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s & 그 이야기들

[스크랩] 모터사이클에 대한 오해 : 할리 데이비슨(1)

mistyblue 2013. 11. 17. 21:31

 

'하나의 모터사이클은 자유지만, 여러 대의 모터사이클은 하나의 권위다.' 위 문장을 누가 한 말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것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에 급속도로 늘어난 바이크 갱들에게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하나의 역설을 담고 있는데, 모터사이클을 타는 행위는 독립된 자아를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그것이 여러 명으로 되었을 때에는 그 어떤 그룹보다도 구성원간의 동질감을 강하게 맺게 하여 오히려 그 자유를 구속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룹 라이딩의 매력은 혼자서 고독하게 도로를 즐기는 것 만큼이나 짜릿한 경험이다. 모터사이클은 운전자의 몸이 외부로 드러나서 육체적인 운동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모터사이클 운전자와 나란히 달리면서 하나의 신호로 향하는 것은 육체적 동질감과 정신적인 위안을 동시에 준다.

미국 모터사이클의 역사는 할리 데이비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왔다. 2차 대전 전후로 큰 인기를 구가하다가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다시 80년대부터 되살아나서 지금은 미국 주식 총액 수위권에 올라간 성공한 기업이 된 할리는 회사의 역사 자체가 미국의 역사를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성공한 의사, 주식 매매인 그리고 IT 종사자들이 최근 할리의 주 소비자층이 되었다는 사실도 정확한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

할리 데이비슨에서 볼 수 있는 아메리칸 크루져라는 독특한 장르도(엄밀히 부르자면 크루져와 챠퍼라고 한다.) 미국식 합리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로우-롱 스타일로 대표되는 깊은 시트와 편안한 핸들 위치는 장거리 여행과 고속도로에 알맞게 만들어졌고, V 2기통 엔진은 적당한 타협을 통해서 지나치게 치우쳐지지 않은 중저속 토크를 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크게 울려퍼지는 시원한 머플러와 엔진의 소리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운전자의 개성과 독창성의 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할리 데이비슨 머플러와 엔진 고동은 2기통 엔진의 대표적인 매력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할리의 사운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2기통 엔진이 심장 고동과 비슷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다
.)

이런 긍정적인 문화에도 불구하고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 바이크 갱들을 대표하기도 한다. 모터사이클 갱단의 기원은 바이크 클럽에서 유래하는데,(여기서 바이크 클럽은 모터사이클 동호회와 비슷하거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1900년 초반 설립되기 시작한 바이크 클럽들은 미국에서 보편적인 인기를 가진 인디언 모터사이클과 할리 데이비슨을 주로 탔다.

초창기 바이크 클럽은 현재의 대부분 클럽들이 그러하듯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모터사이클 운전자간의 소통과 도로 위에서의 권리 보장을 목표로 지역 공동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후, 2차 대전 이후가 이들 모터사이클 클럽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된다. 전쟁 이후 많은 젊은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였고, 모터사이클이 운전자들 사이에서 젊음과 자신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돌아온 퇴역 군인들과 전쟁을 겪은 세대가 전장에서 사용된 모터사이클을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탄생한 클럽들은 현재 바이크 클럽의 기초를 다지게 되는데 이 시기에 탄생한 클럽 중에서는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퇴역 군인들이 바이크 클럽을 조직하면서 군대 조직의 집단 문화에서 많은 것을 이어받게 된다. 이러한 증거는 곳곳에 존재하며 개개의 모터사이클 클럽을 구분하는 옷의 패치들 그리고 조직원의 직위 구분에 따라 차별화된 호칭과 표식들이 이를 증명한다. 왜냐하면 이런 문화가 모두 공군 비행대의 마크와 군인들의 성과표나 훈장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퇴역 군인들과 전쟁 세대가 모이면서 결성된 클럽들은 공동체의 역할을 이어가면서 이후 모든 사회가 그렇듯이 자금 동원과 구성원간의 이익을 더욱 크게 확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수의 모터사이클 단체들은 여러 가지 이해에 관여하고 일부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서는 당시에 합법적이지 못한 일들도 처리하게 된다. 이런 움직임들은 계속 발전해서 조직 구성원들간의 규범과 의사 소통을 확립하게 되며 하나의 완성된 체계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마약 거래, 총기 밀수, 차량 밀수 그리고 합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나 단체의 경호와 사설 방위를 통해서 사업을 확장한다.

