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제이차 세계대전은 끝이 나고, 세계는 승자와 패자의 두 진영으로 양분됩니다.
양분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죠. 주축국 중에서도 가장 악역이었던 독일은, 소련군이 통제하는 동독, 그리고 미군 점령하의 서독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독일은 그렇다 치고...우리는 왜? --;)
뛰어난 성능의 비행기 엔진 메이커로서 전쟁 말기에는 제트엔진까지 만들어 루프트바페에 납품했던 바바리아 모터 제작소, 즉 BMW는, 뮌헨 부근에 하나, 그리고 아이제나흐 부근에 하나 해서 두 개의 주요 공장을 갖고 있었는데요, 뮌헨은 서독, 아이제나흐는 동독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동서로 양분되면서 회사도 양분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중에서 아이제나흐의 공장이 나중에 EMW로 이름을 바꾸게 되어 BMW와 EMW의 서로 다른 회사로 갈라서게 되죠.
소련 통제하의 아이제나흐 공장은, 사실 공장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상황이었습니다. 비행기 엔진 생산시설을 비롯해 공장의 알맹이를 소련군이 전부 뜯어서 본국으로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남은 것은 빈 껍데기와 사람 뿐이었죠. 게다가 핵심 기술자들은 항공기용 제트엔진을 만들게 한다며 전부 소련으로 데려가 버렸습니다.
그럼 서독의 뮌헨 공장은? 이쪽은 상황이 더 안 좋았죠. 그나마 폭격은 모면했던 아이제나흐 공장에 비해, 뮌헨 공장은 연합군의 공습에 불타서 완전히 잿더미 상태였으니까요. 이쪽도 기술인력을 연합군에게 빼앗긴 것은 마찬가지였구요.
하지만 제일차대전 종전 후 R32 모토라드를 생산하여 갱생에 성공했듯, BMW는 이번에도 모토라드 생산으로 부활을 노립니다. 1948년에 제작한 "R24"가 바로 BMW 부활의 신호탄이였죠.
250cc의 이 단촐한 모토라드는, 개발인력도 숙련 노동자도 없는 BMW가 어렵게 복구한 뮌헨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것입니다. 이름은 R24이지만 사실 그 실체는 2차대전 이전에 생산되던 민간용 모토라드인 R23의 카피인데, 그나마도 R23의 설계도조차 불타버리고 없어서 중고 R23을 뜯어서 그것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R24를 필두로 하는 BMW의 모토라드들은 전후 경제난에 시달리는 서독인들의 탈것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BMW가 잿더미로부터 몸을 일으켜 오늘날의 대기업으로 되살아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패자 부활전은 독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자폭탄을 두발이나 얻어맞고 주저앉은 일본도 전후 재건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죠. 이 시기에 서민의 탈것으로는 수많은 자전거와 더불어 자전거에 2행정 소형 엔진을 단 원동기 자전거가 주를 이루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에 시장 거리 등에서 심심챦게 볼수 있었던 이 원동기 자전거들은 효율적이지만 시끄럽고 기름 냄새나는 탈것으로 유명했습니다. (2행정 엔진과 4행정 엔진의 차이도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일본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밀접해 있는 일본은 미군의 군사 기지이자 생산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전쟁에 소요되는 많은 물자를 생산하면서 유래없는 호경기를 맞게 되죠. 일본의 오토바이 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데, 이는 아직 사치품이었던 승용차, 그리고 이제는 다소 빈티나는 탈것이 된 원동기 자전거 사이에 위치한 "서민 및 중산층의 탈것" 으로서 오토바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선박 및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회사인 가와사키 중공업은 1954년부터 오토바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낸 가와사키의 오토바이 엔진은 장난 아니게 견고하고 성능이 높았는데, 가와사키 오토바이는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죠.]
일본 악기제조 주식회사 (야마하) 도 1958년에 "YA-1", 일명 아카톰보 (고추잠자리) 를 생산했습니다. 악기회사가 오토바이 제조라니 터무니없다- 싶으시겠지만, 악기를 만들려면 금속 정밀가공에 대한 노하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죠.
1909년에 창립하여 주로 직조기를 만들던 스즈키도 1952년 원동기 자전거 "파워 프리" 를 시작으로 오토바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조기 회사가 오토바이를?"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직조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극히 정교한 기계 제작에 능숙하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스즈키는 1937년에 잠깐동안 자동차를 생산한 적도 있죠.
지금까지 보신 일본 오토바이 회사들은 모두 지금도 건재한 오토바이 명가들입니다. 그러나 세계 오토바이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회사는, 늦깎이 기업인인 소이치로 혼다의 회사, 혼다 공업이죠.
"나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라는 혼다의 개인사까지 다루자면 포스트가 너무 길어집니다만, 아뭏든 토요타 자동차의 납품업자였던 혼다가 자사 브랜드로 출시한 "타입 D" 라는98cc 오토바이로부터 오늘날 세계 최대의 오토바이 생산회사이자 굴지의 첨단기술 연구회사인 혼다가 태어나게 되죠.
