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s & 그 이야기들

[스크랩] 모터사이클 이야기 3

mistyblue 2013. 11. 17. 18:26

 

때는 이차대전이 끝난 직후의 미국. 대전 이전의 대공황의 비참함, 그에 이어진 세계대전의 암울함에서 해방된 미국인들이 삶을 만끽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늙은) 미국인들이 "골든 에이지" 라며 그리워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 1930년대,


↑ 1940년대,


↑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1950년대. 1950년대는 야구, 핫로드(자동차), 엘비스, 마릴린 몬로 등 미국인들에게 노스탈지아를 불러 일으키는 아이콘들로 가득한 시대입니다.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확장된 경제가 일반 소비자를 위한 경제로 업종변경을 하면서, 미국인들은 인류 역사상 유래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태어나 오직 풍족만을 알고 자란 세대의 미국인들, 소위 "베이비 부머" 들이 이 비정상적인 풍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재앙을 야기하게 됩니다만, 그건 아직 60년쯤 뒤의 이야기이고...

이 물질적 풍요 속에 "T-버드 (포드 썬더버드)" 로 대표되는 자가용차들이 미국 중산층 가정에 널리 보급되고, 자동차의 이용 편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최대규모의 도로망이 미국 전토에 걸쳐 건설됩니다. 종래의 도로와는 달리 일직선으로 쭉 뻗은 자동차용 고속도로인 "프리웨이" 를, 네 바퀴가 아니라 두 바퀴가 달린 탈것, 즉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이 있었지요.

 



↑ 말론 브란도, "와일드 원". 1953년작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쟈니(브란도)가 타는 모터사이클은 브란도 자신의 소유인 트라이엄프 655cc 입니다. 다시 말해 영국제죠. 


↑ 제임스 딘. 제임스 딘이 소유했던 모터사이클이 한두대가 아니라서 이게 어느 것인지 맞추기가 힘듭니다만, CZ(체코산), 노튼(영국), 트라이엄프(영국)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이차대전 종전후 모터사이클을 탔던 이들을 사회경제학적으로 (어쭈) 분석할 경우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 및 참전용사들을 다수 포함하는 젊은 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이야 참전용사라고 하면 대부분이 나이많은 어르신들입니다만, 이때 참전용사들은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은 친구들이었으니까요.

 



↑ 그때 참전용사는 대충 이런 느낌.


이 참전용사들 중 많은 이들은, 종전후 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독일의 BMW나 쥔다프, 영국의 트라이엄프나 노튼 같은 유럽 모터사이클들을 접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중 몇몇은 아예 본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모은 군대 월급으로 군용 할리-데이비슨이나 인디언의 육군 불하품(拂下品)을 사서 올라타고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집까지 달렸지요.

지금도 유럽과 미국의 모터사이클의 성능을 비교해보면 평균적으로 유럽것들이 좀더 고성능이라는 평이 있지만 (다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당시 대륙간 모터사이클 성능차는 상당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참전용사들은 할리와 인디언의 무거운 차체로부터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을 떼어내, 유럽 바이크에 근접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개조를 했죠.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주행에 꼭 필요한 부품만 남기고 그야말로 모조리 쳐냈습니다. 앞 펜더, 뒷 펜더, 방향지시등, 후미등, 심지어 전조등과 앞브레이크까지 떼어냈는데, 이렇게 난도질당한 모터사이클을 "바버"(bobber)라고 불렀습니다.

 



↑ 할리 바버. 말의 길다란 꼬리털을 짧게 쳐내는 것을 "bob" 이라고 하는데, 모터사이클을 경량화하면서 뒷쪽 펜더를 짧게 잘라낸 꼴이 꼭 꼬리잘린 말 같았는지, 바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진에 나온 바버는 뒷쪽 펜더가 그대로 있군요(...)


↑ 바빙의 재료로 인기있는 모터사이클의 하나인 1940년형 인디언 "스포츠 스카웃". 거대한 펜더를 보십시오.


↑ 이런 식으로 펜더만 쳐내도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야기가 잠깐 앞질러나갑니다만, 할리-데이비슨은 나중에 이 바버 스타일 바이크를 본딴 모터사이클을 아예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팔리고 있는 "밥" (bob) 종류들이 바로 바버 바이크들인데, 군더더기 없는 외관에 수수한 검정색 컬러가 옛날 바버 바이크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죠.

 



↑ 할리-데이비슨 "팻밥" 모터사이클. 이런 바버 바이크 제품은 원래 커스텀 작업을 위한 바탕재료로 쓰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어서 엔진 출력이 높고 겉치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커스텀 작업을 위해 아까운 새 부품을 떼어낼 필요도 없거니와 웬만큼 액세서리를 덧붙여도 속력 저하의 염려가 없죠. 하지만 그 깔끔한 스타일과 발군의 파워에 반해서 바버 형태 그대로 타는 이들도 많습니다.


