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s & 그 이야기들

[스크랩] 나의 첫번째 바이크

mistyblue 2013. 11. 17. 18:39

1989년 나는 부산에서 웅크리고 서식하고 있었다.

 

운동 삼아서 시작했던 신문배달 부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신문 보급소에서 CiTi-100이라는 바이크를 줬다. 요즘 흔히 짱개오토바이라고도 부른다.^^

 

<CiTi-100>

 

자전거만 탈 줄 알면 별 무리없이 탈 수 있는 바이크라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고 그것으로 바이크의 재미를 알된 나는 1990년 대림 혼다에서 나온 VF-125의 주인이 되었다.

 

<VF-125 내가 탔던 그 놈이랑 거의 흡사한 모양이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취직해서 받는 월급이 12만원~15만원 정도. 

VF-125는 거금 15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것은 나의 전 재산을 털어서 산 것이었다. 당시에 바이크는 배기량이 좀 높아봐야 250cc정도였고... 그 이상의 고배기량은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람 결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만 들었다. 믿을 수 없게도 250cc 바이크가 있다나...

 

어쨌거나, 그 바이크는 나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최고, 최상의 바이크였고 생애 최초로 삐까번쩍한 내 차를 가지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멋진 놈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뿌듯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울산, 경주, 마산, 산청 등, 경상남도 쪽을 그 놈으로 다 훑고 다녔다. 그때 그 시절 도로 사정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좁고, 낡고, 이정표도 허술하고, 때론 지도 보고 길을 들어가다 보면 비포장 도로도 흔하게 만나게 된다.

 

그 놈은 잔고장 한번 없이 온갖 도로 여건 아래에서 잘 달려 주었고 때론 오프로드 바이크 처럼 등산길을 따라 산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것은 바이크가 그리 무겁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내 키가 작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송구스럽게도 내 키는 190cm다. 산길에서 큰 돌이나 바이크 엔진 부분이 걸리면 들어 올려서 넘어가면 되더라.

 

그 놈은 온로드, 오프로드 가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전천후 바이크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바이크로 싸돌아 다니던 중, 1992년 몇 달 동안 서울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차마 그 놈을 떼어놓고 서울로 갈 수가 없어서 트럭에 싣고 가게 되었다.

 

몇 달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나는 고심 끝에 바이크를 타고 가기로 했다.

당시 도로 사정을 보나, 지도책을 보면서 찾아가야 하는 상황을 보나, 125cc 바이크를 보나 너무나 먼 거리였지만 젊으니까...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단 조건을 달았다. '논스톱으로 간다.' 물론 기름 넣을 때, 쉬할 때, 맘마 먹을 때는 빼고...

 

때는 8월 말, 해가 지고 나면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 오는 때였다.

아침 8시쯤 출발, 속리산 부근을 지날 때 소나기로 속옷까지 쫄딱 버리고 오후 2시 정도에 경북 상주에 들어갔다. 경북 상주면 부산까지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어라? 이거 별거 아닌데? 계산대로면 저녁 8시쯤이면 부산에 도착하겠군 ㅋㅋㅋ'

 

자, 검은 그림자는 그때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면서 이리저리 돌다보니 대구에 들어간 시간이 거의 해질 때쯤이었다. 6시~7시 정도.

대구 시내로 들어가서 역시 헤매고, 러시아워에 막히고, 날은 어두워지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안경 낀 사람은 알 것이다. 밤에 비오면 대책이 없다는 것을...

한마디로 와이퍼 고장난 자동차를 비오는 날 운전하는 걸로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밤에...

 

빗물에 불빛이 반사되면서 앞이 거의 안보여서 엉금엉금 기어서 갔다.

인도도 없는 국도에 차들이 씽씽 지나가는데 바이크는 고작 10km~20km 정도로 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했다. 몇 번이나 중앙선을 넘어갈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해서 밤 9시가 넘어서 청도에 도착했다. 비는 그때까지도 쏟아졌고...

대구에서 청도까지 거리가 대략 40km정도, 그 거리를 가는데 2~3시간이 걸린 것이다.

 

청도에 도착할 때쯤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일단 밥은 먹어야 죽지 않고 부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북 상주에 들어가기 전인 1시쯤 밥을 먹고 안먹었으니...

