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紀行 (2009.10.25-11.1)
* 가장 긴 날 (The longest Day)
인천공항을 오전 11시에 이륙하여 서쪽으로 날기 시작한 비행기가 태양을 뒤따라 날아가니 하루가 31시간이라는 긴 날이 되었는데
(기내식사 다섯 번),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밑 세상을 보게 되는 행운을 만끽할 수가 있어 출발부터 행운을 잡은 듯 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중국대륙으로 들어가면서, 베이징 옆을 지나 백설의 알타이산맥 장관의 멋들어진 광경, 러시아 땅의 이름 모를 맑고 큰 아름다운 호수를 넘어
꼬불꼬불 둥근 원과 곡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기묘한 모양의 예술작품 같이 수놓아진 넓은 동토(West Siberia Low-area)를 내려다 볼 때엔
저기가 얼어붙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천사들의 얼음지치기 놀이터일거라는 생각이 드는 신비하고도 황홀한, 내 생애 처음 보는 오묘하고도
신기한 별천지의, 어렸을 때 본 소련 영화 등에서의 그러한 장관들이었다.
닥터 지바고가 살던 땅이 저기였겠구나.......
다음엔 오른편에 옴스크가 나오고, 우랄산맥을 넘어 구라파로 진입한다.
독일 푸랑크후르트에 내렸다가 곧 이스탐블로 가는 터키항공으로 옮겨 타고 시각대 2시간거리의 동쪽 터키로 역주행을 하였다.
* 터키에서의 관광 첫째 날
예의 이스람 사원에서의 첫 기도를 알리는 새벽 ‘기상나팔’인 독특한 음률의 코란 독경소리에 잠을 깼다.
보통 관광 코스는, 유럽 쪽에 있는 이스탐불 로부터 시작해서 동남쪽에 있는 수도 앙카라로 가는 시계방향 이동으로서 나라 약 반을 도는 것인데,
마침 국경일이 겹쳐서 수도에서는 호텔사정 등을 비롯한 여러 형편이 좋질 않아; 반시계방향으로 잡았다는 가이드의 안내다.
먼저 다다넬스 해협 쪽으로 이동하며 터키라는 이국적 풍취를 맛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좀 커선 책으로 그리고 海戰史에서 배운 다다넬스 해협(마르마르 해협)을 버스채로 운반하는 배에 올라 아세아 땅으로 건너면서
희랍신화 또는 일리아드의 ‘트로이전쟁’에서 읽은 옛 이야기들을 되새겨 보느라 애를 썼다.
‘트로이 木馬; 이제야 겨우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겠다.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이런 유적들을 찾아내는 인간의 지혜와 노력도 경탄스럽다.
기원전 4천년 시대부터의 유물들이 아홉층으로 쌓여 땅 밑에 깔려있는 것을 파고 헤치고 골라내고 하여 드디어 저 ‘트로이 목마’를 끄집어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는 모조리 자기 나라로 밀반출, ‘약탈’해 갔다는 거다.
이토록 당시의 터키는 약소국가였다, 우리 나라만양.
불란서엘 갖고 갔는데, 독일이 빼앗았고, 그리고 소련이 또 빼앗아 갔단다.
그 땅속에 묻힌 귀금속 보물들을 몽땅 발견자의 부인이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있다가 핀잔도 받는 일도 있었다고. (그 부인의 사진도 봤다.)
이 땅은 고대로부터, 그리고 로마사람들이, 또 이스람이 차지하면서 세운 유적지가 우리의 눈을 더 크게 뜨게 하고 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BC334년에 소아시아 지방 정복에 나서면서 트로이에 제일 먼저 상륙한 이유는 알렉산더가
트로이의 영웅들을 존경했고,
트로이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트로이 왕 프라암 영정에 제물을 바쳤고,
그리스 아킬레스 장군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재현해 놓은 ‘트로이 木馬’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도 있어 흥미가 더해지는 풍경들이다.
* 둘째 날
서머나 교회, 에베소 교회가 있는 에펜스 지방 역시 고대 에페스 유적지로 목욕탕, 시장터, 도서관, 원형극장 등 관광꺼리가 너무나 많음에 또 놀랐다.