1960년대에 혼다의 오토바이가 미국에 수출될 무렵, 미국의 모터사이클들은 기계적 신뢰도, 성능, 사용의 간편성 등에서 이미 혼다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전통적인 미국 모터사이클의 이미지와 차별화하려는 혼다의 "건전한 탈것" 마케팅에 힘입어, 혼다의 오토바이들은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나갔죠.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앞서 나갔군요. 다음번 포스트에서는 시간을 되돌려서, 제이차대전이 끝난 직후의 미국으로 가 보겠습니다
양분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죠. 주축국 중에서도 가장 악역이었던 독일은, 소련군이 통제하는 동독, 그리고 미군 점령하의 서독으로 양분되었습니다. (독일은 그렇다 치고...우리는 왜? --;)
뛰어난 성능의 비행기 엔진 메이커로서 전쟁 말기에는 제트엔진까지 만들어 루프트바페에 납품했던 바바리아 모터 제작소, 즉 BMW는, 뮌헨 부근에 하나, 그리고 아이제나흐 부근에 하나 해서 두 개의 주요 공장을 갖고 있었는데요, 뮌헨은 서독, 아이제나흐는 동독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동서로 양분되면서 회사도 양분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중에서 아이제나흐의 공장이 나중에 EMW로 이름을 바꾸게 되어 BMW와 EMW의 서로 다른 회사로 갈라서게 되죠.
↑ EMW (Eisenacher Motorenwerk) 의 로고. BMW의 로고와 비슷하지만 바바리아 국기의 파란색 체크 문양이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소련 통제하의 아이제나흐 공장은, 사실 공장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상황이었습니다. 비행기 엔진 생산시설을 비롯해 공장의 알맹이를 소련군이 전부 뜯어서 본국으로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남은 것은 빈 껍데기와 사람 뿐이었죠. 게다가 핵심 기술자들은 항공기용 제트엔진을 만들게 한다며 전부 소련으로 데려가 버렸습니다.
↑ 우랄 "솔로". 소련군이 아이제나흐에서 빼앗은 장비로 본국에 세운 모토찌클(오토바이) 회사가 바로 IMZ-우랄입니다.
그럼 서독의 뮌헨 공장은? 이쪽은 상황이 더 안 좋았죠. 그나마 폭격은 모면했던 아이제나흐 공장에 비해, 뮌헨 공장은 연합군의 공습에 불타서 완전히 잿더미 상태였으니까요. 이쪽도 기술인력을 연합군에게 빼앗긴 것은 마찬가지였구요.
하지만 제일차대전 종전 후 R32 모토라드를 생산하여 갱생에 성공했듯, BMW는 이번에도 모토라드 생산으로 부활을 노립니다. 1948년에 제작한 "R24"가 바로 BMW 부활의 신호탄이였죠.
↑ BMW "R24", 1948년작.
250cc의 이 단촐한 모토라드는, 개발인력도 숙련 노동자도 없는 BMW가 어렵게 복구한 뮌헨 공장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것입니다. 이름은 R24이지만 사실 그 실체는 2차대전 이전에 생산되던 민간용 모토라드인 R23의 카피인데, 그나마도 R23의 설계도조차 불타버리고 없어서 중고 R23을 뜯어서 그것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R24를 필두로 하는 BMW의 모토라드들은 전후 경제난에 시달리는 서독인들의 탈것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였고, BMW가 잿더미로부터 몸을 일으켜 오늘날의 대기업으로 되살아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 이차대전 후에 생산된 BMW 모토라드들. 당시 BMW의 모토라드는 전부 이름이 전부 "R" 로 시작합니다 (Rahmen, 즉 프레임이라는 의미죠. 참고로 당시 BMW 자동차들은 이름 첫자가 Fahrgestell, 즉 섀시를 의미하는 F로 시작하구요).
바우하우스가 오토바이를 만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기능미 위주의 디자인에, 뛰어난 성능과 높은 기계적 신뢰도까지 갖춘 BMW 모토라드들은 당시 따라올 자가 없는 걸작들이었습니다. (지금도 BMW 모토라드들이 좋긴 합니다만, 요새는 다른 회사들도 꽤 잘 만드니까요.)
바우하우스가 오토바이를 만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기능미 위주의 디자인에, 뛰어난 성능과 높은 기계적 신뢰도까지 갖춘 BMW 모토라드들은 당시 따라올 자가 없는 걸작들이었습니다. (지금도 BMW 모토라드들이 좋긴 합니다만, 요새는 다른 회사들도 꽤 잘 만드니까요.)
