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글과 자료들

국보 ‘울산 반구대 암각화’ 발견 52년… 연구자 2인이 말하는 보존대책

mistyblue 2023. 3. 21. 08:56
 
2014년 촬영한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경(위 사진).
1971년 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암각화가 새겨진 암면 하단부가 떨어져 나가
아래쪽에 빈 공간이 생긴 상태”라고 우려했다.
아래 사진은 문 교수가 1970년대 제작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실측도면.
지식산업사 제공
 
국보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된 지 52년이 됐지만
장마철이 되면 여전히 물에 잠긴다.
이 유적을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83)와
30년 동안 연구해온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64)가
각각 ‘울산 반구대 암각화’(지식산업사)와
‘반구대 이야기’(성균관대학교출판부)를 최근 펴냈다.
이들은 “당장 보존에 나서지 않으면
세계적 암각화 유적을 잃어버릴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네 주민 제보로 운명같은 만남… 댐 수위 낮춰 보존하는게 급선무”
반구대 암각화 첫 발견 문명대 교수

 
“반질반질한 암면(巖面)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춤추는 무당과 거북 세 마리,
고래 머리가 새겨져 있었어요.
물에 잠겨 일부만 보였지만 바로 직감했죠. 이건 대단한 유적이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사진)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1971년 12월 25일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 책임자로 울산 천전리 암각화 조사를 하던 때였다.
“동네 절벽에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는 대곡리 주민의 제보를 받고,
배 한 척을 빌려 울산 울주군 대곡천 암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반도 선사문화의 정점’으로 불리는 반구대 암각화를 운명처럼 만났다.
14일 만난 문 교수는 “이후 이 유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고 했다.

암각화의 전모를 파악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65년 건설된 사연댐 때문에 1년 중 최장 5개월간 암면이 물에 잠기는 탓이었다.
가뭄이 들어 물이 빠진 1974년에야 제대로 된 실측 조사를 처음 진행했다.
그는 “혹시라도 암면이 떨어져 나갈까 봐 표면에 점토를 일일이 붙인 결과
높이 2.5m, 너비 9m에 이르는 암면에서는 고래,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동물 문양은 물론이고 고래를 잡는 선원들의 모습 등
문양 300여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1984년 그가 펴낸 최초의 반구대 암각화 종합 보고서
‘반구대’(동국대학교)에는 손수 그린 ‘대곡리 암각화 전면 실측도’가 담겼다.
국내 선사시대 암각화 연구가 전무하던 시절 이 책이 나온 뒤
반구대 암각화 연구가 본격화됐고, 한국암각화학회가 결성됐다.
문 교수는 “여러 시기에 걸쳐 한곳에 집중적으로 겹쳐 그려진 암각화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기 어렵다”며 “‘세계미술사’에도 구석기시대에는
라스코 동굴 벽화, 신석기시대에는 한국의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고
쓰일 정도로 손꼽히는 유적”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댐으로 인해 60년 가까이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는 것.
그는 “첫 발견 때만 해도 하단부에 빈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밑부분이 모두 탈락되고 없다”며
“돌 등으로 메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암면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연댐 수위를 낮춰 유적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세계가 인정한 신석기 문화유산… ‘멸실위기 유산’으로 지정될 위기”

30년째 암각화 연구 전호태 교수
 
“유네스코에서는 사연댐 수위 조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멸실 위기 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국보로 지정해놓고 수십 년째 보존 계획도 세우지 못해
이 같은 말이 나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최근 ‘반구대 이야기’(성균관대학교출판부)를 펴낸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사진)는
13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후보 목록에만 올라 있다.
보존 계획을 세우지 못해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에 제출할 서류도 못 만드는 실정이다.

전 교수는 “2011년 훼손 실태 조사 결과 이미 고래 문양의 입 주변을 포함해
암면 56군데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간 사실이 확인됐다”며
“장마철마다 물에 잠기면서 지금도 조금씩 유적 일부가 부서져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1994년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연구했고
1995년과 2000년, 2018년 등 세 차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실측 조사해
고래 57점을 포함한 문양 355점의 전모를 밝혀냈다.
2011년부터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이번 책은 암각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첫 발견 순간부터
최신 연구까지 알기 쉽게 풀어낸 대중서다.

1965년 지어진 사연댐은 수문이 따로 없어 비가 오면 쉽게 물이 불어나는 구조다.
고고학계에서는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 왔지만
식수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생태 제방을 쌓는 안,
물길을 돌리는 방안, 투명 물막이 설치 방안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되거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실현되지는 않았다.
부족한 물을 인근 다른 댐에서 충당하는 방침이 추진됐지만
역시 물 부족을 우려하는 대구와 경북 자치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전 교수는 “역대 울산시장들은 식수 부족을 우려하는 시민을 설득하지도,
타 지역을 통한 식수 지원 방안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며
“취수원을 조정해 사연댐의 물을 빼서라도 암각화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일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동화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가 인정하는 신석기 문화유산입니다.
한데 정작 우리가 그 가치를 몰라보고 물속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