사도요한 기념교회, 성모 마리아 처소가 인근에 있다는 말만으로 족했으며, 다음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뛰는 거리가 500km 또는 800km를 최장 아홉 시간이나 달려야하는 쉽지 않은 관광이다.
잠시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또 달린다.
저녁이 돼서야 ‘목화의 성’이라는 흰 석회암으로 덥혀진 산, ‘파묵깔레’에 도착했고, 날이 늦어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보기로 하고 쉬기로 했다.
온천탕에서 목욕을 한다고, 수영복을 준비하라고 해서 풍선 같은 기대를 갖었었건만.....
결국은 때가 맞질 않아 목욕은 포기, 어두운 욕탕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 셋째 날
이곳 파묵깔레는 고대 히에라폴리스의 유적들이 산 중턱에 숨겨있어 신비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온통 성벽의 유적들이며, 지금도 무언가 찾겠다고 헤치고 있는 흔적들이다.
그리고 저 유명한 노천온천의 물이 아직 마르지 않고 있어 발이나마 담가보는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밑 동네에 아직 목화밭이 많음은 옛날의 호화스런 면직 산업시대를 말해 주는 듯 했고, 인근에서 나는 보석, 터키석들이 또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이 ‘석류’ 철이란다. 우리나라에도 석류나무가 있지만 (우리 아파트 앞에도 한 구루), 이곳의 석류는 크고 맛이 좋아 상품으로도 값나가고,
여러 가공품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 넷째 날
드디어 볼거리로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카파도키아’ 구경이다.
마치 동화의 나라로 온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불모지의 땅위에 솟은 버섯모양의 砂巖石 기둥들이 여기저기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의연하게 서 있다.
오래 또 오래전에 화산이 폭발하였고, 그리고 또 지층이 흔들렸고, 또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쌓였는데 밑에 있는 약한 사암층위에 강한
암석층이 덮인 것이 비바람에 씻겨 나가다보니 이런 괴상한 버섯 모양으로 조각되었다는 이야기.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즐비하게 서있는 모습은 아마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어찌 이런 기이한 조화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여러 이름으로 명명된 계곡들을 보며 창조과정인 지구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감사하였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 가니 말로만 듣던 지하도시 데린구유(1963년 발견)가 있다. 깊이가 55m, 2만 명을 수용했을 것 같단다.
이슬람 또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기독교인들이 지하 8층까지 허리를 구부리고 내려가야 하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요리조리 맴돌며 수십 년 씩을 살아간 고난의 역사를 보면,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싸운 그들의 위대함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숙연해 지는 마음이 서두르는 관광행렬에 쫓겨, 혹여 길을 잃을까 앞사람을 따라가기에 바빠 구부리고 가면서 옛 신앙을 지키려 애썼던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외부로부터의 박해자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곳곳의 맷돌 문(石門), 수많은(56개) 통풍관, 양들과 말 그리고 노새 등 가축을 위한 ‘우리’(1층),
우물, 창고 및 취사장(2층), 고속도로 같은 넓은 통로, 십자가형으로 판 교회(8층)예배처소가 관광하러온 사람들의 눈을 휘둥글게 한다.
또 습기가 없고 냄새도 나지 않음에 놀랍다. 아마도 특별한 토질 때문인 것 같다.
지하 맨 아래층에는 ‘천문 관측대’까지 있으니 더 할 말이 없는 완벽한 시설 구조다.
맨 위층에 있는 넓은 공간이 포도주 공장 또는 학교일 것이라고 한다. 설명이 그럴 듯하다.
도중에 소나기를 만났고, 우리 가는 길 오른편에 햇살이 구름을 뚫고 나타나길 래 ; “이런 때엔 무지개를 볼 수 있을 텐데...”
큰 소리하면서 왼쪽을 보니, 정말 “아 ~ !!” 의 탄성이 버스 안에 가득해졌다.