식당 아줌마의 따가운 눈총을 뻔뻔하게 무시하고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아줌마 된장찌개!!"

아줌마야 귀찮은 정도겠지만 난 생존의 문제였기에...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밥과 국을 먹고 배가 부르니 피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밥을 다 먹고 식당 입구에 서서 비가 쏟아지는 밖을 보고 있는데 그 차가운 빗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니 실로 끔찍하더군.

 

그때, 길 건너 편에 여관 간판이 네온싸인에 번쩍이며 눈에 들어왔다.

당시 여관 숙박료는 1만5천원 정도, 그때 나의 호주머니에는 수표, 현금 포함해서 약 150만원 정도가 있었다.

순간적인 달콤한 유혹의 갈등...!!!

 

하지만 처음 세웠던 목표가 떠올랐다. '논스톱으로 간다.'

결국 다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바이크에 올라타서 출발했다.

 

밤 10시~11시 정도, 다행히 밀양에 들어갈 때쯤해서 비는 그치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젠 고생 끝, 한시간이면 부산 들어간다!!!!'

 

당시 위치에서 부산 쪽으로 가는 길이 지도책에는 두 갈래로 나와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늦은 관계로 당연히 짧은 거리의 길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재앙이었다. 긴 여정의 마지막 재앙!!!

 

도로를 타고 산으로 계속 들어가는데 불빛 하나가 안보이는 어둠만이 있었다.

하도 깜깜해서 바이크를 세워두고 라이트를 꺼보니 내 손도 안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비온 뒤라 하늘은 잔뜩 흐리고 달빛 조차 없었다.

 

지나 다니는 차 한대도 없고... 불길한 느낌과 함께 라이트 불빛 속으로 도로 포장을 하기 위해 굵은 자갈을 깔아 둔 공사 중인 길이 눈에 들어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포장 도로도 아니고... 도로 포장을 하기 위해 자갈을 깔아둔 길이라니...

 

밀양으로 돌아가려면 30분은 족히 달려야 할 것 같고... 잠깐 고심 끝에 자갈 길이 길지 않을 거라는 희망적인 믿음을 가지고 강행 돌파를 결심했다.

 

'기왕 버린 놈!!'

 

바이크 타이어가 뒤틀리고, 자갈이 튀고, 비온 뒤 흙탕물에... 바이크 기어를 1단으로 놓고 반클러치 상태에서 계속 잡고, 놓고 하면서 가야만 했다. 2시간을...-.-;;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

 

난을 당하게 하며.. 중얼중얼...'

 

 

맹자의 말씀을 중얼거리며 약 10km가 좀 넘었던 그 자갈길을 지났다.

 

부산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18시간의 강행군이었다.

 

 

 

 

18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쭉쭉 달려준 대림 혼다의 VF-125.

 

그 놈과의 이별은 뜻하지 않게 빨리 찾아왔다.

 

 

1993년, 도로를 잘 달리고 있던 중, 우측 좁은 길에 서 있다가 갑자기 불법 좌회전을 하려고 튀어 나오는 승용

 

차 옆구리를 들이 받았다.

 

다행히 나는 충돌 직전에 긴 다리로 땅을 짚고 몸을 웅크리고 승용차 지붕 쪽에 받히면서 상처도 없고 넘어지

 

지도 않았지만 나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간 그 놈은 박살이 나버렸다.

 

 

사고 지점이 마침 경찰서와 거리가 150미터 정도여서 승용차에 나의 가방과 헬멧 등 소지품을 싣고 먼저 가 있

 

으면 내가 박살난 바이크를 끌고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 승용차는 자기 때문에 박살난 바이크를 끙끙거리며 끌고 가고 있는 내가 보고 있는 가운데... 경찰서 앞을

 

지나 유유히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 내 가방과 헬멧과 그 외 등등까지 싣고... -.-;

 

 

'재앙이 평생 그놈과 함께 하길...'

 

 

당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난 겁나게 나온 견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고칠 돈이 없었다.

 

결국 몇 년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그 놈을 헐값에 팔 수 밖에 없었다. ㅠ.ㅠ

 

 

 

'바로 그 놈이 나의 첫 바이크였다.'

 

 

 

  

 

PS: 좀 긴 글이지만 긴 세월이 흐른 후 나의 모터사이클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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