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유채꽃 나들이
제주의 유채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닷바람일 것이다. 3월 초 섭지코지에서 이른 봄바다를 바라보려고 해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걸어도 걷는 게 아니라 바람에 등떠밀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섭지코지 앞바다를 보며 자란 유채는 바람 따라 상반신만 살랑살랑 움직일 뿐이다. 어른 무릎 높이만큼이나 자랐는데 휘기는 해도 꺾이지는 않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만 송이의 꽃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 속에서 몸을 버티려고 사지를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올 것이라고 다독이는 것이다.
- ▲ 4일 제주도 바닷가에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었지만 산방산 앞 유채꽃밭을 찾은 연인들은 따뜻한 봄의 전령을 맞이하고 있었다.
섭지코지의 유채밭은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바다의 푸른빛과 대조를 이루는 노란 물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유채의 꽃 한 송이는 시시할 정도로 수수하다. 꽃잎 크기는 새끼손톱보다 작고 색깔도 개나리의 그것처럼 선명한 노란빛이 아니라 어딘가 약간 바랜 듯하다.
꽃의 특장(特長)이라고 할 만한 향기도 딱히 없다. 산에 핀 야생화로 착각할 만큼 유약한 이 꽃이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는 것은 줄기 때문이다. 땅에 박혀 있는 원줄기가 남자의 손목만큼이나 굵다. 원줄기에서 15개 정도의 곁가지가 나오고 이 가지에서 2~4개의 곁가지가 나온다. 줄기 하나에 달린 꽃이 줄잡아 서른 송이는 된다.
제주 바다와 색으로 대조를 이루는 게 섭지코지의 유채라면, 성산일출봉(182m)이나 산방산(395m) 앞에 핀 유채에는 귀여우면서도 편안한 멋이 있다. 시커멓고 멋대로 우뚝 속은 제주의 명산(名山)들보다 야트막해도, 노란빛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유채밭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무뚝뚝한 거한(巨漢) 앞에 해맑기만 한 아기를 데려다 놓은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유채의 꽃말은 '쾌활'이다. 성산일출봉과 산방산 입구로 가는 도롯가에 유채밭을 여러 개 볼 수 있는데 모두 개인의 것이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한 사람당 1000원을 내야 한다. 일부 유채밭에서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을 위해 꽃밭 한가운데다가 벤치를 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품종개량한 유채를 심어 성산일출봉이나 산방산 등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사계절 내내 유채밭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본디 유채는 보기 좋으라고 심어놓은 것이 아니라 먹기 좋으라고 심어놓은 밀원(蜜源·꿀 채취용) 식물이자 식용 식물이다.
4~5월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유채꿀은 젖빛을 띠고 신선한 풀 냄새가 난다. 포도당 성분이 많아 소화·흡수가 잘돼 어린이나 노인에게 좋다고 한다. 유채꽃은 차로 만들어 마시면 달고 부드럽다. 눈을 밝게 하고 지혈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유채씨에서 짠 기름은 튀김용이나 샐러드유로 쓰이며 소비량이 콩기름 다음으로 많다. 유채의 '유'자가 '기름 유(油)'자인 데는 다 그만 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어린 유채잎은 겨우내 움츠렸던 입맛을 깨우는 데 많이 쓰인다. 살캉살캉하게 씹히는 상큼한 맛 때문에 그냥 먹어도 좋고, 잎의 질감이 도톰해서 살짝 데치거나 전으로 부친 후에도 숨이 크게 죽지 않아 아작아작 씹힌다. 고춧가루·식초·설탕 등을 고루 섞어 버무리면 '유채 겉절이', 데쳐서 마늘·파·고춧가루·참기름 등과 함께 무치면 '유채나물무침', 부침개 반죽에 넣으면 '유채전'이 된다. 홍고추· 쪽파·대파를 넣고 양념으로 버무려 담근 유채 김치는 쌉쌀하면서 달큰하다.
3월 중반부터 곳곳 수선화 개화
4월초 동백동산 10만 그루 동백
봄이 밀려든다. 유채꽃은 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시작일 뿐이다. 3월 초 한라산 중산간(中山間·해발 350m 지점)의 야생화를 시작으로 동백, 왕벚나무 등이 5월 말까지 제주도 곳곳에서 꽃을 틔운다. 내륙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기도 하지만, 제주도에서 한걸음 빨리 보면 더욱 반갑다.- ▲ 1.금잔화 2.동백꽃 3.너도바람꽃 4.왕벚나무 5.수선화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볼 수 있다.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 앞, 산방산 앞 외에도 제주시의 월성로터리, 노형로터리, 용문로와 서귀포시의 서귀포시 일주도로(스모루~휴팬션), 안덕면 한창로(상창삼거리~창천교통섬), 표선면 가시리 녹산로 등지에 많이 핀다.
왕벚나무
봄을 요란하게 알리는 꽃으로는 왕벚나무꽃만한 게 없다. 꽃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벚나무 중에서도 왕벚나무라고 불린다. 날이 따뜻해지면 제주도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광복 이후에 일본의 나라꽃이라는 이유로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지만,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1976년부터 다시 심어졌다.
