯해 오프로드, 스쿠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존심과 열정이 있었다.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동안 살아남는 것은 물론 그 열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8년, 모토GP 질레라가 또 다시 챔피언십을 일궈낸 것 역시도 우연일 수 없다. 이런 결과는 그들이 항상 마음속에 승리를 향한 욕심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모토GP와 같은 본격적인 레이스를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와 그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피아지오 그룹 산하에서 자의적으로 그 방향성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사람은 뭘 해도 다르다고 했다. 101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간직해온 질레라의 행보는 그것이 무엇이 될지라도 특별할 것임엔 분명하다. 이런 열정을 지켜보고 그 노력의 결과를 만날 수 있는 것은 라이더들에겐 축복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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