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Rock & Metal·Country·샹송 기타

[스크랩] Michel Polnareff - Ca N`Arrive Qu`aux Autres

mistyblue 2012. 1. 25. 01:17

Michel Polnareff - Ca N'Arrive Qu'aux Autres


Michel Polnareff - Ca N'Arrive Qu'aux Autres  

     Michel Polnareff - Ca n'arrive Qu'aux Autres    
(다른사람에게만 일어나는일)

la petite bet' jouait au jardin 귀여운 소년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et j`avais sa tete au creux de ma main 나는 그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었어요
un oiseau de plus un oiseau de moins 새가 한 마리 더 있고, 없는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아시나요
c`est le chagrin
그것은 슬픔이지요

il n`y a pas eu ecole ce matin 오늘 아침엔 수업이 없었어요
c`etait une fete d`enfant au jardin 이제 마당에는 어린이가 있겠죠
un oiseau de plus un oiseau de moins 새가 한 마리 더 있고, 없는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아시나요
c`est le chagrin
그것은 슬픔이지요

la petite bet' jouait au jardin 그런데, 소년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c`etait une fete quand tous les matin 그것은 매일 아침의 축제 같았어요
un oiseau de toi, un oiseau de moi 그대의 새와, 나의 새는
venait ici manger de notre pain
각자의 길로 떠나고 말았어요

ca n`arrive qu`aux autres 그것은 타인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mais c`etait le notre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죠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알 수 있는지요
c`est le chagrin
그것은 "슬픔"이라는 것이랍니다

 

Ca N'arrive Qu'aux Autres /Michel Polnareff
 
la petite bet' jouait au jardin
귀여운 소년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et j`avais sa tete au creux de ma main
나는 그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었어요
 
 un oiseau de plus un oiseau de moins
 새가 한 마리 더 있고,
 
 없는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아시나요
 
c`est le chagrin
그것은 슬픔이지요
 
il n`y a pas eu ecole ce matin
오늘 아침엔 수업이 없었어요
 
 c`etait une fete d`enfant au jardin
이제 마당에는 어린이가 있겠죠
 
 un oiseau de plus un oiseau de moins
 새가 한 마리 더 있고, 없는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아시나요
 
 c`est le chagrin
그것은 슬픔이지요
 
 la petite bet' jouait au jardin
그런데, 소년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c`etait une fete quand tous les matin
그것은 매일 아침의 축제 같았어요
 
 un oiseau de toi, un oiseau de moi
그대의 새와, 나의 새는
 
 venait ici manger de notre pain
각자의 길로 떠나고 말았어요
 
 ca n`arrive qu`aux autres
 그것은 타인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mais c`etait le notre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죠 tu sais la difference
그 차이를 알 수 있는지요
 
c`est le chagrin
그것은"슬픔"이라는 것이랍니다




 


 

Oct Roman -

 

프랑스인들이 자긍심을 갖는 샹송을 거론할 때 흔히, 1세대 전통 샹송가수로 꼽히는 에디트 피아프나, 이브 몽땅 등이 있었다면,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로큰롤을 받아들인 2세대 샹송싱어들을 크게 나누어 2세대라 표현합니다.

이들을 일컫기를 예예 (yeye)족이라 하는데, 전통적인 샹송에서 벗어나, 미국의 로큰롤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노래들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열풍을 일으킵니다.

대표적인 가수들로, 조니 할리데이, 프랑스와즈 아르디, 실비 바르땅, 그리고, 미쉘 폴나레프 등이죠.

하지만, 이렇게 거세게 몰아치는 예예족의 물결 속에서도 세르주 겡스부르 같은 천재적인 싱어 송 라이터가 등장해 프랑스의 전통적인 샹송의 맥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미쉘 폴나레프는 1944년 생으로, 예술가 집안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Simone Lane 는 무용가였고, 그의 아버지 Leib Polnareff 는 유명한 작곡가로서, 에디트 피아프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뮤지컬 적인 화성은 매우 클래식한 것으로, 어릴적 (5세) 아버지에 의해 음악학교에 보내져 기타와 피아노등을 배우게 됩니다.

