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s & 그 이야기들

[스크랩] 모터사이클에 대한 오해: 할리 데이비슨(2)

mistyblue 2013. 11. 17. 21:31

레이스의 역사

이전 글에서도 살펴봤지만 할리 데이비슨에게는 갱 바이크와 장거리용 크루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모든 모터사이클 회사들이 그렇듯이 할리 데이비슨도 레이스에 큰 관심을 가진 쪽이다.

많은 할리 데이비슨 매니아들은 스스로를 HOG(호그)라고 부른다. HOG는 침체기의 할리 데이비슨을 살렸다고 부를 정도로 할리 데이비슨 오너들은 회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HOG가 곧 할리 데이비슨이고 할리 데이비슨이 HOG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HOG의 유래는 바로 레이스에서 생겨난 것이다. 1920년대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레이서가 정기적으로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자신들의 마스코트였던 돼지-hog를 품에 안고 축하 세레모니를 한 것에서 HOG가 탄생했다. 이후 할리 데이비슨 오너스 그룹을 줄여서 HOG라고 부르면서 HOG는 할리의 역사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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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년부터 40년대까지의 모터사이클에는 지금과 같이 특정 목적으로 나뉘어서 판매되는 바이크는 많지 않았다. 다수의 바이크가 원래 모터사이클의 탄생과 같이 자전거에 엔진을 장착한 형태에 더 가까웠고, 이는 할리 데이비슨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에야 다이나, 소프테일 그리고 투어링등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모델이 한 가지 크루져 장르에서 나오고 있지만 1920년도의 모터사이클은 스피드에 알맞게 만들어진 좁은 핸들을 가지고 브레이크도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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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 세계 대전은 할리 데이비슨이 자신의 특징을 굳히게 된 분기점으로 봐도 될 것이다. 전쟁에서는 짐을 싣고 사람도 동시에 운송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모터사이클을 숙달된 기술이 필요 없이도 운전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부드러운 핸들링과 직진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바이크가 낮은 형태를 유지하고 휠 베이스도 더 길어지게 되었다. 이런 고유의 형태는 전쟁 이후에 끝없이 이어진 긴 도로를 가진 미국에서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다. 물론 로우-롱 스타일은 전쟁으로 갑자기 발생했다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영국식 스타일을 모방한 모터사이클에서 조금씩 보여지는 형태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50년대를 지나면서 특이한 핸들 모습과 몸을 수직으로 세우고 더 편안하게 달리도록 고안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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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는 와중에도 레이스의 유전자는 할리에게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할리 데이비슨은 초창기 1914년부터 레이스 참가를 했고, 이후 1950년도까지 미국내 모터사이클들이 할리 데이비슨이거나 인디언이었기 때문에 할리도 계속 레이싱에 등장할 수 있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당시 레이스를 주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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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A 플랫 트랙 레이스 사진

 

스피드웨이와 할리 데이비슨

미국의 모터스포츠는 스피드웨이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미국식 레이스 문화는 넓은 지대를 가지지 못한 유럽과 달리 매우 넓고 큰 평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랠리와 오프로드가 유럽에서는 매우 활발한 이유고, 미국과 호주에서는 실내 오프로드 경기와 스피드웨이가 발달하게 된 원인이다. 초창기의 스피드웨이는 비교적 평탄한 평지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각자의 실력을 보여주는데서 시작했다. 이후 관중이 생기고 레이싱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스피드웨이 문화는 크게 번성하게 된다. 이러한 스피드웨이에서의 레이싱의 필요에 의해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이 경기에 사용되었고 독자적인 튜닝과 섀시의 개발이 레이스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한가지 문화가 전문적으로 나뉘면서 진화를 이루듯이 스피드웨이 문화는 여러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서 진화한다. 할리 데이비슨은 그 중에서도 더트 트랙에 집중한다. 플랫 트랙으로 불리는 이 장르는 평평한 지대를 중심으로 타원형의 트랙을 가지고 여러 바퀴를 돌아서 가장 먼저 결승점을 지나가는 선수가 우승을 하는 경기다. 이 장르는 원래 호주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미국인의 스피드웨이 문화에 잘 맞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경기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미국내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중적인 레이스 장르가 된다.

◀ 혼다의 RS750, 출처:AMA Museum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이 플랫 트랙 레이스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이 경기에 도전하는 회사들도 생겼다. 혼다는 1980년대 RS750으로 할리에 도전했다. RS750은 일생 생활에서 타기 위한 바이크가 아니라 레이스를 위한 모터사이클이었다.[각주:1] 그리고 야마하, 가와사키도 트윈 엔진 바이크로 할리에게 도전했다. 이런 예들은 플랫 트랙에서의 할리의 아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며, 일본 회사들이 이 레이스에 도전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모터사이클 흥보에 플랫 트랙-더트 레이스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플랫 트랙이 규정의 세분화로 싱글 실린더 엔진과 트윈 엔진으로 나뉘고 있으나 여전히 할리 데이비슨은 팩토리 팀으로 플랫 트랙 레이스를 지배하고 있다.

