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에 따른 모터사이클 브랜드 특성 (6) 스페인
[최홍준의 모토톡] 모터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인 스페인.
한때 거의 모든 모터스포츠 포디움을 점령하기도 하고 많은 서킷과 레이스팀 그리고 완성차 브랜드를 가졌던 곳이다.
스페인은 온난한 기후와 넓은 국토를 바탕으로 엔진 달린 탈 것들을 가지고 노는데 열정적이었다.
특히 오프로드, 그 중에서도 트라이얼 바이크에 대한 건 전부 스페인에서 발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트라이얼의 종주국은 영국이었지만 그것을 발전시키고 가장 열심히 탄 이들은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에는 한때 불타코, 코페르사, 짐손, 루베, 모토트랜스 등등 많은 브랜드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스페인에 남아서 활동하고 있는 브랜드는 리에후, 가스가스, 데르비, 몬테샤 정도.
대배기량 바이크를 만들던 곳은 1980년대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러나 트라이얼 브랜드들은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왔다.
불타코 같은 경우에는 이름만 다시 부활했고, 데르비는 이탈리아 피아지오 그룹으로 흡수되어
저배기량 모터사이클을 만들고 있다.
몬테샤는 혼다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순수 스페인 브랜드는 이제 가스가스 정도.
그나마 가스가스도 펀드 회사에 인수되었지만 엔듀로와, 트라이얼 등을 모두 만들고 있어서
규모면에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TRRS, 오싸, 볼타, 조타가스 등이 있지만
모두 트라이얼 전문 브랜드로 수작업에 가까운 소량 생산 브랜드로 한쪽 분야만 깊게 파고들고 있다.
◆ 가스가스 (GAS GAS)
나르시스 카사스와 조셉 피베르나트는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에서 불타코의 딜러를 하고 있었다.
불타코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더 이상 판매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내지 못하자
자신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모터사이클을 설계한다.
1985년 트라이얼 모터사이클부터 만들기 시작해 1989년 첫 엔듀로와 모터크로스 모델을 탄생시켰다.
1993년부터 조르디 타레스가 월드 트라이얼 챔피언십에서 가스가스 트라이얼을 타고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게 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영국의 아담 라가 레이싱이 인도어, 아웃도어 챔피언십에서 총 6번의 우승을 차지한다.
엔듀로 챔피언십에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1990년대 엔듀로 레이스와 2000년대부터 시작된 하드 엔듀로 대회의 포디움에서도 가스가스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엔듀로, 트라이얼 모델만으로 R&D에 투자하면서 레이스팀까지 운영을 하기엔 빠듯했다.
결국 2014년 같은 스페인 출신의 트라이얼 브랜드 오싸(OSSA)와 합병됐고
현재는 엔듀로와 트라이얼의 신모델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Gas Gas라는 이름은 결국 가솔린을 더 넣어라, To Gas it, Turn the throttle이라는 뜻으로 ‘To go faster’,
‘더 빨리 달리라’는 말이다.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Gas Gas = Fast Fast’ 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강한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 조타가스(JOTA GAS)
가스가스를 타고 트라이얼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조르디 타레스(Jordi Tarres)가 만든 브랜드.
2010년 가스가스의 엔진을 받아서 자신의 이름과 가스가스를 합친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트라이얼 전문 브랜드로 꾸준히 트라이얼 챔피언십에 참가하고 있다.
브랜드를 만든 조르디 타레스는 회사를 떠났지만 가스가스에서 합류한 인원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2017년에는 기존 아라곤 지방에서 카탈루니아 지역으로 이전해 전기 자전거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트라이얼과 산악용 전기 자전거는 모두 프레임 기술이 필요하다. 40년 이상의 레이스 경험에서 나온 프레임 설계 기술로
새로운 분야로 도전하고 있다.
◆ TRRS
조타가스를 만들었던 조르디 타레스가 모터사이클 비즈니스를 오래 해왔던
3명의 파트너를 만나 새롭게 만든 브랜드.
201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런칭과 동시에 3가지 모델을 선보이는 등
이전보다 더 나은 품질과 생산력을 갖추고 시작됐다.
바르셀로나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연구 개발과 레이스,
거기에 따라오는 비즈니스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브랜드답게
레이스와 관련된 여러 비즈니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간판선수로 아담 라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담 라가는 조르디 타레스의 뒤를 이어
총 6번의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 데르비
1922년부터 자전거와 모페드를 만들어왔으며 1946년 투자를 받으며 엔진 달린 것까지 영역을 넓혔다.
첫 모터사이클인 48cc의 SRS가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196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다수의 월드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50cc를 비롯해서 강력한 125cc 엔진으로 양산형 모터사이클 시장에서도 많은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면허 체계상 125cc 미만이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청소년이나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쉽게 탈 수 있는,
그러나 스타일이 좋은 데르비의 모터사이클 인기가 좋았다.