먼 들판 쪽에 무지개가.... 아니 쌍무지개가........ 그리고 그것도 한참이나 줄기차게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모두들 얼마나 좋아 했는지.
꾸뻑꾸뻑 졸던 사람들이 활기가 넘쳐지며 카메라 셧터를 터트리고, 대화가 밝아지고........
저녁엔 터키민속의 체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하, 이슬람 전통 춤을 추는 로터리 공간이 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과 좌우 양쪽으로 뚫린 세 부분의, 앞으로 약간 경사진 홀
(약 십여 명 씩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네 개 배열된)이 있어 우리 팀은 오른편쪽으로 인도되었다.
이슬람 음악에 맞추어 약 30분가량 흰 옷을 입은 무희(무당?)가 ‘신 내리는(?)’ 춤을 추고..... 그리고는 여러 남녀 무희들이 터키 전통의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딘지 슬라브족 춤 또는 이스파니아 식과도 통하는 것 같은 박력 있는 춤이어서 피곤한 여행길을 풀어주는 듯,
보기에도 좋아 장단을 맞추어가며 박수를 쳐댔다.
특히 이곳 사람들 가족, 친지들 한 무리가 와서 즐기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고, 그 발랄함에 부럽기까지 하였다.
우리 일행에서도 몇몇이 나가 그들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도 좋았고.
* 다섯째 날
터키에는 옛 부터 ‘카페트’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그것을 짜는 공장을 구경했다.
재질과 섬세함을 자랑하며 구미를 돋구어준다. 특히 누에에서 명주실을 빼내는 작업도 볼 수 있었고, 그 실크실로 짜는 값비싼 카페트를
부럽게 만져도 보았다.
점심식사는 특별히 마련된 대형 지하식당에서 ‘항아리 케밥’이란 특식으로 하였다.
어제 밤에 가본 춤추는 지하홀 보다 규모가 큰 레스토랑이다.
쇠고기와 몇몇 채소류 등을 항아리 속에 넣어 80도를 유지하면서 3시간정도 찐 것이라는 지배인의 유창한 인사다.
터키음악과 더불어의 좋은 식사시간이었다.
또 세계적인 ‘터키석’ 구경도 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바다 속 같은 푸른 색깔에 심취하다 보니 그 심오함에 압도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옥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장거리 고속도로 질주다.
이 나라 도로는, 우선 땅이 우리보다 넓어 여유 있게 할애됨에 부럽다.
곳곳의 도로가 새로 설계되어 신설, 확장 중에 있음을 본다.
고속도로는 4차선 왕복이며, 중앙 분리가 잘 되어있어 시원스럽다.
수목 또한 일반적으로 푸르름을 간직한 나라로 보인다.
서북쪽 다다넬스 해협을 건너서부터 에에게 바다를 면한 서해안 일대와 남부에는 ‘오리브’나무가 왕성하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어떠한 척박한 땅에 심어도, 설사 물을 주지 못해도 혼자 거뜬히 살아간단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나무란다.
크기도 적당하고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여기서의 열매가 국민소득에 한몫을 차지한다고 한다. 평지에 깔아놓은 많은 묘목밭들의 어린 나무들이
척박한 땅에 옮겨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볼 때, 이 나라의 장래를 가름할 수도 있어보였다.
국토 중간부분을 서에서 동으로 잇는 고속도로를 타면서부터는 소나무가 보이는데, 극동의 것과도 같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나무자체가 동글동글한....
아주 예쁘게 손질한 듯한 소나무종들을 가로수로 심어 여행자들을 기쁘게 하여주어 보기에도 좋았다.
‘소금 호수’도 우리에겐 생소하며, 신기하다.
주위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물의 염도가 33%로 세계에서 가장 짠 호수란다. 호수가 마르면 약 20-30cm 두께의 소금이 남는데
해마다 약 30만 톤을 생산한다고 한다.
우리에겐 신기할 수밖에.
저녁에 이 나라 수도 앙카라에 도착하여 쉬었다.
역시 수도답게 시원스런 거리와 정돈된 가옥, 빌딩들의 야경이 아름답게 보였다.