 

군대를 제대한 후 실직한 그는 한동안 보헤미안이 되어 집시로 지내며 자연과 음악을 만끽하며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그가 작사.작곡을 도맡아 하는데, 그가 회고하기를 자신이 발표한 노래들의 영감은 대부분 이 시절의 추억에서 얻어진다고 얘기합니다.

 

미쉘 폴나레프의 디스크가 처음 발표된 것은 싱글음반으로 1965년 'the doll that does non' 이라는 곡으로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 후 그는 인기가수가 되었으나 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며 늘 독특한 패션을 연출했습니다.

 

그의 노래 'Holiday'와 'Qui A Tue Grand' Maman'은 우리에게 무척 잘 알려진 곡이며, 최근 전인권 씨가 발표한 노래 '다시 이제부터' 역시, 그의 노래 'Ca n'arrive qu'aux aut res' 를 번안,편곡한 노래입니다.

 

위의 메인포스트로 걸어 놓은 미쉘 폴나레프의 엉덩이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미쉘 폴나레프는 1972년 파리 최대의 뮤직홀인 올랭피아에서 리사이틀을 가질 계획이었습니다.

광고대행업자와 함께 그 자신이 사진을 토대로 한 포스터를 구상했는데, 그것은 색안경과 챙이 넓은 여자용 모자를 쓴 그가 레이스 달린 속치마를 걷어올리고 그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보여주는 포스터였습니다.

이 포스트 중의 6천장이 파리 시내의 벽들에 붙게 되었죠.

이 가수의 엉덩이에 충격을 받은 포스터 부착공 앙리 라리비에가, 청소년들에게 불건전하다고 판단되는 영화임을 부모에게 알릴 때 하는 프랑스 텔레비전의 방식을 흉내내서 그 벽보 위에 사각형의 백지를 전시했다가 기소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쉘 폴나레프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재판도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판사 : "즉 당신은 선량한 부르주아들을 놀라게 함으로써 특수한 선전효과를 노렸지요?"
폴나레프 : "천만에요. 그건 농담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웃기고 싶었을 따름이었어요.

너모두 우울한 세상이어서 말이오(Morosite, 우울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전 수상 샤방 델마스가 당시 프랑스의 무거운 분위기를 묘사한 단어로서 인용되었다)."
판사 : "결국 당신은 모든 잘못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치료방법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군요."
폴나레프 : "그럼 안됩니까?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베르사유 궁의 분수와 까망베르(노르망디 지방산 치즈)에 국한돼야 할 건 없겠죠"
판사 : "당신은 자신이 역사적 기념물이라고 생각하시오?"
폴나레프: "프랑스의 영광은 과거속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판사 : "당신의 벽보는 음란했소."
폴나레프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판사 : "그건 당신이 자신의 엉덩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오."

폴나레프 : 엉덩이만 보느라고 무슨 공연인지는 관심이 없었나보군요.

 

2주간 고려한 후 판사는 가수에게 6만프랑(포스터 1매당 10프랑)의 벌금을 선고했고, 음반을 제작한 회사에도 6만프랑, 또 이 사진을 구상했던 광고대행인에게 3만 프랑을 부과했습니다.

파리의 담벽들에 벌거벗은 엉덩이를 붙인 벌금이 도합 15만 프랑이란 거액에 달한 것이었죠.

요즘 이 벽보는 수집대상이 되었습니다.

판사와 일부 파리사람들을 격분시킨 것은 그것이 사진이란 점에 있었습니다.

그림이었다면 틀림없이 쉽게 지나갔을 것이었죠.

그러나 사진의 속성인 리얼리즘이 (가수의 엉덩이를 볕에 그을린 다리보다 눈에 띄게 하였음) 이 선전매체를 훨씬 더 공격적이게끔 만들었습니다.

 

60이 넘은 그는 지금도 꾸준한 체력관리로 조각같은 가슴 근육을 자랑하며, 여전히 그의 젊은 시절처럼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


 

 

 



서윤성의추억이야기

출처 : 상아의 추억
글쓴이 : 윤성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