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하 천문시계와 비슷한 세월을 지내 온 조선의 자동물시계
프라하에 가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물이 있습니다.
중세시대(1410년)에 만들어진 천문시계가 그 주인공인데요,
장치는 천동설의 원리에 따라 해와 달의 움직임을 묘사했습니다.
종소리가 울려 마지막 시계 위쪽에서 황금색 닭이 나올 때까지 관광객들이 지켜봅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도 다양한 인형들이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경복궁 내 경회루 근처 흠경각에 설치된 '옥루'입니다. 세종 20년 왕명으로 장영실이 지었다고 알려졌습니다.
1438년 완성된 흠경각옥루는 혼의(혼천의)와 기계시계장치가 결합된 천문시계로
조선 후기 이민철의 혼천의나 송이영의 혼천시계의 원형이 됩니다.
■ 흠경각 옥루, 시간을 백성에게 나누다
한글을 만들어 낸 세종은 물시계도 비슷한 마음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들여온 기기로 사용하는 이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결실을 보았습니다.
세종의 의지와 장영실의 기술이 만나 잇따라 시계가 설치됐습니다.
자격루를 성공적으로 만든 장영실은 시각을 알려주는 물시계 장치와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천문시계 장치를 결합한 자동 종합물시계인 옥루까지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옥루가 자리잡았던 '흠경각'의 이름부터 살펴볼까요.
'흠경각'이라는 이름은 세종이 지었는데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 나오는 전설에서
요임금이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명하여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때를 일러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는
문장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또, 세종은 흠경각에 '*빈풍도'를 벌려 놓아 과학자들에게 이 기계를 만드는 행위가 임금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백성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
한국중앙연구원 설명을 보면 빈풍도는 주나라 주공이 조카인 성왕을 왕으로 만든 뒤
백성들의 생활을 어려움을 알게 하려고 지은 것으로 농업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칠월편의 내용만 그린 경우가 많아 빈풍칠월도라고 불립니다.
조선시대에는 칠월편을 8장면으로 구성한 빈풍칠월도가 주로 제작돼 통치자들이
백성의 고충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훈적 그림입니다.
여기에다, 옥루에도 백성을 위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백성들이 시계를 보고도 시간을 모를까 봐 시신의 그림으로 시간을 표시합니다.
또, 사상의 조화도 담겼습니다.
조선의 표준시계로 정밀한 자격루와 달리 흠경각 옥루는 하늘이 정해주는 시각의 중요성을 담았습니다.
덕분에, 옥루에는 조선 신유교의 사상, 중국의 수차 동력장치,
이슬람의 구슬을 활용한 인형 구동장치 등 세계 각국의 선진의 과학기술을 한국의 정치사상과 섞여 있습니다.
당시 한양에는 아라비아인들이 많이 있었고 세종과 교류가 있었던 이들이
태양력에 대한 지식을 전파해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타버린 옥루, 581년 만에 만나다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마음과는 달리, 역사는 야속했습니다.
시계 역사에 획기적인 자동물시계는 임진왜란 이후 타버린 뒤 제대로 복원되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다, 3년 정도 흠경각 옥루 복원연구가 진행됐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중심이 돼 고천문학자, 고문헌학자, 복식사학자, 조경사학자, 고건축학자 등과 함께
고증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다시 만들어냈습니다.
연구책임자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박사는 복원 과정에서 「흠경각기」가 『동문선』, 『신증동국여지승람』, 『
어제궁궐지』 등에도 실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세종실록』에 수록된「흠경각기」에
잘못된 글자들이 있음을 밝혀냈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 몇몇 학자들이 주장했던 흠경각옥루의 시보장치가 4단으로 이루어진 자동물시계가 아니라
5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복원에도 반영됐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흠경각 옥루는 현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관에 전시 중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나라'만의 기술에 대한 절실함이 커진 상황이라 더 뜻깊은 소식입니다.
추석 연휴,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을 되새기며 한번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황정호 기자 (yellowcar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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