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8

호우총·천추총·태왕릉의 ‘#’문양의 정체…‘광개토대왕’? ‘운수대통’?

‘을묘년 국강상 광개토지호태왕 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 1946년 5월14일이었다. 경주 노서리 140호분(돌무지덧널무덤)을 파고 있던 국립박물관 조사단이 ‘발굴 일지’의 표현대로 ‘쎈세이순’한 명문 유물을 찾아냈다.고급의 청동제 그릇 밑바닥에 아로새겨진 ‘광개토대왕(재위 391~412)’이라는 명문,그 분의 묘호가 빛났다.해방 후 첫번째 ’우리 손 발굴’에서 이뤄낸 개가였다.당시 신문(동아일보 5월25일)의 보도처럼 명문 유물의 착안점은 두가지였다.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그릇에서 보이는 #(井) 부호(글자).광개토대왕 사후 3년 후인 415년 제작된 청동그릇 밑바닥의 16자 글자 위에 수수께끼를 내듯 새겨져 있다.이 #(井)자는 호우총보다 50~100년 전 조성된 국내성의 왕릉급 무덤..

'7명 순장' 신라 속 고구려 벽화고분... 누구의 무덤일까?

영주순흥 벽화고분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비봉산(飛鳳山) 중턱에 있는 영주순흥 벽화고분의 모습.산 아래 방향에는 이 묘를 복원한 '복제 고분'이 있다. 1985년 11월 사적(제313호)으로 지정됐다.한국 고대사에선 여러 소국이 네 나라, 세 나라, 그리고 마지막엔 신라로 통일된다.이 과정은 극적 장면의 연속이었다.‘형제의 나라’였던 국가끼리 갑자기 전쟁하는가 하면,이 전쟁 속에 왕이 전사하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사정이 이런데도 이 과정에서 어떻게 문화적 동질성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고고학 유적ㆍ유물을 보면 세 나라는 각기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지속해서 서로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섞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리고 영주순흥 벽화고분(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은 한반도에 정립된 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