* 여섯째 날
터키가 공화국으로 건립된 것은 우리 공화국 대한민국이 건립된 것 보다 25년 앞선다.
즉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가 10월 10일 시골동네에 불과한 앙카라를 수도로 선포하였고, 몇 날 후인 10월 29일에 터키공화국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으며,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마침 이 공화국 선포일, 독립기념일이 ‘어제’였기에 곳곳, 거의 모든 건물들에는
크고 작은 국기, ‘초승달과 별’을 게양하고 있다.
18세기, 한 장군이 전쟁터를 둘러보다가 땅에 고인 피 웅덩이에 비친 초승달과 별들의 영상을 보고 감명 받아 이 모양으로 깃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국기의 붉은 색 바탕은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동네의 자랑으로 여긴다고 한다.
입대하는 날은 동네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며, 자동차를 타고 국기를 휘날리며 퍼레이드를 펼친다고 하며,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올 때에도
이런 영광스런 모습을 자랑한단다.
만에 하나 전쟁터에서 전사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웅의 대접을 받고, 존칭도 얻는단다. 이런 안내를 들으면서 왠지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게까지 여겨졌다.
부슬비 내리는 아침, 웅장한 아타투르크 기념공원을 차상관람하면서 ‘한국공원’에 도착하였다. 이 나라에서는 독립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을
진정 ‘국부’로 모시고 있음에 부럽기도 하였다. 우리는 뭐하고 있는 건가.....? 우리도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있는데.......
이제는 우리도 그 분을 모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서울 여의도에는 ‘앙카라 공원’이 있다.
그리고 앙카라에는 ‘한국공원’이 있다.
6.25한국전쟁 때에 터키는 ‘형제의 나라’를 내걸며 1개 여단 5천여 명 씩 세 번에 걸쳐 총 15,000명이상의 군인들을 보내주었고, 그 중 1,005명의
귀한 아들들이 이 땅에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서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었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기리기 위하여 앙카라에 땅을 구입하고 4층 기념탑을 세웠는데,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이아침에 37명의 관광객이 열을
지어 잠시 그들을 위해 ‘묵념’을 하였다.
먼저 이런 몇 가지를 내가 설명하였고, 그 곳을 관리하는 분에게 비록 우리말로 된 것이지만 ‘6.25란 무엇인가?’ 소책자와 어린이 만화
‘창이가 겪은 6.25전쟁’ 몇 부와 및 이를 터키어로 번역한 카피를 증정하고 왔다.
앙카라에 거주하시는 6.25참전자 한 명이라도 연락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사전에 하였지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꽃다발도 준비해 주었으면 했지만........ 경험이 없어서인지 제대로 되질 못했다. 아쉬움이 많다.
저녁에 이스탄불에 들어갔는데, 역시 길거리가 복잡하고 차가 붐비는 도시다.
서울에 들어가는 경부고속도로 진입로가 정체되는 것 이상으로 해협을 넘는 다리 위는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온 거리가 주차장 같게
보이기도 하다.
지하철은 세계에서 그 중 먼저 생겼다는데............
* 일곱째 날 (끝 날)
이스탄불은 그렇게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곳이라는데, 이 날은 유람선을 타거나 고궁을 관람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날로 기록된다고 할 것이란다.
보스포로스 해협은 쉬게 말하면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해협인데(그 사이에 몇 개의 이름을 가진 바다와 해협이 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두 개의 큰 다리 밑을 지나면서 양쪽 대륙을 올려다보며 이런 저런 경관을 구경하는 멋있는 뱃놀이이다.
선장실에 올라가서 나도 뱃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니 젊은 선장이 반갑게 맞으며, 한번 배를 몰아 보겠냐고 한다. 전기식이라는 손가락만한
‘조타간’을 잡고 요리조리 움직여 보면서 잠시 코믹한 시간을 가지며 즐겼다.
“이 배는 저희 아버지 배입니다. 혹 의향이 있으시면, 이곳에 와서 이런 유람선 사업을 하셔도 됩니다.......... ” 라고 하는 이 젊은이가
기특하기도 하다.