플랫 트랙, 더트 레이싱은 지금의 MotoGP(그랑 프리 레이스)나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과 같이 극한의 스피드를 추구하는 모터스포츠와는 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할리 데이비슨을 모터스포츠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확실히 모터사이클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이들 레이스들에 도전하지 않는 할리는 일반 스포츠 라이더들에게는 가소롭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트 레이싱이 그랑 프리 레이스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케니 로버츠가 자신의 더트 레이싱 경험을 바탕으로 행 오프나 니 슬라이더를 개발했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내용이며 그 덕분에 현재의 모터사이클 타이어 기술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모터사이클 그랑 프리의 8~90년대를 미국과 호주 출신의 라이더들이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자국에서 쌓은 더트 레이싱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다. 지금도 니키 헤이든, 콜린 에드워즈 그리고 케이시 스토너를 비롯한 상당수의 북미, 호주 출신의 선수들이 더트 레이싱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성적은 대단히 뛰어나다.

현재 그랑 프리를 움켜쥐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선수들도 지아코모 아고스티니의 직접적인 후예라기 보다는 8~90년대 미국의 스타 선수들의 제자들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다. 또한 스피드웨이에서의 할리의 공헌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랑 프리 레이스도 어느 정도는 할리 데이비슨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여겨도 지나치지는 않다. 심지어 그 유명한 빅-뱅 방식의 부등간격 폭발조차 할리 데이비슨의 빅-스니즈라는 이론에서 출발했다고 하지 않는가!


스포츠 모델들

현재 할리 데이비슨은 스포스터 모델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 모델은 57년부터 소개 되었으며 Sportster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할리의 레이스 모델의 레플리카에 가깝다. 현재는 할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젊은 층의 할리 데이비슨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스포스터는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장르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입문용 혹은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대체용이라는 오명을 듣는 것 같다. 스포스터가 더트 트랙에서 활약하는 레이스용 차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런 말들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할리가 주력하는 또 다른 레이스는 드래그 레이싱이다. 할리 데이비슨의 VRSC(V-ROD로 잘 알려진) 모델이 바로 드래그 레이서의 레플리카인데, 레이스를 위해 만들었다기 보다는 일본의 크루져들에 대항하기 위한 할리 데이비슨의 과감한 혁신 중 하나로 보는게 더 타당할 것이다. 어찌되었든 할리 데이비슨은 국내에도 V-ROD 디스트로이어(VRXSE)라는 진짜 드래그 레이싱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국내에 모터사이클 드래그 레이싱을 도입한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의 어려운 한국 레이싱 여건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앞날이 밝다고 보기는 힘들것이다.

할리의 미국내 드래그 레이싱 참가는 대단히 활발한 편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드래그 레이싱은 내가 전혀 모르는 장르다. 더트 트랙은 책과 자료를 통해서 익숙했고, 실제 경기를 본 적이 있지만 드래그 레이싱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모르는 것을 대충 적기 보다는 아예 넘어가는게 할리 데이비슨과 드래그 레이싱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여하튼, 할리 데이비슨이 드래그 레이싱으로 활발한 스포츠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필요가 있다.

할리 데이비슨은 전통적인 미국식 레이싱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다.(더트 트랙이 미국식 장르라고 볼 수 만은 없다.) AMA 로드 레이싱의 시작부터 몸을 담아왔던 할리 데이비슨은 그동안 일제 바이크와 유럽산 스포츠 바이크가 지배하고 있던 로드 레이싱에 도전장을 내민다. 1994 VR-1000으로 AMA 슈퍼바이크에 출전하고 공랭식 엔진으로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을 수랭식으로 바꾸고 rpm을 로드 레이싱에 맞게 올려서 신 설계된 프로젝트 바이크로 출전을 계획한다. 현재 AMA에서 유명한 선수인 미구엘 듀마헬이 라이더로 경기에 나갔고 가장 좋았던 성적은 20위였으나 65번째 그리드에서 출발한 높은 성과였다. 그리고 VR-1000은 지금의 V-ROD의 레볼루션 엔진의 기반이 된다.

이렇듯 현재의 할리 데이비슨은 얼핏 보기에는 레이스와 무관해 보이지만, 미국 레이스 역사의 초창기부터 함께 한 산증인이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레이싱에 참가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스포츠 바이크 메이커인 MV-Agusta를 인수하면서 뷰엘과 함께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스포츠 바이크 장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할리 데이비슨을 좋아하는 쪽은 아니다. 이 사이트의 내용을 봐도 알겠지만 모터스포츠와 스포츠 바이크를 더 좋아하며 모터스포츠에 투자하지 않고 그 열정을 간직하지 않은 모터사이클은 눈여겨 보지 않는다. 하지만 할리 데이비슨이 역사나 문화에서 일본의 4대 바이크 회사들이나 유럽의 회사들에게 밀리는 부분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싸이카나 아저씨 바이크 쯤으로 할리 데이비슨을 알고 있다. 또 같은 모터사이클을 타는 라이더들조차 할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여러가지 험담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심지어는 할리를 타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바이크를 오해하고 타는 것 같다. 이 글이 이런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할리 데이비슨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할리 바이크에서 진정한 할리 데이비슨의 매력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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