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정선 김홍도 등 조선 거장 작품 360여점 전시
스케치 준비물도 공개, 실경산수 제작과정 실감
그림은 사람이 눈으로 본 것을 손을 움직여 표현한 결과물이다.
행위 자체로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담는 장르가 된다.
그럼, 어떻게 그리는 것이 살아 있음을 가장 인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이달 초 끝난 첫 한국 회고전에서 30만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영국의 그림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82)는
한 인터뷰에서 ‘움직이는 시점’이라고 단순간결하게 말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양 그림에 호감을 드러낸 바 있다.
“사람 눈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겁니다.
그림 속에서 시점이 움직이는 건 보는 사람의 눈, 그러니까 몸이 꿈틀대는 거죠.
작가는 물론 관람자가 그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눈과 손은 물론 마음이 함께하는 그림이죠.”
서울 용산국립중앙박물관상설관 특별전시실에서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는
옛사람들이 ‘발걸음 옮기듯이 본 것들’을 담은 다(多)시점 명작들의 잔치다.
고려시대 화가 노영이 불교적인 이상세계로 그린 금강산 그림으로 시작해서
18~19세기의 거장 정선과 김홍도,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 등과 정수영, 김윤겸, 김하종 등의
우리에겐 낯설지만 뛰어난 작가들의 산수풍경화 360여점이 펼쳐져 있다.
전시장은 직접 본 경치를 그림으로 옮기는 ‘실경산수’ 개념을
옛 화가들이 어떻게 옮겨냈는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모두 4부로 나뉜 전시는 겸재 정선의 명작인 <단발령망금강>으로 시작한다.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단발령 토산의 고개에서 비죽비죽 솟은 내금강 암봉들의 장관을
선비들이 보는 장면이다.
두 풍경 사이를 통째로 생략한 압축과 특정한 경치를 부각시키는 과장을 장쾌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금강산 절경에 대한 갈망 또한 읽어내게 된다.
여기에 최근 재일동포 사업가의 기부금으로 일본에서 구입한 16세기 임진왜란 직전 그려진 경포대,
총석정의 그림들은 호방한 묘사와 표현력이 눈을 단박에 잡아끄는 명품이다.
특히 총석정 그림은 죽죽 뻗은 바위 도상에 위쪽은 검은빛 아래는 흰빛으로 채색해 상승감을 자아내고,
바위 위를 떠도는 새나 나무를 사실적으로 묘사해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옛 화가들이 자신들이 관찰한 경치를 어떻게 사생하고
이를 화폭에 옮겼는지 보여주는 2부의 생생한 기록들이다.
내금강, 외금강과 총석정, 낙산사 등의 관동절경을 샅샅이 훑은 김홍도의 사생첩은
허술한 구석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구도와 필치가 꼼꼼하고 정연하다.
정수영의 <한임강유람도권>은 남한강, 임진강 일대를 유람하면서 스케치한 기록들을
두루마리에 일일이 적어놓아 마치 다큐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감흥을 전달하고 있다.
기획진은 먹통과 나침반, 휴대용 지도 그림 등 당대 화인들이 교외 스케치 여행을 하러 나갈 때
지녔던 물품들도 함께 전시해 실경산수의 제작 과정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쉬운 것은 내세운 주제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박물관 서화 상설관에서는 이전부터 진경산수, 실경산수에 대한 전시를 계속 교체하면서 진행해왔다.
기존 상설관 전시와 구별하려면 실경산수와 조선 후기를 풍미한 진경산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작가들의 주관적 회화관과 사상관이 개성적으로 드러나는 양상들이 어떠했는지 보여줘야 했는데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또한 실경산수화 명품들은 박물관의 2층 서화관 상설관에도 김홍도의 규장각 그림이나
19세기 호산정 그림 등 수두룩하게 내걸려 있다.
이번 특별전이 명작이 줄을 잇는 상설관 전시와 작품은 물론
주제 자체가 중복된다는 것이 내내 눈에 걸린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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