3월 말~4월 초에 피기 시작해 약 보름간 피어 있다. 제주시의 한북로, 연삼로, 도형로 등 도로를 따라 흐드러지게 핀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는 길목 산자락에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6호)가 있다.
왕벚나무 말고도 올벚나무(3월 중순~말), 벚나무(4월 초~중순), 산벚나무(4월 초~중순)도 볼 수 있다.
수선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사랑한 꽃이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영의정 권돈인에게 보낸 글에서 '수선화는 정말 천하의 구경거리다. 여기 제주에는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다. 수선화가 피는 정월 그믐에서 3월에 이르러는 산이나 논둑, 밭둑 할 것 없이 수선화는 희게 퍼진 구름 같고 새로 내린 봄눈 같다'고 했다.
3월 중순 연삼로(종합청사~JIBS방송국)와 연북로(KCTV방송국 맞은편 유리네 식당~제주아트센터 입구 사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너도바람꽃·세복수초
한라산 중산간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세복수초가 핀다. 복수초보다 잎이 가늘어서 세복수초라고 불리는데 제주도에만 자생한다고 '제주복수초'라고도 불린다. 농밀한 노란색의 꽃잎을 활짝 피워 야생화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3월 초에서 4월 말까지 볼 수 있다.
세복수초와 함께 봄소식을 다투는 너도바람꽃도 중산간에서 볼 수 있다. 이 꽃의 속명인 에란시스(Eranthis)는 그리스어로 봄과 꽃의 합성어다. 3~4월쯤 숲 속에서 여린 줄기로 언 땅을 뚫고 나와 한 송이 하얀색 꽃을 피운다. 바람꽃으로 불리는 아네모네와 닮았다고 해서 너도바람꽃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동백
10월부터 피기 시작하지만 4월 초부터 중순까지 절정을 이룬다. 노랗거나 분홍빛 일색인 봄꽃들 가운데서 선연한 붉은 빛을 내기 때문에 단연 눈에 띈다.
북제주군에 있는 선흘 곶자왈의 동백동산에 20년 이상 자란 동백나무 10만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나무를 비롯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비쭈기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난대성 수종이 함께 자란다. 서귀포시의 신흥리 동백나무 군락과 동백 테마 공원인 '카멜리아힐'에서 보는 것도 좋다.
꽃구경도 식후경! 성게보말국 한 그릇!
제주 유채꽃 나들이
유채꽃도 식후경이다. 흑돼지부터 갈치·옥돔 등 해산물에 한라봉까지 먹는 것으로 치자면 대한민국 어느 곳 부럽지 않은 제주도다. 일단, 봄꽃 피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골라봤다.
- ▲ 경동식당의 성게보말국./ 허재성 영상미디어 기자 heophoto@chosun.com
나란히 서 있는 중앙식당과 경동식당의 주(主)메뉴는 모두 성게보말국이다. 보말은 제주도말로 '고동'을 의미한다. 미역국에 성게와 고동만 더했을 뿐인데 국물에서 벌써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고동의 쫄깃한 질감과 성게의 구수한 맛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김치와 젓갈, 나물무침 등 반찬이 단출해도 밥이 잘 넘어간다. 산방산과 가까워 산을 오르거나 유채꽃을 구경한 뒤 헛헛한 속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중앙식당이 잘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은 "별 차이 없다"고 한다. 경동식당에는 '육지인'이 하나도 없어 사방에서 제주도말만 들린다. 성게보말국 8000원. 중앙식당 (064)794-9167, 경동식당 (064)794-9540
◆산방식당―밀면
쫄깃한 면발과 새콤한 국물의 밀면이 유명하지만 산방식당에 다녀온 사람들은 "밀면은 못 먹어도 수육은 꼭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돼지 수육이 보들보들하니 윤기가 흐르는 데다 양도 푸짐하다. 밀면 대(大) 5000원, 수육 대(大) 8000원. (064)794-2165
◆유리네―갈치구이·돔베구이
제주도에 처음 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다 들른다는 곳이다. 여행자들이 많이 먹는다는 갈치구이와 쥐치조림의 조리방법은 다른 곳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재료가 싱싱한 편이다. 최근에는 돔베고기도 인기다. 돔베는 돼지고기 편육인 '도마'의 제주도 말이다. 사장의 딸인 유리양이 유치원 다닐 때인 1992년 문을 열었다고 한다. 수선화가 많이 피는 연북로와 가깝다. 갈치구이 2만8000원, 돔베고기 2만원. (064)748-0890
◆감초식당―순대·순댓국
제주도에는 순대와 순댓국, 돼지 부속고기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성시장이 있다. 이곳의 순댓국에는 육지의 그것과 달리 말간 국물에 숨이 죽지 않은 배추와 깨, 고춧가루를 얹는다. 국물이 시원한데, 충분히 진하지 않다고 불평인 사람도 있다.
제주도의 돼지 맛이 좋아서인지 순대 만드는 솜씨는 가게 20여 곳이 모두 엇비슷하게 뛰어나다. 육지의 순대와 달리 선지와 찹쌀, 좁쌀 위주로 만들어 부드럽다. 이 중 감초식당은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나와 유명해졌다.
순댓국밥 4500원. (064)753-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