패자 부활전은 독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자폭탄을 두발이나 얻어맞고 주저앉은 일본도 전후 재건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죠. 이 시기에 서민의 탈것으로는 수많은 자전거와 더불어 자전거에 2행정 소형 엔진을 단 원동기 자전거가 주를 이루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1960~70년대에 시장 거리 등에서 심심챦게 볼수 있었던 이 원동기 자전거들은 효율적이지만 시끄럽고 기름 냄새나는 탈것으로 유명했습니다. (2행정 엔진과 4행정 엔진의 차이도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 "원동기 자전거" 라는 단어의 유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스즈키 파워 프리.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일본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밀접해 있는 일본은 미군의 군사 기지이자 생산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전쟁에 소요되는 많은 물자를 생산하면서 유래없는 호경기를 맞게 되죠. 일본의 오토바이 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데, 이는 아직 사치품이었던 승용차, 그리고 이제는 다소 빈티나는 탈것이 된 원동기 자전거 사이에 위치한 "서민 및 중산층의 탈것" 으로서 오토바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선박 및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회사인 가와사키 중공업은 1954년부터 오토바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낸 가와사키의 오토바이 엔진은 장난 아니게 견고하고 성능이 높았는데, 가와사키 오토바이는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죠.]
↑ 메이하츠 125-500 오토바이. 메이하츠는 모델명이 아니라 회사 이름인데, 가와사키의 계열사로서 원래 비행기 엔진 제작회사였던 메이하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 1960~1970년대의 가와사키 오토바이들.
일본 악기제조 주식회사 (야마하) 도 1958년에 "YA-1", 일명 아카톰보 (고추잠자리) 를 생산했습니다. 악기회사가 오토바이 제조라니 터무니없다- 싶으시겠지만, 악기를 만들려면 금속 정밀가공에 대한 노하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죠.
↑ "웃흥 멋진 오토바이", YA-1. 악기회사의 첫 오토바이 작품치고는 너무 잘 만들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사실 YA-1은 독일 DKW사 작품인 "RT125" 의 카피랍니다. 배기량 125cc, 싱글 실린더, 2행정 엔진을 가진 날렵한 오토바이죠.
↑ 참고로 독일 DKW가 뭐하는 회사인가 궁금하신 분을 위해 보여드리는 DKW의 로고. DKW가 오늘날 어느 자동차 회사의 전신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 야마하의 오토바이들. 세 개의 튜닝포크들이 그려진, 악기회사다운 로고가 인상적입니다.
1909년에 창립하여 주로 직조기를 만들던 스즈키도 1952년 원동기 자전거 "파워 프리" 를 시작으로 오토바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조기 회사가 오토바이를?"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직조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극히 정교한 기계 제작에 능숙하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스즈키는 1937년에 잠깐동안 자동차를 생산한 적도 있죠.
↑ 이쪽은 1955년작인 콜레다. 일어의 "코레다" (이거다!) 를 영문으로 쓴 이름이죠.
↑ 스즈키 오토바이들. 우리나라에서도 효성-스즈키라는 합자브랜드로 국내생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갈라섰죠? 양쪽 회사에게 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긴말은 안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보신 일본 오토바이 회사들은 모두 지금도 건재한 오토바이 명가들입니다. 그러나 세계 오토바이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회사는, 늦깎이 기업인인 소이치로 혼다의 회사, 혼다 공업이죠.
"나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라는 혼다의 개인사까지 다루자면 포스트가 너무 길어집니다만, 아뭏든 토요타 자동차의 납품업자였던 혼다가 자사 브랜드로 출시한 "타입 D" 라는98cc 오토바이로부터 오늘날 세계 최대의 오토바이 생산회사이자 굴지의 첨단기술 연구회사인 혼다가 태어나게 되죠.
↑ 혼다 "드림 타입 D". 이것을 완성하여 시판하며 "꿈만 같다" 며 감격해 한 제작진의 말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 이쪽은 146cc 오토바이인 "타입 E". 소이치로 혼다는 당시 일본의 거리를 메우고 있던 2행정엔진 오토바이들의 매연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여, 4행정 엔진을 탑재한 E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 C70. 짝퉁 BMW라는 느낌에서 벗어나 혼다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함을 볼 수 있습니다.
↑ 혼다 초창기 레이싱 모델들. 디자인이 좀...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오토바이, 혼다 "수퍼컵". 현재 판매되는 모델도 디자인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영원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림 "에이스" 가 이에 해당되는 모델인 모양이더군요. (대림과 혼다의 관계는 효성과 스즈키의 관계와 비슷하면서 좀 다릅니다.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만...)
1960년대에 혼다의 오토바이가 미국에 수출될 무렵, 미국의 모터사이클들은 기계적 신뢰도, 성능, 사용의 간편성 등에서 이미 혼다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전통적인 미국 모터사이클의 이미지와 차별화하려는 혼다의 "건전한 탈것" 마케팅에 힘입어, 혼다의 오토바이들은 미국 모터사이클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나갔죠.
↑ "좋은 사람들은 혼다를 탑니다." 이제는 마케팅의 고전이 된 혼다의 광고. 좋은 사람들인데도 헬멧을 안 쓰고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이것이 광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앞서 나갔군요. 다음번 포스트에서는 시간을 되돌려서, 제이차대전이 끝난 직후의 미국으로 가 보겠습니다
출처 : 소울 라이더 <Soul Riders>
글쓴이 : 필리 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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