드디어 저 유명한 ‘성 소피아 사원’의 구경이다.
이 날 이스탐불에는 세 척의 크루즈선이 기항 중이었는데, 여기서 약 1,500명의 손님들이 쏟아져 나와 관광을 해대니 온 거리 어디에도
손님들로 꽉차있는 현상이다.
사원에서도 앞뒤에 빽빽이 늘어선 줄을 따라 걷기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비도 오고.........
지금은 여기를 이슬람교가 차지하고 있는데, 그리스 정교와 ‘공존’한다는 명분을 꽤나 내세우는 것 같이 보인다. 예수님의 그림이던지
십자가의 형상을 지워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음에 어떤 긍지랄까 자랑이랄까 하는 ‘관용의 의지’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 혁혁함을 볼 수 있다.
(하기야 이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와 보는 것이 아니냐.)
옵션으로 간 ‘톱카프 궁전’ 관람 팀과 헤어진 우리는 비바람 부는 이스탐불 거리 구경에 나섰다. 곳곳에서 우산이 뒤집히며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도 관광 명품인 것 같았다.
아마도 길거리엔 이곳 주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게 보이는데, 이곳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즐겁게 살고 있다고 보여 지는 모습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좋게 보았다.
이스탐불에 가서 이곳을 보지 않으면 헛 구경을 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할 만큼의 명소인 동양으로부터의 ‘실크로드’ 종착지인
‘그랜드 바자르’ 구경이 최종 코스다.
수천 수백 개의 가게가 개미집같이 정교하게 골목골목에 몰려 늘어서서 전 세계에서 온 손님들과 흥정하기에 바쁜 모습이란
그 규모에서나 양태에서나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은 저리 가라인 것 같다.
터키 관광을 하려면 적어도 2주간은 해야 하리라. (1개월 정도면 더 좋겠지만.)
그러니 우린 겉핥기만 했다는 기분이다. 한 10%나 했다고 할까?
특히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곳은 거의 가보질 못했다.
노아의 방주가 내려앉았다는 아라랏 산, 아브라함의 하란, 욥의 우물, 안디옥과 베드로의 우물, 사도 바울이 만났던 두디아 여인의
고향 두아디라, 사데와 그 주변들,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 등 수 많은 곳을 생략하고 돌아간다니 무언가 좀 허전하고 찜찜하다. 그래도 이만해도 감사해야지.........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그리고 늦가을로 변한 어두워진 집 동네 분당으로 들어서니 어찌 그리 마음이 놓이며 아늑하고 또 여유롭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터키의 가을은 그리 아름답질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뒤늦게 든다.
붉고(진홍, 연분홍등) 노랗고 그리고 푸른색이 조화되는 우리나라 가을을 그 곳에선 찾아보질 못했다.
강원도 산골을 닮은 그런 고산지대도 거쳤지만, 단풍나무 또는 은행나무 등 색깔이 변하는 나무가 그리 많지 않고, 참나무,
갈나무 등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뿐이다.
이런 변색의 나무가 있는 우리나라 가을이 이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물도 그렇다. 그곳 뻑뻑한 수도 물에 비하면 우리 물이 얼마나 좋은가.
손에 들고 다녀야하는 물병을 놓고 있음도 감사한 것이리라.
애들 말마따나 ‘우리나라 좋은 나라’ 다.
집에 돌아온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11월 2일이다.
비행기에서 하루를 지났기에, ‘잃어버린 하루, 11월 1일’ 이라고 일컬었다. (겨우 7시간 시차인데.)
베이징을 지나면서 밖을 내려다 봤더니 밑은 짙은 구름으로 깔렸었는데, 그리고 기외 온도도 아주 낮은 듯 했는데,
이 구름이 뒤따라와 강원도엔 10여cm나 되는 첫 눈을 뿌렸고, 서울도 혹한이 기습하여 -1.5도로 급랭시켜,
첫 추위에 놀라 움츠려지는 사태를 보았다.
가장 긴 하루였던 출발 날과 하루를 잃어버린 돌아온 하루가 상쇄된 것 같기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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