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훈련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82년 6월 8일,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각각 100여 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베카 계곡에서 대규모 공중전을 벌였다.
물러설 수 없는 양측의 싸움은 사흘간 지속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리아는 85기가 격추됐지만, 이스라엘의 손실은 2기에 불과했다.
이스라엘 공군 F-15, F-16 전투기의 성능이 이같은 결과를 빚어낸 이유로 꼽히지만,
전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제한 이스라엘 공군 E-2 조기경보기의 역할이 컸다.
미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만 보유했던 조기경보기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고,
기능도 강화돼 조기경보통제기로 진화한 것도 이때의 ‘쇼크’가 한몫했다.
한국도 2011년부터 미국 보잉사의 E-737 ‘피스아이’ 4대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확장으로 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상시 체공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2대 추가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공군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구름 사이를 날아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추가 도입 쟁점 사항은 무엇일까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6월 서욱 국방부 장관 주관 하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1조5900억 원을 들여 차기 조기경보기 2대를 도입, 2028년 전력화하는 사업을
공개경쟁에 의한 해외 상업구매로 진행하기로 했다.
후보 기종은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와 미국 보잉 E-737이 거론된다.
방사청은 큰 틀에서는 기존 공개경쟁 체제로 사업 방식을 유지하되
상업구매와 대외군사판매(FMS)가 함께 적용될 경우
종합평가기준 가중치를 구분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품질 등을 보증하는 FMS는 기술이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반 상업구매 방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방사청은 이번 사업과 관련, 제안요청서(RFP)를 올해 말이나
내년쯤 공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가 성능 점검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사브 제공
이와 관련해 사업 수주를 노리는 업체들의 탐색전이 물밑에서 전개되면서
쟁점 사항들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전문가들과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업에서 공군 요구도 수준이
관건이 될 가능성을 거론한다.
공군은 2006년 E-737 도입을 결정한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을 위해
2004년 공군 차원의 요구도를 제시한 바 있다.
정확한 내용은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탐지거리가 다소 짧고 공중 표적 탐지에 국한되더라도
360도 전방위 탐색이 가능한 기체를 선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737은 360도 전방위감시 상황에서 탐지거리는 370㎞다.
논란의 핵심은 17년 전에 설정한 요구도를 2030년대
한반도 상공을 누빌 차기 조기경보통제기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느냐는 부분이다.
최근 해외 무기시장에서는 360도 전방위 탐색보다는 탐지거리가 길거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종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아이는 신형 에리아이 탐지거리 연장 레이더를 장착,
상시 탐색 상황에서 650㎞, 집중 감시 임무에서는 750㎞까지 탐지가 가능하다.
해양감시레이더를 통해 300㎞ 떨어진 바다에 있는 목선도 포착한다.
미국 해군 E-2D는 전역미사일방어(TAMD)에 투입할 수 있는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공군도 확장된 KADIZ를 지키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항공기도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기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스웨덴 사브 글로벌아이 조기경보통제기들이 시험비행에 나서고 있다. 사브 제공
2019년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으로 해상 경계태세 수요가 늘어난 상황을 반영해
공중과 해상 감시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 무기 시장을 특정 외국 업체가 과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사청은 지난해 10월 방추위를 열어 E-737 피아식별장비(IFF) 및
링크-16 성능개량사업을 2025년까지 4900억 원을 들여
미국 보잉을 통해 추진키로 했다.
보잉이 원제작사인 만큼 다른 업체는 참여조차 쉽지 않다.
E-737에 대한 잠재적 성능개량 소요까지 더해지면,
보잉이 얻게 될 이익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화할 F-15K 성능개량은 예상 사업비가 수조원에 달하는데,
원제작사인 보잉이 수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 3월 방추위에서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의결된 3조1700억 원 규모의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도 보잉의 AH-64E가 선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앞서 1차 사업에서 AH-64 36대를 1조9000억 원에 한국군에 공급한 보잉이
2차 사업 수주까지 성공한다면 AH-64 한국 판매로 5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얻게 된다.
보잉이 한국 해군에 납품하게 될 P-8A 해상초계기까지 합치면,
보잉은 2013년 차기전투기(F-X) 사업에서 록히드마틴 F-35A에
패한 것을 만회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얻게 될 전망이다.
“대안이 있는 차기 조기경보기 사업까지 굳이 보잉에 넘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 해군 E-2 조기경보통제기가 미군과의 상호운용성 훈련을 위해 미 핵항모 갑판에 착함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인식의 전환’ 통한 시너지 극대화 필요
군 안팎에서는 10여년 전의 E-X 사업 틀에서 벗어나 전장환경 및
해외 방산시장 변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서방 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조기경보통제기는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사용한다.
글로벌아이는 캐나다 봄바디어의 글로벌 6000를 쓴다.
브라질 엠브리어가 만든 R-99는 엠브리어 ERJ-145을 사용한다.
엠브리어 및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과 엘타 등이 공동개발하는 신형
P-600은 엠브리어의 레거시 500을 쓴다.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는 운영유지비나 도입 가격이 낮지만,
항속거리와 체공시간은 길다.
E-X 사업 당시 후보기종이었던 이스라엘 G-550 조기경보통제기는
걸프스트림 G-550을 썼다.
G-550 조기경보통제기는 체공시간 10시간, 비행거리 1만㎞로
E-737과 큰 차이가 없었다.
IT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자동화가 이뤄지고,
전자장비의 크기는 줄어들었으나 성능은 크게 향상됐다.
대표적 핵심 장비인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는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기존 레이더보다 향상됐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G-550 조기경보통제기. IAI 제공
이는 전자장비 운용에 필요한 공간 규모가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진다.
B-737이나 A320 같은 중형 여객기를 꼭 사용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공군이 현재 운용중인 E-737과 동일한 기종을 또다시 들여오는 것은
미래 전장환경에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기경보통제기가 활동할 KADIZ는 바다와 접해있다.
하늘 위를 날아가는 표적과 더불어 해상에서의 움직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KADIZ에 폭격기를 수시로 들여보내는 중국은 비행경로 상에
군함을 배치하기도 한다.
2018년 일본 초계기 저공 위협비행 사건처럼 동해상에서
공중 및 해상 위협이 함께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P-8A가 도입돼도 해군 해상초계기 전력이 한반도 해역을
철저히 감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브라질 엠브리어가 제안하는 P-600 조기경보통제기. 엠브리어 제공
따라서 공중 감시를 맡는 E-737과 함께 새롭게 도입될 차기 조기경보통제기는
하늘과 해상의 움직임을 함께 감시하면서 E-737이 탐지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포착하는 보완적 전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복수 기종의 조기경보통제기를 쓰는 사례가 있다.
일본은 E-2D와 E-767을 함께 사용한다.
파키스탄도 중국산과 스웨덴산 조기경보통제기를 함께 운용한다.
이를 통해 탐지능력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갑작스런 결함 등에도 대비할 수 있다.
현재 차기 조기경보통제기 사업의 최종 승자는 내년 대선 이후에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 안팎의 관측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군 당국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업의 향방도 결정될 것으로 보여
정부와 군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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