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말 남인수와 이난영
50년대 극장 포스터이다. 가요계 황제-남인수, 가요계 여왕- 신카나리아 모던가수- 고운봉, 오리엔트 전속- 김용태, 가요계의 호프- 김백희 등의 광고문구가 보인다.
남인수//무정열차차
남인수 - 무정열차
군예대 시절. 앞줄 왼쪽이 남인수,
그 옆이 가수 금사향이다
50년대 시민회관 공연사진- 맨 왼쪽이 이인권, 왼쪽에서 두 번째가 고복수 왼쪽에서 세번째가 남인수이고, 네번째가 김정구 이다
남인수//무정열차
밤차는 가자고 소리 소리 기적소리 우는데
옷소매 잡고서 그 님은 몸부림을 치는구나
정 두고 어이 가리 애처로운 이별 길
낙동강 굽이굽이 물새만 운다
눈물어린 경부선
떠나는 가슴에 눈물 눈물 서린 눈물 고일 때
새파란 시그널 불빛도 애처로운 이 한밤아
마지막 인사마저 목이 메어 못할 때
쌍가닥 철길 위에 밤비만 젖네
울고 가는 경부선
아득한 추풍령 고개 고개 눈물고개 넘을 때
희미한 차창에 그 얼굴 떠오르네 비치네
기차도 애처롭게 허덕지덕 달릴 때
새빨간 님의 순정 가슴에 젖네
비 내리는 경부선
남인수의 데뷔 곡 '눈물의 해협' SP음반에 들어있는 가사지에 있는 사진이다. 남인수의 데뷔 때의 앳띤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사진.
오케 연주단 지방공연 사진.1번- 남인수 ,2번- 고복수, 3번- 이화자,4번- 이난영, 5번- 김해송, 6번- 김정구, 7번- 이철- 오케 연주단 단장- 오케레코드사 사장, 8번- 손목인, 9번- 이은파, 10번- 장세정, 11번- 김용호
작곡가 이용준(왼쪽), 남인수(오른쪽), 미상
조선악극단 멤버들의 사진 앞줄 왼쪽 부터 이난영, 서봉희, 이화자, 맨 끝이 단장 이철 가운데줄 왼쪽 부터 이봉룡, 남인수 뒷줄 두번째 부터 엄재근, 송달협, 김정구 지휘봉을 든 사람이 손목인
1958년 국도극장 공연에서- 앞줄 왼쪽부터 영화배우 김지미, 이난영 뒷줄 왼쪽부터 계수남, 남인수, 영화배우 이민, 고운봉, 김선영.
50년대 극장 포스터이다. 가요계 황제-남인수, 가요계 여왕- 신카나리아 모던가수- 고운봉, 오리엔트 전속- 김용태, 가요계의 호프- 김백희 등의 광고문구
백난아(당시 19세, 왼쪽)과 남인수 부부 (중앙- 남인수, 오른쪽- 김은하) 가 일본 전국 순회공연 중 분장실에서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 김은하는 당대 한국 무용계의 1인자였다
50년대 중반- 작곡가 이재호와 함께 찍은 사진.
남인수의 병간호를 하고 있는 이난영
50년대 중반 작곡가 손석우와 함께 중앙극장 앞에서 찍은 사진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장동휘, 일곱번째가 최병호 앞줄 왼쪽부터 손석봉, 남인수, 황금심, 고복수, 박진(전 국립극단장), 한 사람 건너 최남용
앞 줄 외쪽부터 남인수, 신카나리아, 황금심, 고복수 57년 고복수 은퇴 공연 때 찍은 사진
1960년 현 남인수 기념사업회 회장 신해성과 함께
남인수의 고향인 진주 촉석루 아래에서 찍은 사진 맨 왼쪽이 남인수,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작사가 구완회 맨 오른쪽이 작사가 박영호
남인수 친필문서- 59년 가수협회장이던 남인수가 반야월에게 보내는 편지
1939년경 오케 연주단 모습
<_SPAN><_FONT> 서윤성의추억이야기<_SPAN><_FONT><_SPAN><_SPAN><_STRONG><_FONT><_P><_TD><_TR><_TBODY><_TABLE><_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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