많은 스페인 브랜드들이 스페인 민주화 시절을 넘기지 못했지만 데르비는 잘 살아 남았다.
더 큰 엔진을 개발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잘 만들던 저배기량 엔진을 다양한 장르에 사용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2001년 이탈리아 피아지오 그룹의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은 50cc의 슈퍼모터드와 엔듀로 바이크만 만들고 있다.
◆ 몬테샤
1944년 페드로 페르마니어와 프란시스코 파코 불토에 의해 탄생된 브랜드.
가벼운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초기에는 맨섬TT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브리오80이 대 성공을 거두면서 스트리트 모델을 주력 생산했으며
초기 테스트 되었던 엔듀로 모델도 계속 생산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경기침체는 페르마니어와 불토의 마찰로 이어졌다.
페르마니어는 레이스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불토는 그 반대였다.
결국 1958년 수석 디자이너 불토는 핵심 인력 몇 명과 함께 회사를 바와 불타코를 만들었다.
1960년대 새로운 크로스 모델 개발을 시작했다.
테스트 라이더이자 엔지니어였던 페드로 피가 여러 오프로드 대회에서 우승하며
250cc엔진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엔진으로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우승을 해내자 이를 적극 활용,
다양한 스트리트, 오프로드 모델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10년간 전례 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유럽 시장에 집중했다.
다양한 배기량의 트라이얼, 모토크로스 모델을 만들었고 1
970년대부터는 트라이얼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다시 경제 불안이 찾아왔고 1981년 일본의 혼다로 상당부분의 지분을 판매하게 된다.
혼다는 현재 지분의 85%를 소유하고 있으며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트라이얼 모델만 생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집중하고 나니 트라이얼 챔피언십에서 독보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7연속 챔피언인 두기 램프킨을 배출할 수 있었고 이후 13년째 독재중인 토니 보우도 몬테샤와 함께 하고 있다.
◆ 리에후 (RIEJU)
이름 때문에 중국회사로 알게 되는 사람이 많지만 엄연히 스페인 브랜드다.
1934년 루이스 리에라와 호아놀라 파레스가 자신들의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처음에는 자전거 액세서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1940년대에 엔진을 장착한 ‘모터’가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1953년 175cc의 모델을 완성했는데 이것이 고품질을 인정받아 회사를 이어가는 초석이 되었다.
당시 다른 브랜드들은 많이 만들거나 레이스에 집중해 성능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리에후는 럭셔리 소량 생산을 택해 경기 침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몇몇 모델들이 성공을 거두었고 이탈리아 모토리 미나레리 같은 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1970년대에는 모토리에서 만든 엔진을 사용해 다수의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기록했다.
이후 다양한 모델로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안정적인 판매고를 기록했고
슈퍼모타드 챔피언십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전통적인 모터사이클 시장의 수요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에
라인업을 200cc 이하 슈퍼모타드와 엔듀로로 맞추고 온로드 모델은 125cc만 생산한다.
그리고 나머지를 전기 스쿠터에 집중하게 된다.
현재 스페인 브랜드 중에서 125cc 스트리트 모델을 만드는 유일한 브랜드가 리에후이다.
격변했던 스페인 역사 속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거의 유일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빨리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스페인에 남아있는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의외로 느리게 천천히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트라이얼 브랜드들이다.
트라이얼은 다른 모터스포츠와는 달리 속도 경쟁을 하지 않는다.
험난한 장애물을 펼쳐놓고 감점 없이 섹션을 통과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높은 균형 감각과 모터사이클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따라줘야 한다.
트라이얼 자체 인구는 많지 않지만 다른 종목의 레이서들이
훈련으로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또 트라이얼이다.
스페인은 정열적인 나라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그것에 집중한다.
이는 무조건 뛰어들기보다는 천천히 여유 있게 준비를 마치고 도전하는 스페인사람들의 특성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브랜드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던 것은 스페인이 처한 국가적 상황 때문이었다.
내전과 독재, 그리고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대량 생산을 해야만 하는 브랜드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때문에 수작업으로 하나씩 만들어내는 트라이얼 모터사이클이 더 시작하기 쉬웠을 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는 브랜드가 없다고 사람까지 없지는 않았다.
온로드 레이스 최고봉인 모토GP의 각종 기록을 깨고 있는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마크 마르케즈를 비롯해서
호르헤 로렌조, 다니 페드로사, 매버릭 비날레스, 알렉스 린스, 알렉스 에스파가로, 폴 에스파가로 등
스페인 국적의 선수들 비율이 가장 높다.
오프로드에서도 스페인 선수들은 강력하다. 마크 코마, 이반 세르반테스, 알프레도 고메즈, 마리오 로만 등
역대급 전적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도 포디움에 오르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 스페인 선수가 상당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에는 트라이얼이라는 든든한 기초과목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최홍준 (<더 모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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