할리 데이비슨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러한 바이크 갱 문화는 마피아와 마찬가지로 미국 문화의 한 치부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문화를 이해하고 할리 데이비슨을 알아가는데는 없어서 안 될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에서 간략하게 알아본 미국내 바이크 갱에 대한 내용은 이제부터 살펴볼 이 글의 주제인 어째서 할리 데이비슨에 대한 오해들이 생기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하지만 긴 서론이었다.


바이크 갱 이미지의 완성

 ◀ 라이프 매거진에 실렸던 가장 유명한 사진

가죽 점퍼에 긴 머리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문신 투성이의 백인은 할리 데이비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런 이미지는 상상속에만 머물러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의 클럽 문화는 실제로 당시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유명해졌는데, 라이프지는 미국 문화를 미국인의 눈에 비친 그대로 묘사하는 매우 성공적인 상업 매체였고 미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진 매체였다. 당시 라이프지에 실린 '모터사이클 소요사태'는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그 파급 효과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터사이클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이 이미지를 대중에게 '잘 팔리게' 포장한 곳은 다름 아닌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상품으로 바꾸기로 유명한 할리우드였다. 말론 브란도가 저 유명한 'Johnny'로 분한 '와일드 원' 69년 격동의 시기에 나온 '이지 라이더'는 모터사이클 라이더에 대한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와일드 원에서 말론 브란도는 말쑥한 반항적 폭주족이지만 세상에 대해서 단 한 가지 의리만은 고집하는 폭주족의 이상적인 표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피아가 의리와 인정만으로 조직을 운영하지 않듯이 영화속 조니는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정형화된 아이콘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세상에 반항하지만 그 질서에 길들여진 '경주마'인 것이다.

실제로 진짜 바이크 폭주족과 갱들에 대한 신화를 대중들에게 남긴 것은 '이지 라이더'부터다. '와일드 원'이 실제 모터사이클 애호가들이 권하는 내부적인 추천 영화였다면 이지 라이더는 반항과 폭주에 사회의 문제를 투영한 좀 더 외부적인 관찰 영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지 라이더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인 데니스 호퍼(빌리)와 피터 폰다(캡틴 아메리카)는 바이크 클럽의 소속으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이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은 지금의 바이크 클럽 문화에서는 오히려 외부인에 더 가깝다. 영화의 내용에서도 두 사람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다.

주인공의 차이는 있지만, 로드 무비의 전형을 이룬 만남, 헤어짐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여정은 바이크 갱들 모임의 탄생과 성장을 대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출발이 죽음으로 끝나는 시점에서는 바이크 갱단의 출발이 이익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단체가 되는 것이었는가를 되묻게 만든다.(영화는 사실 이런 주제는 아니다. 바이크 갱단이 아니라 당시 미국의 시대적 흐름에서 외부인의 좌절과 미국인의 소통의 단절을 그린다고 보는게 합당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바이크 갱과 연관지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이지 라이더는 와일드 원이나 라이프지의 사진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독함과 사회 부적응자들이라는 딱지가 바이크 갱들에게 붙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마피아같이 큰 가족을 이루는 공동체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마약을 하고 고독하게 술을 마시는 반항적인 철학자, 락 스타로 변모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독한 아웃사이더라는 이미지는 실제 바이크 갱들과는 거리가 먼 사실이었으나, 영화는 라이더들을 당시의 베트남 전쟁과 지독한 사회적 우향우에 저항하는 인물들로 그려냈다. 또한 미국적 가치에서 존중받았던 존 웨인과 같은 모습이 라이더들에게도 현대식 카우보이로 겹쳐졌다. 양복을 입은 도둑보다 누더기의 도둑이 비난을 면하기 쉬운 것처럼 비참해 보이기도 하는 바이크 라이더의 생활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을 것이다.

와일드 원과 이지 라이더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실제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이 두 영화가 뒤섞여서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모터사이클 갱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미국내 모터사이클 생산 1위였던 할리 데이비슨이 이 가치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지금까지 이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과연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거대한 바이크 갱의 모습이 할리 데이비슨이 원래 가졌던 가치였는지 그리고 바이크 클럽 문화가 공동체의 번영과 모터사이클 라이더 개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부분에서 출발했듯이 그 가치를 지금의 우리들은 잘 이어나가고 있는지 말이다. 사람들이 조니와 빌리를 기억하는 것은 이들이 이기적인 반항아들이 아니라 사랑과 이타성을 가진 반항아였기 때문이 아닐까.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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