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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 보물전…한국엔 없는 ‘신라 가야금’ 천년의 자태

mistyblue 2024. 11. 5. 12:53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200여년 전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과 신라인 후손들은 당시 세계 최대 절집을 만들었다.

정쟁, 천재지변, 역병에 시달리던 일왕 쇼무가 나라와 민중을 태평하게 해달라는 발원을 안고 건립한 절이었다.

8세기 이후로 수백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찰이자 가장 거대한 불상 봉안처로 명성을 쌓은 도다이사(동대사)다.

 

오사카 인근 옛 도읍 나라의 진산 와카쿠사 기슭에 자리한 절은 뛰어난 건축술과 공예술을 지닌

한반도 도래인이 아니었다면 지어질 수 없었다.

752년 봄, 8년간의 대공사 끝에 가람이 완공됐다.

축구장 넓이의 바닥에 천장 높이가 50m를 넘고 동서 길이 100m에 육박하는 거대 불당과

높이 15m에 무게 300t 넘는 금동 노사나불상이 나타났다. 당대 일본 민중을 구제하는 복지사업과

토목사업을 일으켜 성인 칭송을 받은 교키(행기) 스님이 공사 비용을 모았고,

불상에 입힐 황금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3대손 경복왕이 열도 북쪽 아오모리에서 캔 사금으로 조달했다.

7세기 망명한 백제인 왕족의 후손 구니나카노무라지 기미마로가 대불상 제작을 진두지휘했고,

대목수는 신라계 도래인 이나베노 모모요가 맡았다.

 

그해 4월 절집 낙성행사으로 열린 대불개안공양회에선 백제인 미마지가 들여온

기가쿠 극의 가면을 쓴 배우들의 공연 무대가 백제악과 신라악이 울리는 가운데 펼쳐졌다.

신라 왕실 축하사절단과 신라·중국·인도 승려들이 함께 지켜보았다.

 

 
 
풀꽃을 아리땁고 정겨운 금박 무늬로 표현한 신라금의 앞부분 몸체.
위쪽 양이두와 몸체를 잇는 현줄과 연결한 노끈의 모습도 1000년 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노형석 기자

 

동아시아가 하나의 문화세계를 이루었음을 보여준 당시 낙성식에 나왔으리라 짐작되는 희귀 유물들이

지금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제76회 쇼소인(정창원) 특별전에 나와 눈길을 받고 있다.

이 특별전은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1300여년 전 일본 왕실의 옛 보물창고 쇼소인의 소장 보물들 가운데

일부를 해마다 엄선해 선보이는 일본 최고의 문화유산 전시다.

 

쇼소인이란 왕실 수장고 자체가 사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도다이사 건립을 추진한 쇼무 일왕의 사후 그의 애장품을 고묘왕후가 기증한 것을 계기로

왕실과 도다이사 일급 유물들을 계속 수용해 보관하면서 컬렉션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건 신라시대 현악기 유물 ‘신라금’이다.

오늘날 가야금의 원형인 가얏고로, 한국엔 없는 유일한 유물이다.

앞부분인 양이두와 몸체 일부가 좀먹어 때운 것을 제외하면

몸체와 줄의 보존 상태가 놀랄 만큼 좋다.

 

도다이사 낙성식을 비롯해 절과 왕실의 여러 행사에서 선율을 울렸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9세기 후지와라 가문의 한 중신이 지금 전래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금박 신라금을 반출해 갔다는 기록이 전해져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신라금의 앞부분과 뒷부분 몸체를 상세히 살펴보면,

풀꽃을 아리땁고 정겨운 금박 무늬로 표현해놓은 것이 보인다.

양의 귀 모양을 하고 있는 현줄 고정 부분인 양이두와 몸체 사이의 현줄,

노끈의 상태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787년 쇼소인 보물들을 밖에 내놓고 통풍시킨 기록물(‘폭량사해’)의 내용 가운데
신라산 양의 비곗덩어리(양지)를 적은 부분. 노형석 기자

 

787년 쇼소인 보물들을 밖에 내놓고 통풍시킨 기록물(‘폭량사해’) 가운데

신라산 양 비곗덩어리(양지)를 적은 내용도 눈길을 끈다.

양지는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약재로 호평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쇼소인 소장 기록 가운데는 이처럼 오늘날 전하지 않는 신라산 제작품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아

역사적 상상력을 일으키곤 한다.

 

화려한 꽃줄기 덩굴무늬가 들어간 펠트 천 양탄자도 고대 한-일 교역사와 관련해 주목받는 유물이다.

서역 계통 물품이지만 당시 일본과 주로 교역한 신라 상인단을 통해 왕실이 구입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매신라물해’라는 당대 일본에서 펴낸 신라산 수입품 목록 문서에도 관련 기록이 전한다.

 

 
화려한 꽃줄기 덩굴무늬가 들어간 펠트 천 양탄자도 전시 중이다. 노형석 기자

 

 
8세기 도다이사 등의 기가쿠 가면극에 쓰였던 ‘취호종’이란 이름의 가면도 전시장에 나왔다. 노형석 기자

 

8세기 도다이사 등의 기가쿠 가면극에 쓰였던 ‘취호종’이란 이름의 가면은 익살스러운 술꾼의 모습을 표현했다.

원래 백제인 미마지가 백제악과 함께 전래했던 것으로, 서역과 중국 남조, 백제 기예극의 양상이 골고루 반영된 작품으로 볼 수 있으나 일본 중세 헤이안시대 이래 전승이 끊겨 정확한 실체를 모르는 신비스러운 유물이다.

도래인 가능성도 제기되는 샤모쿠시라는 당대 작가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칠보와 유리, 귀금속으로 장식한 거울.
서아시아 고대 장식공예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경주 계림로 출토 신라 황금보검과 맥락이 닿는
고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거울 공예품으로 꼽힌다. 노형석 기자

 

칠보와 유리, 귀금속으로 장식한 거울은 왕실 애장품으로 추정된다.

서아시아 고대 장식공예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경주 계림로 출토 신라 황금보검과 맥락이 닿는

고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거울 공예품으로, 박물관 쪽은 전시의 얼굴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8~9세기 당대 불교의 정토 이념 아래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했던 고대 동아시아의

싱그러운 예술사의 마당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체험의 자리다. 11일까지.

 

 

나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