바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챠퍼(chopper)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군살빼기 작업인 바빙에 비해, 챠핑은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개조작업이었는데요, 당시 미국에는 이차대전에서 돌아온 기술병 출신의 참전용사들이 많았고, 이들의 손을 통해 개조자동차인 핫로드, 그리고 개조모터사이클인 챠퍼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 챠퍼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바로 영화 "이지 라이더" 의 캐릭터인 와이어트 (피터 폰다) 가 탄 할리-데이비슨이죠.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조된 이 모터사이클의 모체는 1949년형, 1950년형, 그리고 1952년형 "하이드라-글라이드" 입니다. (이 챠퍼는 촬영을 위해 도합 네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체도 여럿입니다.)


↑ 이쪽이 성형전 사진. 거대한 앞펜더는 엔진과 차체에 오물이 튀는 것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동네 자동차 개조작업소인 챱샵 (chop shop) 에서 손을 좀 보고 나면, 평범한 모터사이클이 엄청난 길이의 앞포크와 높~다란 핸들바, 소위 에이프 행어를 가진 괴물로 변했습니다. 이 특이한 스타일링이 바로 성능향상 위주인 바빙과 멋부리기 중심인 챠핑을 구분짓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처럼 긴 앞포크는 고속주행에서 모터사이클의 주행 안정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만 저속주행시 조향성이 극히 나쁘고 또 차 전체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등, 나쁜점이 더 많았습니다.

 



↑ 성능 향상보다는 멋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챠퍼는 오히려 바버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하긴 "빨리 달릴 수 있다" 는 점만 본다면 서로 통하긴 합니다만...


↑ 아니메에 나오는 물건이긴 합니다만... 챠퍼와 레이서의 혼혈인 "카네다 바이크" ("아키라" 에 등장). 조금만 기울여도 차체가 길바닥에 닿을것 같은데, 뭔가 미래 테크놀로지가 사용된 것인지 민첩하게 잘 달립니다.


↑ 오토바이 코스프레?


미국의 젊은이들이 모터사이클을 챠퍼로 변신시키고 있는 동안, 유럽에서도 독자적인 모터사이클 개조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독일, 이태리 등 유럽 각국에서 유햏한 "카페 레이서" (또는 영국식으로 "카프 레이서") 가 바로 그것이죠.

 



↑ 로열 엔필드 카페 레이서 개조예. 상체를 모터사이클 동체에 밀착시키고 달리도록 핸들바와 풋펙(발받침)의 개조가 이루어져 잇습니다.


↑ 카페 레이서의 외관상 특징은 극히 짧고 낮은 핸들바입니다. 아예 핸들바를 떼어내고 앞튜브에 손잡이를 직접 용접하는 경우도 있죠.


"카페 레이서" 라는 이름만 들으면 프랑스의 노변카페 앞을 여유롭게 달리는 우아한 레이서 (뭐야 그게) 가 연상됩니다만, 사실 여기서 카페라 함은 원래 영국의 트란스포트 카페 (영국인들은 그냥 "카프" 라고 부릅니다만), 즉 고속도로 휴게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 영국 런던의 "에이스 카페" 휴게소 앞에 세워진 모터사이클들. 2007년 사진인데도 카페 레이서가 끼어 있습니다.


↑ 이 짧고 낮은 핸들바가 카페 레이서의 특징. 챠퍼의 에이프 행어와는 정 반대죠.


당시 영국의 젊은이들은 전후 새로 정비된 고속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며 다양한 방식의 경기를 벌이곤 했는데, 일례로 레코드 레이싱이라 하여 카프에 비치된 쥬크박스의 음악을 틀고, 모터사이클을 달려 특정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올때까지 그 음악이 끝나지 않으면 이기는 방식의 경주가 인기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짓들을 벌이던 사람들도 지금은 전부 60~70살 먹은 점잖은 노인들입니다. ^^)

자칫하면 모터사이클의 성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는 챠핑에 비해, 카페 레이서로 개조된 바이크는 민첩해지므로 나름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카페 레이서처럼 몸을 낮추고 장거리를 주행한다는 것은 몹시 피곤하므로,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는 챠퍼가, 그보다는 좀 좁은 유럽 국가에서는 카페 레이서가 유행한 것은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죠.

