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글과 자료들

가톨릭 교회가 숨기려고 하는 추악한 사실들!

mistyblue 2024. 3. 15. 07:45

 

가톨릭 교회가 숨기려고 하는 추악한 사실들!

수년에 걸쳐, 수많은 종교적인 추문들이 발생했고, 이것은 특히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인 가톨릭에서 명백하다. 비록 이러한 추문들 중 많은 것들이 최근 수십 년 동안 밝혀졌을 뿐이지만, 가톨릭은 수 세기에 걸친 논쟁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을 통해 가톨릭 교회를 뒤흔든 다양한 추문과 그들이 숨기려고 하는 사실은 무엇인지 탐구해 보도록 하자.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비상식적인 취미

재미를 위해 말의 교배를 관찰하는 다소 독특한 취미 외에도, 이 교황은 1501년에 ‘밤의 연회’라는 제목의 행사와 연관되었다고 밝혀졌을 때 악명을 얻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비상식적인 취미

역사학자 토니 페로테에 따르면, 그는 50명의 여성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설득했고, 이후 밤을 땅에 던지면서 ‘여성들에게 돼지처럼 발 주변을 기어다니게 했다’고 한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비상식적인 취미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여성들과 가장 많은 성적인 만남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파티에 흥분을 더했다고 한다.

수세기 동안 행해진 무슬림 억압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91년까지 진행되었는데, 초기 목표는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점령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300년에 걸친 폭력적인 갈등을 초래했다.

수세기 동안 행해진 무슬림 억압

이 노력으로 약 17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중에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헌신한 사상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에 도달하기 전까지 십자군 20명 중 1명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세기에 걸쳐 박해를 받아온 유대인들

십자군은 무슬림뿐만 아니라 강제 개종과 살인으로 고통 받는 유대인들도 박해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잔혹한 행위들

1294년부터 1303년까지 가톨릭 교회를 이끌었던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는 평판이 미심쩍었는데, 그는 여러 여성과 아이들을 데리고 부적절한 행동을 해 사후 고발까지 이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잔혹한 행위들

그는 단테의 ‘지옥’에서도 지옥에 있을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게다가 그는 팔레스트리나 도시 전체를 파괴하여 약 6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녀 재판

1487년에 쓰여진 책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마녀들의 망치’로도 알려짐)은 마녀의 존재를 확언하는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선언 이후 등장했다. 이 선언은 수많은 여성들이 부당하게 박해를 받고 마법의 의심을 받아 사형에 처해진 어두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시대의 사상자 수는 주로 여성이었으며 4만 명에서 5만 명 사이로 추정되지만, 모든 사형이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마녀 재판

이 책에 의해 시작된 폭력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되었으며, 이것은 1692년 살렘 마녀 재판과 같은 주목할 만한 사건들로 증명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기록된 처형은 1793년 폴란드에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 사냥은 오늘날 특정 지역, 특히 다양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지속되고 있다.

 

기사단 제거

1118년에 제정된 가톨릭 군대 명령은 십자군 전쟁과 교회에 봉사하는 데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그 명령에 대한 그의 미지급 부채 때문에 교회에 기사단을 제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기사단 제거

1307년, 교황 클레멘스 5세는 기사단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그 결과 1312년부터 기사단의 질서가 해체되었고, 몇몇 구성원들이 화형을 통해 처형되었다.

산 채로 화형에 처한 잔다르크

잔 다르크는 영국에 대항하는 군사적 노력으로 유명했지만, 의상 선택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의 박해에 직면했다.

산 채로 화형에 처한 잔다르크

교회는 결국 이 19살 소녀를 70가지가 넘는 죄목으로 재판했는데, 그 중 하나는 남성복을 입은 행위였다. 1431년 잔 다르크는 화형에 처했지만, 몇 년 후 그녀는 순교자로 인정되었고, 1920년 그녀를 비난했던 교회는 그녀를 시성했다.

교황 비오 12세와 홀로코스트

교황 비오 12세는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집단 처형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교황 비오 12세와 홀로코스트

바티칸이 2020년에 발견한 새로운 증거에 따르면 1942년 9월, 교황의 보좌관의 상반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바르샤바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를 목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교황 비오 12세와 홀로코스트

1942년 8월에 우크라이나 대주교 안제이 제프티키는 레보프게토의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고 바티칸에 알리기도 했다.

 

성경을 번역한 죄로 처형당한 윌리엄 틴데일

교회는 영어학자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광범위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유로 그를 화형에 처했다.

 

성경을 번역한 죄로 처형당한 윌리엄 틴데일

가톨릭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자국어 성경을 배포하는 것을 반대했고, 틴데일과 그의 책 사본 모두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43년 후에 불에 탄 존 위클리프

개신교의 기여자인 위클리프는 가톨릭 교회가 소유물을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경의 첫 번째 영어 번역에도 참여했다.

43년 후에 불에 탄 존 위클리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1년이 지난 1415년, 와이클리프는 이단자로 낙인찍혔다. 그의 글은 12년의 기간 동안 소각되었고,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다.

과학을 발전시킨 죄로 투옥된 갈릴레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별이 우주의 중심점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이단으로 비난을 받았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했으며,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 저항한 사상가를 살해한 사실

체코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얀 후스는 교회가 인간 지도자들 때문에 결함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가톨릭 교회와 잘 맞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1415년에 후스는 체포되었고, 이단으로 기소되었고, 결국 화형에 처했다.

죄를 용서하여 돈을 버는 것

면죄부의 개념은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나 면죄부는 무엇을 수반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른다. “면죄부는 이미 죄가 용서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받는 일시적인 형벌이 면제되는 것이다.”

죄를 용서하여 돈을 버는 것

교황 레오 10세 (1513년-1521년)의 통치 기간 동안, 개인들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이 관습적이었다. 더 극단적인 경우, 일부는 아직 행해지지 않은 죄에 대해 면죄부를 팔았고,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기여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성적 학대

수년 동안, 미성년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성적 학대 사건들이 가톨릭 교회에 의해 은폐되어 왔다.

여러 차례에 걸친 성적 학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에야 교회 내 성적 학대자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여러 차례에 걸친 성적 학대

강력한 가톨릭 교회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2011년의 한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만 약 17,2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금의 교황은 동성애를 지지한다.

예수회 출신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예수회가 뭔지도 모른다.

동성애자들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우리가 뭐라 할것은 없지만

정치계가 나서서

그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어서

일반인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만든다.

차별하지 말라면서

소수를 위한 다수를 억압하는 법을 만들어

다수를 차별한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관심도 없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