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영업종료…24층 새 호텔 추진
아침 7시40분, 이른 아침인데도 대온천탕 여탕은
비집고 들어갈 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목욕 의자에 앉은 이들은 대부분 중년·노년 여성들이었고,
40대 이하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서너명 정도였다.
좌식 샤워대 앞은 빈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온탕 주변에 둘러앉아 때를 미는 여성들 틈에
목욕용품이 담긴 작은 바가지를 들이밀었다.
지난 15일 대전 유성구 봉명동 ‘유성호텔’ 전경.
“갈수록 배가 나와서 큰일여.”
“쩌어기 해조탕 가서 폭포 좀 맞아봐유.”
“등도 아니고 배에다 워뜨케 물을 맞는다는겨?”
“그냥 배때기를 확 까뒤집고 맞으믄 되지 뭐가 문제여!”
터줏대감, 아니 터주마님으로 뵈는 3인방이 ‘수다 삼매경’이었다.
할머니들이 ‘깔깔’ 소리를 내며 웃다 말고 목욕권 얘기를 했다.
이미 끊어놓은 온천탕 티켓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동네 할머니들에게라도 나눠 줘야겠다는 얘기였다.
“인자 워디로 목욕 다녀얄지 몰겄어.
우리 집은 한번에 티켓을 100장씩 끊어놓고 식구들 전부 여기만 다녔는디,
인자 없어진다니 아쉬워서 워쩐댜?”
유성호텔 로비에 전시된 1918년 개관한 최초 ‘유성온천호텔’ 모습 사진.
유성호텔 로비에 전시된 1920년대 유성온천호텔 온천탕 내부(탈의실·욕장·현관) 모습 사진.
빨래터로 방치되다 일본인이 개발
오랫동안 지역민의 사랑을 받아온 대전 유성구 봉명동의 유성호텔이
오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온천호텔 영업을 시작한 지 109년 만이다.
왕이 목욕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던 유성온천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빨래터로만 쓰이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20세기 초 대전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알아봤다.
그들은 1913년 12월 시굴조사로 탕구를 발견했고,
수질조사를 거쳐 1914년 2월 주식회사 대전온천을 설립했다.
1915년 8월 온천공 개발에 성공해 온천 영업을 시작하고,
1918년 지금 온천수 공원 자리에 ‘유성온천호텔’을 세웠다.
돈 냄새를 맡은 ‘공주 갑부’ 김갑순이 1921년
대전온천의 주식을 사 모아 최대주주가 됐다.
김갑순은 회사 이름을 유성온천으로 바꾸고
주변 땅 1만평을 사들인 뒤 공원을 조성해 사업을 키웠다.
유성호텔 로비에 전시된, 1926년 12월3일 동아일보에 소개된 유성온천 관련 기사.
일제강점기 유성온천의 인기는 제법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1927년 7월26일 동아일보가 전국 유명 피서지를 소개한 기사를 보면
유성온천에 대해 “그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름 성수기 때 각지에서 모여드는 피서객의 수가 적지 않다”고 적혀 있다.
여행지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만큼 사건·사고도 잦았다.
당시 신문에는 ‘전라북도에 사는 유부남이 기생과 밀월여행을 떠난 곳’,
‘한 부인이 남편과 싸우고 나가 우물에 빠져 죽은 장소’,
‘연애소설 주인공이 계룡산 구경한 뒤 목욕하러 들르는 곳’ 등으로 언급된다.
온천 출입 때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성호텔 로비에 전시된, 방문객이 색칠한 유성호텔 건물 그림 모음.
광복 뒤에는 고위 인사들의 단골 숙박지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전을 방문할 때마다 머물렀고,
김종필 전 총리는 휴가 때면 꼭 유성호텔을 찾았다.
호텔은 1966년 12월 지금 자리로 신축 이전했는데,
1968년 11월 커피숍 여직원의 실수로 불이 나 호텔 전체가 타버렸다.
이후 1970년대 초반 경영난을 겪으며 경매 매물로 나왔다가
1977년 4월 유성관광개발로 법인을 전환한 뒤,
1986년 10월 객실 125개 규모로 증축했다.
호텔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대전 지역 선수촌으로 쓰였다.
1992년 지금 규모(객실 190개)로 재증축하며 온천수영장을 만들었고,
‘유성온천호텔’에서 ‘유성호텔’로 이름을 바꾼 뒤
이듬해 대전 엑스포 때는 행사 기간 내내 ‘본부 호텔’로 운영됐다.
아듀! 유성호텔…새 모습으로 만나자
그러나 시대 변화로 온천 이용객은 점차 줄었고,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방문객이 끊기면서 경영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유성호텔은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
적자로 전환한 뒤 2021년까지 누적 적자가 37억여원에 이르렀다.
결국 2022년 10월31일 유성관광개발은 호텔 자산을 담보로
신한자산신탁에서 수백억원을 빌렸고, 호텔은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한 어린이가 지난 14일 유성호텔 대온천탕 앞에 설치된 포토스폿에서 놀고 있다.
‘최후 영업일’을 앞둔 유성호텔이 요즘 공을 들이는 것은 ‘추억 마케팅’이다.
호텔 공식 누리집에서 숙박 예약을 하면 체크인할 때
100년 전 유성온천호텔의 모습이 그려진 플라스틱 목욕 바가지를 준다.
어린이 손님들이 유성호텔에서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유성온천과 호텔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유성호텔 방문 기념 학습지’(슬기로운 호텔생활)도 준비했다.
객실 냉장고는 바나나맛 우유와 초코파이로 채워졌고,
대온천탕 입구에는 ‘늘 함께해줘서 고마워, 유성호텔 1915’라며 포토스폿이 만들어졌다.
지난 14일 유성호텔에 놓여 있던 바나나맛 우유와 초코파이,
폐업 뒤 유성호텔 자리에는 새 호텔이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유성호텔 쪽은 지난 2월 ‘호텔 터에 2028년 10월까지 24층짜리 건물을 지어
관광호텔업을 하겠다’며 사업 승인 신청을 한 상태다.
유성구 관계자는 “지금 건물을 허문 뒤 그 자리에 호텔 1개 동,
주상복합 2개 동 등 고층건물 3개 동을 지어 올릴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오랜 역사의 유성호텔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 자리에 대규모 브랜드 호텔이 들어서게 되면
유성온천지구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유성호텔이 어린이 손님을 위해 준비한 ‘유성호텔 방문 기념 학습지’(슬기로운 호텔생활).
유성호텔 로비에 걸린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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