카페 레이서에 이어 1980년대부터 유럽에서 유행한 개조(?)바이크로는 "스트리트파이터" 가 있는데, 사실 스트리트파이터는 개조 바이크라고 부르기는 좀 뭣한 것이, 모터사이클 레이싱을 하다가 사고를 내서 페어링이 손상된 바이크를, 페어링을 제거한 채로 그냥 타는 것을 스트리트파이터라고 불렀으니까요. 나중에는 그 와일드한 느낌을 선호해서 멀쩡한 레이스 바이크의 페어링을 떼어내 스트리트파이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 스즈키 GSX-R600의 페어링을 제거한 스트리트파이터 바이크.


↑ 이쪽이 GSX-R600. 원래의 모습. 참고로 페어링(fairing)이라는 것은 오토바이 앞쪽에 달린 플라스틱제 커버입니다. 페어링은 오토바이를 유선형으로 만들어 공기저항을 덜 받게 하는 기능 외에 바람, 물, 먼지 등으로부터 차체와 승차자를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바버, 챠퍼, 카페 레이서, 스트리트파이터 등의 개조 바이크들은 사람들이 오토바이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오늘날의 오토바이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음번 포스트에서는 오늘날의 오토바이는 어떤 종류들이 있으며 각각의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부록: 우리나라와 일본의 개조바이크

일본과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오토바이 개조 문화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보소조쿠 (폭주족)" 를 중심으로 독특한 오토바이 카운터컬쳐가 형성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를 전후하여 독특한 폭주족 문화가 생겨났죠.

 



↑ 일본의 폭주족 청소년들. 옷차림과 얼굴에 기합이 빡 들어간 것이 지금 보면 오히려 단정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폭주족들도 나름대로 개조를 한 오토바이들을 즐겨 탔는데, 성능 향상보다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외형을 창출해 내는 것에 주안한 개조라는 점에서 유럽보다는 미국 모터사이클 카운터컬쳐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자신의 탈것이 멋있고 눈에 띄도록 하고 싶다는 바램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굳이 어느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싶기도 합니다만...)

 



↑ "풀개조" 된 일본 폭주족 오토바이. 극히 특이한 형태의 페어링은, 운전자가 공들여 꾸민 옷차림과 리젠트 머리를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용도일지도?
거대한 동승자 좌석은 60년대 챠퍼의 시시바를 연상하게 하는군요.


↑ 한국식 오토바이 개조의 극단적인 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게 올린 후륜 서스펜션이 특징입니다. 사진의 개조예는 차고는 높고 휠베이스 (앞뒷바퀴 간격) 는 짧으므로, 주행의 안정성이 나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이제는 80년대풍 오토바이 폭주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광란의 질주를 위한 탈것이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옮아가면서 폭주족에 새로 유입되는 젊은 멤버들의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리젠트 머리에 특공복을 차려입은 폭주족의 모습은, 머지 않아 개그 프로그램이나 아니메 등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듯 합니다.

 



↑ 폭주족들의 단합을 다지는 라이브에서의 한장. 이런 모습도 이제는 버블경제와 함께 추억 속으로...


반면 우리나라 폭주족의 경우 아직까지는 그 수도 제법 돼서, 특정 시기가 되면 단속하려는 경찰과 속도를 겨루며 독자적인 문화 행사도 갖는 등 나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급속히 노령화되면서 이런 모습도 머지않아 보기 힘들어질 테니,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자신들만의 카운터 컬쳐를 향유한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특권이긴 합니다만, 그 행태가 스스로에게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보니...)

우리나라 폭주족 젊은이들의 개조 오토바이는 다른 나라에서 비근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외형이 독특합니다. 이들 개조 바이크들은 대개 눈에 띄는 외형을 추구하기 위해 주행성능을 희생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오토바이 폭주 문화가 우리나라 특유의 교통환경에서 실현 가능한 형태로 진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고속도로에 오토바이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오토바이 폭주는 도심지의 비교적 짧은 거리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드랙 레이스 형태가 주를 이루며, 그런 가운데 차고가 높고 휠베이스가 짧은 불안정한 오토바이를 솜씨좋게 다루는 것을 경쟁하는 스릴을 만끽하는 것이라는 거죠.

(일설에는 엔진을 튜닝해서 주행속도를 높이는 것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신에 차고를 높여서 주행의 "속도감" 만이라도 높이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즉 돈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눈물나게 불쌍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공권력의 청소년 폭주족에 대한 접근법은 폭주족의 행사때마다 경찰을 투입해서 단속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경찰과 경주하는 오토바이들을 보노라면 폭주족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여흥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안전장구 (하다못해 헬멧이라도) 착용 등에 대한 홍보, 또 젊은이들의 질주본능을 안전하게 충족할 수 있는 장소의 제공 등 보다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싶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가든 파이브" 인가 하는 곳이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 있던데, 그 근처를 내주면 어떨지?)

 

 

출처 : http://werdna.egloos.com/5127528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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